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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꿈꾸는 유사 출판계
넷플릭스를 꿈꾸는 유사 출판계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1.31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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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주 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넷플릭스를 접하고서 거의 ‘넷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장안의 화제가 된 tvN 24부작 ‘미스터 션샤인’을 불과 3일 만에 다 봤고, 그 뒤를 이어 영국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1~4를 집중적으로 섭렵했으며, 지난주에는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국민드라마로 등극한 JTBC 20부작 ‘SKY 캐슬’의 시청에 뒤늦게 합류해 뜬 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다. 

‘SKY 캐슬’을 다 보고서야 왜 주위에서 이 드라마에 관해 등장인물의 성격, 줄거리, 배경을 화제로 삼는지 어슴푸레 알게 됐고 각 언론에서 앞다퉈 내놓은 관련 진단과 해설을 읽고서야, 세간의 흥밋거리로부터 꽤나 비껴간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사실, ‘미스터 션사인’이 지난해 한참 화제가 됐을 때도 거의 본 적이 없어 지인들과의 대화에 꿀 먹은 벙어리였는데,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넷플릭스에서 이미 개봉된 인기 영화들뿐 아니라, <로마> <나르코스> 등 자체적으로 투자, 제작한 영화들도 틈틈이 즐기는 대신에 극장 근처엔 아예 가지 않았다. 주위의 이야기를 들으니, ‘넷 폐인’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1만 원 안팎의 월정액으로 온종일, 아니 한 달 내내 영화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 평론가들 사이에도 넷플릭스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오버더탑 사업자’라 부르지만, 넷플릭스의 위력과 성격은 단순히 영상물을 탑재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세금, 광고, 내용, 편성, 서비스개발 등 각 영역에서 도발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로 순식간에 최강의 오버더탑 사업자로 자리를 굳힌 넷플릭스는 각국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 국가의 상당수 방송사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오버더탑 사업자들이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제멋대로 편성, 광고 등을 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만큼 자국 방송사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이들 오버더탐 사업자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오히려 자국의 과도한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국내의 경우, 서울대 이준응 언론정보학 교수 같은 이들은 “우리 방송서비스가 편성·내용·사업·서비스개발 등 모든 영역에서 이미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고, 국내 사업자들은 이미 팔다리가 다 묶인 채 경쟁에 나서는 형국”이라면서 규제해제론을 피력한다. 진보매체인 경향신문(1월 21일 자)에 난 이 교수의 칼럼을 거듭 읽으면서 세상의 급변을 절감해본다. 아마도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오버더탑의 국내시장 잠식에 심히 우려하는 심정에서 쓴 글일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영상)나 멜론(음원)처럼 월 1만 원 안팎을 결제하면 실컷 전자책(e북)을 볼 수 있는 전자책 월정액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 미국 아마존이 선보인 ‘킨들 언리미티드’와 같다. 물론 탈퇴하면 더 이상 전자책을 볼 수 없다. 선발 주자는 스타트업 기업 ‘밀리의 서재’다. 지난해 2월 베타 서비스, 올 7월 무제한 서비스를 본격 시작했다. 월 9,900원(앱스토어 수수료 제외)을 내면 현시점 기준 2만 5,000여 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2019년 1월 현재 누적 회원 수(탈퇴 회원 포함)가 50만 명을 넘었으며. 유료결제 회원은 약 5만 명에 달한다.

동시에 전자책 시장의 강자 ‘리디북스’도 올 7월 ‘리디셀렉트’를 내놓으며 월정액 구독자 모집 경쟁에 뛰어들었고 대형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11월 하순 월정액 ‘북클럽’(월 5,500원 또는 7,700원)을 내놓으면서 시장이 화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HB인베스트먼트 등 투자회사로부터 100억 원가량의 펀딩을 받은 ‘밀리의 서재’의 경우 유명 셀럽들을 모델로 내세워 순식간에 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인기리에 막을 내린 연속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두 주연 배우 이병헌과 변요한이 말싸움을 벌인다. ‘사피엔스’ ‘역사의 역사’ ‘고양이’…, 서로가 읽은 책 제목을 두고 핑퐁을 하다 변요한이 “책값 꽤 들었는데?”라고 꼬리를 내리자, 이병헌이 웃으며 말한다. “한 권 값에 다 봤지.” 뿐만 아니라 구혜선, 김수용, 변요한, 이병헌, 유병재 등 인기 연예인들이 ‘밀리의 서재’에 리더(Reader)로 참여해 독자를 유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배우 이병헌이 참여한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리딩북의 경우, 공개 일주일 만에 1만 5천 명이 들었을 정도다. 변요한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리딩북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오버더탑 매커니즘을 이용한 영상의 넷플릭스나 음원의 멜론이 영화관객이나 음악팬들을 흡수한 것처럼, 전자책 월정액 서비스 업체들이 독자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출판계 일각에서 나온다. 처음부터 고유의 출판업무와는 무관하게 책 한 권 출간해본 적이 없는 스타트업 기업이 수익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투자회사의 펀딩을 받아서 셀럽들을 모델로 기용해 독자들을 흡수하는 모양새가, 오히려 출판계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다. 

여기에 월정액 구독 서비스는 도서의 ‘판매’가 아닌 ‘대여’ 개념이어서 도서정가제를 직접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정가제를 엄격히 준수해온 일반 출판사와는 역차별적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선발주자인 ‘밀리의 서재’가 셀럽들을 동원해 일부 베스트셀러 위주로 온라인 대여도서들을 큐레이션한 것처럼, 독자의 취향을 획일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영상에서, 음악에서, 그리고 이젠 활자매체에서 획일화된 문화 취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않을까 싶다. 월정액 구독서비스업체에 국내의 유력한 몇몇 잡지들이 참여했고, 또 참여를 준비 중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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