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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범죄자의 심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범죄자의 심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 문선영 l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5.02 0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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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스터

범죄자 분석이 미래 과학수사로 이어지기까지

수사드라마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드라마는 1970~1980년대 MBC <수사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반장>이전에도 범죄사건을 소재로, 이를 해결하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은 존재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 박 반장(최불암 분)이 이끄는 수사팀의 활약은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게 됐다. <수사반장>은 당시 실제 발생했던 강력범죄 사건을 ‘안방극장’에서 재연했다는 점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중락 경사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실제로 일어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사건들을 드라마화하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트렌치코트 깃과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며 사건을 수사하던 박 반장은 여전히 소환되는 수사관 이미지 중 하나다. 흩어진 머리카락, 트렌치코트. 한국형 셜록 홈즈를 연상시키는 박 반장의 스타일 외에,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수사 스타일이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은 사설탐정이 합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셜록 홈즈와 유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범죄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논리적인 추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인과적 관계를 통한 해석보다, 범인의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을 통해 사건을 풀어갔다. 이 과정에서 종종 범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드라마의 주요 서사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이 사건 해결을 위해 범인의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은 최근 수사 드라마에서 익숙한 방식인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링과 대조된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은 범죄자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도 열심인 한편, 전통적이고 인간적인 접근방식을 중요시했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이 따뜻하게 기억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박 반장 시대에서 프로파일러 시대로

냉정함보다 인간미 넘치는 수사 스타일, 범인에 대한 이해가 중요했던 <수사반장>에서 냉철한 이성과 논리를 통해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하는, 과학수사 방식의 경찰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요인물로 정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TV드라마에서 과학수사 방식이 적용돼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수사관 캐릭터가 중심이 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미드 <CSI>의 관심이 2010년 이후 김은희 작가의 <싸인>, <유령> 등으로 이어지면서부터다. <시그널>에서 무선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범죄자를 분석하는 박해영(이재훈 분)과 같은 프로파일러가 낯설지 않은 인물이 되기까지, 과학수사 방식 뒤에는 프로파일러의 숨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동안 충격적인 범죄스토리, 흥미로운 범죄사건 해결 과정 등에 몰입돼, 새로운 수사방식이 전환되는 시점에 고된 과정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22년 초에 방송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SBS)은 극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화하는 범죄 형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수사방식, 프로파일링이 정착되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여정에 주목한 드라마다.

동명의 원작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한국 1기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중심으로 한다. 원작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권일용·고나무, 알마, 2018)은 논픽션 작가 고나무가 재구성한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이야기이자, 한국에서 프로파일러가 범죄사건 해결의 중요한 역할로 인정되기까지 긴 과정, 관계된 다양한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원작의 내용을 따라가며 한국 수사에서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의 존재가 인식되는 과정, 그 시간 안에 존재했던 세 명의 범죄자 관련 에피소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드라마 1회에는 1998년 감식계 국영수(진선규 분)팀장이 서울지방청에 범죄행동분석팀을 조직하기 위해 ‘윗분’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수사의 새로운 방식인 범죄행동분석에 대한 필요성뿐 아니라 용어 자체도 생소한 상황에서 국영수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엄연히 감식반이 존재하는데, 범죄행동분석팀이 조직될 명분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국영수는 지문, 혈흔, 필적에 국한돼 범죄사건을 파악하는 감식반과 달리, 미래 범죄는 범죄 현장의 증거를 분석하고 범인의 특징을 추정하는 프로파일링 작업의 필요성을 집요하게 설득한다. 국영수의 반복되는 설득에 기동수사대 기수 대장 허길표(김원해 분)의 “나쁜 방식보다 낯선 방식을 더 싫어하는 것이 윗분들이야”라는 대사는, 당시 범죄행동분석이라는 새로운 작업이 얼마나 큰 벽에 부딪히며 시작했는가를 말해준다. 

1998년의 수사방식은 범죄자의 사적 동기, 범죄 내력 등을 주요한 범죄 원인으로 뒀다. 1970년대 <수사반장>부터 내려오던 범죄자를 바라보는 방식, 즉 원한이나 이해관계를 범죄 원인으로 두고, 범죄자 주변 인물 즉 피해자와 관계된 인물을 용의자로 특정하던 전통적 수사방식이 공고한 시기였다.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 과학수사 등 낯선 용어는 기존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기존의 범죄물 또는 수사물 드라마와 다른 점은 2000년대 초중반에 일어난 희대의 범죄자 3명 즉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의 범죄 스토리 재현보다 새로운 과학수사 방식이 통용되기까지 고된 싸움을 벌여야 했던 프로파일러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범인 되기와 거리 두기: 범죄자와의 고단한 싸움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국영수가 새로운 수사방식 도입인 범죄분석팀을 계획하며, 마음에 둔 인물은 자신만큼 독특하고 집요하기로 소문난, 송하영 경사(김남길 분)다. 송하영이 기존 체제에 머무른 형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드라마 초기 그가 맡은 사건을 접근하는 에피소드에서 제시된다. 

