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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사회주의자들만의 정책인가?
재난지원금, 사회주의자들만의 정책인가?
  • 유승경 l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 승인 2020.04.29 18:2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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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각국 정부의 조치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전례 없는 경제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시민들의 소비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장폐쇄 등으로 공급의 차질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에 각국 정부는 소득이 단절된 시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하는 한편, 중앙은행을 통해 기업과 가계에 예외적인 규모로 신용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이런 정책은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프랜시스 코폴라의 저서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가 제안하는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다.

이 책이 바이러스와 같은 외생적 요인에 의해 경제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를 제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위기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닥쳐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위기의 타개책을 제시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경제용어로서 자리잡았다(23쪽). 저자는 2008년 이후 실시된 양적완화가 은행을 구제함으로써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지만, 실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서민들을 구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다가올 다음의 위기에는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가 아닌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25쪽). 이번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는 완전하지 않지만 재난지원금의 형태로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러면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사상과 말>, 2016 - 스루비 아카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국가는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침체하면 경제에 개입하는데, 그 방법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조절하는 정책이다. 이에 반해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해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중앙은행은 경제가 침체하면 금리를 내려서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많이 받도록 하고, 경제가 과열되면 금리를 높여서 기업과 가계의 대출을 줄인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통화정책은 화폐 공급량을 변화시켜 금리를 조절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설명은, 중앙은행이 금리 조정으로 대출을 변화시켜 통화량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전개하며, 그에 따라 대출이 변화하고 통화량이 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란 무엇인가? 

중앙은행은 대출을 늘려 시중의 통화량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기준금리를 내려서 시중금리의 하락을 유도한다. 그런데, 금리인하에도 한계가 있다. 명목금리는 원칙적으로 ‘제로(0)’ 이하로 내려갈 수 없다. 명목금리가 마이너스면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서 정기적으로 이자까지 줘야 한다. 이런 경우 채권자는 돈을 빌려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자금의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

양적완화는 기준금리가 제로에 근접하고, 더 이상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시중 금리를 더욱 낮추어 통화량을 추가적으로 늘리려고 하는 통화정책의 비통상적 유형이다. 

기준금리가 ‘0’이라 하더라도 시중의 금리는 대개 ‘0’이 아니다. 시중은행은 위험, 만기 등을 고려해 가산금리를 보태서 시장 금리를 정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이미 ‘0’으로 내렸기 때문에, 기준금리의 조정으로서는 경제 내 자금을 더 싸게 공급할 방법이 없다. 양적완화는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경제주체에 바로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시장 금리를 더욱 떨어뜨린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시중에 있는 자산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수 대상은 국채, 회사채, 주식 등 다양하다. 중앙은행이 만약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사들이면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회사채와 주식을 사들인다면 중앙은행이 민간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양적완화의 기원, 헬리콥터 머니 

그렇다면 기준금리가 ‘0’에 가까워진 상황에서,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경제에 더 주입해야 하는 일이 왜 생기는지 알아보자.

현재 경제에서는 국가가 발행한 화폐(지폐와 주화)인 본원통화보다 일반은행이 대출을 통해서 발행한 신용화폐가 유통화폐로서 더 큰 역할을 한다. 시중은행은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따라 예금의 일정 부분만을 지급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다시 대출해줌으로써 경제에 화폐를 공급한다. 이처럼 현행 화폐제도는 시중은행의 신용 창조와 화폐 공급(창조)이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경제위기 시에는 본원통화의 양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신용창조를 통해서 만들어진 신용화폐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달리 말해서 경제위기가 오면 은행은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나아가 기존 대출도 회수한다. 그렇게 되면 신용화폐가 급격히 줄어들어 돈이 부족하게 된다. 대공황기인 1929년과 1933년 사이에 유통 중인 통화량(은행 예금과 현금)이 1/3이나 줄었다(37쪽).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대공황기에 미연준이 경제침체가 왔을 때 통화량을 늘리지 않고 고금리 정책을 통해서 통화량을 오히려 줄였기 때문에 작은 불황으로 끝날 위기가 대공황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은 대공황 같은 재앙적인 경제 침체 시에는 통화당국이 돈을 직접 경제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했다면 공황의 정도와 지속 기간을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37쪽). 양적완화는 바로 프리드먼이 제시한 “헬리콥터 머니”에 착안한 통화정책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미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다. 그는 2002년 일본에 디플레이션 타개책을 조언하면서 “종이 화폐체제에서 단호하게 마음먹은 정부는 항상 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양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민간에 대한 현금 이전을 의미하는 감세와 함께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을 제안했다(43~44쪽).

