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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모두를 끌어안는,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소망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
[문선영의 문화톡톡] 모두를 끌어안는,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소망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2.07.11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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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우리들 사이

억척스럽게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온 은희(이정은 분), 바닷가 근처, 거주 공간으로 개조한 버스에서 생활하는 청년 선장 정준(김우빈 분)은 어스름한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한다. 두 사람이 찾은 곳은 제주도 새벽 경매 시장, 팔딱거리는 생선, 조용한 새벽을 깨우는 경매꾼의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배를 타고 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하루를 시작한 해녀들의 물질 장면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오프닝은 생기 넘치는 삶의 현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펼쳐진다. 얼음 배달하는 호식이(최영준 분), 아침 순대국을 파는 인권(박지환 분), 새벽 경매에서 떼 온 생선을 파는 은희 수산 사람들, 일찍부터 시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나물 장사를 시작한 옥동(김혜자 분), 춘희(고두심 분) 할머니 등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사건을 집약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제주도 바다와 시장을 주요 공간으로 삼았다. 육지가 아닌 섬, 대형 마켓이 아닌 시장이 이야기의 공간이 되는 이 드라마의 전제는 애초부터 대도시가 아닌 지역,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있다. 제주도 푸릉 마을이 중심 배경인 <우리들의 블루스>는 총 14명의 주요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리며, 각 인물의 얽힌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과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풋풋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 사이(한수와 은희), 17살 고등학생 커플(영주와 현), 유년기 아픈 상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연인(동석과 선아), 한때 죽고 못 사는 선후배였지만 앙숙처럼 물고 뜯는 관계(호식과 인권), 늘 의리를 외치지만 사실은 불편함을 숨겨왔던 가까운 사이(미란과 은희),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비밀을 숨긴 채, 거리를 두는 연인(영옥과 정준), 가족 중 하나 남은 귀한 막내아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어린 손녀와 짧은 동거를 하게 된 할머니(춘희와 은기), 평생을 과거 기억에 얽매여 함께 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아들(옥동과 동석) 등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에피소드는 두 사람의 이름을 묶어 부제로 삼고 있다. 에피소드의 제목에서 이야기의 주요 인물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밝혀지는 방식이며 가족, 친구, 연인 등의 관계로 설정된 두 인물의 갈등을 중심으로 매회 이야기가 구성된다. 각 에피소드의 관계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또는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멀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가까운 상대에게 솔직한 마음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 ‘미란과 은희’ 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미란은 가난한 은희에게 힘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이다. 하지만 은희는 사람들에게 늘 주목받는 미란과 비교되며 ‘미란이 하녀’, ‘미란이 꼬붕’으로 불렸던 상처가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서울 중심가에서 유명 마사지숍을 운영하며,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미란이 제주도에 내려오는 날은 모두가 활기를 찾는 날”이다. “남자 동창생들은 첫사랑이 온 듯 설레고 춘희 할머니는 죽은 첫째 아들이 좋아했다는 이유로 며느리처럼 안쓰러워하고, 옥동할머니는 죽은 딸 동이 생각이 나서인지 친정 찾는 딸처럼” 생각한다. 자신을 가장 좋아하고 살뜰히 챙기는 의리 좋은 미란이기도 하지만, 은희의 감정 한편에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불편함이 있다. 