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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의 대서사시적 삶을 다룬 소설 『빅토르 위고』
위대한 작가의 대서사시적 삶을 다룬 소설 『빅토르 위고』
  • 박용주 l 시인, 교육자
  • 승인 2023.05.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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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인데, 아주 재미있으니 읽어보렴.” 

초등학생 시절, 삼촌은 내게 『장발장』이라는 책을 빌려다 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훗날, 그 ‘탐정소설’의 원제목이 『레 미제라블』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훨씬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을 제대로 읽었다. 불행한 한 인간의 구원을 다룬 ‘천로역정(天路歷程)’ 임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막스 갈로의 소설 『빅토르 위고』를 읽었다. 1,020쪽이나 되는 책을 하루 저녁에 읽어치웠다. 도도히 흐르는 위고의 시(詩)들을 따라 펼쳐지는 연대기적 소설, 그것은 내가 도중에 책을 덮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얘야, 모든 것에 앞서는 것, 그것이 자유란다.”

어린 시절, 그의 대부(代父)가 해준 한 마디 말은 83년 위고의 삶을 특별하게 인도한다. 소용돌이치는 혁명의 시절, 위고는 연극에 미쳐 고전주의의 우상을 파괴하고 자유를 향한 낭만주의의 기수가 된다. 그는 일찌감치 천재의 금언을 남긴다. “나는 작가다. 나는 단 두 가지에 집중할 것이다. 호메로스에서의 인간의 천재성, 그리고 성서 속 하느님의 에스프리.”

숙명이었으리라. 왕정의 핏줄인 그가 긴 세월 보수 왕당파 작가의 길을 가지만, 이미 그의 가슴에는 자유주의가 들끓고 있었으니. 그의 야성적 문학의 끼는 십대에 세상을 놀라게 할 희곡과 시를 쏟아내게 했다. “검열은 나의 문학적 원수이니…” 그는 온갖 규율에 맞서 엄혹한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갔다. 위고는 사랑과 정의, 두 망치로 에스프리를 벼린 대장장이였다. 

  

맞소, 나는 눈빛 그대는 별이오

나는 응시하고 그대는 빛을 발하오!

나는 유랑하는 배 그대는 돛이니

나는 표류하고 그대는 끌어들이노니!

찬란히 빛나는 그대 곁에서 

나는 슬프고 우울하게 전진하오

눈부신 낮은 빛없는 밤에 닿아

육체 뒤에 그림자 오듯

사색의 사랑은 오직 미(美)를 좇느니

 

위고가 일찍이 그의 평생 동반자이며 동지인 쥘리에트에게 바친 헌시다. 오! 위고 곁에서 평생 작품 원고를 필사하며 동고동락한 정부(情婦)가 바로 그녀였으니…. 소설 『빅토르 위고』는 우리를 위고와 쥘리에트와의 불타는 사랑의 무대로 이끈다. 위고에 대한 헌신뿐 아니라 결기까지 지닌 그녀였다. 그녀는 언제나 위고를 엄호하고 앙양시키는 존재였다. 

“정적들의 총탄은 제 몸으로 막겠어요.” 

“인류에게 당신의 탄생은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더 빛나고 더 유용하며 여전히 만족스러워요. 지금의 시대가 예수로부터 시작됐듯, 다음 세기는 빅토르 위고, 당신으로부터 시작될 거예요. 언제나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어요. 당신을 숭배해요.”

아울러 『빅토르 위고』는 위고의 문학과 정치적 투쟁을 통해, 작가란 얼마나 치열한 앙가주망의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그는 ‘정치를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시도 사회의 밑바닥에서 눈을 뗀 적이 없다. 고아와 과부, 사형수, ‘알량한 권력자’까지 위고에게는 죄다 ‘레 미제라블(가련한 자들)’이었다. ‘연민’ 없는 문학이나 정치가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를 웅변한다. 

 

엄중한 시절, 시인은 

진보의 날을 준비하러 오노니

그는 유토피아의 사람

두 발은 여기에, 두 눈은 다른 세상에 두노니

그는 바로 만인의 머리 위에 있는 이

언제나 선지자처럼

그의 손에, 모든 이들이 받들어 올릴 수 있는

그가 흔드는 횃불처럼

치욕을 당하든 찬양을 받든

그것은 마침내 우리의 미래가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하노니

 

그에게 문인이란 힘찬 정신을 이끄는 선구자였다. 

 

오! 가련한 그대, 달아나라! 그대는 나를 그렇게 보는구나

여느 남자들과 똑같은 남자

지적인 존재, 꿈꾸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자

깨어나라,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니!

어두운 신비에 관한 눈멀고 귀먹은 선동자!

어둠이 빚어낸 불행의 영혼!

나는 어디로 가는가? 모른다. 다만 느끼노니

나의 등을 떠미는 격렬한 숨결, 미친 운명

  

그에게 시인이란 ‘한밤중, 단 한 명의 길 잃은 민중을 찾으러 가는 이’였다. 민중을 믿지 않는 이는 정치에서의 ‘무신론자’였다. 시인은 결코 높이 올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 땅에 있는 민중이 무엇을 하는지 보아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고독한 시인을 늘 자처했다.

