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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문학: 문학과 주목경제
[서포터즈 칼럼]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문학: 문학과 주목경제
  • 장영주(르디플러)
  • 승인 2020.08.10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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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러 1기=장영주] 필자가 김봉곤 작가를 알게 된 건 작년 11월쯤이다. 여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읽었다. 각종 문학상과 매체가 열심히 띄워준 작가라서 큰 기대를 품고 첫 장을 넘겼다. 하지만 나는 결국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다. 본인이 직접 겪은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뚜렷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상한 취향을 뽐내려는 듯 인디 아티스트와 노래, 브랜드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글의 흐름이 끊겼다. 무엇보다도 글보다 작가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작가의 사생활을 읽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고 일년 뒤 여름, 김봉곤 작가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0일, 한 여성이 김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서 주인공 ‘봉곤’과 성적인 대화를 하는 ‘C누나’가 본인이라고 밝히며, 실제로 자신과 나눈 이야기를 작가가 무단 인용했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보낸 성적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작품에 쓰인 것이다. 논란의 불씨는 여기서 꺼지지 않았다. 또 다른 남성은 자신이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의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치 않은 사생활 노출로 아웃팅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출판사 문학동네와 창비는 문제 작품이 수록된 책 <여름, 스피드>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절과 기분>을 회수하고 판매를 중단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내가 <여름, 스피드>를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이 불상사를 예견한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를 느낄 정도로 여과 없이 털어놓은 작가의 이야기는 사실 타인을 허락 없이 끌어들임으로써 완성되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문학계에서는 작가들이 자전적인 글을 쓰다가 타인의 사생활까지 노출시키는 사고가 빈번하다. 특히 오토픽션Autofiction(자서전을 뜻하는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Fiction의 합성어.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대어 집필한 소설 양식)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은 지속해서 불거져왔다.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소설 <나의 투쟁>에서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및 가족 구성원의 사생활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가 가족들에게 소송을 당하고 끝내 절연 당하기까지 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유미리 작가도 1999년에 출간한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서 지인을 등장시켰다가 법적 분쟁에 휩싸인 바 있다. 결국 유 작가는 소설 출판을 금지 당하고, 해당 지인에게 1300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또한, 2007년에는 공지영 작가가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하려다가 공 작가의 전 남편이 본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원에 연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왜 작가들은 자전적 글쓰기에 집착하는 걸까? 왜 자전적인 글에 타인을 끌어들이는 걸까? 왜 자전적인 글을 씀으로써 사생활 침해라는 실수를 저지르는 걸까? 본인이 직접 보고들은 이야기는 훨씬 풍성하고, 진솔하며, 쉽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쓸 때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각색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다. 하지만 나는 자전적 글쓰기와 사생활 침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좀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나는 위와 같은 문제가 작가 개개인의 선택과 능력이 아닌, 문학과 자본주의의 불건전한 결합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굴러가는 안구를 잡아라! 주목경제의 탄생​

