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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간 여행 영화의 '하이퍼 리얼'한 힘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간 여행 영화의 '하이퍼 리얼'한 힘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2.03.2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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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프로젝트> 포스터

또 한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애덤 프로젝트>(숀 레비, 2022)를 보며, 여러 번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약간의 혼돈에 빠져버렸다.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영화의 첫 자막처럼 “시간 여행은 존재한다.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일 것 같아졌다.

이런 기시감과 혼돈은 여러 분야의 여러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리티’와 관련지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좀 개인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밝힌다. 

 

- 영화와 하이퍼 리얼리티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의 홍보 문구에서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의미로 ‘하이퍼 리얼’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곤 한다. 사실 ‘하이퍼 리얼’이란 개념은 단순히 매우 사실적이어서 실감이 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여러 의미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글자 그대로만 보면, ‘하이퍼’는 과도한, 초과한, 과잉된, 흥분한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 현실성을 의미한 ‘리얼리티’가 붙었으니, ‘하이퍼 리얼리티’는 지나친 현실성, 과도한 사실성이 된다. 그저 사실이나 현실에 매우 충실하다는 의미 이상을 지닌 개념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하지 않는 현실이지만, 현실처럼 느껴지거나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하이퍼 리얼’이라 칭했다. ‘시뮬라크라’라고 칭한 ‘유사 현실’를 자주 접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으로,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진짜 현실로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현대사회에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유사 현실인 영화에서도 여러 시선에서 반영이 가능한 개념이다. 영화는 의도에 따라 그럴듯하게 재구성된 현실로서 스크린이나 화면에 비추어지는 가짜이지만, 때로는 진짜 현실보다 더 진짜 같게 느껴지다 못해 착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 자체는 하이퍼 리얼하다.

더 나아가 그럴듯함이 그러함으로 느껴지는 순간 하이퍼 리얼리티가 강화된다. 영화는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현실이지만, 여러모로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끼게 되는 ‘과잉 현실’ 혹은 ‘초과 실재’의 가능성을 지닌다.

단순히 허구냐 비 허구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배우라는 걸 알지만 영화 속 현실의 그 사람으로 느껴지고, 세트라는 걸 알지만 그곳으로 느껴지고,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걸 알지만 그것으로 느껴지는 것도 모두 하이퍼 리얼리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 아시아 계 미국인들이 현실에서 아시아인을 보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듯이 무술 유단자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견 역시 하이퍼 리얼리티로 볼 수 있다. 영화라는 유사 현실이 현실에서의 판단력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비롯해 문학이나 미술, 사진 작품, 뉴스 등 현실 기반 혹은 현실 이용 유사 현실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종종 ‘그럴듯함’이 ‘그러함’으로 바뀌는 하이퍼 리얼 상황이 만들어지고, 혼돈과 헛갈림도 증폭된다. (그래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양상으로도 설명되기도 한다.)

 

- 시간 여행이라는 하이퍼 리얼한 여행

어느새 수많은 영화에서 접해온 ‘시간 여행’ 역시 대표적인 하이퍼 리얼 산물이지 않을까? SF뿐만 아니라 공포, 액션, 멜로드라마, 코미디 영화 등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간접적 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 여행 관련 몇몇 이론과 세계관에도 나름 적응해, 이전에 본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며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이 영화인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쉽게 설득당하는 거라 할 수도 있다. <애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시간 여행은 존재한다. 아직 모르고 있을 뿐!” 이란 자막이 뜨는데, 뜨끔했다. 영화 시작부터 하이퍼 리얼 상황에 순식간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건 그동안 반복적으로 접해온 영화 속 시간 여행이라는 유사 현실의 힘이기도 하다. <터미네이터>(제임스 카메론, 1984)에서 시작된 ‘터미네이터’ 시리즈, <백 투더 퓨처>(로버트 저메키스, 1985)로 시작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9)를 포함한 마블 영화까지 수많은 시간 여행 영화를 보아왔다.

<나비 효과>(에릭 브레스 외, 2004), <데자뷰>(토니 스콧, 2006), <시간 여행자의 아내>(로베르트 슈벤트케, 2009), <소스코드>(던칸 존스, 2011), <어바웃 타임>(리차드 커티스, 2013),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2014) 등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와 설정의 시간 여행을 영화를 통해 목격해왔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이시명, 2002),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홍지영, 2016), <하루>(조선호, 2017), <다시, 봄>(정용주, 2018) 등에서 시공간 이동, 과거 바꾸기 노력 등이 펼쳐졌다.

