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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총론 - ‘콘텐츠’보다는 ‘문화(적) 콘텐츠’에 역점을 둬야
[창간 13주년 연중기획] 총론 - ‘콘텐츠’보다는 ‘문화(적) 콘텐츠’에 역점을 둬야
  • 전찬일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30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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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창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기사가 실린 신문이 놓여있다. 출처=뉴스1

코로나19가 2년째 세상을 점령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포스트-코로나’란 용어가 일상어가 되다시피 했다. 그 시대의 정확한 기점은 알 수 없다. 종식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게 현 상황이다. 독감처럼 ‘신종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기(With Corona)’ 등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은 나도 그런 예측을 하는 부류다. 가령 영국 같은 일부 서구국가는 그 치명률이 독감보다 낮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일찌감치 공생을 선언하고, ‘노 마스크’ 방침을 공표했다. 지난 7월 보리스 존슨 총리가 록다운(Lockdown) 해제를 선언하자, 맨체스터 FAC51 나이트클럽에 청년들이 쇄도해, 영국의 소위 ‘프리덤 데이’를 만끽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하루 확진자가 수만 명에 달한다는 소식과 나란히.

아시아에서는 부자 나라 싱가포르가 그런 경우다. 인구 570만 중 80% 이상이 2번 이상 접종을 마쳤고, 사실상 성인 대부분이 백신 접종을 끝내 8월 말 하루 20여 명까지 떨어졌던 확진자 수가 9월 18, 19일 이틀 동안 1,000명을 넘어섰건만, 8월에 선언한 ‘위드 코로나’의 길을 걸을 거란다. 일주일에 1~2명 정도로 사망자 수가 독감 수준으로 크게 줄었기 때문.

 

한류, 문화, 그리고 콘텐츠

이제 의제를 던져보자. 2022년 내년부터 펼쳐지리라 기대하고픈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그 구체적 그림들에 대해서는 이후의 각론에서 펼쳐질 테니, 총론 격으로 ‘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총체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띠어야 할까 등을 간단히 짚어보기로 하자. 관련 개론서인『 문화 산업의 기초이론』(김평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등을 참고로….

문화콘텐츠는 우선 ‘문화(文化, Culture)’와 ‘콘텐츠(Contents)’의 합성어다. 콘텐츠는 주지하다시피 내용이나 내용물을 의미하는 콘텐트(Content)의 복수형이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그 함의가 워낙 다채롭고 광범위해,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분분할 뿐 아니라 규정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개념·용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문제의 용어가 이 땅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0년대 후반 전격 불어 닥친 한국 대중문화 활성화”, 라고 김평수는 진단한다. 이른바 ‘한류’를 가리킬진대, “그 용어를 중국 언론이 최초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으며, 이런 자료 또한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류와 아시아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라고 장규수는 일갈한다. 

하지만 강준만은 『세계문화사전: 지식의 세계화를 위하여』(인물과사상사, 2005)에서 그 구체적 사례들을 들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1997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성공하기 시작하자, 중국 언론은 99년경 ‘한류(韓流)’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했다. “①97년 중국 CCTV(중앙TV): MBC 〈사랑이 뭐길래〉 방영 ②98년 5월 5인조 그룹 HOT 앨범 중국에서 히트 ③99년 4월 영화 〈쉬리〉 일본에서 125만 명 관람 ④ 2000년 2월 HOT 중국 베이징 공연 대성공” 등이다. 

이렇듯 그 시기에 한국산 영상물과 가요 등의 문화콘텐츠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을 거듭하며 지속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했다. 새 밀레니엄을 전후해 한류가 본격화되고 2001년 8월 한국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무엇보다 2001년 제9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회의에서 문화 기술(CT, Culture Technology)을 21세기형 미래 국가전략산업으로 채택하면서부터였다. 그 배경으로는 “1990년대 초부터 ‘준비기, 도약기, 발전기, 절정·위기 시기’ 등 역사 발전의 궤적을 그리며 급속히 성장해 온 문화 수출, 한류라는 토양이 자리한다.”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rea Culture & Content Agency)이 그 실행 기구로 설립된다. “문화콘텐츠라는 신조어는 자연스럽게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 같은 서로 다른 이질적 장르로 구성된 한류 중심 소재 영역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그 단서 내지 수식이 거추장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산업적 확장을 위해서는 ‘제약’이라고 여겼던 걸까, 그 기구는 ‘문화’를 떼어버리고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으로 변신을 꾀한다. 한데 그 영문명이 흥미롭다.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다. Contents가 아니라 여전히 Content다. ‘Creative Content’면 영국에서 차용한 것일 텐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콘진원은 그러면서도 문화콘텐츠란 용어를 ‘창의 콘텐트’ 등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관행’을 따라, “문화, 예술, 학술적 내용의 창작 또는 제작물뿐만 아니라 창작물을 이용해 재생산된 모든 가공물 그리고 창작물의 수집, 가공을 통해서 상품화된 결과물들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문화 산업진흥기본법(2013)에 따르면, (중략) 최근 문화콘텐츠의 개념은 온라인 매체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영역에서 사람들이 지적·정서적으로 향유하는 모든 종류의 무형자산을 포괄적으로 지목하는 것으로 문화콘텐츠의 개념을 확장하기도 한다. 결국 문화콘텐츠란 ‘문화적 내용물’인 것이다.” 

 

게임은 왜 문화가 아닌가?

