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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나토화’ 우려와 한·중·러 협력
동북아 ‘나토화’ 우려와 한·중·러 협력
  • 송영길 l 국회의원
  • 승인 2019.06.28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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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경 경제협력포럼]
6월 3~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이 KEB하나은행금융경영연구소와 (사)유라시아21의 공동 주최로 열려, 관련 전문가들이 한국, 중국, 러시아, 북한의 접경지역에서 경제, 금융, 관광 협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마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핵 합의 불발 이후 냉랭해진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최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 고(故) 이희호 여사에 대한 북한의 조문, 트럼프 미 대통령의 김 위원장 서신에 대한 긍정적 반응 등 또 한 번의 국면 전환이 펼쳐질 전망이다. 본지는 오늘의 동북아를 짚어보고 내일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북미 정상 사이에 다시 시작된 ‘친서외교’와 북한의 ‘조문외교’, 중국의 ‘정상외교’는 4개월째 경색 국면에 빠진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중대한 돌파구가 될 것인가? 특히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난 6월 1일부터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북아 초국경 경제포럼에 필자가 기조 발제를 위해 다녀온 소감은 우리 사회가 100년 전의 그레이트 게임을 연상케 하는 ‘동북아 발’(發)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

잠시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자. 1894년 갑오왜란을 일으킨 일제는 1895년 초 북양함대사령부 위공도를 점령함으로써 청일전쟁에 승리했다.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 할양과 조선지배권 2억 냥의 배상금, 그리고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동한 독·러·프 3국 간섭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포기해야 했다. 일본이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3국 간섭으로 일본이 굴복하자, 고종과 명성황후가 급격히 친러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다 집어삼켰던 요동반도를 토해낸 일본우익들의 분노가 향한 곳은, 러시아가 아닌 애꿎은 명성황후였다. 미우라 공사를 비롯한 일본 핵심 엘리트들이 낭인으로 위장하여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소위 을미사변이다. 고종은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자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다. 소위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이때 러시아와 일본 간의 일시적인 ‘힘의 균형’에 의지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5천 년 역사에 처음으로 제국을 만들고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게 됐다. 일본은 절치부심 설욕을 준비했다. 1902년 영일동맹 체결이 러일전쟁 승리의 핵심적 발판이 됐다. 영일동맹을 미국이 전폭 지원했다.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의 견제로 발목이 묶였다.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시작했다. 

1905년 7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자 임시 외무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후에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이 됨)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에 따라, 미국은 1882년에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위반하고 필리핀의 미국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교환했다. 1812년 나폴레옹군을 물리친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크림반도·만주·조선 등으로 남하작전을 감행하고, 영국은 1858년 인도를 식민지화 시키면서 북상했다. 1885년 3월부터 4월 러시아는 북부아프가니스탄 판데(Panjdeh) 등 오아시스 지역을 점령했다. 

거문도와 대마도 역시 러시아가 점령하고 싶은 거점지역이었다. 거문도는 대한해협의 길목을 지키는 보스프러스 해협 같은 곳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포트 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영국은 점령사실을 청, 일에 통보하고 조선에 나중에 통보했으나, 당시 조선 중앙정부는 거문도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 못 했다고 한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 저지 약속을 받고 22개월 만에 철수한다. 만일 거문도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있었다면 러일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1905년 러시아에 대한 영일동맹의 승리로 1813년부터 시작된 100년의 그레이트 게임이 종료됐다.

 

한국을 둘러싼 제2의 그레이트 게임

최근 미·일 동맹 및 중·러 협력의 강화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이에 대한 서방의 제재,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 군사기지화 등을 보면 러일전쟁 전야와 비슷한 상황으로, 한반도 주변에서 제2의 그레이트 게임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그간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 다가서는 것을 거부하는 ‘반접근(Anti-access), 지역거부(Area denial)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호주-인도-베트남-대만-필리핀-일본을 연결하는 ‘대(對)중국 포위전략’과 ‘자유로운 인도태평양 항해전략’을 채택하여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대한 돌파구로 중국이 채택한 ‘일대일로 정책’은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맞물려 상호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 큰 우려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과의 경쟁 구도 문제다. 올해 4월 10일 미국 상원은 한·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3국 간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비롯한 군사적, 경제적 협력강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에 대한 압박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군사동맹은 한·미동맹으로 족하고 한·일 군사동맹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한·일간은 미국을 동맹국으로 간접 연결되는 유사동맹인 것이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은 아니라는 것이다. 군대보유를 금지하는 일본의 평화헌법에 비추어보더라고 군사동맹 체결은 헌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한·미·일 3각 동맹은 소(小)NATO가 돼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의 군사역량이 증가할수록 견제와 균형을 위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한·미·일 남방 3각과 북·중·러의 북방 3각의 대립구조가 정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로서는 미·일 이외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신북방정책의 거점, 블라디보스토크

