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금난새의 와인 연주법
지휘자의 손 끝에서
비로소 음악은 완성된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의 선율을 이해하고, 각기 다른 수십 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단의 조화로운 화음을 이끄는 자리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독보적인 개척자이자 산증인으로 불리는 지휘자 금난새(76).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에는 최초의 시도라는 말이 자주 붙는다. 유쾌하고 유머가 가득한 콘서트 해설자, 찾아가는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 파격적 발상의 크리에이터.
국내 데뷔 45년 차이지만, 난수표 같은 악보를 넘기며 지휘봉뿐만 아니라 손가락, 눈, 얼굴, 머리를 휘젓고, 심지어 온몸을 흔들며 지휘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의 열정의 비결이 궁금해진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는 1980년 귀국, KBS 교향악단(옛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후 클래식 음악은 특정 층만 향유하는 ‘고급문화’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임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해마다 티켓 예매사이트에서 티켓 판매 랭킹의 수위를 차지하는 등 수십 년간 음악팬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그를 만났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운빌딩에 위치한 퀴진 레스토랑 ‘코리(KORII)’에서 그가 좋아하는 와인을 사이에 두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세계적 지휘자가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말에 빼곡한 공연 일정으로 무척 바쁘셨는데, 신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몇 달 동안 거의 매주 공연을 했는데, 지난 12월 23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금난새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올 한 해를 마무리 지었고, 내년에는 더 멋진 공연으로 팬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중단하지 않고,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한다는 게 신년 계획인 셈이죠.”
칠순을 훨씬 넘기셨는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셔도 되는 걸까요?
“하하, 일을 자꾸 만드니까 일이 자꾸 생기네요. 요즘도 일이 아주 많습니다. 최근 세 달 동안 약 45회 정도의 연주를 했어요. 클래식계에서는 꽤 많이 하는 편이죠. 연말 때문이라서도 그렇지만, 저의 스타일은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불러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이든 대단한 사람이든, 하물며 대통령 앞이라도 기꺼이 가서 즐겁게 공연합니다. 지난해 가을에 성남시 판교빌딩의 광장에서 야외음악회를 다섯 차례 했는데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시장님도 매번 참석해 음악을 즐겨주셨고요. 광장이 운치 있고 연주 소리도 청아했으며, 청중들의 분위기도 참 좋았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음악의 감동을 드리는 게
저의 역할이고 보람이에요.
파격적인 크리에이터로도 널리 유명하시잖아요. 그런 창의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저는 새로운 것이 너무 좋아요. 음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도시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1999년 12월 31일 밀레니엄 제야 행사 때 포스코 20m 높이 건물에서 베토벤 심포니 9번을 공연했습니다. 제 아이디어였죠.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찾는 게 저의 DNA에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정말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와인을 한 모금씩 한다고 말하는 게 좋겠네요.(하하)”

지금 드시는 와인은 나라셀라만의 PB(Private Brand) 와인인 ‘레팡드르(répandre)’입니다. 좋은 향을 널리 ‘퍼뜨리다’, ‘발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브랜드 이름입니다. 선생님이 공연하시는 음악과 와인의 공통점 같은 게 있을까요?
와인잔을 부드럽게 쉐이킹한 그는
한 모금 마신 뒤,
“맛이 참 감미롭다”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이 ‘하늘을 나는 새’라는 뜻을 지녔어요. 주민등록상에 올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일 거예요. 제 이름처럼 좋은 음악을 널리 퍼 날려야죠. 들으면 기분 좋은 감미로운 음악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저의 숙명이에요. 연습 때나 공연 뒤의 와인 한잔이 음악적 영감을 한층 고취시키고요.”


