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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짧지만 깊은 울림, 단막극을 소개합니다 – 휴먼드라마 2편
[구선경의 문화톡톡] 짧지만 깊은 울림, 단막극을 소개합니다 – 휴먼드라마 2편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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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무엇보다 재밌어야 한다. 재미있지 않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음식은 맛이 없어도 영양분이 있을 수 있고 집이 설계가 별로여도 비라도 가리지만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불행히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나 혼자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니고 혼자 찍어 소장하는 영상도 아니고 처음부터 시청자를 상정하고 쓰고 만드는 작품이니 재미는 드라마의 첫 번째 덕목이다. (그걸 부정한다면 다른 장르를 써야 한다)

그래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우리에게 제대로 재미를 주면 우리는 충분히 만족한다. 게다가 재밌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나에게 인생이 뭐냐고 물어줄 때, 네 인생도 힘드냐고 나도 그렇다고 말해줄 때, 인생이 뭔 거 같냐고 같이 머리 맞대줄 때, 심지어 위로를 건네줄 때, 우리는 그 드라마에 반한다. 길지 않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로 한 자락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볼만하다. 여기 그런 작품 두 편을 소개한다.

 

'그렇게 살다' 이미지
 드라마 스페셜 '그렇게 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답지 않은 방법을 선택해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그렇게 살다>

전직 강력계 형사인 성억(정승환 분)은 퇴직금을 아들의 사업 자금으로 내어준 후 지금은 치매 환자인 아내를 돌보며 임대아파트에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운 현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노년의 삶을 버티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절실하고 마침 지인의 소개로 경비원 자리를 구하게 된다. 남들 보기엔 하찮아 보이지만 4대 보험에 대출까지 가능해지는, 노년에게는 더할 수 없는 꿀 직장이다.

하지만 막상 일터에 가보니 전임자 승모(김기천 분)는 아직 비켜날 생각이 없고 자기도 이 자리가 소중해 끝까지 버텨야 한다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다. 모든 게 구차해 비켜서려던 순간, 승모는 지병인 천식 발작으로 쓰러지고 성억은 그에게 떨어진 흡입기를 갖다주려다 멈칫한다. 어차피 폐암 말기로 길어야 6개월, 내가 죽으면 보험금으로 가족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을 방금 들은 후다. 내가 지금 내밀었던 손을 거두는 건 나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승모가 죽은 후 강남 빌딩의 경비 자리는 성억의 차지가 된다. 이제 정식 근로자가 됐으니 대출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되고 아내의 병원비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제 그냥저냥 어찌어찌 살 수 있겠구나 한숨 돌리는 순간, 예전에 자신이 잡아넣었던 전과 9범 훈구(주석태 분)가 나타난다. 그리고 승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다 안다며 성억만 아니면 그 자리가 자기 것이 됐을 거라고 자기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성억은 다시 한번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흠결 없이 정년퇴직한 경찰이라는 자부심을 지킬 것인지. 남은 생을 최소한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모색할 것인지.

 

드라마의 첫 장면은 남자 노인 혼자 밥을 먹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작은 규모의 낡은 임대아파트 주방에서 마른반찬 몇 개 뚜껑 열어놓고 우물우물 밥을 먹는 남자 노인의 굽은 등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분명 굉장히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운 시작은 아니다. (대본이 아닌 영상에서는 그런 조바심 때문인지 뒤에 나올 사건 영상으로 드라마를 시작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이 시작이, 다른 조미료 없이도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여줄 테니 한 번 보라는 선언처럼도 보여서 일단 보게 된다.

전화벨이 울려도 자기 것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자잘한 잔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주변의 아버지 같고 이웃 같은 노인 성억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가 휘말린 사건에 휘말려있고 정신 차려 보면 그의 선택의 순간에 우리도 함께 놓여있다. 그리고 그가 경찰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아니 인간으로서도 하면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순간에 우린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차마 그를 판단할 염치가 없다.

노인 빈곤이, 부족한 사회 복지가, 불안전한 사회 안전망이, 그들의 고독이, 우리가 뭘 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뭘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우리 모두 때문이기도 할 거라는 불편한 생각에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는다. 성억의 문제는 내 부모의 문제이고 곧 내 문제일 수도 있기에 가벼울 수가 없다.

