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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물 - 비 그리고 청바지 우산
[최양국의 문화톡톡] 물 - 비 그리고 청바지 우산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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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물음표로 태어나 느낌표로 내려온다. 수소 원자 2개에 산소 원자 하나가 만난 간단한 물질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화합물이다. 자연과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들과 결합하여 의식주와 에너지를 만든다. 끊임없는 상승과 하강을 통해 기체~액체~고체로 변신하는 순환을 거듭한다. 이와 같이 물은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면서, 항상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 생태계와 인간 신체의 70% 이상을 채우는 비결이다.

 

인간과 / 물의 본성 / 교집합 / 보완 관계

Wikipedia에 의하면 물(水 water) 또는 옥시데인(oxidane)에 대한 과학적 정의는 산소와 수소가 결합된 것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화학 물질이라는 것이다. 물은 가장 보편적인 용매로 보통 액체 상태의 물을 가리킨다. 고체 상태인 것은 얼음, 기체 상태인 것은 수증기라고 부른다. 이러한 물은 생성과 순환의 미학을 통해 살아 있는 자연을 만들며, 진화하는 인간을 지향한다. 물은 자연과 인간의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위한 필요재이며 무한한 진화를 위한 독립재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은 만물의 한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실존적 실체로서의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변화하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인간과 사물 사이를 관통하는 만물의 생성과 운용의 원리를 규명하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이러한 탐구의 일환으로 많은 철학자들은 자연을 탐색한다. 이중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다. 설령 물이 만물의 근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물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정도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근원이 물 그 자체 또는 이와 상당한 정도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물이 가지고 있는 본성(本性 nature)으로서의 고유한 성질 또는 능력을 인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과 인간의 본성은 그 교집합에서의 공통점을 가지며 상호 진화하고 있는 보완의 관계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물은 생명 그 자체이면서, 물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등 만물의 가장 근원적인 살아 있음의 질서를 주관하는 절대자의 역할을 한다. 물은 자신의 고유한 성질 또는 능력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물들과 만나 쉽게 융합되어 다른 성질 또는 능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것은 물의 본성에 대해 두가지 시각, 즉 물 그 자체로서 바라보는 일원론과 생명에 대한 절대적 질서 주관자까지 포함하는 이원론적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생태계에서의 물은 대상 만물과의 시・공간적 위치에 따른 상황 변수에 영향을 받으며, 삶과 죽음의 양 끝단 사이를 이동하게 된다. 이동의 마침표로써 어느 한 좌표에 위치 하게 되느냐에 따라, 그 융합의 결과는 단일한 값으로 수렴하며 이에 따라 그 성질 또는 능력은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원론적 접근은 많은 경우의 수를 나타내는 변화의 세계로서 물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바, 여기서는 물 그 자체에 대한 일원론적 시각에서 물의 본성을 바라본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제시하며 세상 만물중 가장 좋은 본성을 가진 것은 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력・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융통성・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장엄한 폭포처럼 떨어질 수 있는 용기・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의 7가지 덕목인 수유칠덕(水有七德)을 가진다.

* 물의 본성(상선약수 上善若水), Google
* 물의 본성(상선약수 上善若水), Google

이는 형이상학적으로 의인화된 물의 성질 또는 능력을 제시함에 따른, 자연생태계에 속한 인간등 만물의 본성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과 더불어 그 기대감의 표출인 것이다.

 

계절별 / 비의 욕망 / 삼원색의 / 조화(造化)인가?

욕망(欲望 desire)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감정 또는 마음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넘쳐나는 것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로써, 인간의 시각에서 의인화하여 자연생태계로의 확대가 가능한 상대적 개념인 것이다.

비는 물이 가지거나 탐하고자 하는 감정 또는 마음의 표현 수단이다. 물은 그 본성을 일탈하며 우리의 계절마다 다른 색의 욕망으로 내려온다.

* 빛의 삼원색, Google
* 빛의 삼원색, Google

봄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수직선의 촉촉한 비로 적셔 온다. 이는 아직은 초록으로서 미완성이지만 미래의 성장을 갈망하는 초록색 성장의 욕망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에게 조각은 돌이나 대리석 같은 재료 안에 갇혀져 있는 형상을 캐내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지, 새롭게 깍아내며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노예상>에서 재료안에 갇힌 노예를 끄집어 내며 미완성을 통한 완성을 추구한다. 우리들 성장의 욕망은 완성을 향한 끝없는 미완성의 길인 것이다.

여름은 땅에서의 그 영역을 최대한 넓히려는 수평선의 주륵주륵 장맛비로 같이 한다. 이는 장맛비가 개이고 난후의 하늘과 바다의 파란색을 향한 영원의 노스탈지아를 꿈꾸는 생명의 욕망이다. 윤흥길의 《장마》는 “~(중략) 할머니의 긴 일생 가운데서, 어떻게 생각하면,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러고도 놀라운 기력으로 며칠 동안이나 식구들을 들볶아 대면서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할머니에겐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에 넘치던 시간이었나 보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내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모든 걸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라고 전한다. 이의 끝 부분은 과거형을 사용하며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질 만큼 힘든 나날들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6.25전쟁 및 분단 현실, 전쟁으로 인한 가족간의 불행 및 그 갈등도 어느 순간에는 끝나는 유한성이라는 것을 던져 준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욕망은 어느 순간엔 과거형으로 다가올 것이다.

