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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의 정치사회학
대통령 집무실의 정치사회학
  • 안치용 l ESG연구소장
  • 승인 2022.04.04 09:2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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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 또한 공간을 지배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라는 것이 윤 당선인이 내세운 명분이다. 동시에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청와대를 떠나겠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데에 대해선 원론적으로 이견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전임 대통령들이 그런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청와대에 들어가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따라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윤 당선인의 의견에 공감대가 형성된 건 맞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반대는 왜 국방부 청사가 있는 용산이냐, 졸속으로 그런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해야 하느냐, 그런 게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냐, 정권 초기에 집중해야 할 의제가 많은데 그런 소모적인 의제에 화력을 집중하느냐 등으로 이전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장소, 속도, 방식, 우선순위 등에 관한 우려다. 이전 장소가 용산으로 확정되면서 안보 문제 또한 쟁점이 됐고, 정식 담화 외 영역에서는 풍수지리 때문에 용산 이전을 추진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즉 “풍수가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의심이다.

 

공간이 역사를 남긴다

풍수지리 또는 무속에 대한 의심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공론의 장에다 올려놓을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은 풍수가 의식을 지배해 집무실을 옮기는 대통령을 선출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으며 논의를 전개하는 게 합당한 태도일 것이다. 

미국 백악관과 비교하면, 종종 고립된 ‘제왕형 집무실’이라 비판을 받은 청와대엔 구중궁궐 이미지와 함께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조선총독부가 지금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세우며 청와대라는 권력자의 공간이 역사의 무대에 들어왔다. 3명의 총독이 사용했다. 일제는 경복궁을 훼손해 조선총독부를 짓고,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을 훼손해 총독 관저를 지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실천한 셈이다.

해방 이후에는 주한 미군 사령관 관사로 사용됐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 미 군정으로부터 관사를 넘겨받아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다. 이승만의 대통령 집무실은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렸는데, 새로운 작명이 아니라 조선 시대에 이 지역을 부른 명칭이었다. 조선시대엔 경복궁 뒤 소나무 숲이던 경무대에서 과거 시험이나 궁술대회가 열렸다.

이씨 왕조의 후손으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꾼 이승만이 두 개 외세의 지배자 거주지를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 집무실로 받아들인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이자 군림하는 지배자로서 대통령상을 체화한 방증인 셈이다.

‘경무대’라는 명칭은 2대 대통령 윤보선에 의해 지금의 ‘청와대’로 바뀐다. 윤 대통령은 취임 넉 달 후인 1960년 12월 30일 “1인 독재 시절을 연상시킨다”라는 이유로 경무대의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겠다고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청와대(靑瓦臺)’라는 이름은 건물의 푸른 기와에서 따온 것으로 “평범하고 평화적인 명칭”이라고 했다.

그러나 윤보선의 기대와 달리 청와대는 독재자와 제왕적 통치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한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3년 12월 청와대 관저에 입주해 1979년 10ㆍ26으로 운구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독재자로 15년 11개월을 살았으니 ‘청와대’의 역설인 셈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등 역대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독재와 일제의 잔재인 청와대에서 탈피를 모색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인 인물로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하려고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윤석열 당선인이 역대 대통령 누구도 못 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바 있는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에 노 대통령만큼이나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강력한 꿈>, 1929 - 폴 클리

용산 시대는 탈제왕적 시대가 될까

윤석열 당선인은 기질상 슬그머니 청와대에 주저앉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분석가들은 윤 당선인이 특수부 검사 출신인데다 정치 초보여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말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런 당내 기반 없이 짧은 기간 안에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 집약적 과정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연단인데다가, 애초에 정무 감각이 없었다면 그런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안보공백을 이유로 용산 이전을 반대하는 건 그렇다 치고, 보수 일각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왜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게 불편하다.”

