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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공조 2>에서 발견한 스테레오타입의 변화
<헤어질 결심>, <공조 2>에서 발견한 스테레오타입의 변화
  • 송영애 |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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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영화는 여러 변화를 겪는 중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기를 향하면서, 개봉을 미루던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했고 관객도 영화관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최근 급속하게 성장한 OTT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영화 외적인 변화 이외에 내적 변화도 발견할 할 수 있는데, 특히 외국(국적)인 스테레오타입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 변화의 양상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이석훈 감독의 <공조 2: 인터내셔날>(이상 <공조 2>)에서 찾아볼까 한다.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서래(탕웨이)는 중국인이고, <공조 2>의 주인공 철령(현빈)은 북한인이며 잭(다니엘 헤니)은 미국인이다. 외국 국적의 인물이 한국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데, 그들이 다뤄지는 방식 역시 기존과는 좀 달라 스테레오타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공조2> 포스터

스테레오타입이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은 원래 인쇄 분야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반복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미리 활자판으로 만들어 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여러 분야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는데, ‘판에 박은 듯 뻔한 생각’, ‘고정관념’, ‘정형화된 것’ 등의 의미로 통한다. 영화에서는 내용과 형식 차원 모두에서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한다. 등장인물, 에피소드, 대사 등에서도 스테레오타입을 찾을 수 있고, 영상과 사운드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국적이나 성별, 직업군의 인물이 하는 특정한 말과 행동, 그들이 등장할 때 종종 사용되는 배경 음악, 카메라의 앵글 등도 스테레오타입화될 수 있다. 

장르적 특성과 혼동되기도 하나, 스테레오타입은 ‘편견’과 ‘무관심’의 결과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 속 조선족 인물을 떠올렸을 때 범죄, 폭력 등 몇 가지 비슷한 답만 떠오른다면, 스테레오타입일 가능성이 크다. 관객으로서 비슷한 것을 반복해 접하다 보니 편견을 가지기 쉽고, 별 문제 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영화인은 스테레오타입을 관성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황해>(나홍진, 2010), <공모자들>(김홍선, 2012), <신세계>(박훈정, 2013) <차이나타운>(한준희, 2015), <청년경찰>(김주환, 2017) <범죄도시>(강윤성, 2017) 등 유독 범죄영화에서 비슷한 톤으로 자주 등장하다 보니, 주인공이 아님에도 강렬하게 기억된 경향도 있다. 

만약 실제 조선족들이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 라고 되묻고 싶어진다면, 무관심을 드러내는 거라 할 수 있다. 관련 통계나 주변 사례 등 소위 ‘팩트 체크’를 근거로 하기보다는 별 관심이 없어 던지는 질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듯함’, ‘그럴 것 같음’, ‘익숙함’은 종종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2022년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 국적 외국인(한국계 중국인 포함)은 84만여 명이다.(1) 그런데, 과연 그들의 상당수가 범죄와 관련이 있을까? 게다가 이 많은 사람을 몇몇 한정된 모습만으로 단순화, 일반화하는 게 적절할까? 아니 가능하기나 할까?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순히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극영화를 기록영화처럼 만들라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기존에 습관처럼 반복해 ‘재현(Represent)’하던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혹시 편견에 의한 스테레오타입은 아닌지, 그래서 편견을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 몇 편의 스테레오타입만을 탓할 수는 없다. 드라마·예능 등 다른 장르의 콘텐츠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상황들이 맞물려 집단적 오해와 비하, 혐오 등의 현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수많은 국가의 예비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고민이 필요할 수 있다. 편견과 무관심을 인지하기 전에는, 영화 속 스테레오타입은 변화하기 어렵다. 왜곡일 수도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면, 당연히 변화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 갈등이나 논의, 공감 확산 등의 과정을 거쳐야 좀 더 다양한 모습과 방식이 비로소 추가된다.

