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비즈니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2022년은 프랑스 프로방스 역사상 포도밭 매매가 가장 많은 해였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이곳의 포도밭과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사들이러 몰려들었다. 이에 대해, 현지 포도 생산자들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선지자의 간택을 받은 포도밭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 할리우드 스타들(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조지 루카스 등), 개인 자산가부터 무명의 일반인들, 그리고 크고 작은 각종 기업의 전 대표들. 이런 이들이 포도밭을 찾았다. 그들에게 포도밭과 와이너리는 세금 폭탄의 도피처이자, 화사한 빛깔의 로제 와인과 따사로운 햇빛까지 안겨주는 향기로운 투자처다. 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산 아래 위치한 포도밭 주인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LVMH(Louis Vuitton, Moët & Chandon, Hennessy)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선견지명이 있다. 그가 이곳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LVMH는 생트로페시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에스클랑 계곡의 포도밭을 인수했다. 이는 10여 년 전 시작된 ‘골드러시’가 정점을 찍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럭셔리 브랜드이자 샴페인·코냑 부문에서도 선두를 차지하는 LVMH는 코로나 시기를 포함해 5년도 되지 않아 총 5개의 와이너리를 전체 혹은 부분 인수했다. 그중에는 총 면적이 400ha에 달하는 ‘크뤼 클라세’급 와이너리 3개와,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로제 와인 브랜드들도 포함돼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이는 로제 와인이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고급 와인 대열에 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기 지역의 포도와 포도밭 가격이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는 LVMH 같은 소유주들에게 포도를 판매하는 농가들에게도 이익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에스클랑 계곡에서 ‘테르 데스클랑(Terres d’Esclans)’이란 이름의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파브리스 레몽은 “다들 기뻐하며 비싼 대형 트럭들을 사들였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속한 프랑스농민연맹(CP)은 2022년 8월 LVMH가 소유한 샤토 데스클랑의 포도밭에서 ‘야생 수확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토지 독점에 대한 항의였다.
현재 레몽의 포도밭은 그야말로 LVMH 소유의 포도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다. 그는 “과거 에스클랑 계곡에는 와이너리가 5~6개 있었다. 생산하는 와인은 각각 달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 사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지금은 포도밭을 기계와 로봇들이 점령하고 있다. 포도 재배방식이 달라진 건 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들이 포도밭을 사들일수록, 포도밭을 파는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프로방스의 젊은 포도 생산자이자, 농지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민관협력기구인 농촌건설토지정비기구(SAFER)에서 프랑스농민연맹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 있는 그웬나엘 르바르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흘러갈지 뻔한 일”이라고 단언했다.(1) “LVMH 등은 포도값을 비싸게 쳐주니, 생산자들 모두 그들에게 포도를 판다. 장기간 농민연맹활동을 해온 생산자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포도 가격을 낮춰도 돌이킬 수 없다. 농민연맹의 존재 이유는 이런 거대 구매자들의 지배력을 억제하는 데 있다. 그 사실을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
포도밭 가격 상승, 그 혜택은 누구에게?
한편 토지 가격 상승이 가져올 결과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각의 예견대로 이 거품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이유다. 레몽은 “자녀들에게 땅을 물려주고 싶어도, 상속세가 문제다. 병당 8유로짜리 와인을 팔아서 그 큰 상속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 포도 재배자들은 기업들에 포도를 판매하는 것이 자신들의 자산 가치를 부풀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포도밭을 양도할 때가 돼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면서 전문가들의 얘기처럼 “게다가 우리 자녀들이 공증인에게서 400만 유로였던 포도밭이 1,000만 유로가 됐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곧바로 포도밭을 팔아넘기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프로방스 지역의 ‘포도밭 투자 붐’이 시작된 것은 약 십 년 전부터지만, 사실 이는 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금융화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도 생산자가 자작농으로든 소작농으로든 직접 포도를 경작하면서 운영 자본의 전부 혹은 일부를 소유하기까지 한다면 결국은 그 포도나무들을 점차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SAFER는 2022년 발표한 한 보고서를 통해 “이 시장은 법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실제로 2022년 한 해 동안 매매된 포도 생산지 중 전체 면적 대비 약 40%가 개인이 아닌 기업에 매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프랑스 전국 농지면적 중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투자자가 소유한 경우는 7.1%로, 그 범위를 포도 생산지로 한정 짓는다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프랑수아 퓌르세글은 포도 농업 분야에 대해 “수년 전부터 토지 자본 및 운영 자본의 소유와 실제 농업 활동 간의 분리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2)
포도 생산지 거래 전문 업체인 비네아 트랑작시옹(Vinea Transaction)은 관련 거래 중 실제 와인 관련 종사자가 매수한 경우는 전체의 절반 정도에 그치며, 그나마도 카스텔(Castel)이나 제라르 베르트랑(Gérard Bertrand)과 같은 와인 대기업들이 자사 와인 생산에 필요한 포도 혹은 포도즙 공급을 안정화하고 적법성을 확보하며 와인 관광 부문을 개발하고자 거래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젊은 포도 생산자’의 비중은 2022년 전체 매매 건수에서 3%에 그쳤다. 포도밭을 매입한 ‘와인 업계 비종사자’(71%, 거래가 기준) 중에서는 ‘해외 투자자’가 2%를 기록한 반면 ‘유럽 내 투자자’는 28%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신규 생산자’(21%)와 절세를 추구하는 ‘일시적 은퇴자’(20%)가 그 뒤를 이었다.
