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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우리가 연애 예능을 보는 이유
[구선경의 문화톡톡] 우리가 연애 예능을 보는 이유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06.20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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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시작된 연애 예능 열풍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1년에는 <나는 솔로> <환승연애> <러브캐쳐> <체인지 데이즈> <솔로지옥> 등이 제작,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고 이 중 거의 대부분이 다음 시즌을 방영했거나 제작을 앞두고 있다. 다양한 컨셉과 설정의 연애 예능이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새다.

연예 예능의 역사는 길다. 화면에 서로의 마음을 화살표로 표시해 화살표가 오가는 걸로 커플의 성사를 보여주었던 MBC TV <사랑의 스튜디오>가 TV에서 방영하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사랑의 작대기’가 어떻게 어긋나는지 또 일치하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바로 그 점이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중요한 재미 요소다.

2011년부터 방영된 SBS TV의 <짝>은 커플 매칭 프로그램 장르에서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애정촌이라는 공간 설정, 이름 없이 1호, 2호로 불리는 컨셉,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서로 많은 대화와 데이트를 하고 최종 선택을 하는 것까지 이후 많은 프로그램의 모델이 되었고 성우의 내레이션 방식까지 여러 곳에서 패러디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하트시그널>이 다시 한번 일반인 연예 예능의 인기를 부활시켰다. 고급스러운 세트와 배경, 필터를 입힌 듯 분위기 있는 화면과 음악으로 시청자의 연애 로망을 충족시키면서 시즌 3까지 만들어졌다.

이후에는 돌싱들의 연애가 등장했고 이어 이별 위기에 놓인 커플들 간의 파트너 체인지 컨셉도 출현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래도 되나 싶은 설정이었지만 어쨌든 시청자들은 나름의 이해로 받아들였고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순항 중이다. 최근에는, 초반에 남녀 출연자가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에서 만나는 예고편으로 주목받았던 <솔로지옥>이 지나간 후 이보다 더 매운맛을 예고하며 <에덴>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을 시작했다.

 

SBS TV '짝'
SBS TV '짝'

나와는 상관도 없는 남들의 연애를 훔쳐보는 이 프로그램들이 왜 이리 인기가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로맨스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는 인간에게 영원한 주제다. 사람 사이의 끌림, 설렘, 고백과 승낙 또는 거절, 아픔, 열망과 욕망, 좌절과 집착... 감정의 상호 교류가 없을지라도 혼자만의 바라봄과 애달픔, 그로 인한 괴로움과 자괴감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둘러싼 이 수많은 감정 중에 단 하나라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본능을 억누르고 사는 사제가 아닌 이상, 아니 때로는 사제조차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기본적으로 누구와 누가 사귀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스토리다.

그렇다면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연예 예능을 보는 이유는 뭘까? 온갖 로맨틱한 장면과 장치와 설정으로 잘 세팅된 완벽한 이야기인 로맨스 드라마 대신 연예 예능을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픽션에서는 볼 수 없는 의외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로맨스 드라마는 사실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 메인 주인공인 두 남주 여주가 결말에 가서 잘 될 거라는 걸, 시청자는 모두 알고 있다. 만약 둘이 잘 안되는 얘기라면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성장담일 가능성이 높다. ‘둘이 이렇게 잘됐어요’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들은 이러이러한 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경험치가 높아졌어요’ 또는 ‘사랑이란 이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는 둘이 잘 된다는 전제하에 그럼 ‘어떻게 해서 잘 되나’를 보는 것이다. 저렇게 다른 두 사람이 저렇게 큰 장애물들을 넘어서서 어떻게 잘될지, 그 과정이 궁금한 거다. 그 과정 동안 둘에게 마음을 싣고 내가 겪어온 혹은 겪고 싶은 사랑의 감정들을 함께 경험하며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마지막이 해피엔딩일 거라는 암묵적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새드엔딩을 내버리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주인공과 연결해 버리면 시청자는 화가 난다. 왜? 내가 로맨스 드라마를 선택했을 때 가졌던 기대를 저버렸으니까.

그런데 연예 예능은 이 예상이 가능하지 않다. 저 둘이 그 순간 주인공이지만 꼭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둘이 잘 될 가능성이 그야말로 0에서 100퍼센트까지 예측 불허다. 누구와 누가 잘 되고 장애물은 무엇이 될 것이고 그걸 어떻게 넘을지 예상이 불가능해서 클리셰가 작동하지 않는다. 정말 생생하게 엔딩을 궁금해하며 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리얼 예능에서는 드라마와 같은 개연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 자체가 개연성이다.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나거나 누군가 돌발행동을 해도 편집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라면 작위적이라거나 개연성 없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이건 현실이니까. 그래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흥미를 주고 갑작스러운 행동이 재미를 준다. 우리의 인생과 똑같은 모습이므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 생생해진다.

 

'나는 솔로' 공식 포스터
'나는 솔로' 공식 포스터

더불어 연애 예능에는 이 시대의 사랑과 결혼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돌싱글즈>나 <나는 솔로>의 경우, 출연자들이 연애뿐 아니라 결혼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높은 경우가 대다수다. “그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했습니다”라는 엔딩이 아니라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엔딩 이후의 삶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자가 혹은 여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상대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혹시 내 집 마련을 했는지 그 집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을 궁금해한다. TV를 보는 우리도 가늠해 본다. 둘의 스펙이 어울리는지 내가 저 여자라면 저 남자라면 둘 중 누구를 택할지 어느 쪽이 더 좋은 선택, 후회 없는 선택이 될지 고민하게 된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소개에 탄성을 보내고 수도권에 아파트를 마련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물론 스펙만 보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성격을 파악하고 가치관을 맞춰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나도 나의 긍정적인 면과 좋은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나는 솔로>의 한 남자 참가자가 “결혼해서 아이는 몇 명이나 낳고 싶냐”는 질문에 “그건 여자분의 입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나 혼자 대답할 수 없다, 함께 의논해서 결정할 문제다”라고 답해서 여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일이 있다. 그 대답 전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출연자였는데 대답 이후 선택에서 서너 명 이상의 여자로부터 선택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대답 한마디가 그 사람의 ‘매너’와 ‘공감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이후 남자 출연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선 모범 답안을 얻은 셈이 되었다. 적어도 이런 자세를 무시하고 “저는 세 명 이상 낳아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입니다”와 같은 대답을 던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세를 배웠고 그러면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되지 않았을까. 선택받기 위해 이성의 마음에 들 대답을 고민하는 동안 결혼하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학습했을 것이다.

그 과정을 나도 함께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청자로서 지금의 세대에게 결혼에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보면서 시대와 사회를 읽는다. 경제력과 집이 중요한 만큼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된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감정으로서의 사랑과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한 결혼을 위한 계산은 무엇도 놓칠 수 없는 항목이다. 이 둘의 균형 잡기는 어쩌면 인생 내내 모든 문제에도 적용될지로 모르겠다.

 

생생한 로맨스 스토리이면서 사랑과 결혼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연예 예능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꽤 오래도록 흥미로운 볼거리일 듯하다.

 

 

·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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