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새 정치는 가능할까
새 정치는 가능할까
  • 안치용 l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22.03.02 10:22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이후, 정치 없는 ‘정글 민주주의’를 넘어

1990년 1월 22일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이자 민주정의당 총재 노태우,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 3인의 3당 합당에 관한 공동발표문이 나왔다. 이들은 “4당으로 갈라진 현재의 구조로는 나라 안팎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헤쳐 나라의 앞날을 개척할 수 없다”라며,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함께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해 당파적 이해로 분열·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3당 통합’이 정서와 사회경제적 논리, 양자 모두에 의한 동맹이다. 구체제의 집권 여당인 민정당과 김영삼 지도하의 민주당 동맹은, 정서적으로 경상남북도의 자연스런 결합을 의미한다. 또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구체제의 보수세력과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적 성향의 민주화세력은, 민주개혁의 내용과 방향에서 다른 대안보다 더 가까웠다”고 분석했다.(<‘변형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 『사회비평』, 제 13호(1995)

대선결과를 보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가겠다”라던 김영삼의 내기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그 ‘호랑이’가 과연 무엇인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군부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는 등 분명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김영삼 정권 말에 국가부도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은 것은 뼈아픈 오점이다. 

역사의 진행방향에 따른 큰 시야에서 보면 권위주의 정권이 소위 민주주의 정권으로 이행할 때는 권위주의 정권이 급격하고 완벽하게 몰락해 정치적 아노미를 초래하거나, 권위주의 정권이 적대진영의 일부를 포섭해서 질서 있게 퇴각하기도 하는데,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후자의 경로를 걸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갑작스런 몰락, 사회적 혼란 속 신군부의 등장과 전두환이라는 새로운 군사독재 정권의 출현, 국민의 저항과 직선제를 통한 군사독재 정권의 ‘민주주의적’ 재집권, 군사정권과 대항세력 간의 동맹에 이은 ‘희석된’ 군사정권의 재창출, 실질적 의미의 민주적 정권교체라는 숨 가쁜 흐름 속에서 김영삼은 ‘문민정부’를 내세웠다. 그에게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가는 ‘연착륙의 조율’이라는 역사적 임무가 맡겨졌다고 볼 수 있고, 그는 적어도 이런 측면에서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외환위기의 와중인 1997년 12월 18일에 치러진 제15대 대통령선거는 대선에 네 번째 출마한 김대중의 승리였다. 전국 평균 투표율은 80.6%였고, 새정치국민회의 대선주자 김대중은 총 유효투표 2,564만 2,438표의 40.3%인 1,032만 6,275표를 얻어 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회창(993만 5,178표)을 39만 55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국민신당 후보 이인제는 19.2%인 492만 5,591표를 얻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는 지난했고, 정재관언(政財官言) 4자연합의 강력한 공격 속에서 얻어낸 결실이어서 의미가 각별했다. 다만 역경 가운데서 일군 힘겨운 승리다 보니 한계 또한 뚜렷했다. 승리의 원인으로는 DJP연합이라는 지역주의 전략, 이회창 표를 갉아먹은 이인제의 상대적 선전, 집권여당의 실정이 뚜렷하게 부각된 외환위기, 이회창과 불화한 김영삼의 내심의 김대중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DJP연합이 이념적 상충을 빚었다면, 동시에 지역주의의 공고화를 수반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이 지역주의 관점에서 ‘호남고립’이라고 한다면, DJP연합은 호남고립의 안티테제(Antithese)여서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 프레임을 더 강화하는 꼴이 됐다. 

 

산업화·민주화 구도

한국정치에서 지역주의와 산업화·민주화 대립구도라는 두 개의 축은 굳건했다.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3당합당과 DJP연합에 모두 끼어 있어 약간 혼란을 일으켰지만,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하자면 그럴 수 있다. 김대중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까지 4명의 대통령은 모두 경상도 사람이다. 산업화/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힘에서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나온 것은 지역주의 관점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민주화/전라도를 기반으로 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나온 것이 지역주의의 타파일까.

정치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듯 그렇지는 않다. 전라도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는 경상도 표를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경상도 후보를 내세우는 게 승리전략이라는 게 이번 대선 전까지 통념이었다. 실제로 김대중은 김종필 제휴와 이인제 변수가 있어 집권에 간신히 성공했고, 호남인인 정동영 후보는 대선에서 완패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경상도 출신으로 세워야 한다는 이른바 선거공학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에 기반한 셈이다.

이번 20대 대선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일단 표면상 경상도 색이 옅어졌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서울 출생이고 굳이 부친까지 따지면 충청도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경북 안동 출생이긴 하지만 성장은 경기도 성남에서 했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민주당 후보가 경상도 출신인 것은 동일하지만, 지역 기반이 확고한 노무현과 문재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지역주의가 후퇴했으니 한국정치가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아무도 ‘그렇다’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두 당의 주류가 아니다. 이재명은, 박정희에 맞서 싸운 민주화 세력 및 현재 586으로 불리는 이후 학생운동 진영과는 거리가 있다. 성남을 기반으로 한 특정 정치집단의 후원 소문이 도는 한마디로 ‘스트리트 파이터’ 정치인이다. 윤석열은 더하다. 사실 대선 레이스 직전까지 검사였던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거나 대통령이 되는 건 기본적으로 난센스다. 그는 국민의힘 소속 대통령을 구속한 검사였다가 그 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으로 간 것은, 그 당에 단지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없었기 때문으로, 그가 말했듯 여건이 더 좋았다면 얼마든지 민주당으로 갈 수도 있었다.