최근에 개봉한 <헤어질 결심>과 <공조 2>에서는 그 변화의 양상이 발견된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고, 2000년대 들어서 서서히 변화되어온 결과라 하겠다. 

 

<헤어질 결심>의 중국 여성

<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한국영화에서 주인공 중 몇 안 되는 중국인 여성이다. 중국인으로서도 그렇고, 여성으로서도 그렇고,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 가정 폭력의 피해자, 간병인이라는 직업 설정 등이 ‘약자’라는 중국인 혹은 조선족 여성 스테레오타입과 겹친다. 

 

<파이란> 스틸

<파이란>(송해성, 2001)에서의 파이란(장백지)은 강재(최민식)과 위장 결혼해 입국한 중국 여성이다. 강재와 만난 적이 한 번밖에 없지만, 그에게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인물로, 긍정적으로 말하면 순수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어리석은 인물이다. 특히 외모나 성격 등에서 도움이 필요한 수동적인 인물임이 느껴진다. <댄서의 순정>(박영훈, 2005)에서 조선족 채린(문근영)이나 <차이나블루>(김건, 2012)의 칭칭(정주연) 등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위 ‘나쁜 남자’인 한국인 주인공의 순정에 불을 지핀다. 

 

<댄서의 순정> 스틸

중국인, 조선족, 다른 동남아 출신 아내의 모습과도 비슷했던 <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영화 후반부에서 파격적으로 변신한다. 한국영화에서 거의 보기 힘들었던 아시아계 외국인 혹은 교포의 모습이다. 외모부터 의외다. 매우 도시적이고 화려한 스타일로 변신하고, 마냥 해준(박해일)의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는 수동적인 순정파도 아니다. 영화 초반에 해준이 잠복을 핑계로 서래를 몰래 바라보며 대상화하지만, 영화 후반에는 서래가 해준을 바라본다. 서래는 매우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몇몇 정형성으로 기시감이 드는 인물이 결코 아니다.

 

<헤어질 결심> 스틸

<헤어질 결심>은 올해 ‘벡델초이스 10’에 선정됐다. ‘벡델 테스트 7’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인 10편의 영화에 포함된 것이다. ‘벡델 테스트 7’의 항목은 다음과 같다. 

 

-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 여성 캐릭터가 서로 대화를 나눌 것 

- 그 대화 내용이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 감독·제작자·시나리오 작가·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 비중이 동등할 것 

-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위와 같은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건, 그동안 이런 기준에 맞는 여성이나 소수자 인물이 별로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매우 당연해 보이는 기본적 설정조차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고 있고, 갈등과 협의 등을 거치며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은 미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여성, 아시아계 인물을 다룬 방식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박찬욱이라는 감독, 탕웨이라는 배우이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으나, 이후에도 지속될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점차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외국 인물도 늘고 있으며, 인권, 젠더, 인종 감수성 등이 분명히 개선되고는 있다.

 

<공조 2>의 북한 남성, 미국 남성

<공조 2>도 스테레오타입에 있어, 큰 변화를 실천한 영화다. 남자 주인공 3명 중 2명의 국적이 남한이 아니라는 점부터 파격인데, 그 2명의 모습이 기존 스테레오타입과 거리가 멀다. 탕웨이의 경우처럼, 현빈과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라서 가능했던 지점도 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그들을 그려내는 시선이 분명 새롭다.

북한 남성 철령은 전편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 한국영화에서 막 등장하기 시작한 ‘멋지고 유능한’ 북한인이었다. <공조 2>에서는 5년이라는 세월만큼 진화해, 코미디도 가능한 인물로 변신했다. 새로 등장한 미국 남성 잭은 한국영화 주인공으로는 보기 힘든 미국인이면서, FBI 요원이다. 한국영화에서 FBI 요원이라니? 그것도 주인공으로? 

