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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된 ‘아우라’의 미학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된 ‘아우라’의 미학
  • 이미경 | 화가
  • 승인 2021.07.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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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창궐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예술품을 직접 보고 느끼는 이른바 ‘대면’ 아우라의 미학이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다원예술 2021’이 올 한해 내내 개최하는 ‘멀티버스’전(2월 12일~12월 5일)은 온라인의 특징인 실재와 가상현실, 중심과 주변, 융합적 개념의 미학을 작품에 버무려, 코로나 이후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실험적이며 창의적이다. ‘멀티버스(Multi-verse)’는 ‘여럿’, ‘다중’이라는 뜻의 ‘멀티(Multi)’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IT기술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다차원적 형식으로 접목시켜, 온라인으로의 시·공간성의 확장가능성을 보여준다. 

메타버스가 가상현실에 더 방점을 둔다면, 멀티버스는 현실세계의 은유를 내포한다. ‘멀티버스’전의 작품들 중 시선을 끄는 것은 자연과 기술을 접목한 김치앤칩스의 작품 <해일로>다. 철저한 계산과 제어를 통해 구현한 이 작품은 ‘우연과 필연’이라는 순환의 고리로 자연, 기술 그리고 사람의 만남을 보여준다. 작가는 로보틱스, 재료공학, 수학과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시도함으로써 융합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밖에, 실제와 유사한 지각 경험을 제공하는 최근의 몰입형 기술(VR),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 스스로 인지하고 주행을 계획하고 제어하는 자율주행 기술 등을 활용한 작품들도 새로운 멀티버스 예술의 가능성을 시도한다.

 

온라인을 통한 학예사의 작품설명

같은 장소에서 5월 22일~8월 1일, ‘재난과 치유’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는 팬데믹이 사회와 개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작가적 관점에서 재난의 다양한 양상을 가시화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성찰을 통한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질리언 웨어링의 ‘당신의 관점’(Your views) 시리즈는 세계 각지로부터 모은 800여 개의 창밖 풍경을 온라인으로 엮은 작품이다. 코로나로 봉쇄된 시·공간에서 외부세계와 우리의 사이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로서 관람객에게 치유와 회복이라는 감성을 안겨준다.

어쩌면, 비대면 시대의 창밖 풍경은 온라인이 가능케 한 ‘자연 아우라’의 확장이 아닐까? ‘재난과 치유’ 전시회는 ‘감염의 증후와 증상’, ‘집콕, 홀로같이 살기’, ‘숫자와 거리’, ‘여기는 밖, 그곳의 안’,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 다섯 가지 주제로 마주한다. 작가들은 시각적 감성의 확장을 통해, 팬데믹 시대에 닫힌 오프라인 공간을 온라인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이동, 연결, 확장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는 소규모 전문 갤러리에도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사동이나 삼청동의 민간 갤러리들은 온라인 예약 관객들에 한해 관람객 수를 최소한의 대면이 되도록 디지털 전시를 제공하고,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개인투어를 진행하기도 한다. 관람객들은 방문시간 예약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1) IT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디지털화한 작품에서도 높은 화상도, 사실적인 색감과 질감으로 원작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도슨트들의 견해다.

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기계적 복제는 예술작품의 지배를 쉽게 만드는 축소기술이다.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에 관해 사진(기술)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듯, “기술은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좁혀준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IT기술의 현장성을 활용한 온라인 전시나 디지털 작품에서도 벤야민이 말한 작품과 관람객 간의 상호작용, 즉 ‘아우라’를 느낀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초연결, 초지능을 갖춘 IT기술에 힘입어 예술작품의 무한 확장된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 지구촌 곳곳의 관람객들은 온라인 미술관을 기꺼이 방문한다. 이제, 오프라인으로 작품을 관람하고자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은 옛 이야기다. 비대면 시대에 유럽의 박물관들은 온라인에서의 방문객 수가 500% 늘었으며, 특히 루브르 박물관의 1일 온라인 방문객은 평균 4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약 10배로 증가했다.(2)

이런 현상은 코로나가 온라인 전시를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미술작품은 경매에서도 새롭게 평가를 받는다. 예로, 비플의 작품 ‘첫 5,000일’은 가상자산인 NFT를 통해 세계 생존작가 중 세 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판매돼 디지털예술의 거대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온라인에서의 디지털 작품은 작가들의 손길을 통한 영혼의 흔적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기계를 활용한 간접작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유일한 예술성의 교환가치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통한 아우라 미학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코로나 이후의 예술은 어떻게 될까? 물론, 팬데믹 사태가 신속히 수습돼서 예전처럼 오프라인 전시회에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미 관람객들과의 소통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온라인 전시회는 예전보다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카메라의 등장은 예술계에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등장시켰다. 21세기 온라인 미술의 확장은 새로운 장르들을 뿜어내려 꿈틀대고 있다. 사진이 호크니에게 피카소와 다른 입체주의의 표현 방법을 제시하는 도구이듯, 비대면 시대의 온라인 작업들은 젊고 창의적인 예술가에게 또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가상세계를 보여준다.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한다”는 장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우리는 가상세계의 이미지에서도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객간의 소통 가능성을 느껴본다. 무엇인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진화해 더 좋은 무엇인가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 ‘생성과 소멸’처럼 서로의 극과 극은 서로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하듯 실재와 가상세계,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심과 주변,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서로 연결성을 가진다. 온라인 미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시각적, 촉각적, 감성적 요소들이 그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느낌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창의적인 온라인 활동들을 기대해 본다. 그런 활동들이 미술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말이다. 

 

 

글·이미경
한양대학교대학원 사범대학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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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youtube.com/watch?v=py97wMOEhbI
(2) https://www.youtube.com/watch?v=EToPbxpUwRM&t=341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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