장르 초월, 국적 초월 반복 학습 덕분에 영화 속 ‘시간 여행’은 어느새 매우 현실처럼 느껴지기에 이르렀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나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조금 다른 가설이나 이론도 접했다.

새삼 생각해 보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시간 여행 관련 지식은 특정 과학적 가설이나,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고, 검증해 본 적도 없다.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문득 시간 여행이 정말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과거를 바꾸면 현재와 미래가 바뀔 것만 같다.

<애덤 프로젝트>은 딱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영화 초반에 관련 세계관을 깔끔하게 알려준다. 검증할 능력도 없긴 하지만, 영화를 볼 준비가 됐으니, 기꺼이 믿어줄 수 있다.

2022년 어린 애덤 역시 그렇다. 2050년에서 온 어른 애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금세 믿어 버린다. 2018년 애덤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질문과 대답을 보며 관객 역시 그러려니 하게 된다. 다중우주, 새로운 시간대. 양자 준위, 지정 시간대 등 낯선 단어가 펼쳐지지만, 이 영화를 이해할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영상들을 보며 또 다른 기시감에 빠져 더더욱 반복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익숙함 끝에는 당연함이 올 수밖에 없다.

 

- 또다른 기시감의 힘

<애덤 프로젝트>는 시간 여행과 관련한 기시감 즉 데자뷰만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동안 보아온 또다른 여러 영화를 떠올려 준다. 누군가는 뻔함을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그럴듯함, 그리고 그러함을 느끼게 된다.

웜홀을 지날 때 들리는 먹먹한 효과음은 <콘택트>(로버트 저메키스, 1997)를 소환하고, 엄마와 지내는 어린 애덤을 보며 <이티>(스티븐 스필버그>(1984)의 엘리어트가 떠오른다. 어느 시골의 아름다운 밤, 엘리어트가 이티를 만났던 것처럼, 어린 애덤은 창고로 몰래 숨어든 어른 애덤과 만난다. 이 장면에서는 <아이언 맨 3>(셰인 블랙, 2013)에서 토니를 돕던 시골 소년 할리도 기억이 난다.

 

<애덤 프로젝트> 포스터

이 밖에 감독의 이전 영화 <리얼 스틸>(숀 레비, 2011), <프리 가이>(2021)도 어김없이 떠오르고, 라이언 레이놀즈의 <데드풀> 시리즈를 비롯해 ‘스타 워즈’, ‘스타 트렉’ 시리즈 등도 소환된다.

우리 기준, 2022년 현재로 온 어른 애담은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애담을 도와준다. 슬픔에 빠진 엄마에게도 용기를 준다. 애담은 미래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시간 여행을 감행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아내를 구하러 온 것이다. 온 김에 엄마와 아빠, 나 자신도 좀 돕는 지극히 사적인 스토리로서, 시간 여행보다도 더 많이 접한 영화 속 현실이자, 영화 밖 현실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어른 애덤과 어린 애덤의 수다장이 케미, 아버지의 부재, 피곤한 어머니, 게임 같아 보이지만 익숙한 비행 장면과 광선검을 든 싸움 장면 등이 모두 기시감을 통한 익숙함 덕에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럴듯함을 넘어 그러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라 하겠다.

한편 이 모든 시간 여행과 과거 바꿈 과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딱히 없다는 것도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자주 보아온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유사해 낯설지 않다. 애담의 능력자 아내는 잠시 등장해 유능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애덤의 시간 여행을 위해 또 한 번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물론 나중에 다시 만나긴 한다.

 

- 언제쯤 시간 여행이 가능할까?

다시 돌아와 궁금해진다. 과연 인류는 언제쯤 시간 여행을 하게 될까? 어쩌면 이 영화의 첫 자막처럼 이미 시작됐을까? 그저 우리가 모를 뿐?

<애덤 프로젝트>가 공개된 2022년에 영화 속 ‘시간 여행’을 보며, 이래저래 더더욱 하이퍼 리얼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기시감과 착각 등을 과대 해석한 것일 수도 있으나, 왠지 어디선가 진짜 이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것 만 같다. 보다 가벼운 느낌의 시간 여행 영화로서 가족 영화로서의 일상을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 영화의 힘은 대단하고 무섭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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