제주도에 온 미란에게 ‘의리’를 부르짖으며 최선을 다하는 은희의 일기장에는 “의리 없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미란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잘 하는 것”이라는 은희의 솔직한 심정이 기록되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누구에게도 편할 수 없는, 정붙일 곳 없는 미란의 외로운 마음을 읽지 못했던 은희와 가장 만만하고 편한 친구이기에 상대방이 받은 상처를 생각하지 못했던 미란의 관계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솔직하지 못했다. 은희와 미란이 여성 동기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풀어갔다면, 호식과 인권은 남성 동기 간, 분노와 애증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끈끈한 선후배 사이였던 인권과 호식은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 대는 앙숙이다.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호식에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인권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두 사람은 늘 물어뜯을 것처럼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관계를 유지하지만, 호식의 딸 영주와 인권의 아들 현이 17세의 어린 부부가 되는 과정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말하지 않았던 진심을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은희와 미란이 서로의 속 깊은 감정을 털어놓고 진솔한 관계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인권과 호식이 애증을 넘어 자식을 기르는 아버지라는 동일한 입장에 공감하며 화해하는 것도 두 사람만의 문제나 해결로만 그리지 않는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주요 배경 공간인 제주도라는 섬, 푸릉 마을이라는 작은 지역이 가지는 특성은 개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제주도 푸릉 마을은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기까지 과정을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암암리에 공개되는, 비밀이 없는 작은 공동체이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언니, 동생의 일이 나의 가족의 일이 되는, 이 마을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 없는 또는 없어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블루스>의 가족, 친구, 연인의 에피소드에서 다룬 주요 인물의 사건과 갈등은 두 사람만의 이야기일 수 없다. 고등학생 영주(노윤서 분)가 임신을 했을 때도, 출산에 대한 선택과 결정의 과정은 고등학생 커플 영주와 현(배현성 분)의 문제만이 아니다. 영주의 임신 사실은 아버지 호식보다 아버지 친구 은희가 먼저 알게 된다. 영주와 현이 대학 입시를 미루고 아이를 선택하는 과정 역시 직접적 보호자인 아버지 호식, 인권 이외에 온 마을 사람들이 공유한다.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제주도로 전근 신청해 내려온 한수(차승원 분)가 불순한 의도로 은희에게 접근한 것을 알아차린 것도 동창생 호식, 인권을 비롯한 은희 수산 동료들이 먼저였다. 그들은 한수가 프로 골프 선수를 꿈꾸며 유학 중인 딸 뒷바라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첫사랑의 추억으로 자신에게 설레는 은희를 이용하려고 한 사실을 먼저 알아낸다. 은희가 한수의 진심을 알아차리기 전에 발 빠른 마을 친구들에 의해 한수의 정보들이 수집되고 공유되면서 은희에게 전달된다. 학업과 출산에 대한 결정이나 누군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사적인 감정마저 숨길 수 없이 공유되는 곳이 <우리들의 블루스>의 푸릉 마을이다. 이 점은 사실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 될 수 있다. 가깝다고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서 함께 나눠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수에게 알면서도 속고 싶었을 수도 있을, 은희의 설렘은 타인이 알게 된 순간 수치스러운 기억이 될 수 있다. 미성년자이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한 아이의 부모가 될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타인의 과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도 쉽게 개입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재현한다. 유년 시절 엄마 옥동에게 받은 상처로 오랫동안 비뚤어진 삶을 살아온 동석(이병헌 분)에게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옥동과의 화해를 요청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는 옥동, 동석 모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포함하고 있어도 선을 넘는 행동이다.(물론 이후 서사에서 이들의 충고는 동석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개인이나 두 사람의 갈등은 그들만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게 되는 주제가 된다.

