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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의 우리, 그리고 예술
재난 앞의 우리, 그리고 예술
  • 김지연 l 예술 에세이스트
  • 승인 2020.03.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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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예술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사회가 멈췄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마음을 멈추게 했던 6년 전의 재난을 떠올려야 하는, 아픈 4월이다. 이렇게 봄에 기억할 아픔이 또 늘고 말았다. 재난의 무게는 누구도 비교할 수 없지만, 이번 재난은 유독 사회 전반에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물론 예술계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전시와 공연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됐고, 국공립으로 운영되는 공간들은 거의 모두 휴관을 결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물론, 서울문화재단 산하의 작은 공간들까지 2월부터 문을 닫았고, 사립 미술관이나 소규모 갤러리, 대안공간 등도 상당수 휴관한 상태다. 국립극장 등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 공연기관 5곳도 휴관에 들어갔고, 국립예술단체의 공연들도 잠정 중단됐다. 세종문화회관도 3월 말까지 기획공연을 연기 또는 취소하기로 했다. 대학로의 작은 극장들은 상황이 더 나쁘다. 예방을 위해 자의적인 결정을 내린 경우도, 관람객이 전혀 찾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문을 닫기로 한 예도 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사태에도 일부 공연 및 전시가 취소된 사례가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곳이 한꺼번에 멈춘 적은 처음이다. 

 이에 예술가들은 본의 아니게 휴업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조용히 갇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기로 받아들이며 버텨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어렵게 준비한 전시나 공연, 각종 강연이 취소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진행이 막혀 당장의 생계에 곤란을 겪는 예술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공간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관료나 입장료 수익으로 다달이 운영을 꾸려 가는 공간들은 당장 다음 달 임대료가 걱정이라고 한다. 사회가 멈추며 문화와 예술도 모두 ‘일시정지’ 상태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병이 퍼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며, 실생활에 밀접한 영역까지 모두 멈췄는데 예술이 멈추는 것에 누가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그러나 모든 영역이 그렇듯이, 예술계 종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애쓰고 있다. 영원히 멈추지 않기 위해서 묘안을 내놓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관람객이 적은 소규모 갤러리들은 마스크 착용과 방문자 기록 작성, 예약 방문 등을 조건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으며, 대형 미술관들은 여전히 문을 닫은 채 학예사들이 전시장을 소개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김홍식, 박유아, 신미경, 윤애영 4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온라인 전시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展

‘사회적 거리두기’ 속 새로운 시도들

또한, 전혀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띈다. 최근 열린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1)전은 서울·뉴욕·런던·파리 등 각자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4명의 작가가 모여 온라인으로 꾸린 전시다. 기획자 조은정 큐레이터는 이를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모여 만든 전시’라고 소개했다. 설치나 영상 작품은 웹사이트에서 이미지로 감상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과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관객의 마음을 서로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한편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전시공간 ‘적정거리유지’는 관람방식 자체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동일하다. 관객은 건물 밖에서 2층 쇼윈도에 설치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유리창에 붙은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면 전시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다. 갤러리와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진 곳에는 노란색 테이프로 발자국 모양이 표시돼 있는데, 해당 위치에서 바라보면 ‘적정거리유지’의 작품을 가장 이상적인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예술작품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찾고 있다. 3월에 열리기로 했다가 취소된 아트바젤 홍콩은 3월 20일부터 25일까지 온라인 전시장을 열어 2천여 점의 작품들을 실시간 공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45개 홀 전체를 관람하는 5시간 20분짜리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실제로 관람하는 느낌을 더하기 위해 원테이크로 촬영된 이 영상에서 미술관 내의 작품들은 물론 진행 중인 퍼포먼스도 관람할 수 있다. 공연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단 등은 공연영상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대중음악 가수들은 SNS나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취소된 콘서트를 대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공연 다시보기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 중이다. 

이런 방식들은 실제로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는 것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장성이 중요한 음악공연이나 퍼포먼스 장르는 더하다. 그러나 재난 상황 외에도, 관객과 작품이 현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상황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거쳐 해답을 구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다. VR이나 AR, 홀로그램 같은 기술을 도입해 더 높은 현장성을 구현하는 방식도 시도되지 않을까. 위기는 더 풍부한 스펙트럼을 끌어낼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예술가들은 왜 이토록 애쓰고 있는 걸까. 재난이 가져온 혼란과 절망 속에서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일상과 다른 시선, 예민한 감각으로 사회의 틈을 포착한다. 우리가 대부분 사건의 표면과 커다란 흐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사이에 산재한 작은 점들을 연결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나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내 안에 존재하지만, 슬쩍 가려 뒀던 감정들을 또렷하게 느끼고 삶의 부조리를 곱씹는다. 또한, 바쁜 일상에 치여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공감을 쌓는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은 한 개인의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마음의 밀도를 높여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위기 속, 위기 이후의 예술