러일전쟁 당시에 고종황제는 영세중립국 선언을 했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경제군사적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중립선언은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 인도는 미·일과 협력하는 동시에 중·러와도 협력 중이다. 인도는 비동맹을 주도해온 외교적 역량과 13억 인구의 힘이 있다. 고종황제 때는 적어도 분단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된 현재는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무엇일까? 어려움이 클수록 반전효과도 크다.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전략 중 하나인 신북방정책에 그 해법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중심지는 블라디보스토크라 생각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1999년 이후 20년째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 때문이다. 알다시피 17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세계최대 면적의 국가인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지만, 그 중심은 그간 유럽에 치우쳐 있었다. 로마황제 시저의 러시아식 발음인 차르를 자처한 이반 3세(1462~1505년)는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언했다. 아시아적 러시아를 유럽화한 표트르 대제는 1703년부터 발트해를 바라보는 네바강 늪지대를 매립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표트르의 성)를 건설,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이후 모스크바가 다시 러시아의 수도가 되는 데는 2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1917년 볼셰비키 10월 혁명을 통해 집권한 소비에트 정권은 1918년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고, 지금도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간 거리는 약 700km다.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직선 길이 1,178km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는 먼 거리지만, 동서의 길이가 9,000km에 달하는 러시아로서는 비교적 짧은 거리로, 500년 이상 러시아의 중심은 유럽에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변방이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에는 ‘동방을 정복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곳에는, 중국으로서는 치욕적인 역사가 담겨있다. 제2차 아편전쟁에 영불연합군에 가담한 러시아가 1860년 북경조약을 통해 100만㎢ 이상의 영토를 청나라로부터 할양받아 영토화한 곳이 바로 이 블라디보스토크다. 청나라 때는 해삼위(海參)로 불렸다.

태평양에 접한 러시아 동쪽 영토인 극동러시아 최대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제국주의 군사요충지로서 1990년대까지는 일반인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블라디보스토크는 푸틴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극동개발·신동방정책 추진의 전진기지로 변모했다. 특히 2015년부터 동방경제포럼(EEF·Eastern Economic Forum)이 개최되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점이자 북극항로 연결 항구로서 가히 신북방정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러시아 간 교류의 공간이다.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한 한국의 방송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한국인 2016년 5만 명, 2017년 10만 명에서 지난해 22만 2,000명으로 급증했다. 

또한 한·러 양국 간 경제교류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역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무역지대로 조성하고 ‘신동방정책’의 핵심지역으로 삼고 있다. 이후 한·러 양국은 지난해 6월 자유무역지대 설치 공동성명에 서명한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투자와 서비스 무역을 위한 자유무역지대협정 회담의 본격적인 시작을 공식합의하기도 했다. 

자유무역지대란 관세지역에서 분리된 항구의 일정 지역을 뜻한다. 정부가 특정 항구를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면 외국의 선박도 관세 수속을 밟지 않고 입항해 화물을 하역하거나 환적할 수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사고

또한 필자는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에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사고를 제안한다. 첫째, 한미동맹을 확고히 발전시켜 나가되, 한미동맹이 일방적 종속이 돼서는 안 된다. 전시작전권을 회수하고 군사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 한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중미 무역전쟁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주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조치에 항의하기 전에, 사드배치 후 롯데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의 문제점을 돌이켜 봐야 한다. 2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게 한 롯데그룹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는, 미국의 화웨이 수입제한조치 비난에 대해 설득력을 잃게 만든다. 시진핑 주석의 대외정책의 철학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으로 알려져 있다. 즉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미 무역분쟁을 보면서 중국은 과연 그동안 한국기업들에 어떤 조치를 해왔는지 반성적으로 고찰해봐야 한다. 

셋째, 한·미·일 군사협력은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대응과 연계돼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해나가되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사안별 한국 예외조치를 확보해나가야 한다. 중러와도 마찬가지다. 

넷째,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 대한민국의 확고한 정치결사체를 확립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경제포럼은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플랫폼이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까지 참여시켜 남북중러 협력에 일본을 참여시키는 동북아 경제번영전략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유엔 제재에 있어 북한 여행은 제재대상이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금강산-원산-울릉도-포항-부산-후쿠오카와 인천, 상해를 연결하는 동북아 크루즈를 당장 실행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복원시켜 내야 한다.  

 

 

글‧송영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4선), 인천광역시장(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위원장(전),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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