고고미술사학자 조너선 크레리는 저서 <24/7 잠의 종말>에서 주목경제(또는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용어를 언급한다. 그는 “안구의 수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하는 기업이 미래의 지배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는 어느 경영학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언제나 초조하게 부유하고 방황하는 시선들을 낚아채는 능력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액션영화의 화려한 CG, 감각적인 에세이집 표지, 자극적인 뉴스기사 제목, 선 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끄는 유튜브 방송 등등 우리는 이미 주목경제의 중심에 서있다. 주의집중을 받기 위해서는 ‘충격’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즉, 주목경제에서는 모든 말과 이미지가 ‘충격’을 선사하기 위해 전력한다. 사회학자이자 문화 평론가 서동진은 ‘충격’이야말로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단일한 규범이라고 말한다. 생산되고 소비되는 모든 감각적 대상의 상품적 교화가치는 ‘충격가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사회학자 뱅상 카우프만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년 1월호) 칼럼 <작가는 자아(自我)를 지불한다>에서 관심이 통화가 되는 거래 시스템이 문학에서도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자아를 지불한다. 여기서 작가는 앞서 말한 ‘충격’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중 한 방법이 작가 자신이나 가족, 친구나 지인의 고통스러운 내면, 즉 학대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을 쓰는 것이다. 성적인 대화를 여과 없이 드러낸 김봉곤 작가와 가정폭력을 다룬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작가, 그리고 뒤의 두 작가가 이 방법을 택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은밀한 사생활이 버무려진 글은 대중의 시선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관심도 끌 수 있다. 특히 문학상을 수상할 경우, 이를 홍보하여 독자들의 주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자본이 또 다른 자본을 창출하듯, 관심도 또 다른 관심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어서 뱅상 카우프만은 작가가 자아를 지불하는 또 다른 방식을 소개한다. 바로 연예인처럼 한껏 꾸미고 매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스스로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방송에 부지런히 출연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SNS에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해야 한다. 출판사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도 이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책은 나빠서가 아니라 ‘발견’이 안되어서 안 팔립니다. 요즘은 ‘미디어셀러’라고 하죠. 미디어가 만든 베스트셀러라는 뜻입니다. 미디어는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SNS, 팟캐스트까지 포함해요.” 즉, 주목경제에서는 뛰어난 작품성보다 관심을 유도하는 플랫폼의 유무를 더욱 우선시한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선사하고 온갖 미디어를 활용함으로써 대중과 출판사,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갈망하는 것이 현재 문학계의 현실이다. 이렇게 주목경제에 포섭되어버린 문학의 실상을 뱅상 카우프만은 흥행성에 사활을 거는 쇼 비즈니스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지불함으로써 주목경제에서 돋보이고자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자신의 고유한 글쓰기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소피 디브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7년 4월호) 칼럼 <”문체가 사람 자체”라고?>에서 작가는 판별되는 동시에 구분되기 위해서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한다고 말했다. 문체가 뚜렷해지면 모든 게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선, 독자들은 몇 줄만 읽어보고도 작가를 알아챌 수 있다. 이는 책 구매를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그리고 출판사는 문체의 독특함을 내세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미리 제시함으로써 평론가들을 편리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유일하다는 자기도취적 확신감을 작가에게 안겨준다.

김봉곤 작가가 자전적 글쓰기와 사생활 침해의 경계에 있는 오토픽션을 내세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쓰는 것과 사는 것이 순환”하는 글을 추구한 김 작가는 자신이 겪은 경험과 감정을 여과 없이 털어놓고 브랜드와 지명, 인명에 실제 이름을 사용하는 글쓰기 방식을 고수했다. 특히 커밍아웃을 한 작가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글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삶 그대로를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쓰기 스타일은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독보적 감수성”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대중과 출판사,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김봉곤식 글쓰기”라는 표현의 나올 정도로 그의 문체는 눈에 띄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더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쏟아냈고, 그 과정에서 타인까지 이끌려 나와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여름, 스피드”가 아니라 “여름, 리턴(Return)”

지금까지 문학과 자본주의가 어떻게 결탁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주목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가들은 ‘충격’이 담긴 자극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쓰고, 미디어를 섭렵해서 끊임없이 관심의 장에 나오며, 고유한 스타일과 정체성을 개발해 출판시장에서 돋보이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앞서나가고자 한 작가들의 욕심이 타인의 사생활 노출과 같은 문제들을 일으킨 것이다.

문학계, 그리고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버린 주목경제의 폐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는 자본주의의 뿌리부터 파헤치는, 거대하고 혁명적인 시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다.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더 빠르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주목경제 사회에서 “스피드”를 조금 늦춰보는 건 어떨까. 잠시 쉬어가면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찬찬히 반추해보는 건 어떨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여름, 스피드”가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여름, 리턴”은 어떨까. 2020년의 여름을 그렇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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