가끔 학생들이 주인공이 어디까지(?) 나빠야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한다. 주인공이 극한 상황에 몰려 나쁜 짓을 하고 이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게 하려고 했지만, 막상 쓰다 보면 주인공이 이래도 돼?” 하는 생각이 들고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미워하게 될까 봐 불안해진다. 캐릭터에게 깊이 감정이입 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게 가지고 놀아야 하는 게 작가의 임무인데 이게 아직 능숙하게 안 될 때 이런 우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주인공이 어떤 나쁜 짓을 어디까지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까지 갔는지를 잘 설득하는 것만이 관건이라고. 그렇게 한다면 시청자는 주인공의 편에 서게 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돋보였던 점은 이 비극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퇴직금을 사업으로 날린 아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 이야기는 그저 흔한 가족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뻔하게 아들을 활용해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고 사건극으로 이야기를 키워감으로써 던지는 메시지에 깊이감이 생겼다. 안이한 화해나 쉬운 위로가 아니어서 좋았던, KBS 극본공모의 최우수상을 받을만한 이유가 충분했던 수작이다.

 

'덕구 이즈 백' 공식 포스터
'덕구 이즈 백' 공식 포스터

 

가족극이 아니라 가족 와해극입니다 <덕구 이즈 백>

2020년 오펜 당선작으로 20213<드라마 스테이지>로 방영된 작품이다. 한 집안의 아들이 실종됐고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가족들은 아마도 슬픔과 절망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냈을 테고, 시간이 흘러 아들 이름으로 들었던 보험금을 타게 됐고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려 삐까뻔쩍한 장어집을 확장 개업하는데 이르렀다. 번듯한 가게 하나에 부모부터 누나 부부, 여동생, 혼자 되어 아이를 키워온 며느리까지 온 식구의 밥줄이 달렸고 식구들은 이제야 사람답게 사나보다 하는 중이다.

바로 그때 아들이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반가움은 잠시, 가족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기를, 죽은 듯 살기를 요구한다. 만약 아들이 돌아온 게 밝혀지면 보험금을 토해내야 할 테고 그것은 온 가족의 안정된 삶의 기반인 이 장어집의 반환을 의미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들 덕구는 죽은 사람처럼 숨어 있기로 한다. 처음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 아내가 내 절친과 바람이 난 걸 확인했음에도 참으라니, 덕구는 확 돌아버린다. 이성을 잃고 튀어 나가려 하는 덕구를 식구들은 붙잡다 못해 가둬버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덕구가 탈출을 감행하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흐른다.

 

줄거리에서 짐작되듯 이 작품은 앞의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작가는 후기에 이 이야기는 가족극이 아니라 가족 와해극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나와 서로 미워하고 지겨워하고 그래서 죽을 만큼 싸우다가 사실은 무슨 오해가 있었다거나 그래도 뭔가 이해할 구석이 있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다시 서로 보듬어 안게 되는 게 가족극이다.

사실 가족극은 어쩌면 판타지다. 현실은 어디 그러한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고 인간의 이기심이란 매우 견고해서 가족 간의 갈등은 절대 풀기 쉽지 않다. 그냥 맨날 그렇게 싸우다 참다 견딜 뿐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다른 이유들-누군가 경제력으로 보상을 했거나 노동력으로 희생을 했거나 그도 아니면 갈라서는 것보다는 버티는 게 집값이 덜 들거나 등등의 상당히 아름답지 않은 이유로 그냥 어정쩡하니 봉합하고 살기 마련이다. 더 끔찍한 건 가족 간에 한 번 굳어진 구도는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아서 한 번 콩쥐 포지션이 된 구성원은 영원히 그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주 대단히 혁명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야

그래서 드라마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드라마 안에서는 그래도 언젠가 오해를 풀고 용서를 빌고 화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적당히 조절해준다. 많은 대중적인 드라마들은 그렇게 선을 정한다. 현실이 그랬으면 하는 희망이기도 하니까.

 

간혹 그렇지 않은 극들이 있다. 인간성의 끝을 보여주거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극들. 이 작품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아들 혹은 형제의 목숨과 우리 식구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존 10억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당연히 사람 목숨이 중요하죠라고 쉽게 답할 수 있다면 행복하거나 순진한 사람이리라. 먹고 사는 일의 무서움, 10억이 아니라 단돈 1억도 만들기 쉽지 않은 현실, 대단한 것도 없는 지금의 이 계층 기반마저 무너졌을 때 다시는 이만큼도 살 수 없으리라는 공포 등등을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극중의 아들놈은 집에서 천덕꾸러기였고 집에 아무 도움도 못 되던 인물이었노라고, 이미 5년이란 시간이 지나 이제 모든 걸 덮고 살려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고, 작가는 자꾸 핑계곗거리도 제공해주지만 그렇든 아니든 질문은 서늘하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여운으로 남기는 또 다른 매력의 작품이다.

 

재밌는 스토리를 타고 가다 보면 깊이 있는 질문과 만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잘 만든 드라마의 중요한 덕목이다. 두 편이 작품에서 그 재미를 느껴보시길 권한다.

 

 

 

글 • 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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