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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관찰 예능 <메리퀴어>가 보여준 다양성
성소수자 관찰 예능 <메리퀴어>가 보여준 다양성
  • 이주라 l 문화평론가
  • 승인 2022.08.01 09: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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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전성시대다.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선두로 디즈니플러스, 애플TV, 파라마운트 플러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이 한국에서 런칭됐고, 한국 플랫폼인 티빙과 웨이브 역시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OTT 플랫폼의 생존 전략은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이다. 글로벌 OTT의 국내 런칭으로 한국 토종 OTT 서비스 또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체 및 플랫폼의 다양화가 한국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한편에서는 거대자본의 영향력 아래, 소위 ‘뜨는 콘텐츠’만을 제작하게 되면서 콘텐츠 창작이 전형화될 것을 우려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간 지상파나 케이블 TV라는 매체를 통해 접근하지 못했던 색다르고 다양한 서사가 많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은 현재 동시에 구현되고 있는 듯하다. 소위 넷플릭스용 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특정 플랫폼에 특화된 성격의 작품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미디어가 재현하지 못했던 영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는 콘텐츠들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웨이브의 콘텐츠들이 그 대표적 예다. 웨이브는 처음에 지상파 방송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정도에 머무르는 OTT 플랫폼이었지만, 최근에 자체 제작 작품들을 만들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드라마 <검은 태양>, <원더우먼>,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등과 예능 <돌싱글즈> 등, 그리고 <혼공, 조남호의 입시코드>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까지, 드라마와 예능을 넘어 다큐까지 제작 영역을 넓혔다. 특히나 2022년 7월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은 <메리퀴어>와 <남의 연애>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다룬 작품들이다. <남의 연애>는 게이들의 연애를 다룬 리얼리티 예능이다. 채널A의 <하트 시그널>과 같이 자신의 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 집에 머물면서 서로를 탐색하며 커플을 이루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메리퀴어>는 성소수자 관찰 예능으로 성소수자 커플의 연애와 결혼의 과정을 다큐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주류 언론에서 형성하는 성소수자 담론이 대부분 성소수자 권리 옹호 대(vs.) 성소수자 혐오라는 이분법적 대결 위주의 의견만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혹은 성소수자 혐오 관련 기사가 선정적인 제목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매우 적다고 판단하기도 쉽다. 이번에 웨이브가 공개한 성소수자 관련 예능은 무엇보다도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아직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한겨레> 김효실의 보도 「성소수자 관찰 예능 ‘메리퀴어’, 알고 보니 닮았네」(2022년 7월 13일)와 <조선비즈> 박수현의 보도 「웨이브 예능 ‘남의 연애’ ‘메리 퀴어’,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2위」(2022년 7월 20일)에 따르면, 성소수자 관련 예능이 공개되면서 신규 가입자도 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미디어가 재현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표상과 담론이 빈약한 상황인 것이다. 혐오 담론을 중심으로 표면화되는 성소수자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문제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성소수자의 표상이 왜곡되거나 과장된 방향으로 전형화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다. 혹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특별하게 미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는 ‘메리퀴어의 커밍아웃, 화려하지 않은 고백’(2022년 7월 14일)기사에서 영화 <아가씨>와 같은 작품들이 미화된 연출로 동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표상과 담론이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메리퀴어>는 성소수자 커플의 실제 일상을 다큐처럼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메리퀴어>는 ‘틀림’이 아닌 ‘다름’, ‘다름’이 아닌 ‘닮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모두의 사랑, 다양한 세상의 즐거움

