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애널리스트의 시각, 와인 시장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다
애널리스트의 시각, 와인 시장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다
  • 한유정 | 애널리스트
  • 승인 2024.02.26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와인을 사랑하는 매니아층 더욱 두터워져
-한국 와인 시장 성장은 시작에 불과
-콜키지 프리 보편화는 시간 문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발생되었던 새로운 유형의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최초 보고된 이후 2019년 11월부터 중국을 넘어 아시아권, 그리고 모든 대륙으로 퍼지며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집에서 일하게 하고, 집에서 밥 먹게 하는 등 일상을 뒤흔들었다. 팬데믹 기간 중 와인 시장의 고성장세는 SNS뿐만 아니라 편의점, 대형할인마트 등 기존 유통 채널 내 와인 섹션 확대, 와인 전문점 증가로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와인 시장 규모는 2.8조 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8조 원 대비 51% 성장했다. 짧은 기간 높은 성장세를 보인 만큼 주식시장에서는 와인의 인기가 지속 가능할지, 반짝하고 사라지는 인기에 불과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3년간 51% 성장 속도라면 맥주, 소주 등의 기성 주류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말 영국, 미국,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재개되며 드디어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게 되었다. 와인의 인기는 잠깐의 유행이 맞았을까?

2023년 1~10월 누적 와인 수입액은 4.3억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이에 팬데믹 기간 동안 홈술(Home 술, 집에서 마시는 술), 혼술(혼자서 마시는 술)의 인기로 와인의 인기가 일시적이었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며 와인 시장에 대한 부정적 모습을 다룬 비판적인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수치는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간 일부 입문자들의 빈자리를 보여주는 단편적 수치일 뿐 와인 시장에 눌러 앉게 된, 그리고 여전히 와인을 사랑하는 매니아층은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2023년 1~10월 누적 와인 수입량은 4.8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수입액은 12% 감소한 반면 수입량은 19% 감소한 것이다. 수입액보다 수입량의 감소 폭이 컸다는 것은 저가 와인 중심으로 시장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현상은 이미 202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와인 시장은 2020, 2021, 2022년 3년여간 고성장세를 이어 왔는데 2020~2021년의 성장은 물량 중심, 2021~2022년의 성장은 ASP(Average Selling Prices) 중심의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대비 2021년 와인 소비량은 27% 증가된 반면 2021년 대비 2022년 와인 소비량은 -1%에 그쳤고, 2020년 대비 2021년 와인 ASP는 -3% 감소한 반면 2021년 대비 2022년 와인 ASP는 +10% 상승하였다. 공급, 유통처가 크게 늘며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단기간 내 크게 개선되었고 분위기에, 호기심에 일어났던 수요가 사라졌을 뿐이다. 여전히 2019년 1~10월 대비 2023년 1~10월 와인 수입금액은 102%, 수입량은 33% 증가한 수준인데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와인 시장의 성장을 비판적으로 볼 이유가 있을까?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한국 와인 시장 


 

한국 와인 시장 성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국제 와인 기구(OIV, International Organisation of Vine and Wine)에 따르면 국가별 와인 소비량은 미국(34억 리터), 프랑 스(25억 3,000만 리터), 이탈리아(23억 리터), 독일(19억 4,000만 리터), 영국(12억 8,000 만 리터) 순으로 많다. 한국의 와인 수입량은 0.71억 리터에 불과해 포르투갈의 0.11배 수 준이다.

물론 아시아는 와인 불모지나 다름없다. 문화, 경제, 지리적 이유 때문이다. 국제 와인 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인당 와인 소비량이 많은 Top 13 국가는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아르헨티나, 영국으로 아시아 국가는 순위권에 없다.

 

와인 소비는 소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8년 시장 조사 기관 TABS Analytics가 미국의 21세 이상 소비자 1,9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연간 소득이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응답자의 68%가 ‘정기적으로 와인을 구매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리큐어(Liquor)와 달리 와인은 소득이 올라갈수록 ‘정기적으로 와인을 구매한다’는 응답의 비율이 동반 상승하기도 했다.