역대 최악의 대선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세계가 경악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이재명은 전투력은 모르겠으나, 흠결 측면에서는 그 이전의 어떤 민주당 후보도 압도할 만큼 강력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이재명을 나란히 놓으면 이 정도 후보밖에 키우지 못한 민주당에 경악하게 된다. 민주당은 윤석열을 키워내고 이재명을 걸러내지 못한 정당이며, 국민의힘은 아예 자체 역량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 불모정당이다.

선거 판세가 좋지 않은 막판에 이재명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롯한 소위 제3지대 야권 대선 후보들을 향해 통합정부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연대를 제안했다. 여야를 모두 떠다니는 안철수는 이번 대선에서 한국 정치의 최대 웃픈 현상이었다. 윤석열과 단일화 대상인 안철수에 대해 민주당은 단일화든 연대든 모두 가능하다며 다시 러브콜을 보냈다. 

이 당 후보든 저 당 후보든 대통령만 되면 되는 윤석열, 이 당과 단일화 논의가 가능하다가 선거판세에 따라 저 당과도 단일화 논의가 가능한 안철수, 선거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집념과 헝그리 정신 말고는 아무런 변별력을 보여주지 못한 이재명, 몇 가지 차별적 공약을 내세우긴 했지만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에게도 밀린 정의당 심상정. 이번 대선에서 뚜렷하게 부각된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정당의 몰락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산업화/민주화 진영의 정치세력화는 대체로 ‘1987년 체제’ 이후 유지됐는데, 이번 대선에선 이 구분법이 사라지고 정치세력은 단지 이기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특정 인물을 앞세운 무리들로 대체됐다. 한 마디로 ‘정치의 실종’인 것이다. 정치에서 정치의 실종은, 한국 정당정치의 한계가 낳은 불가피한 현상이며, 대선 이후 정치 없는 정치는 새로운 정치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 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해 당파적 이해로 분열ㆍ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1990년 1월 3당이 합당할 때엔 허울뿐이라 해도 소위 명분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이젠 한국 정당정치에서 명분조차 사라지고 이기는 것 말고는 아무런 규칙이 없는 ‘정글민주주의’로 귀결하고 말았다. “당파적 이해로 분열·대결하는 정치”인 ‘정글민주주의’에서 가능한 유일한 정치기능은 포퓰리즘일 따름이다. 당파라는 표현조차 쓰기 힘들어 ‘무리’ 정도가 적절하다.

선거를 거치며 또 선거 이후 정치혐오와 민주주의 무용론이 득세하며 ‘정치 없는 정치’ 가운데 양당은 재편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고, 존재감을 상실한 정의당은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 극명하게 표현된 ‘정글민주주의’는 정치혐오를 더 부추길 테지만, 사실 ‘정글민주주의’가 정치혐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내에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증오자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지나치며, 올바른 민주주의 통치라는 민주적 삶의 고유한 특성인 집단적 행동의 지나침과, 참여 부재로 대표되는 과도한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이중의 과잉을 제어할 수 있는 정치형태이어야 한다.

즉 이들은 대중과 그들의 품행에 불만을 품고 정치 엘리트의 ‘정치’ 행위를 수동적으로 승인하는 수준의 대중‘정치’를 요청한다. 이런 구도에서 정치 엘리트 집단의 ‘정치’는 본질상 ‘정글민주주의’로 진화할 수밖에 없으며 시민 혹은 대중 사이에 정치혐오의 기운을 만연케 하며 그들을 싸움의 구경꾼이자 이익 없는 투전꾼으로 전락시킨다. ‘1987년 체제’의 정당정치 결과물을 우리는 이런 형태로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고 있다. 

이재명과 경쟁한 민주당 대선 후보 이낙연의 측근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21일 돌연 윤석열 지지를 선언한 것은 ‘정글민주주의’의 상징적 풍경이다.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라는 지지의 변은 정치 몰락의 직유다.

대선 이후 정치지형은 급변할 것이다. 막판까지 우세를 유지한 윤석열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칼바람’까지 불면서 기존 정치세력이 일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부패세력 척결 등의 이유로 처음에 지지를 받은 것처럼 ‘칼정치’가 어떤 국민에겐 시원한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민을 주축으로 한 정치의 복원 없이는 어떤 정치도 ‘정글민주주의’의 연장과 심화일 뿐이다. 

기후위기, 양극화 해소,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과 같은 국가적 의제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정치가 복원돼야 할 텐데, 누가 주체가 돼야 하는지는 자명하지만 저들은 너무 강고하고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또한 우리는 저들 중에서 대통령을 뽑아야만 했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 정치, 영화, 춤, 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