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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범도』, 장군 홍범도, 그리고 2023년 한국
소설 『범도』, 장군 홍범도, 그리고 2023년 한국
  • 방현석 l 소설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9.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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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홍범도를 아느냐

내가 소설 『범도』를 쓰기로 작정했던 것은 13년 전, 만주에서였다. 신흥무관학교 창설 100주년을 앞두고 서간도와 북간도 일대를 답사하면서 나는 전율했다.

전율은 충격과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이토록 눈물겨우면서도 시리게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흔적을 우리 역사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토록 철저하게 지우고 덮어버릴 수 있었을까. 우리 문학은, 한국어로 문학을 하는 나는 처절하면서도 압도적으로 근사하게 한국어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을 외면하고 지금까지 대체 한국어로 무엇을 써온 것일까. 

인간의 이야기를 쓰고, 인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가르치며 살아온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떤 기억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사라져서는 안 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우리 역사가 지워버리고, 우리 문학이 외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했다. 마치 전혀 없었던 것처럼 취급돼온 항일무장투쟁사를, 소설로 쓴 ‘항일무장투쟁사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홍범도는 아니었다. 나는 10년 가까이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조사와 취재를 하면서 몇 번이나 주인공을 바꾸어가며 집필에 착수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내가 선택했던 주인공들은 그 한 사람으로 보면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차고도 넘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항일무장투쟁사 전체를 관통하면서, 그 투쟁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감당해내지 못했다. 

 

홍범도가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던 이유는?

결국,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던 홍범도를 통해서만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감당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홍범도를 통해서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홍범도를 주인공으로 선택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항일무장투쟁사의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리게 아름다웠던 대한민국 항일무장투쟁사의 주인공은 누구라 할지라도 단 한 사람이 차지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홍범도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아는 주인공이었다. 홍범도는 소설 『범도』의 수많은 주인공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들이 얼마나 근사한 주인공들이었는지 증언하는 관찰자이며 서술자다. 그래서 이토록 긴 대하소설을 1인칭 시점으로 견뎌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아닌 다른 누가 이 대하 서사를 1인칭으로 홀로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홍범도가 처음 포수들을 규합해 창설한 항일연합포연대의 총대장이 홍범도였는가. 오로지 평생을 포수로 살아온, 포수 아닌 무엇도 해본 적이 없고 포수 아닌 무엇도 돼보려 한 적이 없는 원로포수 임창근을 총대장으로 내세운 사람이 홍범도다. 

봉오동전투의 총사령관도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홍범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수행한 첫 전쟁의 첫 전투였던 봉오동전투의 총사령관 자리를 최진동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1군 사령관으로 내려가 싸운 인물이 홍범도였다. 홍범도가 그렇게 임창근과 최진동을, 최재형과 리범진을, 김수협과 진포를, 김숙경과 김성녀를, 장진댁과 은희를, 안국환과 김종천을, 차이경과 길선주, 여연, 류진철, 한상호, 전홍태... 신포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들이 주인공의 자격이 있음을 보증하는 증인이 됨으로써 비로소 『범도』는 완성될 수 있었다. 

 

범포수 홍범도, 실전에 강했던 승리의 아이콘

역사적 사실과 실존한 인물을 바탕으로 쓴 소설 『범도』를 출간한 후, 나는 종종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 불려 나갔다. 어디에 가든지 빠지지 않는 세 가지 질문을 받았다.

첫 번째 질문.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가?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소설 속에서는 모두 사실이다. 소설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웹툰과 같은 서사예술은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다. 서사예술의 사실성은 그 서사의 세계 안에서 사실 여부를 가릴 일이지 밖에서 가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설의 사실성은 그 소설 안에서 ‘팩트’라고 불리는 구체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림을 예로 들면 쉽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손녀에게 밥을 떠먹이는 ‘다정한 그림’에서 할아버지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리 두 사람의 표정이 해맑아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림 밖에서는 그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실제로 얼마나 살갑게 밥을 떠먹였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 안에서는 전혀 사실성이 없다. 그건 친할아버지와 친손녀 사이가 아니다. 친할아버지라고 해도 남의 할아버지보다도 못한 할아버지임이 분명하다. 다정한 그 웃음은 거짓이다. 입을 다문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라면 당연히 ‘아’하며 자신의 입부터 벌리기 마련이다. 

두 번째 질문. 이 이야기가 정말인가? 이건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사실성이 아니라 진실성을 묻는 것이다. 소설의 진실성 여부는 소설 안팎에 걸친 개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소설 안에서는 앞뒤가 맞아야 한다. 어제까지 총 한 방 쏘아보지 않은 농부 출신의 의병이 오늘 전투에 나가 백발백중으로 적을 잡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다.

