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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2) - K-뮤직으로 호출된 국악의 확장과 딜레마
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2) - K-뮤직으로 호출된 국악의 확장과 딜레마
  • 김희선 | 국민대 교수
  • 승인 2022.11.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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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연중기획 12]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국악 : 김희선 국민대 교수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K의 확장이 거침없다. K의 기저에 있는 수많은 욕망 가운데, 글로벌 차원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인정욕구는 뿌리가 깊다. 근대화 시기부터 형성된 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자문화에 대한 오랜 열등감이 가장 오래된 뿌리일 것이고, 이런 문화적 열패감이 가장 극단적으로 작동돼 온 예술 분야가 바로 국악이다. 수식어 K에는 국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예술가 등 다양한 주체들의 욕망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글로벌 주목을 받는 K-콘텐츠의 자신감이 곧 한국인의 오래된 문화적 열패감을 상쇄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도 담겨있다. K의 자신감은 이제 대중문화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국악도 K로 호출한다.  

이 글을 요청받고 가장 난감한 일은 100년째 해결되고 있지 않은 바로 용어의 문제였다. ‘악(樂)’, ‘소리’ 등으로 불렸던 토착음악은 식민지 시기에 수용된 외래음악에 주인의 위치를 빼앗긴 채 ‘조선악’으로 통칭됐다. 외래음악, 신극, 영화 등 새로운 장르들과의 경쟁에서 고군분투하며 인기를 누렸던 판소리, 창극, 여성 국극같은 갈래도 있었으나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해방과 국민국가의 수립 이후 ‘국악’을 정식 명칭으로 국가의 공인(1951년 ‘국립국악원’ 설립)을 받고, ‘민족성의 원천’으로 ‘보존’(1962년 무형문화재법)돼야 할 음악으로, ‘국위 선양’의 선봉으로, 사회적 명분을 획득하며 현대적 제도화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용어 ‘국악’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은 이를 대신할 용어로 ‘우리음악’ ‘나라음악’ ‘민족음악’ ‘전통음악’ 등도 제시되거나 국악의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의 담론과 함께 ‘신국악’ ‘창작국악’ ‘퓨전국악’ 등도 등장했다. 이런 용어의 문제는, 이 음악을 둘러싼 중층의 역사성과 정치성이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기원을 지녔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 지구화의 움직임으로 촉발된 ‘국악의 세계화’ 담론의 등장과 그의 실천으로 국악계는 지구적 ‘월드뮤직’ 안에 포섭되기를 희망했다.

국가 경계 너머 공연계로의 확장에 관심을 갖고있던 예술가들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서울아트마켓 PAMS(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의 프로그램 ‘저니 투 코리안 뮤직(Journey to Korean Music)’, 국내의 다양한 월드뮤직 페스티벌과 뮤직마켓 등의 플랫폼을 통해 월드뮤직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포착했다. 전통음악에 기반한 창의적 음악에서 시작해 점차 장르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월드뮤직에서 출발해 재즈, 록, 포스트 록, 인디, 영성 음악, 일렉트로닉에 이르기까지 이들 예술가들은 다양한 글로벌 뮤직 신(Scene)에 매개되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이제 이 음악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최근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음악교육의 국악용어 축소 움직임을 보며 그간 ‘음악’이라는 보편적 지위를 독차지하고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해 온 양악에 여전히 ‘음악’이라는 용어를 내어주고, 이 음악은 100년째 자기의 이름과 위치를 찾기 위해 고전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 가운데, 전 지구적 공연계의 영토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예술가들은 ‘국악’이라 부르지 말아달라며 용어가 주는 역사적 굴레로부터 자유로움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코로나 기간 관심을 높였던 밴드 <이날치>의 인기에 힘입어 TV 매체에서는 오랫동안 미디어의 관심 밖에 있던 국악을 오디션 포맷에 담은 프로그램 <조선 팝스타>와 <풍류대장>을 편성했고, 시간성을 담고 있는 ‘퓨전국악’이라는 명칭을 대신할 ‘조선팝’ 혹은 ‘힙한 국악’ 등 새로운 용어도 등장했다. 결국 이 음악의 명칭은, 음악 내부의 속성과 결부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시선과 정치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3년 런던에서 시작된 <케이 뮤직 페스티벌(K-Music Festival)>은 동시대 감각으로 재무장한 국악의 새로운 갈래들과 후예들을 소개하며 런던 공연계에 은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21년 <국악방송>은 K-Music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음악은 우선 국가에서 공식화한 용어 ‘국악’을 그대로 쓰되, 아마도 누군가의 욕망이 담긴, 국가 경계 너머에서 통용되는 ‘K-뮤직’을 함께 병치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 활동의 기원으로 국악의 글로벌 활동의 궤적과 실천, K-뮤직 국악의 확장과 딜레마를 살피고 제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K-뮤직 국악의 글로벌 활동

