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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천연 한지의 마법에 반하다
루브르, 천연 한지의 마법에 반하다
  • 이종훈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북 에디터
  • 승인 2020.05.29 17:1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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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예술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한지(韓紙)의 복원성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루브르 박물관이 세월의 더께가 씌워진 고미술품이나 고가구를 옛것 그대로 복원하고, 십여 세기 전의 고서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마법의 재료로 한지(韓紙)를 찾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정작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K팝, K영화, K방역 같은 ‘KOREA’의 모더니티적인 삶에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오래된 멋진 유산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게 없다. 지구 반대편인 프랑스에서 우리가 그저 조선 사대부들의 사서삼경이나 절간의 불경, 혹은 한옥의 문풍지 정도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온 한지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먼저 발견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자문하게 한다. 우리는 대체 한지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가 전통한지를 이용해 로스차일드 컬렉션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2018 - 김민중 복원사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에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공간과 달리,  박물관 내부 조용한 별실에서는 복원사들이 망가지고 부서지며 빛바랜 예술품들을 되살리느라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승리의 여신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텐베르그의 성경, 렘브란트의 드로잉, 백자 등도 천연 종이를 이용한 복원사들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멋진 생명력을 얻었다. 복원사들은 천연종이를 으깨고 짓이겨서 낡은 조각상과 가구, 도자기, 그림 및 액자 등에 생긴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고, 그 겉 표면을 세월의 더께가 밴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데, 종이에 어떠한 화학성분이나 유료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  뒤늦게 루브르의 베테랑 복원사들로부터 ‘고품격 복원지’란 평가를 받은 우리의 전통한지는 신성로마제국시대 막시밀리안2세가 쓰던 가구를 복원하는데 깔끔한 마무리로 각광받았고, 로스차일드 컬렉션 복원에도 긴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처럼 전통한지의 마법이 루브르의 빛바랜 보물들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사들은 세월에 퇴색된 코란 경전의 페이지 한 장 마다 우리의 전통한지를 넣어 소중한 예술품으로 보존하고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지는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다라니경』(신라시대 704~751년 제조 추정)이다. 이후 1300여년에 이르는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가 한지에 담겨 이제는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에서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보통 한지라고 하면, 옛날 시골에서 전통 혼례식을 치르고 첫날밤을 앞둔 신랑신부를 보기 위해 짓궂은 동네 총각들이 야심한 시각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숭숭 내던 창호 문풍지를 떠올린다. 그 시절의 그 한지와, 21세기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정받는 한지는 가치의 품격이 엄연히 다르다. 루브르 박물관이 인정한 ‘세계적인 예술품 복원지’로서 한지의 위상은 우리가 알던 과거의 ‘첫날밤 한지 야사’와는 궤를 달리 한다.

 

전통한지, 일본화지 보다 품질 앞서

그럼 한국의 전통 한지(韓紙), 일본의 화지(和紙), 중국의 선지(宣紙) 중 과연 문화재 복원용에 가장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김민중 복원사는 2015년 석사논문 ‘한지의 특별성’에서 3개국 천연종이를 넣고 실험한 결과, 한지가 ‘수치 안정성’ 1위로, 가장 뛰어난 복원력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노후화 테스트에서 4일이 지난후 일본 화지에서는 변형과 노후화가 나타났으나, 한지는 거의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테스트의 중요한 결과에 대해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사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의 천연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오래된 소장품들을 복원할 수 있는 천연종이를 찾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오던 차였다. 