<메리퀴어>는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향한 다양성 커플들의 도전기를 담은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다. 퀴어 커플을 다루는 만큼, 출연자들의 다양성도 눈에 띈다. 게이, 레즈비언을 넘어 트랜스젠더와 양성애자까지 소개된다. 이들 출연자들의 다양성을 통해 우리는 퀴어의 세계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흔히 동성애자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다수다. 또한 동성애자 중에서도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 그리고 게이 커플들이 대중문화에서 주로 다뤄졌음을 생각하면 <메리퀴어>는 퀴어 커플들을 다양하게 반영하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연자 성적 지향의 다양화는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화를 가능케 한다. <메리퀴어> 1화에는 초반에 남-남 커플인 민준과 보성의 일상이 소개되고, 후반에 트랜스젠더-양성애자 커플인 지해와 민주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여기에서 트랜스젠더 지해는 자기소개 영상에서 자신을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트랜스젠더 내에서도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트랜스젠더가 있는가 하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꾼 트랜스젠더도 있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한 구분은 단지 트랜스젠더를 지칭하는 용어를 정확히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정체성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지해는 민주와 함께 수영장에 가고 싶지만, 탈의실을 이용할 수 없어서 속상해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MTF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 후에 탈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에 비해 FTM 트랜스젠더는 조금 더 어렵다는 점을 말한다. 일단 이 장면은 트랜스젠더가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화장실이나 탈의실 사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성을 전환시키는 것이 하루아침에 단 한 번의 수술로 끝나는 것이 아닐진대, 성을 전환시키는 과정에 있는 혹은 생물학적 섹스와 사회적 젠더가 불일치하는 모든 누군가를 위해 섹스프리 화장실이나 탈의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성으로 전환하느냐에 따른 일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새삼스런 깨달음도 든다.

<메리퀴어>의 다양한 커플들의 일상은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의 차이에 대한 인지도 가능하게 한다. 레즈비언 커플인 승은과 가람은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그들은 결혼식을 앞두고 이미 결혼식을 치른 레즈비언 커플을 찾아가 조언을 듣고자 한다. 이 두 커플은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레즈비언 커플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얼마나 사귀었고, 같이 산 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이야기를 나눌 때, 가람이 “저희는 거의 사귀자마자 같이 살아가지고”라고 하자, 상대편 커플인 제이와 고망이 

<뽀뽀뽀>를 개사하여 “만나면 반갑다며 동거해”라는 노래를 부르며, 레즈비언들은 대부분 만나기만 하면 동거를 시작한다는 속설을 이야기한다. 이에 제작진은 패널인 홍석천과 신동엽 그리고 하니의 대화를 통해 실제 게이 커플보다 레즈비언 커플의 동거 비율이 높다는 통계 자료를 제시한다. 게이 커플의 동거 비율이 20%인데 반해 레즈비언 커플의 동거 비율은 31%라는 것이다. 이렇게 퀴어 커플들 내에서도 각각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들의 차이는 흔히 동성애라는 일반화된 명사 속에 전형화되어 있었던 퀴어들의 다양성을 구체화하여, 퀴어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준다. 한 존재에 대한 진정한 이해란 그 존재를 사회적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존재 자체의 특성을 구체화시킬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퀴어에 대한 일반화와 전형화에서 벗어나 그들 각각의 삶을 구체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차와 연결 그리고 확장

<메리퀴어>는 퀴어들의 세계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퀴어의 세계를 바라보는 비(非)퀴어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각각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메리퀴어>는 프로그램 포맷 자체가 관찰 예능이기 때문에, 기존 관찰 예능과 마찬가지로 패널들이 동영상을 보며 반응을 하고 멘트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기존 관찰 예능의 패널 역할이 출연자 영상에 대한 즉자적인 리액션 정도에 그쳤다면, <메리퀴어>의 패널은 퀴어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접근을 돕고 시각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앞선 레즈비언 커플들의 대화에서, 이제 갓 결혼하려고 하는 커플과 결혼한 지 꽤 지난 커플들이 서로의 섹스라이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된 커플은 섹스 빈도수가 초기에 비해 낮아졌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에 신동엽은 동성애 커플이든 이성애 커플이든 결혼하면 다들 비슷하다고 동조한다. 그리고 홍석천은 동성애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며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가진 편견을 짚어준다. 이렇게 <메리퀴어>는 이성애자들은 그간 가졌던 고정 관념 및 편견에서 벗어나 퀴어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만, 그만큼 우리와 닮았음을 받아들여,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킨다. 결국 매체와 플랫폼의 다양화는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화를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글·이주라
원광대 문예창작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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