 

천 명만 있어도, 나는 함께 있겠소

설령 백 명뿐이라 해도 나는 주저 없이 맞서겠소

만일 열 명만 남는다면 나는 열 번째가 될 것이오

그리하여 한 사람만 남는다면, 내가 바로 그가 되리니

 

정치인이 된 위고는 당(黨)에 매인 자가 아니었다. 오직 정의를 말했다. “모든 당파적 편견은 내게 없소. 일찍이 정당에 속한 적 있으나, 지금은 오직 프랑스에 속한 사람이오.” 헌법을 무시하고 독재의 길을 가는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에 맞장을 뜨면서 사살의 위협을 받자 그는 말했다. “곧 내 시신을 볼 것이오. 내 죽음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오. 얼마나 멋진 일이오?” “내가 싸움을 멈추는 날, 그날은 내 삶을 끝내는 날이 될 것이오.” 민중은 환호했다. 

“공화국 만세! 위고 만세!” 

결국 영국, 벨기에, 저지 섬으로 추방을 당한 위고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가난한 망명의 삶이지만 자유는 있단다! 집도 잘 곳도 먹을 것도 형편없지만, 육체가 편한 곳에 있으니, 정신이 넓은 곳에 있으니 괜찮다.”

 

“평범한 시는 너무도 시시하오. 운율로 분노를 표현해야 하오.” 시인 위고는 결국 앙가주망(현실참여) 없는 문학을 거부했다. 그의 신앙 역시 그랬다. “진실과 정의가 곧 하느님이요.” “민중이 곧 그리스도요.”

소설 『빅토르 위고』에는 위고가 필생의 역작 『레 미제라블』을 집필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장장 40여 년이 걸렸다. 그는 기도하곤 했다. “하느님, 나에게 두 가지는 꼭 허락해 주십시오. 이 작품을 잘 끝내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을요.” 쥘리에트 역시 한 마음이었으니, “이 책이 민중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도록, 온갖 숭배와 존경과 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저는 당신의 모든 눈, 모든 귀, 모든 영혼이 되고 싶어요.” 

『레 미제라블』 서문이야말로 위고가 가련한 민중을 얼마나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이 땅에 무지와 불행이 존재하는 한, 이런 류(類)의 책이 무용지물은 아닐 것이오.” 감동한 편집진들은 『레 미제라블』 원고를 울면서 교정했다고 했다. 위고는 형제애, 나아가 사회의 진보를 온몸으로 썼다. 위고는 말했다. “나는 심장이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정한 독자를 기다린다. 나의 책을 그들에게 헌정하노니.” 

말년에 남긴 그의 어록들 역시 가슴 뭉클하게 한다.

“모세는 가나안을 본 적이 없으니.”

“사랑만이 세상을 정당화하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영혼을 위대하게 하는 것이니.”

“신앙만이 이 힘든 노년, 어두운 비탈길을 수월하게 걷도록 해주는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천분의 일만 썼을 뿐이니.”

“나는 미쳐 살았다. 나는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미친 노인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남은 4만 프랑을 전한다. 가난한 이들이 쓰는 영구차로 묘지까지 가기를 원한다. 쿠데타 기간 목숨을 걸고 내 생명을 구하고 나의 원고 가방을 간직한 용감한 여성에게 나의 연금과 종신연금을 승계하게 한다. 나는 지상의 눈을 감겠지만 영적인 눈은 더없이 크게 뜰 것이다. 교회의 추도사를 거절한다. 모든 영혼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빅토르 위고가 임종 때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것, 그것은 행동하는 것이오. 검은 빛이 보이오. 낮과 밤의 전투요.” 1885년 5월 22일 금요일 오후 1시 27분이었다.

위고는 평생 교회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을, 예수를 신실하게 믿었다. “나는 나 자신보다 예수의 존재를 더 확신한다.”

평생 50여 권의 대작을 남긴 빅토르 위고, 치열하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쓰고, 치열하게 살았다. “작품이 시원찮으면 그것은 형벌이다. 위대한 작품이 되면 그것은 보상이다. 불꽃처럼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그리고 작품을 쓰고자 했다. 작품 대부분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를 증가시키고, 동료 시민들로 하여금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다. 그리고 불굴의 믿음을 하느님께 드리고 싶었다.”

영국 저지 섬과 건지 섬에서의 19년 망명 생활은 고독 그 자체였다. 『레 미제라블』을 비롯한 많은 대작을 쓰면서 행한 여성들과의 ‘기이한’ 리비도의 행동은 소설 『빅토르 위고』를 읽으며 느낀 유일한 불편이었다. 하지만 대양(大洋)에 비유될 만한 사상과 실천, 작품으로 사후 200년이 넘도록 그 위대성이 활화산 같은 위고를 생각하며 그쯤은 용서가 됐다. 

막스 갈로의 팩션 『빅토르 위고』는 대서사시인 셈이다. 실제로 인용된 그의 시 400여 편을 따라가며, 희곡 작가, 시인, 소설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숨차게 읽었다. 열정과 냉정을 동시에 선물해준 책 『빅토르 위고』는 내게 소장 목록 1번이 될 것 같다. 

 

 

글·박용주 
시인. 공주정명학교 교장. 『위고를 위하여 에스프리를 위하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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