한편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고 나면 자신이 겪은 일을 돌아보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평온한 일상이 깨지고 나서야 평소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돌아본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위기가 찾아온 뒤에는 철학이나 예술이 발달하곤 했다. 예를 들면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난 후, 아이러니하게도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왔다. 또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을 드러내는 예술의 특성 덕분에,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이후에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다수 등장해왔다. 지난 사건을 돌이켜보며 오래오래 기억하도록 돕거나, 미처 드러나지 못한 작은 서사들을 되짚기도 하고, 직접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예술은, 사회와 공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존재가 된다.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쓰촨성 지진으로 붕괴한 학교 건물의 철근 200톤을 이용해 <Forge>와 <Straight>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철근들은 붕괴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휘었는데, 그 모습은 학교 건물에 깔려 숨진 아이들 수천 명의 고통과 비명을 떠오르게 했다. 한편 2016년 부산 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일본 작가 에노키 츄의 <RPM 1200>은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는데, 당시 경주 지진으로 인해 작품의 일부가 변형되고 말았다. 그러나 비엔날레와 작가 측은 “이것이 불안을 표현한 작품의 의도와 일치한다”면서 보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이 재난을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고통을 가시화했다면, 에노키 츄의 사례는 재난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현재의 재난과 연결되며 의미가 더욱 강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작가가 이를 치유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했다. 한현주 작가는 단원고의 기억교실을 기록한 사진 작업으로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는 마음의 숭고함을 담았고, 김진희 작가는 진도의 쓸쓸한 풍경 사진 위에 색실로 자수를 놓는 작업으로, 풍경 속에 남은 감정들을 추스르고 포근히 안아 위로를 전했다. 또 임영주 작가는 세월호 사건 전날의 일기예보를 소재로 한 영상 작업을 통해 미디어가 조장하는 왜곡과 불합리, 데이터 해석의 실패를 은유하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꼬집었다. 작가들의 저마다 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재난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재난이 보여준 다양한 얼굴을 되새긴다. 재난 속 개인을 발견하며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예술은 나와 타인, 세계를 돌아보는 도구다. 우리는 그것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퍼포먼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9·11테러의 상흔이 여전히 남은 뉴욕 사회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퍼포먼스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평가들에게 뉴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 작품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넓은 홀에 의자 2개를 두고 예술가와 관객이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아주 단순한 퍼포먼스였다. 아브라모비치는 아무런 경계도 없는 가장 취약한 상태로 관객 앞에 앉아 있었고 관객은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당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풀어놓아도 된다는, 조건 없는 사랑의 눈빛을 선사 받은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 뒀던 감정들을 직시하고 마침내 눈물을 터뜨렸다. 

그저 눈빛을 교환하기 위해 수많은 관객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고, 무려 85만 명이나 전시를 찾았다는 사실은, 재난 이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변화한 관객은 다시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른다. 자신이 받은 눈빛을 타인에게 건네는 법을 깨닫는다. 무엇이든 애정과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바라볼 때 공감과 이해의 마음이 싹튼다. 연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세계의 틈새를 메우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예술의 힘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술은 개인의 변화를 도울 수 있고, 그렇게 바뀐 개인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변화하기 위해서는 두려워하거나 모르는 것을 행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실패해야 한다고도 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예술작품에 부딪히는 경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평소 예술작품을 통해 다져온 마음으로, 어려운 순간에 나의 내면이 불안과 공포에 흔들리지 않게 다잡고, 나를 넘어 세상과 타인을 본다. 재난 앞에서 흐르는 거대한 서사에만 눈길을 주지 않고, 그 아래와 이면과 틈새에 얽힌 서사를 발견한다. 곳곳에 있는 타인과 눈을 마주친다. 

현실적으로 당면한 피해의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상흔은 이후 더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주제로 대화와 토론이 활발해질 것이고, 상처를 메우는 예술작품들이 등장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만나기 어려운 이번 재난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눈을 바라보고 손을 맞잡는 행위가 이처럼 애틋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 중이다.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시작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희망적인 작은 움직임들은 재난 이후에도 사회를 지탱할 것이다. 일상의 풍경은 분명 바뀔 테지만 우리는 또다시 적응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이런 순간에도 부단히 움직인다.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서, 세상의 틈을 더 보여주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들을 거듭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언뜻 보기에 예술이란 것이 눈앞의 재난과 멀리 있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난 속에 흩뿌려진 점과 점을 예술로 연결해 단단한 마음의 그물을 짜낸다면, 더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글·김지연
예술 에세이스트.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만들고 있다.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의 미술비평 공모에서 입상했다. <샤갈·달리·뷔페>전과 <그대 나의 뮤즈>전을 기획했다.

(1)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전의 홈페이지(https://sixshop.com/bluecs)를 방문하면 전시를 관람하고 방명록을 작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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