그리고 버냉키는 2008년 위기 직후에 자신의 책임하에 제로 금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양적완화를 실시해 중앙은행 화폐를 은행과 금융시장으로 계속 투입함으로써 민간의 채무 불이행을 방지하고 지급 시스템의 작동 중단을 막는 데 기여했다(46쪽). 예를 들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연간 GDP의 25%에 해당하는 규모의 본원통화를 공급했다. 즉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내 금리를 떨어뜨리는 한편, 은행의 파산을 막았다.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

이 양적완화는 중요한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우선 양적완화는 경제 침체기에 중앙은행 발권력을 활용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이제까지 중앙은행의 발권력 활용을 제약한 요인은 통화의 남발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다는 공포였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중앙은행과 정부가 엄격한 준칙에 따라서 양적완화를 전개했을 때 인플레이션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실증됐다(124~129쪽).

이런 사실이 밝혀진 이상, 더 나은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경제위기가 구매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면, 구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기 어렵다면 차라리 프리드먼의 원래 생각대로 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의 요체다(102쪽). 

이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양적완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양적완화는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서민을 혜택에서 소외시켰다. 따라서 이 책은 “새로운 위기에서 직면해 다시 양적완화를 실시해야 한다면, 이제는 기존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세계경제가 위기에 직면하자, 그동안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있던 미국과 영국은 다시 기준금리를 ‘0’으로 낮추고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또한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던 유럽과 일본은 그 규모를 늘렸다. 이 책의 예언대로 위기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주요국은 다시 한 번 양적완화로 대응하고 있다. 

새로 시작된 양적완화의 중심적 내용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장으로부터 대규모로 자산을 사들이는 것이다. 이는 민간에 돈을 빌려주는 통화정책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가 재정을 통해서 재난지원금을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통해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해 국민들에게 구매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헬리콥터 머니의 구현이다.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헬리콥터 머니가 아니다

한국 정부도 현재 중앙과 지방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재난지원금'은 기존에 확보돼 지출이 예정돼 있던 재정을 '현금 이전'의 방식으로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래적 의미의 ‘헬리콥터 머니’와는 다르다. 프리드먼이 말한 본래의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에 의한 추가적인 화폐 발행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다음에 다른 곳에 사용될’ 재정을 활용하는 재난지원금은 경제에 추가적인 구매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헬리콥터 머니를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의 한 가지 형태로서 제시하고 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발행된 화폐를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이 헬리콥터 머니다. 저자는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의 방안을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에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양적완화로 창조된 화폐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사회기반 시설의 건설 등 사회적으로 유익한 곳에 투자될 수도 있다(113~118쪽).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내세우면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음으로써,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재정의 조달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의 신화를 넘어서야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엄습한 이후 이제까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영국, 유럽 등이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이유는 재정 건전성의 신화에 사로잡혀 지난 수십년간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저자인 프란시스 코폴라는 영국의 경제 전문가로서 긴축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선진권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실 미국, 영국, 유럽 등이 2008년 이후에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를 고집한 이유는 재정 건전성의 신화 때문에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데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인민을 위해 재정을 지출하는 데 활용할 것을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로 미국, 영국, 유럽은 양적완화와 병행하며 재난지원금 지급 등의 과감한 재정 지출을 단행하고 있다. 프랜시스 코폴라가 제안한대로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전례 없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재정 건전성이라는 미명 하에 낡은 정책을 고집하며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지 않고 있다. 국내의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글·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부소장.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LG 경제연구원과 우리금융경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역서로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외에 『세계화의 종말』, 『우주의 거장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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