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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짜는 아메리카 신파극
눈물을 짜는 아메리카 신파극
  • 토마스 프랭크 | 언론인
  • 승인 2020.11.30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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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울고 있다. 판정단도 울고, 평론가도 울고, 대선 패배자를 지지하던 이들은 물론, 승리자를 지지하던 이들도 눈물을 흘렸다. 각 언론 매체에는 대선주자들로 인한 눈물의 카타르시스에 관한 논평들이 넘쳐났다. 도덕적인 고고함을 드러내는 주제였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보통 약자로 몰리지 않던가. 도전과 개척 정신을 근간으로 한 미국인들은 이런 행위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린 민주당 지지자들의 모습도, 수개월 동안 유튜브로 퍼져 공화당 지지자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대권에 대한 욕심을 하루아침에 집어삼켜야 했던 이상주의 엘리트들의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이 ‘자유 진영의 눈물’은 트럼프 집권 내내 공화당의 단골 ‘떡밥’이었고, 대선 기간 중 클린턴 지지자들이 내건 현수막에서도 “Make Liberals Cry Again”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다시 한 번 자유주의자들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해주자’는 뜻이었다. 심지어 ‘Liberal Tears’란 총기류 관리 제품 브랜드도 나왔다. “I Lube My Rifles with Liberal Tears(자유 진영의 눈물로 내 총을 닦는다)”란 표현을 빗댄 것이었다. 

 

<당신은 착한 미국인입니까? >, 1920-1960 - 필립 지저스 콘살보스

언제나 현학적인 민주당

보수 진영의 이런 야유에, 민주당에서는 언제나처럼 현학적인 방식으로 응수했다. 저들의 행동을 이론화하고, 이는 곧 부덕함의 소치라며 못을 박은 것이다. 11월 5일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평론가 모니카 헤세는 “눈물 나게 해준다는 표현은 권력자의 담론”이라면서 “강자가 약자에게 재미 삼아 치욕을 안기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참고로 이 매체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의 소유로, 약자들과 동떨어져 정적이나 물어뜯고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여념이 없는 한 정당을 지지해왔다.

게다가 이 같은 논평을 내보낸 지 열흘쯤 후 <워싱턴 포스트>지에서는 바이든에 패한 트럼프를 심술궂은 아기로 표현해 1면 기사에 만평으로 내보냈다. 남의 불행을 조롱하는 악취미는 양쪽 모두에게 있었으니 신문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진 꼴이다. 뿐만 아니라 2012년에도 이미 ‘롬니를 애도하는 백인들’이란 이름의 사이트가 잠깐 개설된 적이 있었는데, 해당 사이트에서도 다수의 네티즌들이 오바마와 붙은 롬니 후보의 대선 패배 후 좌절한 공화당 지지자들을 비웃는 행태를 보였다.

사실 어느 쪽 진영이든 패자의 불행을 비웃기는 매한가지다. 오직 내가 흘리는 눈물만이 정당하고 고귀하다 생각하며, 내 눈물만이 곧 제대로 된 정치의식의 표명이고, 철학적 미덕의 증거가 된다. 트럼프 역시 자기 앞에서 눈물을 쏟은 (철강 및 광업 분야) 노동자들을 회의 자리에서 언급하며 이 눈물이 곧 자신이 가진 아우라의 방증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트럼프 패배 이후 공화당에서 보인 약한 모습은 미 국내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한 기쁨의 눈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1월 13일자 <뉴욕 타임스>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의원이 부통령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의 형태로” 속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던 유명 방송인 파드마 라크쉬미의 말을 전했다. 또한 라크쉬미는 예비 부통령의 (딱히 별 내용은 없었던) 당선 소감을 듣고 난 후에도 “재차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격한 감정에 대해 해리스가 “수많은 흑인 및 혼혈 여성들에게 소속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의 눈물은 나의 기쁨?

눈물을 고귀하게 만드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는, 권모술수로 물든 정치판에 아이의 순수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2018년 성추행 의혹으로 대법관 후보에서 탈락할 뻔했던 보수 계열 판사 브렛 캐버노도 같은 수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의 “고작 10살 남짓한 딸 리자”가 피해 여성을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는 생각을 해낸 덕분이었다. 이 눈물 나는 장면을 연출한 덕택에, 그는 결국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혁파였다가 지금은 CNN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인 밴 존스도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생방송 도중 약 2분 동안 복받쳐오는 눈물을 삼키려 애를 썼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이렇게 감정을 쏟아낸 이유도 이해는 간다. “오늘 아침은 부모가 되기에 더 쉬운 날이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품행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보다 쉽게 꺼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말을 하는 내내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너무 집중해서 조명한 탓에, 이를 보던 시청자는 이 불편한 연출을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다. 

