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5) - 문화콘텐츠, 21세기의 의식과 현상
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5) - 문화콘텐츠, 21세기의 의식과 현상
  • 임대근 l 한국외국어대 교수
  • 승인 2023.03.31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14주년 K문화콘텐츠 시리즈를 끝내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조희창 음악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창간 13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의 ‘문화콘텐츠비평’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총론(전찬일)부터 K-팝(임진모), 영화(김중기), 드라마(김민정), 웹툰(신정아), 문학(유성호), 출판(김성신), 미술(정연복), 연극(이은경), 게임(남기덕), 댄스(정옥희), 뮤지컬(최여정), 뮤직(김희선), 클래식(조희창), 오페라(이소영)까지 모두 14개 장르를 다루면서 K-콘텐츠의 저력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시하고, 미래를 전망했다. 이제 이들을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로 묶어냄으로써 비평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2022 K-커뮤니티 페스티벌> -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사진제공

문화콘텐츠는 21세기 용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이 용어는 21세기 직전 출현해서 점차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997년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일컫는 일본의 용례를 소개하며 ‘콘텐츠’라는 단어를 쓴 기사가 처음 등장했다. 이듬해, 김대중 정부는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를 안은 채 출범했다.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경제정책, 인터넷 시대에 대한 대응이라는 정보통신 정책,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표상되는 문화우위 정책이 뒤얽혀,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됐다.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그렇게 찾아왔다. 둘째, 문화콘텐츠는 21세기적 의식과 현상을 담아낸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20세기적 의식과 현상을 뛰어넘는다. ‘뛰어넘는다’는 말은 계승과 단절이 중첩돼 있다는 뜻이다. 문화콘텐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이 아니다. 문화와 콘텐츠라는 용어의 결합이 보여주듯, ‘문화’를 설명하고 보완하려는 역사적 흐름을 이어받고 있다.

1871년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가 ‘문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정의한 뒤, 20세기 초반까지 문화는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들 중 하나로 활용됐다. 문화는 이전 개념인 예술을 포괄하면서 일상에서 수행되는 의식주라는 관습에 주목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중매체(Mass media)의 급속한 발전으로 대중문화 개념이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에는 대중매체를 경유해 유통되는 문화라는 뜻이 있다. 물론 대중문화는 대중이 수용하고 소비하는 문화라는 뜻도 포함한다.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1947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처음 썼다고 알려진 이 말은 자본이 문화를 좌우하는 암울한 상황을 설명했으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전지구적으로 환영받는 용어가 됐다. ‘문화기술(Cultural technology)’은 한국에서 문화산업과 접목된 용어로 등장해, 기술적인 층위에서 ‘문화를 뒤바꾸는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활용됐다.

유사 이래 문화를 둘러싼 용어는 근대와 더불어 다변화했다. 예술, 문화, 대중문화, 문화산업, 문화기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용어가 역사적 흐름에 따라 태어났다. 그러나 거꾸로 이들이 가리키는 현상은 분화보다 연결을 선택하고 있었다. 문화와 예술이 함께 쓰인 용례는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다. 문화산업과 문화기술은 불가분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을 통틀어 부르려는 욕구가 만들어낸 용어가 바로 ‘문화콘텐츠’다.

문화콘텐츠는 문화인류학의 문화 개념을 포괄한다. 문화산업과 문화기술 개념도 포괄한다. 문화콘텐츠는 대중문화를 하위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콘텐츠는 20세기 개념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의미를 형성한다. 그러나 문화콘텐츠는 존재 형식에 있어서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단절의 양상을 드러낸다.

문화콘텐츠는 예술, 문화, 대중문화, 문화산업, 문화기술과 저마다 다른 층위에서 대항개념을 형성한다. 그중에서도 대중문화는 문화콘텐츠의 강력한 대항개념들 중 하나다. 대중문화와 문화콘텐츠는 다른 형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문화 생산물을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함으로써 대중이 수용 및 소비하는 구조를 지닌다. 대중매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은 20세기 후반 내내 대중문화의 새로운 장르와 형식을 개척하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감했다. 문화 생산물이 텔레비전을 통해 대중에 전파되는 과정은 개별적이고 순차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 과정은 전체적으로 생산에서 수용/소비로 이어지는 일방향성을 전제로 한다. 또한 대중이 문화 생산물을 수용/소비하는 형식은 비가역적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에서는 ‘미디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의제가 된다. 