이후 2019년 11월 18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지 컨퍼런스(주최 ‘미래에서 온 종이’, 주관 전주시, 후원 문경시)에 참석했던 루브르 박물관 복원실 관계자들이 실제로 국내 문경, 괴산, 안동, 전주 등을 찾아 한지의 제조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품질을 점검했다. 올해 2월에도 루브르 박물관 학예장이 실무진과 함께 전주의 전통한지 제조공장을 직접 방문해 제조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 이사진과 한국을 찾은 루브르 박물관 복원실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 운영진과 한국을 찾은 루브르 박물관 복원실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한지 컨퍼런스를 성황리에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2019- nStudioSeoul

 

루브르 박물관, “예술품 복원 위해 전통한지 맥을 이어달라”

전통한지가 세계적인 예술 복원지로서 그 위상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루브르 박물관이 계속 한국을 찾는 동안, 정작 국내시장에서는 전통한지의 수요가 계속 감소해 자칫 소중한 전통한지의 맥이 끊겨질 위기에 놓여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기회가 다가왔음에도, 국내에서는 전통한지의 기반이 악화돼가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전통한지의 맥을 잇기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 ‘미래에서 온 종이’의 민경식 이사장은 최근 “내한했던 유럽의 종이 전문가 2명을 통해 유럽에서 전통 종이제작의 맥이 끊겨 예술품 복원에 필요한 종이공급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들 유럽 전문가로부터 한국이 전통한지 제작의 맥을 이어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민이사장은 자연산 전통한지가 유럽 박물관 등에 보다 더 많이 공급돼, 우리 젊은이들이 전통한지 복원작업에 더 많이 참여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기를  희망했다.

이와 관련해 전통한지는 예술품 복원 뿐만 아니라 고급 예술품을 해외로 보내는데 있어서 표구용지와 포장용지 등으로도 다양하게 쓸 수 있어 앞으로 그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시장에 전통한지의 공급이 확대되면, 전통한지 제조에 관심있는 청년들에게 의미있는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예술품 복원을 위해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화지를 공급받았으나, 일본산 화지에서 일부 화학성분이 발견돼 예술품 복원에 적합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자, 루브르 박물관 실무진이 자연산 한지를 소량 생산하는 한국에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민간단체 ‘미래에서 온 종이’ 김성중 이사는 “일본이 거의 독점하던 유럽 박물관의 한지 공급에서 유럽 전문가들이 한국 한지의 존재를 안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전통한지는 닥나무를 재료로 해 외발로 뜨고, 자연산 재를 이용해 전통한지를 복원한다. 이 같은 방식은 일본에서는 백 년 전에 이미 사라졌으며 한국에만 일부 남아있다. 전통한지만이 갖는 강점이다”고 강조했다. 

일본 화지가 프랑스 박물관에 공급을 거의 독점하던 2015년, 일본 화지에서 일부 문제점이 드러나자 루브르는 아시아의 다른 종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예술품 복원작업에 참여하는 김민중 복원사의 한국 전통한지 관련 논문이 이슈가 됐고, 이후 민간단체 ‘미래에서 온 종이’, 문경시, 전주시 등의 노력으로 루브르 내에서 한국 전통한지를 공급받자는 일부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전통한지 보존과 전수의 확대를 위해 설립된 ‘미래에서 온 종이’는  2019년 10월 창립된 이후, 2020년 서울시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됐으며 현재 회원은 50명이 넘는다. 이 민간단체는 루브르 박물관과 2024년까지 2년에 1회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로 했다. 

한국의 전통한지는 2016년부터 루브르에 수출되기 시작했으며, 2017년 막시밀리안 2세 책상의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하는 데 사용됐다. 루브르 박물관 내 로스차일드 컬렉션 판화 일부를 복원하는 데에도 한지가 쓰였으며, 현재도 루브르의 복원 작업에 전통한지가 활용되고 있다.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를 공식 방문할 당시,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해, 한지로 복원된 막시밀리안 2세의 책상을 직접 관람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 국내 언론이 한지로 복원된 책상 사진보다, 모나리자 그림 앞에 선 김정숙 여사와 마크롱 여사의 사진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정작 한지 관련 내용은 빛을 보지 못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2022년 5월 중동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에서 전 세계 종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를 준비 중이며, 한국에도 참여를 요청한 상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예술품 복원 등에 사용되는 전통 종이의 시장 규모는 약 4조~4조 6천억 원대로 추산되는데, 우리 전통한지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전통한지의 낮은 세계시장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다. 