홍범도부대가 가장 오래 싸우고 크게 이길 수 있었던 개연성은 ‘끝까지 싸운다’는 홍범도의 정신만으로 확보될 수 없다. 홍범도부대는 포수들이 중추를 이룬 부대였다. 포수들은 군인들보다 전투력과 사격술이 훨씬 뛰어나다. 군인은 훈련 때만 사격을 하지만 포수들은 일상적으로 총을 사용한다. 총이 신체의 일부처럼 익숙한 포수들은 실전에 누구보다 강하다. 더구나 홍범도는 범포수였다. 한 방에 범을 잡지 못하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것이 범포수다. 홍범도가 승리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포수들의 부대를 이끄는 범포수였기 때문이다.

개연성은 사실성과 달리 소설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2023년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교사가 학생을 사정없이 매질한다면 이건 정말이 아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김국태의 『우리 교실의 전설』 같은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정말일 수 있다. 

세 번째 질문. 그럼 역사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는 조너선 스펜스와 움베르토 에코를 소환한다. 두 사람은 역사적 사실과 자료, 실존한 인물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학자와 작가다. 중국 역사 전문가인 예일대 교수 조너선 스펜스는 소설형식의 역사책을 써서 역사학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까지 사로잡았다. 『룽산으로의 귀환』 같은 그의 저술들은 역사책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움베르토 에코는 학자인 조너선 스펜스와 달리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쓰는 방법을 뛰어나게 구사한 작가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역사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역사소설은 실제 사건을 허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허구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역사는 결과를 중심으로 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소설은 과정을 중심으로 사람을 다룬다. 소설은 역사와 달리 결과가 아닌 과정, 사건이 아닌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역사를 살아보게 만들어 주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 진정한 역사소설이다.

 

독립운동에 앞서 스스로의 삶을 독립시켰던 홍범도

그랬기 때문에 역사소설 『범도』를 취재, 조사하고 집필한 지난 13년은 내가 홍범도부대의 부대원으로, 항일무장투쟁전선의 종군작가로 살았던 시간이다. 나는 『범도』의 사람들과 함께 100년 전의 비바람을 함께 맞으며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이 소설을 썼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나 혼자서 쓴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그 장면을 장식한 인물들과 대화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어떤 장면에서, 그 누구도 마네킹처럼 세워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독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무엇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바람처럼 살다 바람처럼 사라져간 『범도』의 사람들과 더불어 100년 전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며칠이라도 살아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범도』의 사람들과 반대편에 섰던 악인들, 적들의 선택과 행동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기를 바랐다. 

100년을 거슬러 항일무장투쟁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보게 될 독자들에게 소설 『범도』의 사람들이 던지는 이야기는 홍범도의 어록 1번에 압축돼 있다.

“남 탓하는 자를 믿지 마라. 남 욕하기 좋아하는 자를 멀리해라. 대체로 그자가 더 나쁘다.”

홍범도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살고 싸웠지만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줄 서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기 앞의 문제를 돌파했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가난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에 나설 때 홍범도는 블라디보스토크 부두의 하역노무자로 일했고, 시베리아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총기와 탄환을 장만해 다시 국내 진공 작전에 나섰던 홍범도였다. 그는 나라의 독립운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의 삶을 독립시켰던 인물이었다. 

 

우리 가슴 속 『범도』의 사람들은 결단코 철거 못해 

“없는 차이를 만들지 마시오.”
경고였다.
“남의 근력이 아무리 세면 뭐하오. 남의 근력이 내 근력이 되는 걸 보았소?”(소설 『범도』2권, p.423)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들이 쓰는 가장 흔하고 비겁한 수법이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남 탓하며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은 100년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이들을 아무 근거도 없이 소환해내, 있지도 않았던 차이를 만들어 능멸하는 기가 막힌 상황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2023년의 대한민국을 책임진 그들이 없는 차이를 만들어 항일무장투쟁의 영웅들을 능멸하는 사이에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현주소다.

『범도』에서 홍범도는 언제나 말하는 상대의 입이 아닌 그의 눈빛과 손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홍범도는 지금 없는 차이를 떠드는 그들의 입이 아니라 그들의 손끝이 무엇을 노리는지 지켜볼 것이다. 

살아보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을 살아보도록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 소설이다. 『범도』를 읽으면서 익힌 주인공들의 눈빛이 독자들에게 지금의 현실을 읽고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진정한 역사소설은 소설로서 역사이어야 하고 역사로서 소설이어야 한다.

권력은 유한하고 진실은 영원하며 역사는 엄중하다. 권력으로 흉상은 철거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범도』의 사람들을 철거할 수 있겠는가.

 

 

글·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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