문화콘텐츠의 유통과정은 다르다. 문화 생산물이 플랫폼을 통해서 유통된다. 생산물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 구성된다. 복수의 생산물은 동시적으로 플랫폼을 경유해 전파된다. 이때 전파는 일방향적이 아니라 양방향적이며 가역적인 형식에 의해 이뤄진다. 문화콘텐츠 시대의 문화 생산물의 종착지는 단순한 대중이 아니다. 이들은 대중문화를 수용/소비하는 방식과 달리 문화 생산물을 향유한다. 소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소비에 머물지 않고 누리고 즐기는 주체다. 누리고 즐기는 주체는 새로운 문화 생산물을 만드는 또 다른 생산자가 된다. 

대중문화는 생산(단수)-유통(미디어)-수용/소비를 하나의 단위로 구성하면서 사슬(chain)을 만든다. 그러나 문화콘텐츠는 생산(복수)-유통(플랫폼)-향유를 기본 단위로 구성하되, 다시 유에서 시작해 새로운 생산의 사슬을 만든다. 이런 사슬들이 반복되며 뒤얽히는 과정을 ‘그물(Net)’이라 부를 수 있다. 문화콘텐츠는 단위 사슬에 머물지 않고 복수의 사슬이 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리좀’(1)과도 같은 현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방영된 노르웨이의 시리즈물 <SKAM>은 문화콘텐츠의 그물이 확장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10대 캐릭터를 내세우는데 시즌마다 새로운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들의 개인적·사회적 고민을 다룬다. 이 시리즈의 웹사이트에는 매일 새로운 영상이 제공됐으며, 그에 대한 소셜네트워크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2018년 이 시리즈의 미국판이 <SKAM Austin>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됐다. 페이스북으로 짧은 영상이 유통됐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캐릭터와 대중이 연결되는 형식을 보여줬다. 대중은 단순한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캐릭터와 상호교감하는 주체가 됐다.

“아이예고 방송부원들의 러브스토리”를 표방한 웹드라마 <리얼:타임:러브>는 실제 예술고등학교 학생이 열연하면서 스토리 캐릭터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을 유발했다. 대중은 스토리 캐릭터를 현존하는 인물로 ‘오인’하면서 독특한 스토리 경험을 향유했다. 드라마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플랫폼 삼아서 상호작용(Interactive)을 통해 만들어졌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 유튜브 Vlog 등의 요소가 활용됐고, ‘아이예고 방송부원 공개 모집’과 같은 이벤트를 통해 대중은 직접 창작에 참여하는 향유 주체가 됐다.

문화콘텐츠는 문화 생산물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 그것은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단일한 단위의 생태계를 넘어선다. 유통의 층위에서도 그렇지만, 장르의 층위에서도 생태계의 확장은 이어진다. 문화콘텐츠는 장르 사이의 강력한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소설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TV 드라마가 되는 현상은 이전부터 있었고, 이를 ‘각색(Adaptation)’이라 불렀다. 이런 현상이 빈번해지자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OSMU는 초기 문화콘텐츠를 설명하는 중요한 하위용어였다. ‘각색’이나 OSMU는 원본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트랜스미디어’라는 용어가 미디어 사이의 교차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이제 문화콘텐츠는 IP라는 개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생산물을 새로운 장르로 전환하는 현상을 두루 설명하려고 한다.

문화콘텐츠는 문화원형이나 문화자원에 문화기술을 결합해 기획, 제작한 생산물을 문화산업의 그물 안에서 직간접적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함으로써 이를 향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21세기는 이제 문화콘텐츠가 무한하게 펼쳐지는 시대가 됐다. 21세기적 의식과 현상을 충분히 인정한다면, 이제 20세기적 의식과는 결별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와 미래를 설명할 수 없는 과거의 용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콘텐츠 비평은 용어를 제대로 세우는 일에서 시작한다. 용어를 제대로 세운 다음에는, 그 안에 개념을 채워 나가야 한다. 비평은 더 이상 문화생산물을 평가하거나 장려하거나 질책하는 우월적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문화콘텐츠 비평 주체와 향유 주체는 분리될 수 없다. 비평 행위는 향유 행위의 부분이어야 한다. 문화콘텐츠 비평은 만들어진 생산물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획과 제작, 유통, 향유를 둘러싼 문화산업과 문화기술을 포괄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콘텐츠 비평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폭넓은 연결과 소통의 기반 위에서 수행돼야 한다. 

 

 

글·임대근
문화콘텐츠비평가.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장,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장,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영화의 역사와 미래』(공저 2019), 『문화콘텐츠연구』(2021), 『착한 중국 나쁜 차이나』(2022), 공저서로 『영화란 무엇인가』(2022), 『공공브랜드란 무엇인가』(2023) 등이 있다.


(1) Rhyzome,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으로, 철학자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에 의해 수목으로 표상되는,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이고 초월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내재적이면서도 배척적이지 않은 관계들의 모델로서 사용됐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