혼자 사는 여성 집에 침입해 성폭행 후 살해하는 ‘빨간 모자 사건’의 범인을, 피해자의 남자친구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송하영은 풀리지 않은 의문점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범죄자의 습성을 파악하기 위해 유사한 범죄이력을 가진 범죄자를 면담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송하영의 행동은 같은 팀원들에게는 경찰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짓으로 비친다. 공권력 유지가 중요했던 1990년대 후반, 범죄자 면담을 위해 영치금을 넣어가며 범죄자의 특성을 읽어내려는 송하영의 수사방식은 경찰의 품위를 실추시키는 행위였을 수밖에 없다. 

송하영은 같은 팀 사수인 형사가 담당한 종결 사건에서도 의심스러운 사실이 있다면 끝까지 놓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런 그녀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극 중 국영수가 송하영을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바로 여기 있다. 실제 인물 권일용을 모델로 한 송하영 캐릭터의 집요한 성격,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의심스러운 정황은 확인을 거듭해 풀어가는 끈기 등은 프로파일러가 갖춰야 할 덕목인 것이다. 

드라마에서 범죄분석팀 국영수, 송하영이 프로파일링하는 사건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동기 없는 살인사건이다. 또한 이들과 맞서는 범인은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다. 2000년대 초중반 발생한 이 사건들은 피해자와 어떤 원한도 이해관계도 없는, 일면식도 없는 대상을 향한 끔찍한 범죄다. 자신이 부유층과 유흥업소 여성을 처단하는 ‘신’이라 착각하며 살인을 엄중한 처벌처럼 여겼던 유영철, 자신의 결핍을 약한 대상을 향한 폭력과 살인으로 충족하려고 했던 정남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살인을 나르시시즘을 충족하는 도구로 삼았던 강호순 등은 오직 욕망 충족과 쾌감을 위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피해자를 향한 죄책감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 범행에 대한 자기 합리화와 환상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낯설었던 2000년대 초반, 범죄분석팀 국영수, 송하영이 새로운 범죄 유형과 맞서는 과정을 재현한다. 드라마는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수없이 반복됐던 범죄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 접할 수 없었던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대면한 당시의 혼란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는 전통적 수사방식과 새로운 수사방식의 답답하고도 치열한 대립으로 제시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수사방식을 고집해서는 새로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는 송하영이 프로파일러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송하영은 정남규 사건을 풀기 위해, 사건 자체에 완전히 몰입한다. 범인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한 그의 몰입은 일명 범인 되기(원작에서는 ‘그화(化)되기’로 소개된다)로 이어진다.

“범죄 희생자는 프로파일러에게는 사물로 인지된다. 피해자들은 시체나 그들에게 가해진 온갖 끔찍한 행위들은 오로지 조사 및 분석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런 정서 메커니즘의 장점은 프로파일러가 감정 소모를 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단점은 프로파일러는 이런 식으로 피해자와 그들의 고통을 다룸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게 될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권일용・고나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알마, 15쪽)

드라마에서 송하영이 마치 범인이 된 듯, 칼을 품고 밤의 공원을 거닐고,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행동을 재연하는 것은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범인 되기를 실현하는 장면이다. 이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에 충실한 송하영의 내적 분열과 갈등에 대한 에피소드와 연결된다. 원작에서 제시한 것처럼 송하영은 프로파일러로서 사건과 범죄자에 몰입하면서 내적 혼란을 경험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의 고통은 감정적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의 고통을 근접함으로써 발생한다. 송하영은 범인 되기를 통해 범인처럼 악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저지른 끔찍함을 경험한다. 그는 범인 되기를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에도 이입된다. 그래서 프로파일러 송하영은 죄책감 없는 범죄자를 대신해 자신을 자책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이성과 논리도 중요하지만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감수성도 필요하다. 

송하영이 범죄자에 대한 혐오와 피해자에 대한 자책감에서 견딜 수 없어 하는 드라마 에피소드는 프로파일러가 넘어야 할 고단한 과정을 제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송하영은 범인 되기를 통한 분열된 주체에서 범죄사건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전문적 프로파일러로 성장한다.

 

범죄자, 그들의 기록이 소환되는 이유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송하영이 프로파일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했던 것은 남아 있는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잊지 않으려는 태도를 통해서였다. 드라마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데 있음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의 마음을 읽는 일은, 그들을 분석하고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과 유사한 범죄 유형을 파악해, 범죄를 예방하는 데 있다. 또한 범죄자의 행동이나 심리를 알아내는 것은 적합한 교화 시스템을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과정도 포함하고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12회에서 두 프로파일러는 자신들의 목적은 피해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우리가 과거 사건의 범죄자를 주인공이 아닌, 끔찍한 범죄자로 기억하고, 이런 범죄들을 그저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최근 트렌드처럼 방송사마다 방영하고 있는 범죄 관련 프로그램들이 지켜야 할 선은 이 지점에서 마련돼야 한다. 범죄사건이나 범죄자 유형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미래형 범죄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문선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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