 

시급한 전통 맥잇기와 미흡한 전문 인력 양성 

한편 국내 환경을 보면, 전통한지의 맥 잇기 작업은 매우 미진하며 이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도 시급한 실정이다.

전통한지 계승을 위한 민간활동에 참여해온 불교계 정림 스님은 “고려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지의 맥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전통한지를 실제 복원할 수 있는 기능 보유자가 30여 명에 불과하다는 말을 박물관 관계자에게 들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한지를 이용한 영인본 복원에 전문인력 보충이 시급함에도, 현장에서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전문인력과 예산지원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국내 전통한지의 수요가 감소하는 현실적인 요인은 물론, 전통한지의 장인들이 전통한지 제조의 노하우 전수와 공유를 꺼리는 요인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문경, 괴산, 안동, 전주, 원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한지 제조의 맥을 전수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고유의 제조 노하우 공개를 하지 않고 있어, 전통한지의 전통 맥 잇기에 차질이 우려된다. 전통종이와 달리, 화학물질을 첨가한 한지 제작은 국내에도 많이 활성화돼 여러 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으나,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100% 자연산 종이만을 복원작업에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전통한지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하우 전수를 보다 확대하고 제조 기준을 과학적으로 설정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전통한지 제조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은 물론, 복원 전문인력 양성도 이런 맥락에서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에는 몇몇 대학교에서 복원교육을 실시해 소정의 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문화재 복원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전통한지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제도적 지원, 민간단체를 비롯한 일반 국민 일반의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이 필요하다. 특히 장인들이 노하우를 공유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선행적으로 제반여건을 섬세하게 준비하는 방안들이 관련 당국의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전통한지 노하우를 이어받는 전수생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제도도 마련돼야 한다. 이 같은 문제점 지적과 개선 요구에 대해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변명을 들어, 현장의 제언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책 대신에 미봉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와 관련해, ‘미래에서 온 종이’ 민경식 대표는 “전통한지 장인들이 보다 불편하지 않게, 편한 마음으로 노하우를 공개하고 전수를 늘릴수 있도록 하는 사전 제반여건 조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통한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전통한지라고 하면 한옥의 창호지, 병풍 등에 쓰이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전통한지는 기존의 범주를 넘어 도자기와 고서적 등 박물관내 소장품 전부에 대한 복원에 매우 긴요한 소재다. 통상 박물관에서 외부로 소장품이 나가기 전에 하는 표구작업에도 전통한지가 필요하며, 전시가 끝난 다음 소장품을 다시 갖고 왔을 때에도 복원작업 역시 전통한지가 소요된다. 

그 외에도 전통한지는 이미 의류, 닥나무 종이인형을 비롯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의 풀죽을 떠올리며, 미래 식량부족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전통한지를 물에 불려 풀죽을 쑤면, 비상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발한 생활의 지혜도 나왔을 정도다.   

 

전통 잿물을 이용한 제조법은 일본에 없어 

한국은 전통종이 제조에 있어 일본보다 유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 전통한지는 외발로 물을 뜨는 방식으로 구석구석 골고루 종이재료가 단단히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숙련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우리 전통한지는 우물 정(井)자 방식으로 물을 떠내어 구석구석 골고루 섬유질이 잡히면서 단단한 재질을 자랑한다. 

반면, 쌍발을 이용한 일본은 화지 제조법은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한쪽 방향으로 모양이 나 있어서 한쪽을 찢으면 다른 쪽이 쉽게 찢어진다. 또 종이를 가다두고 섬유질을 내려앉게 제작해서 물에 놓으면 풀어져 버리는 단점도 있다. 또한 일본은 화학성분의 양잿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자연산 잿물을 이용한 전통방식은 이미 1백여 년 전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 전통한지 장인들에게는 전통 잿물을 만드는 소중한 노하우가 있으며, 서유럽 박물관에서 원하는 100% 자연산 한지의 수요에 부합되고 있다. 