“문화적 내용물”이라면, 위에서 말한 Culture Contents가 아니라 Cultural Contents 아닌가! 둘은 같은 의미일까? 그럴 리 없다. Culture보다는 Cultural이 한층 더 그 외연·범위가 넓을 테다. 예술로서 문화라는 협의든 ‘삶의 방식’(Ways of Life)으로서 문화라는 광의든, 문화가 아니거나 아직은 문화로 간주되지 않은 그 무엇이라도 문화적으로 얼마든지 다룰 수 있지 않은가. 단적인 분야가 게임이다. 연관 종사자들이야 으레 “게임은 문화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런 인식을 지닌 이들이 이 땅에 얼마나 되겠는가.

학창시절 테트리스 게임에 열중했었던 필자도, 2, 3년 전까지 게임을 ‘문화’라고 진지하게 여겼던 적은 없다. 그저 아이들의 소일거리나 장난 정도로 가볍게 치부했었던 게 사실이다. 편협하다 못해 무지하기 짝이 없는 지독한 편견이었다. 휴대폰이 일상화되면서, 모바일 게임은 비단 아동이나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 또한 열중하는 놀이문화가 되지 않았는가. 인류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아닌가. 당장 작금의 지하철 풍경을 떠올려보라. 그야말로 ‘게임 삼매경’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책은커녕 신문을 읽는 이들을 목격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돼버렸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게임이 문화가 아니라고? 모순 아닌가. 이렇듯 ‘문화적’이란 용어에서는 그 시각(Perspective), 접근(Approach)이 중요하다. 2019년 2월 출범해 현재까지 필자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콘비협)가 영문명을 Korea Cultural Contents Critic Association(KCCCA)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래서다. 콘비협도 그렇고 내게도 문화콘텐츠는, Culture Contents를 넘어, 확장된 함의에서의 Cultural Contents다. 

콘진원이 ‘문화’라는 성가신 조건을 떼어내고 새 출발을 한 것은, 무엇보다 돈벌이가 되는 게임을 전격적으로 품기 위해서였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콘진원은 사업을 12개 장르로 분류하는데 게임을 필두로 내세웠다.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라이선싱, 음악, 패션, R&D, 방송, 금융지원, 지역, 스토리, 실감콘텐츠가 그 뒤를 잇는다. 밀려드는 의문. 이 분류에 수긍이 가는가? 아무리 보고 또 보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대체 무슨 기준으로 이렇게 분류한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콘진원을 작심하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면의 성격상 그런 비판을 하려면, 다음 기회를 노리련다. 내 요지는 이것이다. 문화콘텐츠에 대한 개념 규정이나 연구는 아직도 심히 표류 중이며 진행 중이라는 것. 어쩌면 이 개념이 존재·통용되는 한 영원히 그럴 수도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르’라는 흔한 용어가 그렇듯….

관련해 장규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류가 발생한 지 10여 년이나 지났지만 제대로 된 자료를 찾기 힘든 현실이다. (중략) 심지어 한류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이렇게 한류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 논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산업적 접근과 계획성 없는 전시행정이 난립하며 한류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한류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과 이론적 고찰이 시급하다”라고. 장규수의 책이 출간된 지 8년이 더 됐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의도 여부를 떠나 장규수의 진단은 콘진원은 말할 것 없고, 콘비협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 변수가 있긴 해도 콘비협은 출범 2년 7개월여가 넘었건만, 대외적으로는 내세울 만한 활동을 한 게 거의 없다. 5.18 40주년이었던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연구소와 공동으로 ‘5.18과 문화콘텐츠’란 주제로 온라인 포럼을 연 것 정도가 거의 다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기획·진행하는 이 연재는 무엇보다 그런 반성에서 제안·시도되는 것이다. 이 나라의, 나아가 세계의 문화콘텐츠 관련 논의를 촉발하고 싶다는 바람과 더불어…. 

이쯤에서 강변하련다. 김평수는 문화콘텐츠를 둘러싼 정의의 핵심은 ‘문화’가 아닌 ‘Contents’에 있다, 고 진단했으나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외려 콘텐츠보다는 문화, 나아가 ‘문화적’에 역점을 둬야 한다, 고. 문화콘텐츠의 산업적 측면을 무시해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산업, 즉 돈벌이에 혈안이 돼 ‘문화(적)’에 내포돼 있는 어떤 공동선의 가치·수준을 간과해서는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살아 있는 증거들이 BTS, 봉준호, 윤여정 등이 아닌가.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 특유의 문화적 안목·실천으로 작금의 역사적 성취를 일궈내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연재는 총론과 마지막 제언을 포함해 총 16회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변동 상황이 생길지는 모른다. 총론 이후 콘비협 식구들 중 적정한 필자가 선정돼 14차례에 걸친 각론을 펼칠 예정이다. 필요하다면 비회원에게 원고를 요청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K-팝을 선두로, K-무비(애니메이션 포함), K-드라마, 웹툰과 웹드라마, 웹소설 등 K-웹콘텐츠, K-문학, K-출판, K-게임, K-미술, K-연극, K-무용, K-뮤지컬, K-전통공연예술, K-클래식, K-오페라로 이어질 예정이다. 순서가 변동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속적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을 바란다(면 과욕일까). 

 

 

글·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대학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 ㈜문화광장 대표 등도 맡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크리튜버 전찬일TV>를 개국해 ‘전찬일 이덕일의 종횡무진: 영화와 역사를 탐하다’와 ‘찬스 무비’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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