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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찬란한 어긋남 - 김보라의 <벌새>
[김희경의 문화톡톡]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찬란한 어긋남 - 김보라의 <벌새>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12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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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에는 의지가 반영된다. ‘그럴 것 같다 ’는 말엔 ‘그랬으면 좋겠다 ’는 바람이 깃드는 법이다. 또 ‘그렇게 만들겠다 ’는 소중한 나만의 의지도 배어든다. 그러나 결과는 사뭇 다르다. 냉정할만큼 의지가 철저히 배제된다. 예상과 결과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필연적인 원인이자, 그 불일치가 더욱 처연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1994년 중학생 2학년인 은희를 비추며, 이 소녀의 예상과 결과가 반복적으로 불일치 하는 모습을 담는다. 은희의 예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의지를 갖고 마음을 다하면 상대도 그에 조응하리란 소소한 믿음 정도다. 하지만 은희의 의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 무심한 결과만이 자꾸 발생한다. 그럼에도 은희는 1분에 90번 이상을 날개짓을 한다는 ‘벌새’처럼 끈질기게 움직임을 이어간다. 과연 소녀는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카메라는 처음부터 은희의 작은 손가락을 비춘다. 은희의 손가락은 애초에 예상과 결과의 어긋남을 가리키고 있다. 집 초인종을 눌렀지만 엄마는 답이 없다. 은희의 손은 불안한 듯 초인종을 계속 누른다. 그러다 카메라는 문에 적힌 집 호수를 비춘다. 은희의 집이 아닌 아랫집이다. 이를 깨달은 은희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이번엔 예상대로 엄마가 나오지만 은희의 얼굴은 계속 어둡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짧고도 사소한 불일치만으로 앞으로 은희가 겪을 일련의 사건들과 그 저변에 흐르는 은희의 불안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소녀의 예상은 자주 빗나간다. 은희는 정성스럽게 친구들을 대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기대한 반응과 다르게 행동한다. 자기를 좋아한다던 남자친구 지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여자친구를 만난다. 어른들도 은희의 예상을 매번 벗어난다. 엄마는 아빠와 격하게 말싸움을 하다가 전등으로 아빠의 팔을 다치게 한다. 그런데 다음날 부모님은 TV를 보며 같이 웃고 있다. 소파 밑에 남아있던 전등 파편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불안은 늘 일상에 머물러 있다.

이런 세상에서 은희가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카메라는 은희의 손가락을 또 한번 비춘다. 부모님의 떡집 일을 하루종일 도운 후 집에 돌아와 함께 돈을 센 직후다. 은희는 양손 열손가락을 모두 펴서 하나씩 살펴본다.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온가족이 매달려 떡을 만들고 썰어야 하는 집안 환경, 여기에 힘을 보태어 보지만 아직은 나약하기만 한 손가락이다.

어느 날 한문 학원에 새로 부임한 영지 선생님은 은희의 손가락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은희의 손이 가장 자유롭게 표현되는 곳은 이 학원에서다. 은희는 한문 수업 전후로 연습장에 만화를 그린다. 은희의 좌절된 의지를 위로하는 것도 영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고작 중학생인 은희 앞에서 ‘잘린 손가락’이란 노래를 읊조리듯 부른다. 표면적으로는 은희와 다툰 지숙이 학원에 오랜만에 오자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엔 작은 손가락 움직임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상처를 받았을 은희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손가락을 잃고 소주 한잔을 마신다는, 중학생으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가사에도 은희의 눈은 촉촉히 빛난다.

 

영화는 이내 영지 선생님이라는 가장 큰 버팀목을 은희로부터 앗아간다. 이 버팀목의 상실 또한 은희의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것이다. 영화 밖에서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영화 안으로 들어와 영지 선생님을 하늘나라로 데려간다. 하지만 손가락의 의미를 깨달은 은희는 예전과 다르다. 은희는 예상과 결과의 어긋남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펴본다. 카메라는 은희의 곁을 회전하며 이를 포착한다. 은희의 옆엔 마치 작은 분자들처럼 친구들이 재잘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모든 움직임들엔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반대로 왠지 모를 관계의 불안이 갑자기 해소되기도 한다. 아무리 불러도 자신을 잘 쳐다봐주지 않는 것 같던 엄마는 어느새 감자전을 먹고 있는 자신을 부드럽게 바라봐준다.

 

그래서일까. 은희가 다시 바라본, 다양한 분자들을 담고 있는 세상은 영지 선생님의 표현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카메라가 비추는 은희 주변의 움직임에도 영롱한 빛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게 영화는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이며 찬란한 어긋남을 가리킬 소녀를 응원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정책 및 기획 전공 박사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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