 

<공조2> 스틸

한국영화 속 북한인과 미국인은 1960~70년대 전쟁영화, 반공영화에 등장하기는 했다. 보통 군인으로 등장해 악마 같은 적 인민군, 고마운 우방이자 배울 것 많은 미군 등으로 스테레오타입화됐다. 당시 정부의 강력한 영화 검열의 영향을 받은 면도 있지만,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적군과 아군으로 바라보는 흑백논리식 시선을 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가장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된 한국인, 정확히 ‘비(非)남한인’은 단연 북한인일 것이다. 1990년대부터 북한인이 나온 영화들 중 당장 떠오르는 것만 꼽아도, 다음과 같이 꽤 많다. 

<남부군>(정지영, 1990), <태백산맥>(임권택, 1994), <쉬리>(강제규, 1999), <간첩 리철진<(장진, 1999),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2005), <국경의 남쪽>(안판석, 2006), <크로싱>(김태균, 2008), <의형제>(장훈, 2010), <포화속으로>(이재한, 2010), <베를린>(류승완, 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장철수, 2013), <용의자>(원신연, 2013), <공조>(김성훈, 2016), <모가디슈>(류승완, 2021) 등 위 영화에서 북한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부터 유능한 군인이나 요원, 자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아버지 등까지 다양한 직업과 상황의 인물로 등장했다. 그 사이 영화 검열도 중단됐고, 남북한 관계 역시 변화무쌍했는데 여러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 하겠다.

 

<공조2> 스틸

우리를 도와준 미군, 기지촌을 드나든 미군 등의 양면적 스테레오타입을 거쳐, 최근 10여 년 동안 미국인 인물 역시 조금은 다변화되어 왔다. <Mr. 로빈 꼬시기>(김상우, 2006)에서 제임스(다니엘 헤니)처럼 매너 좋고 낭만적인 CEO, <감기>(김성수, 2013)에서처럼 전염병 확산 상황에서 우리를 도울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막강 권력의 여러 인물로도 등장했다. 분단 현실과 더불어 미국을 우방이자 뭔가 배울 점이 많은 선진국으로 바라보는 식민주의적 시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공조2>의 잭은 결이 또 다르다. 남한 형사와 북한 형사를 능가하는 막강 파워를 강조하지도 않고, FBI 내부에는 첩자도 있다. 소위 선진 최첨단 수사가 가능한, ‘한 수 배울 게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저 입장이 서로 다를 뿐이다. 잭 역시 윗선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인물로서, 세 주인공 모두 만만한 동료애를 나눈다. 수직적 또는 적대적 관계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나, 적절히 현실적인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다니엘 헤니는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13, 14, 15(CBS, 2017~2020)와 <크리미널 마인드: 국제범죄수사팀> 시즌 1, 2(CBS, 2016~2017)에서 FBI 요원 매트를 연기했다. 특히 <크리미널 마인드: 국제범죄수사팀>이 세계 각국을 다니며 미국인이 연관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도 강조하는 한편, ‘도움을 주는 미국 수사기관’과 ‘도움을 받는 외국’이라는 미국 중심적 관계가 기본적으로 설정돼 있었다.

그러나, <공조 2>는 도움을 주고받더라도 우열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주고받는다. 주눅 든 남한인도, 잔혹하기만 한 북한인도, 잘난 미국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세 주인공의 관계는 꽤 수평적이다. 호형호제하며 제목 그대로 국제적 협업을 해보인다.

한국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OTT를 통해 빠르게 다양한 국적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요즘이다. 더 폭넓은 공감을 얻기 위해서도 편견보다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 소위 해외 진출과 무관하게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담아내기 위해서도, 뻔한 인물과 설정, 영상과 사운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헤어질 결심>과 <공조 2>에서 발견한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도 새롭고 다양한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1) 법무부 홈페이지 > 법령/자료 > 통계정보 > 출입국통계 > 체류외국인 참고. https://www.moj.go.kr/moj/2412/sub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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