- 동아일보 ‘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 3월 23일

이밖에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 등 보수 언론인 중에서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마뜩잖아한다. 국민의힘을 포함해, 보수세력의 일부는 여전히 윤 당선인을 신뢰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보수 내에 족보가 없는 인물인데다가, 사상검증을 거치지 않았고 보수세력과 보수정치권에 빚진 게 없어서 그의 행보에 불안을 느낀다. 그들이 보기에 타당하지 않은 인물들이 윤 당선인 주변에 포진한 것도 불만스럽다. 내부에 대안이 없어서 데려온 인물인데 마름이 아니라 주인 노릇을 할까 좌불안석이다.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이 집무실 이전을 “새로운 정치를 위한 핵심 공약”이라고 한 것에 유념하면, 보수세력 내 일각이 불편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시대가 기득권 청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만일 그들의 기우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청산이 이뤄진다면 청산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진행될 공산이 크다. 적대적 공생 및 기득권 카르텔인 양당 체제에 균열이 오리라고 예상 혹은 기대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실제로 그 일을 해내는지와 무관하게 윤 당선인의 계획표에는 그것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보수세력은 윤 당선인을 길들이고 진보세력은 힘을 보여줘, 빚진 게 없는 ‘정치 초보’ 윤석열의 ‘난동’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들 법하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그 일을 못 하나. 새로운 정치를 위해 새로운 공간을 활용한 사례는 가까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례가 있다. 차별화로 공간만큼 좋은 게 없다. ‘불통’, ‘제왕적’, ‘안보위기’ 등 십자포화에도 윤 당선인이 이전을 결행키로 한 데는 “봐라, 문재인이 못한 걸 나는 한다”라는 과시욕과 새정치의 상징성 표명 같은 게 포함되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공간의 정치’를 이미 시작했다는 뜻으로 보는 게 맞다.

개인적으로는 청와대에 들어가서 시간을 두고 공청회 등을 거치며 차분하게 집무실 이전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많은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그의 정치 문법은 다른 듯하다. ‘공간의 정치’는 공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공간에서 시작한다. 윤 당선인이 기도하는 모종의 새로운 정치가 ‘공간의 정치’를 통해 이미 작동에 들어갔기에 나 같이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과 다른 길을 가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사용하게 될 대통령 집무실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용산구 국방부 청사 / 뉴스1

비용편익분석과 역사성

개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철회되지 않으리라고 보기에, 이전의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나 됐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 1호 공약을 배수진을 치고 추진하는 마당에 거대 야당이 될 민주당을 비롯해 누구도 저지할 수단을 찾지 못할 것이다. ‘졸속’ ‘불통’의 비난을 감수하며 전광석화로 진행하기에 비판은 곧 잦아들 것이고 장차의 평가만이 남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기존 정치 문법에 익숙하고 합리적인 정치인이 못하지만, 윤 당선인은 할 수 있는 배경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걸맞지 않은, 전광석화를 선택한 말하자면 ‘능력’인 셈이다. 

윤 당선인이 어디에서 집무하든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같을 것이다. 기왕에 집무실을 이전한다면 ‘공간의 정치’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기득권을 타파하는 새 정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 실금이라도 가야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치 세력, 나아가 새로운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윤석열이라는, 정치 초보와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대통령에게서 진보정치의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하는 현재의 정치 상황은 암울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았으니까 얼떨결에 정말 새 정치를 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그런 기대. 

불통 결정과 졸속 이전이란 견해를 충분히 동의하면서 한편으로 내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국방부와 합동참보본부의 이전이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안보공백에 관해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국방부와 합참이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방부가 계룡대로 이전하고, 합참은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태령으로 옮겨가며 차제에 군사정권 이래 비대해진 채 비효율적인 군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전 비용뿐 아니라 이전 편익도 있다는 이야기다.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른 비용이 주로 논의되지만, 청와대를 시민에게 환원하는 편익 또한 존재한다. 분명한 계산이 당장 나오진 않겠지만, 청와대가 권력자에게서 시민으로 돌아오는 편익이 적지는 않지 싶다.

찾으면 찾아지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용산 이전이 무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한데 윤 당선인은 ‘공간의 정치’를 전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정치의 공간이 확 열려 있어, 그의 정치를 막을 가능성이 없다. 어쨌거나 그는 대통령 당선인이다. 이제 남은 바람은, 그의 말처럼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겠지만 의식 또한 공간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윤 당선인이 기억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의식은 ‘역사의식’이라는 말은 사족이 될까.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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