 

아픔에 대한 공유와 화해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재현하고 있는 제주도 푸릉 마을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얽매인 관계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알고 있기에 위안이 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푸릉 마을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따듯한 곳으로 형상화된다. 우울증에 걸려 이혼한 선아(신민아 분), 장애인 쌍둥이 언니를 피해 평생을 도망 다닌 죄책감 많은 영옥(한지민 분), 영옥의 언니 다운증후군 영희(정은혜 분), 청각 장애인 별이(이소별 분), 평생 첩살이 한다고 손가락질 받은 옥동 할머니,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이 억센 자신의 팔자 때문이라고 여기는 춘희 할머니, 17살의 고등학생 신분으로 아이를 갖고 부부가 된 영주와 현이, 젊은 시절 험난한 시기를 보내고 아내마저 도망간 두 중년 남성 호식, 인권 등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쉽지 않는 삶을 견뎌낸, 견디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의 존재를 숨긴 채, 제주도에 정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옥은 드라마 초반부까지는 푸릉 마을 해녀들이 배제하는 외지인이다. 개인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영옥은 긍정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낮에는 해녀로, 저녁에는 카페 사장으로 일하는 영옥에게 확인 불가능한 소문만 넘쳐난다. 매력적인 외모 덕분에 따라다니는 그녀에 대한 소문은 주로 ‘남자’와 ‘거짓말’에 대한 것이다. “여러 명의 남자가 있다느니,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더라” 나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등의 사실과 관계없는 수치스러운 소문들이 무성해도 영옥이 사실여부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것은 장애인 언니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다. ‘사기꾼’, ‘헤픈 여자’라고 불리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언니 영희를 숨기고 싶은 영옥의 행동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그녀의 고된 시간들을 말해준다. 타인으로부터 자신과 언니 영희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영옥의 행동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우리들의 블루스>는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을 단편적인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여러 회에 걸쳐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주요 이야기로 다룬다. 장애인을 기존 드라마에서 소비했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운증후군, 청각장애인 배우가 주요 역할을 연기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도한다. 영옥이 헛소문에서 벗어나 솔직한 자신을 타인에게 보여줄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언니 영희로부터 시작된다. 유일한 가족이자 언니의 보호자인 영옥은 되도록 영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했고, 마지막 도피처가 제주도 푸릉 마을이다. 긴 시간 동생을 만나지 못한 영희가 제주도로 직접 영옥을 찾아오면서, 영옥의 비밀은 마을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또한 영옥은 꽁꽁 숨겨 두었던 자신의 상처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 드라마에서 영옥을 괴롭혔던 가족사, 언니에 대한 죄책감을 치유되는 과정은 푸릉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정준과의 사랑이 언니 영희의 존재로 인해 깨질까봐 두려워하는 영옥에게 정준은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영희와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내가 영희 누나보고 놀랬어. 근데 나는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서도 배운 데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다시는 그런 일 없어요.”(<우리들의 블루스>, 14화)

몰랐던 것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푸릉 마을 해녀들, 은희 수산 동료들은 영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영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 푸릉 마을에서 영희는 장애인이라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술 한 잔 나누며 외모나 연애 등 일상을 공유하는 새로운 친구가 된다. 존재 자체를 인정받은 영희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그림을 공개한다. 누군가 그리울 때마다 그렸던 영희의 그림에는 동생 영옥을 향한 진심이 담겨 있다. 영희의 그림은 가까운 가족조차 몰라주었던 그녀의 정체성을 밝히는 도구이며 영옥이 상처로부터 벗어나 언니 영희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오랜 시간 축적된 타인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해줄 수 없지만,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남편과 자식을 일찍 떠나보낸 사실을 자신의 억센 팔자 탓으로 돌리며 깊은 슬픔을 안고 살아온 춘희 할머니의 마지막 희망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아들 만수(김정환 분)이다. 막내아들은 그녀의 불행한 시간들을 잊을 수 있는 삶의 이유이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만수 소식은 춘희 할머니에게 생을 이어갈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들 치료와 생계유지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며느리 해선(민지아 분)을 위해 춘희 할머니는 손녀 은기(기소유 분)를 떠안는다. 도시에서 홀로 고생할 며느리와 손녀 은기를 위해 춘희 할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아들을 떠나보낼 선택을 한다. ‘팔자 사나운 년’이라며 울부짖는 춘희 할머니의 아픔은 쉽게 이해되거나 해결될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푸릉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행동은 춘희 할머니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진심을 말해준다. 아빠 만수가 은기에게 들려준 ‘백 개의 달이 뜨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은기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비바람 속에서도 밤바다에 배를 띄우고 불을 밝힌다. 춘희 할머니와 은기가 언덕위에서 마치 수많은 달이 뜬 것 같은 아름다운 밤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사실적 묘사가 중심인 이 드라마의 유일한 판타지적 장면이기도 하다. 밤바다에 불을 밝힌다고 해서 춘희의 아들 만수의 삶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춘희 할머니의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진심은 춘희 할머니의 아픔을 조금은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아픔에 다가가기 위한 움직임은 변화를 줄 수 있고,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소망,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메시지는 소망을 품고 끝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드라마 초반부부터 쉽게 풀리지 않을 갈등 관계로 설정된 옥동과 동석의 이야기이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였고, 자식 안 굶기는 일이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믿었던, 글자도 모르고 세상을 사는 방법도 몰랐던 옥동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바보처럼 지켜왔다. 옥동은 아들 동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자신의 사랑이 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생을 미워하며 옥동을 어머니로도 부르지도 않았던 동석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옥동이 원하는 일을 해준다. 의붓아버지 제사를 위해 목포 가는 길에 동행하며 동석은 어머니 옥동에게 자신에게 ‘왜 미안하다고 하지 않냐’고 따진다. 한 번도 미안한 적이 없었냐는 동석의 물음에 옥동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한다.