가을은 이음과 넓힘을 통한 그 결과물들이 밤톨처럼 톡톡 떨어지며 쌓여가는 낟가리 비로 치날린다. 이는 가을의 오색단풍이 유달리 빨간색으로만 비쳐지며 물들게 하고 다양한 도형의 군집들을 누리고자 하는 소유의 욕망이다. 인간들의 본원적 욕망인 의식주 및 성에 대한 탐욕은 아라비아 숫자의 탄생과 더불어 그 궤를 같이하며 증폭되어 온 것이다. 비어 있음이나 없음을 나타내는 영(零)이 위치적 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라는 것은, 소유의 욕망에 대한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겨울에는 점에서 시작한 빗방울이 땅으로 내리는 하강의 원심력에서 벗어나, 하늘로 향하는 상승의 구심력을 이루며 용의 비로 승천한다. 이는 빛의 삼원색에 대한 보색효과로서의 흰색이 그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회귀의 욕망이다.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는 실연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정처 없는 방랑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지나간 시간,그리고 흘러간 인연에 대한 애착을 오롯이 담아낸다.

* 겨울나그네(Franz Peter Schubert,1827년), Google
* 겨울나그네(Franz Peter Schubert,1827년), Google

우리의 성장~생명~소유에 대한 욕망은 회귀의 욕망이라는 종착역을 남기며 원형의 시작과 끝 점을 잇는다. 물의 본성이 계절의 비로 이음~넓힘~모음~돌림을 위해, 내리고~퍼지며~치날리고~상승하며 남기는 욕망은 크고 작은 순백의 원(圓)으로 그려진다.

 

우리들 / 본성을 좇는 / G・E・N・E / 우산깃

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우리의 본성도 욕망이 되어 내린다. 내리는 비 그리고 욕망에 흠뻑 빠져 젖지 않고 물이 가지는 상선약수(上善若水)로서의 수유칠덕(水有七德)을 유지하고 공유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물이 비가 되어 내리면 섣부른 마초이즘에 빠지지 말고 우산을 써야 한다. 너울거리는 비와 끝없는 욕망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젠더리스(Genderless)형 청바지(G・E・N・E)를 입고, 사계절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청바지 우산깃을 곧추 세워야 한다.

* 우산과 우산깃, Google
* 우산과 우산깃, Google

첫째,나선형 성장(Growth)의 이음 놀이

아직은 초록으로 시작되는 성장의 욕망은 일방향을 향한 나만의 놀이판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유전자인 DNA는 나선형 모양이다. 우리는 진화론적으로 나선형 성장을 추구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너의 성장이 서로를 위한 지지대가 되며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나선형 성장을 통해 단순 순환형이나 나홀로 직선형의 성장을 멈추고, 우리의 날숨과 들숨이 함께 하는 캐내기형 조각을 만들어 가면, 완성을 통한 완성을 하나씩 둘씩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둘째,존중(Esteem)의 넓힘 미학

파란 하늘과 땅,그리고 바다를 먹이 사슬로 삼아 살아 가는 자연생태계의 생명체들에 대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적 가치관에 대한 몰가치적 적용은 우리들 생명의 무한성을 전제로 한 오만일 수 있다. 세대와 세대간 문화와 가치 전승의 주된 지향점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의 세대간 전승의 길이와 그 폭을 넓혀 가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장맛비가 그친 그 어느 날은 지루한 장마가 끝난 날이 아닌, 또 다른 생명체의 진화를 위한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셋째,연결(Networking)의 모음 확대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의 팬데믹(Pandemic)화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분리를 통한 연결망의 단절을 가져 오고 있다. 국가와 지역 또는 민족에 대한 그 원형은 당연히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호간 연결의 확대를 통한 매듭 매듭의 결절들을 확대해 나가며 변화와 방향성을 지향하는 진화론적 모음 확대가 필요한 때이다. 국가와 지역 또는 민족단위의 나홀로 가치사슬화는 소유 욕망에 대한 빨갛기만한 불균형화와 가치 감소를 향한 블랙홀의 구심력만 강화시킨다. 움직이는 하나의 힘은 또 다른 힘과 적당한 균형을 이루며 부딪쳐야, 원심력이 강한 소용돌이의 장(場)이 되면서 균형을 취할 수 있다. 두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면 이어서 흐르고 또 변하며 지속적가능성장을 위한 진화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네째,감정이입(Empathy)의 돌림 공유

시간의 속도와 공간의 확대는 역의 상관성을 갖는다. 우리들 회귀의 욕망도 이와 같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어제의 시간으로서, 축소되어 가는 공간에 자꾸만 우리를 가두어 가며 또 다른 순백의 오늘을 맞는다.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최적의 색깔을 찾고 칠해 나가는 과정은, 맛・빛깔・향기가 없는 물을 같이 나누며 우리 마음의 샘물을 새롭게 솟아나게 하는 것과 같다. 마음과 마음의 교류와 깊은 교감을 통해 우리는 회귀의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욕망은 그 원형을 이루는 삼원색인 초록・파랑・빨강에서 나온다. 우리의 본성에서 벗어난 분별없는 욕망의 표출로 Me Too-You Next의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아야 한다. 이 계절에 흙비가 내리고 저 계절에 분홍색 눈이 내리지 않아야 한다. 욕망이 아닌, 본성의 빛을 내는 보색효과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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