물론 이런 통계만으로는 양조장 유무, 재배자 및 생산지의 이름, 포도나무 혹은 설비 포함 여부 등 모든 법적 세부 사항을 확인할 수는 없다. 또한 여러 소유주들이 하나의 토지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농업조합들이 분할 매입에 뛰어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거래된 면적이 연간 20만 헥타르에 달할 정도다. 물론 이는 이른바 ‘상파투스 법’이라고도 불리는, 유사한 현상을 저지하기 위해 2021년 제정된 SAFER의 규제 기준을 크게 웃도는 숫자다.
이런 변화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포도 생산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레몽은 “이는 농업계의 엄청난 출혈”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포도밭의 소유주가 직접 트랙터의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게 당연해졌을 뿐만 아니라, 점차 그것이 임금 노동자의 몫, 나아가 농작업 대행 용역업체의 몫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농업계(특히 포도 생산 분야)는 아웃소싱 천국이 되고 말았다. 2002~2016년 농업 분야 아웃소싱 비율은 2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오늘날 관련 시장 규모는 40억 유로에 달한다.
프랑스 내 포도 생산지 중 약 5%는 용역업체에 전적으로 위임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3) 르바르는 “LVMH와 같은 기업들은 직원을 두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전 과정을 전문용역에 맡긴다. 와인 양조학자와 농업경영 컨설턴트를 통해 포도 재배 플랜을 세우고, 트랙터 작업은 한두 명의 전문 운전사에게 연 단위로 맡기며,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모든 생산 과정은 외부 업체가 도맡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아웃소싱 외의 다른 선택지로는 ‘통합 방식’이 있다. 르바르는 이에 대해 “예를 들어 포도밭 대부분을 현지 농가에 맡겨두고 이후 그들에게서 수확한 포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이 경우 농민들은 와인 생산체인에 통합된다. 하지만 이상 기후 등의 리스크는 고스란히 농민이 떠안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아웃소싱과 통합 방식 모두 생산 활동 자체에 대해 보수를 주기보다는, ‘재산 경영’을 통해 협력노동자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포도 농업의 ‘3차 산업화’는 이미 진행 중인 셈이다.
“가난하게 살다 부유하게 죽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반응이다. 보르도 출신의 경제학자 장마리 카르드바는 이런 현상이 전반적으로는 이롭다고 봤다. 그는 “이 새롭게 등장한 주체들은 더욱 체계적이고, 재정적으로도 건전하며, 농민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 시장에서 수익성을 창출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얼마나 건강한 변화인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미 포도나무의 10~30%가 자취를 감춘 보르도의 위기를 예로 들면서 “한정적인 경쟁력 탓에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포도 생산자가 6,000명이 넘는다. 그럴 바에야 기업에 고용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리스크가 있다면, 기업집중이 심화돼 독점 체계가 구축되는 경우다. 하지만 아직 요원한 일”이라고 선을 그은 그는 “현재 보르도의 와인 브랜드만도 무려 5,000개에 달한다. 너무 많다. 2035년에는 200여 개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편이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20여 년 전부터 농지 보호 활동을 벌여온 시민단체 테르 드 리엥(Terre de liens)의 책임자 탕기 마르탱은 “기업의 집중 현상은 일자리 감소를 가져온다”라며 반박했다. 그는 “급여를 받는 포도 생산자들의 생활이 독립 생산자들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지역의 중산층들은 현장 책임자를 맡게 되겠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농업통계청(AGRESTE)의 2020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임금을 받는 농업노동자의 80%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비정규직, 계절근로직, 수습직 등)이며, 여성노동자의 경우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지치기와 같은 일회성 작업에 투입되는 파견 노동자의 비중이 건설업계보다도 더 높은 것(2017년 기준 계약 건수 7만 건 수준)으로 확인됐다. 마르탱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농부는 가난하게 살다가 부유하게 죽는다’는 말이 있다. 프로방스의 한 전문가는 “포도 생산자들이 죽을 때라도 부유해진다면 참 다행일 것이다. 이 말은 그들에게 환상을 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한 세대가 지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글·쥘리 뢰 Julie Reux
기자, 와인의 미래를 다루는 독립 매거진 <Vinofutur 비노퓌튀르>의 창립자.
ww.vinofutur.fr
번역·김보희
번역위원
(1) Lucile Leclair, ‘L’agro-industrie avale la terre(한국어판 제목: 농지를 휩쓰는 무자비한 기업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2월호.
(2) Bertrand Hervieu & François Purseigle, 『Une agriculture sans agriculteurs 농민 없는 농업』, Les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22.
(3) Geneviève Nguyen, François Purseigle, Julien Braily, Bruno Legagneux, ‘Sous-traitance et délégation du travail : marqueurs des mutations de l’organisation de la production agricole 아웃소싱 및 노동 위임 : 농업 생산 조직의 변화를 드러내다’, 『Notes et études socio-économiques』, Ministère de l’agriculture et de l’alimentation, centre d’études et de prospective, Service de la statistique et de la prévision, no. 47,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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