현재 문경, 전주, 안동, 원주 등에서 닥나무를 키워 전통한지를 제작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실무진은 실제로 지난해 문경을 방문해 한국 전통 잿물을 이용해 전통한지를 제조하는 현장을 꼼꼼히 살펴봤다. 문경에서는 콩대와 메밀대로 재를 해서 전통한지를 만들고 있는데, 전통 잿물을 이용한 전통한지 제조법은 일본에는 없는 것으로, 우리 전통한지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들이 문경을 방문해 전통한지 장인의 외발뜨기 제조기법을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2019 - nStudioSeoul

북한, 닥나무 생산에 적합한 기후조건 갖춰 

전통한지의 재료인 닥나무의 재배에 있어서도, 고온다습한 일본보다 한국의 기후조건이 적합하다. 또한, 남한보다는 기온이 낮은 북한이 닥나무 생산에 더 적합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김민중 복원사는 루브르 박물관이 보유한 북한 전통한지를 직접 점검한 결과, 기대이상으로 품질이 좋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북한의 전통한지 제조방법과 유럽으로의 유통 과정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미래에서 온 종이’의 민경식 회장은 “북한의 전통한지 실상을 알고 싶어 북한을 왕래하는 중국동포에게 문의를 한 바 있다. 북한의 전통한지 장인들이 궁금하다”면서 “산림이 황폐한 북한에 닥나무를 조림사업으로 보급하는 것은 앞으로 남북협력 차원에서 여러모로 의의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중·일 협력 통해 유럽 박물관에 공급 확대 필요 

전통 종이 제작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개국은 업무협력이 원활치 않은 현실이다. 유럽시장을 선점한 일본은 한국 전통한지의 유럽 박물관 진출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견제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저가인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일본과의 업무협력에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김민중 복원사는 최근 국제박물관협회의 중국 컨퍼런스에 참여하려 했으나,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 일본은 한국 전통한지의 이슈화를 원치 않아 컨퍼런스에 불참하고 있다. 동북아 3개국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파악한 루브르 박물관 측에서는 복원지 공급선으로 일본과 한국을 특정하지는 않고 있어,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의 프랑스 내 시장 점유는 공존이 불가피하다.

전통한지 보존 단체인 ‘미래에서 온 종이’의 김성중 이사는 “유럽시장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상징적이며, 의미 있는 첫 관문이지만, 앞으로는 이탈리아, 영국, 독일, 스페인, 미국, 러시아 등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은 다른 국가들에도 공급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시장을 향한 자연산 복원지 제조 및 유통과 관련해 한‧중‧일 3개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로 인해 정보교류와 업무협력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향후 유럽이나 미국, 호주 등에서 대형 문화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이들과 컨소시엄 형식으로 공동 진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이 앞서고, 일본은 유럽 시장을 선점했지만 두 나라 제품 모두 한국의 한지에 비해 예술품 복원에 있어 품질이 떨어지므로, 품질이라는 강점을 지닌 우리로서는 이들 국가와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 

전통한지가 세계시장에서 예술품의 명품 복원지로 인증받은 지금, 자칫 한지 계승의 맥이 끊어지고 유통전략이 실패한다면 선조들이 남겨준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 모래성처럼 소실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의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나서 만난 ‘미래에서 온 종이’의 민경식 회장, 김성중 이사, 그리고 정림스님은 모두 ‘한지 마스크’를 끼고서 인터뷰에 응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기자는 ‘한지 마스크’를 선물로 받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글·이종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어판 북에디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운영하는 비평전문 매체 <크리티크 M>(www.critiquem.co.kr)의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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