2022년 한국의 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2,661달러로 2018년 첫 3만 달러 돌파 이후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소득수준은 소비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는 차를 바꾸고, 2만 달러 시대에는 집을 바꾸고, 3만 달러 시대에는 가구를 바꾼다는 정설이 있다. 집과 차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하고 나면 그 후에는 인테리어, 와인, 미술품 등 나만의 취향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득 수준 성장으로 한국의 하이엔드 가전, 가구 및 명품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2023년 10월 6~7일 세계 최대 와인 박람회인 ‘비넥스포(Vinexpo)’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2023년 4월 29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2023년 5월 16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역시 한국에서 각각 ‘프리-폴 컬렉션’,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 행사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2017년 이후 2022년까지 한국 와인 시장의 금액 기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5%이다. 같은 기간 물량 기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3%로 성장의 대부분을 물량 증가가 견인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2017~2022년 와인 시장의 금액 기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5%인 반면 물량 기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0.1%에 불과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 와인 시장은 여전히 대중화의 단계에 있는 시장임을 의미한다. 2017~2022년 한국 와인 시장의 온트레이드(On-trade, 식당, 호텔, 바 등 현장에서 소비할 와인을 판매하는 유통 채널), 오프트레이드(Off-trade, 슈퍼마켓, 주류 전문점 등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유통 채널) 성장률 역시 14%, 15%로 비등하게 집계되고 있다. 모든 경로가 성장의 구간에 진입한 채널로 유통 채널의 형태와 무관한 성장이 이어져온 영향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온트레이드, 오프트레이드 성장률은 각각 4%, 6%다.

 

브레이크 타임과 콜키지 프리


최근 음식점을 다녀보면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이 없는 곳이 없다. 브레이크 타임은 말 그대로 쉬는 시간이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저녁 영업을 준비하기 위함, 종업원들의 법적 휴 식 시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문화지만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 없 는 음식점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콜키지 프리(Corkage Free)도 마찬가지다. 콜키지 프리란 손님이 외부에서 가져온 술을 마 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본래 원하는 와인이 레스토랑에 없을 때 직접 와 인을 들고 간다. 유럽에서는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중시하는 마리아주(Mariage) 문화가 퍼 져있기 때문이다. 그간 콜키지 프리 서비스를 제공하던 음식점은 주로 고급 레스토랑이었 다면 최근에는 그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음식 판매 수익 못지 않게 주류 판매 수익으로 이익을 시현하던 외식 업계의 커다란 변화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도 주류 매출이 감소 하더라도 손님이 늘어날 수 있다면 전체 매출은 증가할 수 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음식점이 점점 전문화되고 고급화될수록 소비자의 니즈도 더욱 세분화될 수밖에 없다. 콜키지 프리는 손님과 사장님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지기에 브레이크 타임처럼 콜키지 프리 문화도 언제부터 삶에 녹아들었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 생각된다.

팬데믹을 거치며 간소화된 회식 문화가 주류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고민 했던 적도 있다. AI 매칭 채용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 태어난 세대) 취준생 2,600여 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Z세대는 회식을 싫어할 것이라는 관념과 다르게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답한 인원이 44%로 가장 많았다. Z세대가 선호하는 회식 유형 1위는 ‘점심이나 저녁에 딱 1시간만 진행하는 간단한 회식’이었다. 이어 ‘오마카세(맞춤차림), 와인바 등 맛집 회식’과 ‘자율 참석 회식’이 뒤를 이었다. 반면 최악의 회식으로는 ‘술을 과하게 권하는 회식’이 34%로 1위에 올랐고, ‘차 끊길 때까지 이어지는 회식’ 이나 ‘잔소리, 사생활 등 불편한 이야기 가득한 회식’, ‘전원이 강제 참석해야 하는 회식’ 등도 뒤를 이었다. 반면 ‘매주 했으면 좋겠다’라고 답한 인원도 약 2% 정도 있었다.

2022년 국세청이 집계하는 주류 출고금액은 9조 9,703억 원으로 10조 원에 육박했다. 물가 상승률만 고려해도 2023년에는 1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2030세대를 중심으 로 수제 맥주, 와인, 위스키, 전통주 등으로 주류 소비 트렌드가 다변화되며 전체 시장 파이 가 커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인들은 유독 꽃에 있어 엄격하다. 졸업식, 결혼식, 결혼기념일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만 서로 꽃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에선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커다란 리본 을 달지 않는 수수한 포장의 꽃을 구매하는 일이 일상이다.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대형 마트 에서도 어렵지 않게 꽃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와인 소비도 마찬가지라 생 각한다.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특별한 날 격식을 차리지 않더라도, 또 고가 의 와인이 아니어도, 콜키지가 가능한 음식점에 들러 내가 원하는 와인을 맛있는 음식과 함 께 즐기는 문화를 확산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음식료 시장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2022년에는 제12회 연합인포맥스금융대상 음식료 베스트 리서처, 매일경제 음식료 베스트 애널리스트 4위, 상반기 한국경제 음식료 베스트 애널리스트 4위에 올랐다

 

* 해당 기사는 와인 수입·유통 업체 나라셀라가 기획하고 르몽드 코리아가 편집·제작한 와인 매거진 <나라(NARA)> 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