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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1) - 이제 K-뮤지컬 차례다
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1) - 이제 K-뮤지컬 차례다
  • 최여정 l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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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1]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바야흐로 K의 시대다. 0.7%의 기적. 세계인구의 0.7%에 불과한 한국이 몰고 온 한류의 가능성은 사실 0.7%도 되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졌던 국제적인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였다. 그해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것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쓴 것도, 같은 해 BTS가 ‘Dynamite’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 한 이후 무려 5곡이나 내리 차트 정상을 찍은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전해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 에미상 수상 소식까지, 불과 5년 전만 해도 각 분야의 전문가라고 손꼽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한류의 성적표는 실로 놀랍다. 문화콘텐츠 각 분야별로 근간의 성취를 평가하고 그 원인을 찾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는 어느 한 분야만의 성과가 아니다. 조금씩 터진 물꼬의 물줄기가 합쳐져 거센 강물이 되듯 책, 영화, 음악, 드라마 등 전 방위적인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 그 원인과 결과도 K-콘텐츠 전 범위에서 일어나는 상호 간의 작용과 연결고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 뮤지컬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뮤지컬도 이 영광스러운 배턴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지금, 한국 뮤지컬은 있지만, K-뮤지컬은 없다.

 

세계 4위, 3,500억 국내 뮤지컬 시장

국내 공연 판매 데이터를 공개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확산 직전인 2018년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3,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2000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쏘아 올린 140억 규모의 작은 공이 23배 성장해 거대한 애드벌룬으로 두둥실 떠오른 셈이다. 한국인의 뮤지컬 사랑은 지극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앤드가 ‘셧다운’ 되었을 때도 뮤지컬 <캣츠> 내한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어서 공연 연장을 발표했고, 서울에 이어 대구에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런던에서 온 출연 배우들은 “그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65% 정도 위축되었던 뮤지컬 시장은 회복 속도 또한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2022년에는 팬데믹 이전의 기록을 우회하는 4,000억 원 규모의 티켓 판매를 예측할 정도다. 이는 미국과 영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 시장 규모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 극장가를 거느린 미국과 영국은 차치하더라도, 인구수로만 봐도 2배가 넘는 일본 뮤지컬 시장이 5,000억~7,000억 수준에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비교해 보면, 한국 뮤지컬의 앞날은 희망으로 가득 찬 것만 같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이토록 눈부신 성장 속에 감추어진 시간의 비밀이다. 사실 3천억 규모의 시장 형성은 이미 10년 전에 이룩한 성과다.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이후 ‘뮤지컬 산업’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매년 두 자리 숫자로 커져가던 국내 뮤지컬 시장은 10년 만에 3천 억대를 돌파했다. 당시 몇몇 전문가들은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하면 한국 뮤지컬 시장은 8천억까지 성장 가능하다”는 예측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그사이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돌입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국내 뮤지컬 시장은 여전히 3,500억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국내 뮤지컬 시장의 한계를 확인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이전의 10년에 비해, 사라진 10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동안 한국 뮤지컬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었을까. 여기에 한국 뮤지컬 시장의 한계와 전망이 함께 있다. 

 