우리의 신체적 반응이 진실의 보증수표가 되는 이런 상황에서 눈물은 진정성과 결부된다. 눈물이 거짓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며, 특히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가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 그 눈물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인들이 ‘악어의 눈물’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이따금 일깨워줘야 하는 이유다. 1980년대와 1990년대, TV 전도사의 거짓된 탄식은 미국의 수치였다. 눈물은 잔꾀를 부리기 위한 최고의 무기였고, 당시 TV 전도사들은 눈물 공세를 펴며 온 세상을 기만했다. 근래 백악관 주인이 된 사람들 중 가장 감정이 풍부했던 빌 클린턴 역시 원할 때 수도꼭지 틀듯이 눈물을 뽑아냈다. 눈물 전략은 그의 여러 술수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어쨌든 각양각색의 정치지도자들은 눈물샘을 쥐어짠다. 그만큼 먹히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강자에게 당하는 약자’로 자신을 포지셔닝해, 자기 편을 늘리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아울러 사람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깨끗한 사람일 것이라는 인상도 부여한다.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철의 여인 힐러리 클린턴도 2008년 선거운동으로 지친 하루 끝에 한 여성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람이 어떻게 그리도 낙관적이고 대단할 수 있는 거죠?”라고 묻자 결국 눈물을 보였다.(1)

 

눈물을 짜든지, 징징거리든지

지엄한 트럼프가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칭 세계 최고의 불평꾼답게 우는 소리는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젠가 CNN에서도 “나는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 징징댄다”고 했었는데(2015년 8월 11일) 트럼프는 대선에서 지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징징댔다. 트럼프가 하는 하소연은 보통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고, 대개는 한심하거나 장황한 편이다. 야심한 시각에도 그는 자신에 대한 언론의 가차 없는 공격에 대해, 재선의 꿈을 앗아간 정적에 대해, 심지어 자신이 꾸린 현 정부에 대해서도 푸념 섞인 트윗을 날렸지만 대개 타당한 근거가 없었다.

불평불만으로 임기를 채운 이 사업가 출신의 대통령은 사실 보수 진영을 대표하기에 최고의 적임자였다. 적자생존의 논리를 팔기엔 트럼프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망치려는 눈엣가시 같은 민주당 의원들을 열심히 헐뜯었고, 독실한 소시민들의 가치관을 깎아내리는 TV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미 정치의 중심에 있는 눈물은 그 무엇보다 막강한 정치 언어로서 유력지의 1면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다. 감정적인 바이든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의 야심찬 공약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실정으로 반사 이익을 얻는 동안 공화당에서는 계속해서 무용한 문화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아메리카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고 호소하며 무용한 노력을 퍼부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 그 어느 쪽도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의 문제도, 펜실베이니아주와 미시간주의 재공업화 문제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정치적 담론은 도덕성 시비의 장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고, 정계에서는 그저 상대의 뒤통수를 칠 무기를 잔뜩 쥔 채 피해자 또는 인터넷 검열 투사로 변신하는 일이 흔하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판은 그렇게 인신공격과 오욕의 정치로 변모하고 있다. 고결한 사람이기에, 미천한 사람이기에, 소외된 사람이기에, 탄압을 당하는 사람이기에 눈물을 흘린다. 승리를 손에 넣어 울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해 울기도 한다. 

유럽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아남은 폴란드 시인 타데우시 루제비치는 미국에 대해 “오열하는 슈퍼파워”라는 수식을 붙인 적이 있다. 동명의 한 풍자시에서 그는 2001년 조지 W. 부시의 공천 상황을 묘사했다. 그에 의하면 참가자들이 폭풍 같은 오열을 쏟아내는 감동의 도가니가 펼쳐진 뒤, 부시는 곧이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더니 성대한 연회장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세계에서 가장 힘 있고 돈 많은 나라가 고작 훈계나 잔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의아할 수도 있다. 하물며 이 모든 게 고위층 인사의 눈물로 뒤덮이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더욱 불쾌한 것은 미국에서 결정된 사항이 전 세계 다른 나라 국민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논의가 이뤄질 때, 이 다른 나라 국민들의 눈물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언론인. 정치평론가. 최근 저서로 『The People, No : A Brief History of Anti-Populism』(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20)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Michael Kruse, ‘The woman who made Hillary cry’, Politico, 20 avril 2015. www.politi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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