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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2023년 <더문>에서 2009년 <더문>으로, 인간에 대한 익숙한 의문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2023년 <더문>에서 2009년 <더문>으로, 인간에 대한 익숙한 의문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14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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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다룬 김용화 감독의 2023년 개봉 영화 <더문>에 이어서 또 한편의 <더문>을 다루고 싶다. 전에도 몇 번 시도했던 글쓰기 방법인데, 한 편의 영화에서 다른 편의 영화로 이어가는 영화 이어가기이다. 기준은 그저 ‘떠오르기’, ‘생각나기’이다. 떠오르거나 생각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번엔 우리말 제목이 같아 떠오른 영화다. 던칸 존스 감독의 2009년 개봉 영화 <더문>은 여러모로 2023년 영화 <더문>과는 매우 달라서, 비교하는 재미도 크다. 그리고 고민도 하게 된다.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걸까?

 

<더문>(던칸 존스, 2009) 한국 포스터

- <The Moon>(2023)과 <Moon>(2009)

사실 두 <더문>의 영어 제목은 다르다. 2023년 영화 <더문>의 영어 제목에는 정관사 The가 붙었고 2009년 영화 <더문>의 제목에는 붙지 않았다. (<더문> 한국 포스터에는 The가 붙어있지만, 미국 포스터에는 빠져있다.) 그렇다고 두 영화가 다른 달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2009년 영화의 배경도 지구의 위성인 달이다. 다만 달이 아니어도 영화 내용의 전개에는 문제가 없다. 달이듯 화성이든 가상의 별이든, 혹은 지구에서 고립된 어딘가라면 된다.

2023년 영화 <더문>이 달 탐사가 시도 중인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면, 2009년 영화 <더문>에서는 이미 달 표면의 새로운 자원을 채굴하며, 지구의 자원 고갈 상황을 해결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샘은 자원을 채굴해 지구로 보내는 달 기지 ‘사랑’에서 3년째 홀로 근무 중이다. 자원을 채굴하고, 채굴한 자원을 지구로 보내는 모든 과정은 자동화되어 있어서, 샘은 기계에 문제가 생기는지 지켜보며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근무 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는데, 귀가해 아내와 딸을 만날 기대에 차 있다.

2023년 <더문>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달 탐사를 마친 황선우 대원의 지구 귀환을 위해 국경을 뛰어넘어 정부와 개인 차원으로 많은 이들이 애를 쓴다면, 2009년 <더문>에서 샘이 지구로 돌아가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달 기지를 운영 중인 회사 차원으로도 달 왕복 정도는 가능한 미래다. 문제는 샘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헛것도 보인다. 과연 무사 귀가할 수 있을까? (혹시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여기서 읽기를 멈추시고, OTT로 <더문> 보러 가시길!)

 

<더문>(던칸 존스, 2009) 스틸

- 복제인간과 로봇, 그리고 인간

샘에게 문제가 생긴다. 그의 위기는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면서 발생한다. 영화 중반 그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란 걸 알게 된다. 그의 가족에 대한 기억도 모두 이식된 기억이었고, 그가 귀가를 위해 탑승 예정이던 캡슐은 수명이 다한 복제인간을 소각하는 관이었다.

달 기지에서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던 로봇 거티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티는 지구 본사와 샘 사이에서 업무를 전달해 왔고, 샘의 지시에 따라 달 기지 곳곳의 기계 장치를 작동시켜 왔다. 통신 위성 고장으로 실시간 영상 대화가 불가하다고 해, 사후 영상 재생, 사전 영상 녹화를 통해 지구와 소통하고 있던 샘은, 거티가 실시간으로 회사 상사와 대화 중인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샘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샘 수백, 수천 명이 보관 중 달 기지 ‘사랑’의 비밀 공간도 발견한다. 3년씩 가족과 떨어져 그리워하며, 일하다 죽을 예정인 수많은 샘을 발견한 샘은 충격에 빠진다. 자신보다 앞서 죽어간 수많은 샘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도 찾아낸다. 물론 이 모든 상황도 로봇 거티는 알고 있었다.

샘이 회사에 기만당한 걸 알게 된 순간, 회사에 복종할 것 같던 로봇 거티는 샘의 편에 선다. 샘이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됐음을 회사에 알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원래 계획대로 귀가하기를 원하는 샘을 돕는다. 비록 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둘 다 포기하지 않는다. 

 

<더문>(던칸 존스, 2009) 스틸

샘과 거티는 그들 그대로의 모습으로 연대한다. 누구도 자신이 인간이 아님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인간 중심적 예상일 것이다. 인간이든 복제인간이든 로봇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동료를 위해 노력한다.

영화 내내 샘과 거티만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배우는 샘을 연기한 샘 록웰뿐이다. 로봇 거티의 목소리를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외 회사 임원, 샘의 아내, 딸의 모습은 샘의 꼼을 통해 잠깐이나 영상 통화 속 작은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다.

철저하게 고립된 샘을 지켜보며,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특정 회사의 탐욕스러운 일탈로 보이는 면도 있지만, 복제인간과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윤리성 문제에서 더 나아가 그들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 AI, 챗GPT 등과 관련해서도 걱정이 많다. 충분히 이해되는 인간 중심적 두려움이지만, 기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던칸 존스 감독은 <더문>에 이어 <소스 코드>(2011)에서도 관객을 비슷한 고민에 빠뜨린다. 그는 죽은 것인가? 그를 어찌해야 할까? 어찌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걸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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