창작뮤지컬 편수는 뮤지컬 시장의 70%, 수익은 30%

한국 뮤지컬의 태동기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 유치진 연출의 <포기와 베스>를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소개된 첫 번째 작품으로 보고, 4년 뒤인 1966년 서울시립가무단의 전신인 예그린악단이 임영웅 연출과 함께 선보인 <살짜기 옵서예>를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로 꼽는다. 그런데 서울시립가무단 단장을 역임했던 박만규는 한국 뮤지컬사를 20여 년 앞당기는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60여 명 규모의 배우와 반주악단이 참여해서 39개의 넘버를 소화한 1944년 <견우직녀>를 한국 최초의 뮤지컬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학계의 주장이 어찌 되었든 우리의 상황과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로 대표되는 미국·영국을 비교하는 것은 뮤지컬이 처음 시작된 시기 차이가 100년 정도 나는 것만큼이나 멀고도 멀다. 1875년 런던 근교에만 375곳이 넘는 곳에서 매일 밤 춤과 음악이 흘러넘치는 버라이어티쇼가 펼쳐지고, 이것이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건너가서 1899년 문을 연 ‘빅토리아 극장’을 시작으로 전 세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영국과 미국 시장을 쫓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한국뮤지컬 시장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중심의 라이선스 뮤지컬에 기대어 성장했다. 해외뮤지컬 제작진과 배우들을 초청하는 내한공연, 그리고 작품의 저작권만 사와서 한국 제작진과 배우들로 공연을 만드는 것을 라이선스 뮤지컬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국내 뮤지컬 시장 수익의 60% 이상이 바로 이 라이선스와 내한 뮤지컬에서 창출된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를 한국 창작 뮤지컬 산업 시장으로 봐야 하는 셈인데, 편수로만 따진다면 한해 올라가는 300여 편의 뮤지컬 중 70% 이상인 200여 편이 창작 뮤지컬로 분류되지만 그 수익은 30%대에 그치고 마는 상황이다. 그러니 ‘K-뮤지컬’이라는 용어의 등장 자체가 언제 녹아 사라질지 모를 얇디얇은 살얼음판을 딛고 만들어진 것 같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K-팝 뮤지컬이 아닌 K-뮤지컬에 집중해야 

‘K-뮤지컬’은 2010년 즈음 등장했다. 그룹 JYJ의 시아준수(김준수)가 당시 국내 관객에게도 생소한 빈 뮤지컬 <모차르트> 라이선스에 출연을 하면서 소위 ‘대박’이 터졌다. 아시아 전역에 걸친 팬덤이 한국 뮤지컬로 집중되었고, 이는 아이돌 캐스팅 신화의 시작이자 창작 뮤지컬 수출의 신호탄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 K-뮤지컬 현상을 바라보는 온도 차이가 있다. 타 분야에 따라붙은 ‘K-’라는 이름이 수용자 중심으로 일어난 긍정적 성과의 결과였다면, ‘K-뮤지컬’이라는 용어는 2011년경부터 시작된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경향’을 두고 이름 붙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성과를 두고 보자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창작 뮤지컬 수출 자체에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티켓이 얼마나 팔리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일본 진출 사례를 보자. 당시 <궁>, <미녀는 괴로워> 같은 창작 뮤지컬이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룹 SS501의 김규종, 카라의 규리 등 두터운 일본 팬덤이 형성된 아이돌 스타들이 주연으로 무대에 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K-팝 시장이 이미 형성되었던 곳을 중심으로 진출한 K-뮤지컬은 역으로 아이돌이 캐스팅되지 않으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산업이 되어갔다. 2013년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아뮤즈가 도쿄 중심가 롯폰기에 900석 규모로 오픈했던 한국뮤지컬 전용관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의 운영 실패는 이를 증명하는 사례다. 아뮤즈는 <카페인>을 시작으로 <싱글즈>, <풍월주>. <총각네 야채가게> 등 아이돌 대신 콘텐츠에 집중한 8편의 작품을 야심차게 선보였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한국전용관 운영을 포기했다. K-팝 뮤지컬이 아닌 K-뮤지컬의 벽은 높았다. 