“미친년이 어떵 미안할 걸 알아. 너 어멍은 미친년이라. 미치지 않고서야 저는 바당 들어가깅 무서워 딸년을 물질을 시켜 쳐 죽이고 그래도 살거래 아무나 붙어먹고 그저 자식이 세끼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고 좋은 집에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멍충이추름 바보추름, 자식이 쳐 맞는걸 보고도 멀뚱멀뚱, 개가 물어뜯을 년, 너 죽으면 장례도 치루지 마라. 울지도 마라, 그냥 누나, 아방 있는 마당에 던져 불라.”(20화)

무책임한 옥동의 답변이 마음 아프게 들리는 것은, 옥동 할머니가 경험한 삶은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옥동은 평생 가난과 싸워야 했고,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가난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기본적 욕구만을 충족시켜야 하는 본능으로 학습되었다. 학교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옥동은 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아왔고, 자신의 이름과 아들 이름 포함하여 몇 개의 단어를 겨우 읽는 문맹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먹고 사느라 집과 시장 이외에 한라산 백록담도 가본 적 없는 어머니 옥동을 동석은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동석이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쉽게 삭히고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한 자신과 화해하는 장면이 대중들의 공감을 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모두의 삶은 고귀하고 행복해야 한다.” 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기획의도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메시지는 드라마 마지막 20화 에필로그에서 자막으로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1회부터 20회까지 사실적인 삶을 진솔하게 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와 일상의 재현은 꾸미지 않은 채 투박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전제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완벽한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소망을 담고 있기에 현실적이지 않다. 서로를 보듬고 수용하는 공동체, 각자의 삶을 이해하고 걱정하고 함께 나누는 삶의 방식은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이다. 누구나 바라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기에 소망일 수밖에 없는 이상적 사회는 다소 막연하고 단순한 결말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블루스>에 대중들이 몰입하며 치유받는 이유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삶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관계, 공동체에 대한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배제와 소외라는 선을 긋고 있는 영역의 공고함에서 절망하는 누군가를 향한 열린 공간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 존재 자체가 인정되는 곳이다.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여부를 떠나 차별 없는 공평한 공동체에 대한 소망은 생존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대중이 꿈꾸는 소망이다.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출처: '우리들의 블루스'(tvN 홈페이지)

고등학생 영주와 현이 부부가 되어, 낙태가 아닌 아이를 출산할 용기를 낸 것은 가족 이외의 다른 이들의 격려와 지지에 의한 것이었다. 다운증후군 영희를 편견 없이 따듯하게 대해주고, 청각장애인 별이가 당당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우울증 선아가 제주도에서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도 드라마의 공동체가 가진 수용의 힘에 의한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어 있기에 단순한 간섭이나 개입으로 무례해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말하는 관계 사이에는 개인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각 개인의 세세한 선택과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모두 인정할 수는 없다. 옥동 할머니의 삶이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어머니로써 아들에게 준 상처까지 미화할 수는 없다. 외지인 영옥에 대한 헛소문을 만들어내며 배제시켰던 해녀들의 강한 공동체 정신은 영옥의 사연을 안쓰럽게 여기는 장면들로 무마되었지만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군가와 삶을 지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말하는 그런 곳이지 않을까.

 

 

글·문선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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