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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인간은 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 영화 <사바하>와 함께
[김민정의 문화톡톡] 인간은 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 영화 <사바하>와 함께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3.0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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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포스터
영화 사바하 포스터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로 이어지는 성경에 적힌 인류의 역사를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만약 그 시작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우리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 그러니까 신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런 불온한 생각을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바로 장재현 감독이다. 영화 <사바하>(2019)는 한국을 무대로 장재현 감독이 새로 쓴 ‘한 편의 경전’이다.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2015)은 그가 품은 종교적 세계관에 입문하는 일종의 트레일러 역할을 담당한다. 누적 관객 수 540만 명을 기록한 이 영화는 퇴마의식을 통해 십대 소녀의 몸에 깃든 악령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가톨릭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그 악령은 “거짓말의 아버지, 최초의 살인자”로 아주 악명이 높아 그의 출현에 대해 극중 사제들은 “우리나라에서 그럴 경우는 희박한데”라며 놀라워한다.

이는 <사바하>(2019) 속 동방교 김제석의 등장으로 연결된다. 김제석은 조계종 총무스님은 물론이고 티벳 대승에게도 “진짜”라고 인정받은 “신이 된 (한국)사람”이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 전쟁에서 늘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에 세계적인 신과 악령을 소환해냄으로써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을 신성한 영적 전쟁의 무대로 승격시킨다.

 

무엇이 신인가

 

그렇다면 장재현 감독이 생각하는 신은 어떤 모습일까. 두 편의 영화에서 ‘존재’를 묻는 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검은 사제들> 속 모든 퇴마의식은 악령이 자신의 이름을 자백하는 순간을 위해 복무하며 이에 사제는 끈질기게 “네가 불리는 이름이 무엇이냐?” “왜 여기에 온 것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

<사바하>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등장인물들끼리 부딪치는 장면마다 “누구십니까?” “당신 뭐야?”라며 존재론적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물음들은 신적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의미하진 않는다. <사바하>의 마지막 씬에서 박 목사는 “꺼지지 않는 등불” 김제석의 죽음을 목격하고 낮게 읊조린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이까?” 그는 “당신은 있나이까”라고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이다. 이에 장재현 감독은 신의 기원부터 찬찬히 되짚는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자 헤롯왕은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2살 이하 모든 아기들을 살육할 것을 지시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 잊힌 수많은 아기들의 희생은 “세상의 빛과 어둠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극중 동방교 사슴동산의 설법과 맞물려 선과 악의 얼굴을 가진 신의 존재를 폭로한다.

 

무엇이 인간인가

 

선과 악은 공존한다. 그 불편한 진실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세상은 나뉜다. <검은 사제들>이 진실을 모르는 자에서 아는 자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바하>는 진실을 아는 자의 고통과 책임에 초점을 맞추어 성스러운 종교 전쟁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부각시킨다. 장재현 감독이 새로 쓰는 경전에는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아닌 인간에 의해 재창조되는 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좋은 신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다. 성불의 극치에 도달하였으나 사욕에 사로잡혀 악의 신이 되어버린 김제석과 그를 죽음으로 막아선 그의 양아들 나한(광목). 부친을 살해한 소년수 나한을 양아들로 삼은 것은 김제석의 선택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필연이라면 필연이고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리라. 김제석 스스로 자신을 옭아맨 굴레다.

사이비를 추적하는 박 목사의 일련의 행동들 역시 가짜 신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쁜신을 죽이기 위함이다. 인간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신은 살아남지 못하고 역사에서 지워진다. 기독교의 아멘과 비슷한 뜻을 가진 제목 사바하는 신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주문이자 명령인 셈이다. 좋은 신이 되어라. 인간을 위해 좋은 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탄생을 위한 인간의 죽음은 희생이 아니라 막강한 권리행사다. 신은 좋은 신이 되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다. 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신을 지켜보고 감시하는 자, 그 이름이 바로 나한이며 박 목사며 인간이다.

 

무엇이 종교인가

 

흥미롭게도 좋은 신을 향한 인간의 집념도 결국엔 앞서 언급한 신의 탄생에 얽힌 어두운 이면과 닮아 있다. ‘나쁜신을 찾아 없애는 박 목사의 행동과 이 되어버린 김제석을 불 태워 죽인 나한의 행동은 좋은신의 탄생을 위한 맹목적인 갈망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살해행위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서로 맞물려 끝없이 순환하는 모양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신이고 무엇이 인간인지 혼재되어 있는 가치의 카오스. 그것이 바로 장재현 감독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어두운 밤거리를 질주하는 박 목사의 비싼 외제차가 도착한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장 선하면서 가장 악한 것,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성스러운 것, 가장 비난받으면서 가장 동경과 존경을 받는 것, 결국엔 그 모든 것의 경계를 초월한 그것의 존재는 무엇인가.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는 바로 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감히 바라건대,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은 대형교회의 부자 세습과 같은 종교의 기업화 및 상업화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마음까지 사고파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물질이란 가장 강력한 적대자와의 대결에서 신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인간은 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신의 문제로다.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2020) 드라마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논픽션<한현민의 블랙스웨그>(2018), 소설집 <홍보용 소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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