금난새는 “세모시 옥색 치마…”로 시작되는 가곡 ‘그네’를 만든 금수현 선생의 아들이다. ‘나는 새’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된 그의 이름은 광복 이후 ‘나라도 찾았는데 우리말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며 부친이 특별히 지어준 이름이다. 어릴 때부터 독립심과 모험심이 강했던 그는 서울 음대를 졸업하고 27살의 나이에 오직 지휘를 배우고 싶어 독일 유학을 떠났다. 스승을 찾다가 베를린대학 라벤슈타인 교수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고, 교수는 테스트를 거쳐 흔쾌히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그가 서울은 물론, 수원, 성남, 대전, 부산, 광주 등 전국을 가리지 않고 공연을 다니는 것은 독일 유학에서 체득한 대로 모두에게 음악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지방 공연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와 미래를 위해선 지방 공연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방의 아이들은 서울과 다르게 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가 커요. 그래서 저는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왜 그런 사명감을 갖게 되신 거죠?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음악만 배운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도 배우고, 독일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또 그들이 삶 속에서 음악을 어떻게 공유하는지, 이런 걸 배웠어요. 그 사회와 문화적인 것들을 다 본 거죠. 특히 대학과 동네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공짜로 빌려주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땐 도서관에서 악보집을 못 빌려 갔거든요. 미국 정부에서 기증받은 것인데도 못 가져가요. 아니, 음악가가 악보도 못 빌려가게 하면 어떡하라는 거냐, 이런 생각을 했는데 독일에서는 당신이 좋을 대로,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는 거였어요. 그들은 도시와 지방간에 큰 차이가 없었어요. 오히려 지방에서 더 좋은 와인을 마시고, 더 좋은 치즈를 먹더군요. 우리는 도시와 지방 사이에 지금도 많이 차이가 나는데, 그들은 문화적으로 똑같이 즐기더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국에 와서 그걸 전파하고 싶었어요. 우린 모든 걸 서울에만 집중하잖아요. 제가 교향악단에서 12년간 일하면서 지방을 참 많이 다녔어요. 1년에 두 번씩 4박 5일로 영남, 호남, 충청, 경기, 강원 지방을 돌아가며 100회 넘게 공연을 한 거죠. 보통 음악가들은 외국 가는 걸 중요하게 여길 뿐, 지방에 가는 건 안 좋아해요. 커리어에 도움도 안 되고, 지방에서는 음향도 안 좋은 편이니까요.”
기억에 남는 지방 공연이 있을까요?
“2007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 ‘울릉도 음악회’가 기억에 남아요. 군 위문공연에 갔다가 군 간부들과 식사를 하던 도중 전국 곳곳 많이 다녔지만 울릉도엔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했더니 그 당시 총사령관이 헬리콥터를 띄워주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너무 멋진 제안이었어요. 그런데 출발 당일에 하필 날씨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배를 타고 몇 시간 걸려서 울릉도에 갔어요. 연주자들 몇몇은 뱃멀미하고... 그렇게 음악회가 성사되었습니다. 돌아올 땐 다행히 날씨가 좋아 헬리콥터를 타고 왔어요.”
군 사령관이 클래식 애호가라니…. 마치 예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연 모습이 떠오릅니다.
“더 극적인 것은 16년 뒤 제가 판교빌딩 숲의 광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했는데, 그 사령관이 찾아온 거예요. 이제 군에서 전역한 그분은 순전히 클래식 팬으로서 저희 공연장에 온 거죠. 얼마나 반갑던지….”
그는 휴대폰 셀카로 예비역 장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음악으로 연결된 두 사람은 16년 만의 재회가 반가운 듯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금난새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이다. 2013년부터 청소년·청년 오케스트라 교육과 문화조성에 힘을 싣기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을 꽤 오랫동안 맡기도 했으며, 지금도 서울예고뿐 아니라, 경북예고 등 다른 지역의 학생들과도 자주 연주회를 갖고 있다. 특히 그는 얼마 전에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서울예고의 재능 있는 예비 연주자 45명을 미국에 단기 연수시킨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그는 와인잔을 내려놓은 뒤 “지금 마신 레팡드르 와인이 취향에 맞는 것 같다”며 와인과 음악의 닮은 점을 말했다.
“와인은 음악과 아주 비슷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실내악이 그러하다고 생각해요. 실내악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그 선율이 아주 아름다운 것처럼 와인도 그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과 실내악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와인은 역시 분위기 있는 술이고, 시끌벅적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감미로운 실내악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와인과 음악을 문화적으로 잘 결합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 나라셀라의 도운빌딩도 복합문화공간이니만큼, 문화공연도 함께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와인애호가답게 그는 와인 리뷰도 잊지 않았다


“지금 마신 레팡드르 와인은 살짝 거친 면이 있으면서도 너무 달지도 않고 풍미가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이 와인을 마시고 싶지만, 와인을 진짜 좋아하고 와인 전문가로 알려진 풍산그룹의 류진 회장과 마시고 싶네요. 맛이 어떤가 한번 그에게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인터뷰 말미에 인생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지금껏 제가 너무 달려와서 가족들도 ‘저 사람은 일만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저도 그렇게 살려 합니다.
‘클래식 아비투스’, 부산 금난새뮤직센터
금난새 뮤직센터(Gum Nanse Music Center·GMC)가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F1963’은 부산시 수영구 양미동에 있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간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은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2017년 중고서점 YES 24를 시작으로 이듬해 국제갤러리 부산 분점, 예술도서관, 현대 모토스튜디오(현대자동차 브랜드 체험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활력이 넘친다. 특히 2021년 4월 문을 연 ‘금난새 뮤직센터’는 F1963의 환상적인 ‘진화’를 보여준다. 총 151.4평(GMC홀 91평)의 규모에 연주자 35명 및 관람객 150명을 수용하는 이 공간은 국내 최초로 사면이 유리로 구성되어, 공연 및 리허설의 모습을 관객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들도 볼 수 있다. “클래식은 즐겁고, 모두가 함께 하는 열린 공간이다”라는 음악감독 금난새의 생각을 능동적으로 구현한 공연, 연습, 교육 공간이다. GMC는 다양한 실내악 공연, 오케스트라 리허설 등이 가능한 뮤직홀과 5개의 파트별 개인 연습실과 로비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 출신 금난새의 철학인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지역의 청소년과 음악학도, 부산 시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설립했다. GMC는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부산을 예술의 메카로 자리잡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일종의 ‘클래식 아비투스’가 빠르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GMC는 개관 이후 해마다 ‘서머 뮤직 페스티발’을 비롯해, 매주 토요일 초청음악회를 개최해 독주에서부터 실내악까지 다양한 무대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뮤직센터의 금난새 예술감독은 “이곳이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기쁨과 위로 그리고 희망을 전달하고 연주자들에게도 새로운 영감과 재발견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문의 051-756-0037, info@gmcmusic.k

인터뷰어/글 성일권
사진 생동 스튜디오 @saengdong.studio
* 해당 기사는 나라 셀라의 협찬으로 편집ㆍ제작되는 와인 매거진 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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