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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죽음'에 관한 고전문학과 그림책
[김시아의 문화톡톡] '죽음'에 관한 고전문학과 그림책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03.07 0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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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빈책방, 2022
Ⓒ빈빈책방, 2022

우리는 죽음과 나이듦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고전문학자 박수밀은 부모님이 질병과 함께 늙어가는 걸 보며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동양 고전의 글을 모았다.” 『나이듦과 죽음을 대하는 선인의 지혜. 청춘보다 푸르게, 삶보다 짙게』 책의 구성은 인용문과 작가의 단상, 한자 원문으로 78편의 짤막한 글이 산문시처럼 구성되어 순서에 상관없이 펼쳐 읽을 수 있다. 1부는 죽음에 관해, 2부는 나이듦에 관한 글인데, 나이듦에 관한 글을 읽은 후 죽음에 관한 글을 읽어도 좋다.

 

향기롭게 늙기 위하여

우리 사회는 늙음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나부터도 그렇다. 흰머리를 감추려고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하니 말이다. 그동안 어떻게 늙는 것이 잘 늙는 것인가를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도 젊게 사는 것만이 옳은 것인 양 믿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새 누군가 십 년을 젊게 봐주면 괜히 기분 좋아지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흰머리가 썩 좋지 않은데 저자는 2부 제목에서 “나는 흰머리가 좋아라”라고 선언한다. 그럼, 책 표지를 흰색으로 하지 노을 진 바닷가로 했을까? 아마도, “저녁노을이 더 아름답다”라는 홍자성의 『채근담』 영향일 것이다.

“날이 저물면 오히려 노을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감귤은 향기를 풍긴다. 그러므로 말년 길 늘그막에 군자는 마땅히 정신을 백배 가다듬어야 한다.”

자고로 늙을수록 정신을 가다듬어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몸짱을 만든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도 정신을 백배 가다듬는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 와중에 박수밀의 책은 늙어가며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물욕을 조심하라”. “늙으면 가르치라”. “늙어서는 일하지 말자”. “늘그막에 할 일” 등, 옛 문헌에서 뽑은 조언과 문장은 구체적이다.

늙을수록 욕심을 줄여야 한다고 옛사람들은 말하는데 옛이야기의 미덕은 자취를 감추고 가난하고 심성 착한 흥부보다 놀부의 심보를 선호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몇 년 전, 영화 <부산행>(2016)을 보았을 때, 좀비로 가득 찬 기차가 바로 한국 사회의 메타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고 살인적인 경쟁을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는 지옥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기차와 같다. 해결 방법은 사회적 시스템이 사회복지와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지옥으로 가는 속도를 과감히 늦춰야 한다. 사회구조가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든 시스템이라면 개인이 자기 삶의 리듬에 맞게 사는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

 

죽음이 일상인 나라에서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1위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노동자 사망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안전 대책을 강화하지는 않고 법적 책임만을 피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슬픈 소식을 전해 들어야 한다. 왜, 우리나라는 제대로 늙어 갈 수 없고 자연사로 죽기 힘든 사회가 되었을까?

뉴스에서 들려오는 자살과 사회적 타살 소식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의 죽음은 느닷없고 슬프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열두 살에 엄마를 잃었다. 이후, 어린 마음에 죽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이 사라진 건 아이를 낳고 나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다가 어느새 나는 아이들보다 더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어 용감하게 프랑스에서 공부도 하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소식에 무뎌진 건 아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매번 슬픔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그 늪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

고전문학자 박수밀이 모은 인용문은 『장자』 『맹자』 『노자』 『논어』 『도연명』에서 읽은 문장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아내를 애도하며」, 심노숭의 「아내를 위한 제문」 등 아내와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 문인들의 글 등 다양하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에서 나오는 「아내를 애도하며」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추사는 제주도 귀양살이 2년째에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부음도 한 달 뒤에나 듣게 되고, 아내의 무덤에 갈 수도 없는 처지와 슬픔이 글이 되어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420년이 지나 이응태 묘에서 나온 이응태 아내가 쓴 애도 편지는 썩지 않고 세상 빛을 본다.

 

죽음에 관한 그림책과 평안한 삶을 향한 선택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사람이 병들고 죽는 건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기에 미리 생각을 해두어야 한다. 삶을 더욱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주제 가운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린 삶을 직시하게 된다. 미래를 향해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고정순, 2020
Ⓒ고정순, 2020

아직 젊지만 “지팡이와 돋보기를 벗삼아 산다”는 고정순 작가의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2020)는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우화 그림책이다. 죽기에 좋은 곳을 찾아 나선 산양이 결국 집에 와서 편안히 깊은 잠에 들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잠을 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와 그림체는 간결하지만, 그림책을 보고 난 여운은 길고 강하다. 하얀 바탕에 여백이 많으며 졸박미(拙樸美)가 잘 살아있는 그림책이다.

늙을수록 욕심을 줄여야 세상이 평화롭다. 죽은 후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니 그것을 아는 사람은 선한 결정을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일이 며칠 후로 다가왔다.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혐오와 전쟁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후보를 뽑는다면 불안과 후회만 남을 것이다. 늙은 산양처럼 평안히 집에서 잠을 자다가 죽을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건 투표권을 가진 자들의 몫이다. 모르고 죄는 짓지 말자. 때론 모르고 아무렇게 찍는 죄의 대가는 잔인하다. 죄 없는 사람들을 전쟁터와 자살로 몰지 말자.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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