BTS 슈가, 어거스트 D의 ‘대취타’,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뮤직비디오 ‘범 내려온다’가 이 사회에 불러온 파장은, 이 음악들은 K-pop과 한국 대중음악의 자장 안에 위치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주변부에 있던 ‘국악’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매체들은 그간 다양한 글로벌 신에서 활동해 온 다양한 예술가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서 NPR Tiny Desk에 출연한 (지금은 해체된) <씽씽밴드>와 함께 <잠비나이>, <블랙 스트링>, <정가악회>, <고래야>, <악단광칠>, 박지하, 서정민, 이희문, <동양고주파>, <해파리> 등 동시대 아티스트들도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짐작하듯 이들의 등장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국악계의 오랜 시행착오와 개별 아티스트 혹은 밴드의 서사와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시 국악의 글로벌 활동의 궤적을 최근의 사건부터 살펴보자.

국가 입장에서 ‘국악’은 민족국가로서 ‘민족적 정통성’을 획득하기에 유리했고 공공외교에도 유용했다. 국악계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주변부’에서 ‘국가대표’로서 격상되던 ‘국위선양’의 사회적 명분은 자랑스러웠고, 이를 기반으로 국악의 해외 공연은 국가와 국악계 양측에 도움이 됐다. 본격적으로 글로벌에 뛰어든 장르는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사물놀이였다. 1978년 첫 무대를 가진 사물놀이는 1982년부터 해외 공연을 시작했다. 해외 한인들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국적과 인종이 다른 ‘사물노리언(Samulnorian)’들을 탄생시켰다. 

1987년 세계의 지역 음악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메타 장르명 ‘월드뮤직’이 등장하자 지역 음악들이 서구를 중심으로 생산 소비되며 월드뮤직은 제도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이 월드뮤직 시장에 가장 먼저 등장한 국악 장르도 사물놀이였다. <김덕수 패 사물놀이>는 1991년, 가장 먼저 워매드(WOMAD, World of Music, Arts and Dance Festival) 무대에 소개됐다. 이어 사물놀이의 후예인 <들소리>, <김주홍과 노름마치>, <소나기 프로젝트>가 월드뮤직계에 등장하고 최근 솔로 타악주자 김소라에 이르는 하나의 계보를 형성한다. 월드뮤직계에 “Old but New Music”으로 소개된 한국음악은, 지역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음악이라는 의미였다. 

2010년 워맥스(WOMEX, Worldwide Music Expo) 오프닝 무대에 <비빙>, <토리 앙상블>, <바람곶>이 초청받아 공연함으로써 한국음악은 월드뮤직계에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월드뮤직 견본시 마켓인 워맥스는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음악을 쇼케이스에 선정하며, 한국 아티스트들의 영토를 글로벌 장으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월드뮤직의 용어와 실천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확장하는 가운데 글로벌 무대를 경험한 한국 아티스트들의 시야는 넓어지고, 한국 안에서 벌어진 국악 세계화의 실천으로 생겨난 다양한 플랫폼도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예술가를 찾는 전문가들에게 한국음악을 매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앞서 워맥스 오프닝 무대를 중요한 기점으로 바라본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세 그룹을 이끌었던 

<비빙>의 장영규, <바람곶>의 원일, <토리 앙상블>의 허윤정과 함께 활동한 이아람, 박순아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영규는 <씽씽밴드>를 결성했고 현재 밴드 <이날치>의 리더이며, 토리 앙상블의 허윤정은 <블랙 스트링>의 리더다. <바람곶>의 원일은 국악 트렌드 변화의 중심에 있으며 여우락 페스티벌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바람곶>의 멤버였던 이아람은 <블랙 스트링>의 멤버이며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도 현재 바쁜 글로벌 일정을 소화 중이다. 작가적 예술가이자 국악 내 ‘트렌드세터’라 불릴 만한 이들은 현재 변화의 선각자적 역할을 이어왔다. 

이들은 앞서 1980~90년대에 유행한 서구식 양식을 국악기에 얹었던 ‘퓨전국악’보다 연행적으로는 대중음악 속성에 더 가까이 맞닿아 있지만, 음악적으로 이들의 전통과 근원에 대한 탐구는 더욱 깊다. 이들은 탈경계-탈장르적 실천을 통해 ‘국악’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익혀나갔다. 물론 이들의 활동의 배경에는 지난 30년간 국내에서 벌어졌던 국악 현대화-대중화의 실험이 있다. 현재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예들은 이들의 실천과 감각을 이어받은 후배 혹은 제자 그룹으로, 제도화된 국악의 적자적인 전승자이면서 동시대 다양한 음악 언어를 체득한 ‘이중음악성’과 ‘초국성’이 내재된 세대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K-뮤직 국악의 확장과 딜레마

BTS는 2016년 파리에서 열린 K-CON에서 “아리랑”을 불렀으며, 2018년에는 <아시아뮤직어워즈(MAMA)>에서 자신들의 히트곡 ‘아이돌’의 오프닝 무대를 부채춤, 북춤, 탈춤과 함께 올려 화제가 됐다. 케이팝 이외에도 넷플릭스, K-무비, K-드라마 등에서 한국 전통의 차용은 빈번해졌다. 또한 대중문화의 소비에 중심에 선 소셜 미디어,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문화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대중문화의 견인에 힘입어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무장된 K-뮤직 국악은 국내·외 문화 수용자의 시야에 감지되기 시작했다. 