그렇다면 중국 진출의 성과는 어떨까. 600억 규모의 중국 뮤지컬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K-뮤지컬 성장의 중요한 교두보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2001년 

<지하철 1호선>이 중국에 처음 소개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의 확장을 기대하게 된 것은 2013년 <김종욱 찾기>부터다. 2010년 CJ E&M이 중국과 합자회사 아주연창을 설립하고 뮤지컬 시장을 공략한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정치적 갈등, 2019년 코로나 팬데믹 등 외부적 요인이 겹치면서 중국 시장의 가능성은 제대로 점쳐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 한국 창작 뮤지컬이 라이선스 형태로 진출하기는 했지만, 대규모 중국 시장을 치열하게 공략하고 있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프랑스 등 전통의 뮤지컬 강국에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이돌 캐스팅에 기대어 형성되었던 일본 시장과 달리 중국의 경우는 작품 중심의 시장 개척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시장이기도 했다. 창작 뮤지컬 <빨래>는 한국 제작진과 배우들의 오리지널 투어 공연으로 진출했다가 라이선스화 되어 현지 제작진들과 배우들에 의해 중국 내 18개 도시 순회를 이어갈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더 데빌>처럼 처음부터 한-중 합작 제작형태로 중국 제작진과 배우들로 현지화하여 중국 내 10개 도시를 돌며 흥행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 진출의 벽은 더욱 견고했다. <명성황후>, <영웅>, <드림걸즈>, <닥터 지바고> 등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창작 뮤지컬은 글로벌 무대에서 어깨를 견주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흥행에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한국뮤지컬의 알파

하지만 지난 10년은 사라진 시간이 아니다. 한국 뮤지컬은 그동안 의미 있는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아이돌 중심의 스타 캐스팅과 팬덤 뮤지컬은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를 기반으로 확장된 아시아 시장은 K-뮤지컬의 테스트 기지로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세계 4위권 규모로 형성된 국내 뮤지컬 시장 역시 세계 진출을 위한 탄탄한 기반이다. 이는 눈 높은 뮤지컬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팝, K-무비, K-드라마 모두 치열한 국내 시장 경쟁을 통해 탄탄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중에서 결국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비록 국내 뮤지컬 시장 수익이 해외 내한, 라이선스 작품에 지나치게 치중이 되어 있긴 하지만, 2017년 이후 매해 제작되는 200여 편의 창작 뮤지컬 중에서 수작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중 많은 작품이 일회성으로 사라지기도, 또 어떤 작품들은 레퍼토리화 되어 재공연 된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 작품들이 보통 5~10년에 걸쳐 천천히 작품을 발전시키는 시간을 두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이것이 영화나 드라마처럼 완결성을 가지고 소비되는 콘텐츠와 달리 현장성(liveness)이라는 생명력을 더해 진화해 나가는 무대예술만의 비밀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 창작 뮤지컬을 글로벌 무대에 세우는데 언제나 ‘언어의 장벽’ 그리고 ‘전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을 보편적 주제’를 고민해 왔다. 이는 다른 문화콘텐츠 분야도 겪어야 했을 같은 고민이었고, 이제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언어의 장벽은 이미 무너졌다. BTS의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고, 영화 <기생충>으로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이 무너졌고, <오징어 게임>으로 비영어권 최초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보편적 주제’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뮤지컬의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에 기대어 성장한 한국 뮤지컬은 무대 기술력과 제작 시스템 또한 함께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똑같이 잘 만드는 차원은 넘어선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제는 쇼 뮤지컬 중심의 브로드웨이, 샹송풍 송스루 형식의 프랑스 뮤지컬, 오케스트라 중심의 빈 뮤지컬처럼 한국 뮤지컬만의 특징을 더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경과 극장의 문이 굳게 닫혔던 팬데믹을 통과하며 공연계는 가장 심한 몸살을 앓았지만, 또 다른 탈출구를 여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OTT에서 뮤지컬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대의 현장성이 박제된 영상 콘텐츠를 두고 장르의 원형을 훼손했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K-팝이 유튜브라는 채널로 확산된 것처럼 한국 뮤지컬도 OTT를 발판 삼아 세계 뮤지컬 제작자와 관객의 눈에 닿을 수 있다. 지금, K-콘텐츠를 전 세계인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이제 K-뮤지컬 차례다. 

 

 

글·최여정
문화평론가. 현재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콘텐츠기획팀장.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이럴 때, 연극』『공연홍보마케팅 A to Z』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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