2022년 10월 개막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의 한류 전시에서 케이팝 주제전시에는 국악기 대취타의 악기들과 음원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K-드라마와 K-무비 주제전시에서는 한국인의 정서인 ‘정’과 ‘한’을 소설 <춘향전>과 판소리를 주제로 한 영화 <서편제>로 연결하고 케이팝은 ‘흥’과 연계해 소개한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으로 등장한 ‘신한류’는 한류를 ‘K-컬처’ 전반으로 확장한다. K-컬처 안에는 K-헤리티지, K-뮤직 등 국악과 관련된 다양한 키워드가 담겨있다. 코로나 시기 활발히 진행된 국악의 영상화는 SNS를 통한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로 문을 닫았던 국제교류가 재활성화되자 제일 먼저 NPR의 Tiny Desk는 <악단광칠(ADG7)>을 초대했고, 앞서 소개한 아티스트들의 해외투어가 2022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악은 한류에 동참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혹은 동시대 국악은 반드시 K-뮤직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인가? 이들 아티스트들도 한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인가? 여기에 K-뮤직 국악의 딜레마가 있다.

국악계 전반으로 볼 때 이들의 수는 매우 적어 소수의 탈경계적 실천이 국악 전체의 글로벌 성공 혹은 성과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정책으로서의 신한류나 미디어가 기대하는 것보다 현장 예술가들의 욕망은 ‘K-뮤직 되기’ 혹은 ‘국악의 한류화’에 있지 않다. 또한 실제로 이들의 글로벌 활동이 완전히 안착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들이 시장 안에서 안착해 안정적 수익을 만들고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시간과 현실적인 전략도 필요하다. 때로 이들이 포섭되기를 원하는 현실의 ‘대중음악’의 영토에는 아직 이들의 자리가 확보됐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에 반해 국가와 미디어는 여전히 이들의 활동을 ‘국악’의 경계 안에 가두고 그만큼의 보폭만을 기대한다. 또한 ‘대중음악 기반의 국악’이 주요 관심이 되면서 오히려 전통 장르의 위축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2년 프랑스에서 개최되기 시작해 올해로 10년을 맞은 <K-VOX 페스티벌>은 판소리를 중심에 둔 페스티벌로, 한국 판소리 명창 초청공연, 워크숍, 교육, 판소리 사설의 번역서 출간 등의 활동을 통해서 프랑스 내에 적지 않은 수의 판소리 팬덤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 페스티벌을 통해 탄생한 외국인 판소리 연주자들의 활동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와 한국의 월드뮤직센터재단이 공동주최한 <뉴욕산조페스티벌(New York Sanjo Festival)>은 전통음악인 산조와 시나위로 뉴욕 공연예술계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유럽에서 열리는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은 매우 빠른 속도로 티켓이 매진된다. K-뮤직이 되기 위해 반드시 대중음악적 연행을 유일한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다. 또한 ‘국악의 한류화’가 ‘국악의 세계화’에 이은 또 다른 ‘깃발’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한류 시대 K-뮤직으로의 호명은, 오랫동안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국악계에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실용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차원에서 해석하거나 때로 한류 담론에서 감지되는 ‘한국문화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유사 제국주의적 국가주의를 실현하고 영광을 재현할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

그간 보편으로 여겨온 서구중심 문화에 균열을 가져온 일은 한류의 전지구적 유익함이자 성과다. 또한 이는 전 세계 문화소비자들이 오랜 시간 ‘다른’ 가치를 기다려왔으며 획일화된 서구문화 대신 ‘문화다양성’의 실천을 선택한 결과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K-뮤직 국악의 전 지구적 활동도 그와 같은 의미로 성장을 지켜봐주길 바란다. 당장의 성과를 수치화하거나 산업적 가치로 환산하는 대신, 예술가들이 자유로이 경계 너머의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공정한 시스템과 열린 환경을 조성하고 적절한 지원과 응원도 지속해주길 바란다. 

신한류로 호명된 K-뮤직 국악이 세계 시민들과 대화하며 상호존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맺는다. 

 

 

글·김희선
음악인류학자로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ICTMMEA(국제전통음악학회 아시아음악연구회)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국내·외 학계와 공연의 매개자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한국, 영국, 미국, 독일 등지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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