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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그리움의 종착역> ― 독일/독일마을로 가는 길과 잃어버린/되찾은 고향
[서곡숙의 문화톡톡] <그리움의 종착역> ― 독일/독일마을로 가는 길과 잃어버린/되찾은 고향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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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움의 종착역>: 독일로 건너간 간호사 세 커플과 독일마을
 

다큐멘터리 <그리움의 종착역>(조성형, 2012)은 한국 여성과 독일 남성 세 커플의 한국 적응기에 관한 내용이다. 1970년대 한국 간호사가 독일로 건너가서 독일인 남편과 결혼하여 3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한국 남해 독일마을로 돌아와서 정착 생활을 한다. 세 커플, 즉 우자&루트비히 슈트라우스, 영숙&아르민 타이스, 우춘자&빌리 엥엘프리트는 각자 문화적 균형을 이루며 한국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이 영화는 현재의 한국생활, 과거의 독일생활, 대과거의 한국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2. 우자&루트비히 슈트라우스: 억압의 삶에서 탐구의 삶으로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우자 킴 슈트라우스는 억압의 삶에서 탐구의 삶으로 나아간다. 우자 킴 슈트라우스의 삶은 한국 남편의 보수성과 외도(대과거), 딸에 대한 죄책감(과거), 한국 문화 탐방(현재)을 보여준다.

 

우자&루트비히 슈트라우스 부부는 절, 한복, 낚시, 축사, 찜질방 등을 경험한다. 절에서 우자는 절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는 반면, 루트비히는 시주(헌금)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쓴다. 한국 사람의 방문에서 우자는 만남을 기대하는 반면, 루트비히는 시간 약속에 늦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찜질방에서 우자는 천국 같다고 행복해하는 반면, 루트비히는 뜨거운 열기에 고행이라고 생각한다. 도로에서 우자는 남성의 난폭한 운전에 깜짝 놀라고, 루트비히는 여성의 미숙한 운전에 짜증을 낸다. 우자와 루트비히는 계속해서 의견 충돌을 일으키지만 사실상 이러한 의견 충돌은 한국 문화와 독일 문화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자&루트비히 슈트라우스 커플은 끊임없이 한국 문화를 탐방하면서 독일인의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여정을 계속해 간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루트비히는 남해군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서 비판하고, 우자는 관광객의 사생활 침해로 힘들어한다. 루트비히는 ‘독일인이 세 명뿐이고 아내도 다시 한국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독일마을이라는 이름은 부적절하며, 남해군이 기반 시설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기를 당한 곳이며, 독일로 간 간호사와 광부에 대한 감사로 만든 마을이지만 현재 방갈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한편, 우자는 독일마을에 몰려온 관광객이 자신의 집을 무단침입하고 화단을 밟으며 사진을 찍는 행태에 “아주 나쁜 사람이다!”라며 분노하며 경찰에게 보호를 호소한다. 독일에 간 한국 간호사와 독일 남편 가족을 위한 독일마을은 아름다운 풍광과 독일식 주택으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면서 평론한 삶의 터전을 위협하게 된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항상 새로운 것에 감탄하는 활기찬 우자는 보수적인 가부장제, 남아선호사상, 여성에 대한 억압 등 과거 한국에서 겪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털어놓는다. 우자는 장남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이 원하는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자 냉대를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에게 딴 여자가 생기자, 젊은 간호사였던 우자는 독일로 탈출한다. 우자는 독일 간호사 계약 때문에 딸을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남편은 ‘다시는 딸을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딸을 데려가 새 가정을 이룬다.

 

한편, 우자는 전 남편의 아내가 자신의 딸을 구박한다는 시누이의 편지를 받고 수면제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딸을 되찾고자 결심한다. 우자는 루트비히에게 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귀지 않겠다고 말해 딸을 데려오자는 동의를 받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전남편 때문에 경찰과 동행해서 딸을 되찾아온다. 우자의 고백은 과거 여성을 억압하던 보수적인 한국사회와 상대적으로 평등한 독일사회를 대비시킨다.

 

다른 한편, 우자와 루트비히가 들려주는 독일 생활은 낭만적이다. 루트비히는 예쁜 우자를 보고 첫 눈에 반해서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우자는 3주 후에 만나자며 계속 데이트를 거절한다. 3주 후 우자는 루트비히의 자동차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무용수가 된 느낌으로 즐겁게 춤을 춘다. 이때 우자는 헤어질 때 키스를 하지 않고 악수를 청하는 점잖은 루트비히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움의 종착역>은 한국의 학대·이별과 독일의 데이트·낭만을 대비시키면서 대과거의 고통스러운 삶, 과거의 낭만적인 삶, 현재의 평온한 삶을 대비시킨다.

 

3. 영숙&아르민 타이스: 배신의 삶에서 적응의 삶으로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영숙 타이스는 배신의 삶에서 적응의 삶으로 나아간다. 영숙 타이스의 삶은 한국 남자친구의 결혼과 배신(대과거), 독일어 학습과 독일문화 적응(과거), 독일식 사고방식과 실용적 생활(현재)을 보여준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영숙&아르민 타이스 부부는 독일식 사고방식과 기술로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아르민은 실리콘으로 비가 새는 지붕을 직접 고치고, 독일에서 가져온 콘크리트 기계로 손수 집을 짓고, 취미로 배운 소시지 만들기로 판매를 한다. 영숙은 독일 노래를 부르고 아르민은 그 노래에 대해서 해설하고, 두 사람이 함께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등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실용적 노력을 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영숙&아르민 타이스 부부는 독일식 사고방식이라는 공통점과 기초지자체의 불이행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영숙의 말은 독일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과거를 짐작하게 만든다. 아르민은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 때문에 독일마을로 이주했지만, 집집마다 비상벨 설치와 응급센터 연결, 복지센터 설립 등의 약속을 불이행한 남해군에 대해 비판한다. 아르민은 기반시설에 대한 약속 불이행으로 자연 상태의 부지에서 시작하였으며, 자신들이 “산에 사는 염소 꼴”이고 노년의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고 남해군을 비판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의 후반부에서 항상 활기차고 당당하게 행동하던 영숙도 남자친구의 배신과 독일생활 적응으로 힘겨웠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영숙은 사랑하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독일 광부로 떠나자 그 남자친구를 따라서 독일로 건너가지만,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남자친구의 배신에 충격을 받는다. 영숙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느끼고, 최대한 빨리 독일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비로 독일어 수업을 듣는다. 이 영화는 당시 광부와 간호사를 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 한국 청년들, 남자친구에 대한 신의와 남자친구의 배신, 독일 사회 적응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보여준다.

 

 

4. 우춘자&빌리 엥엘프리트: 방치의 삶에서 소통의 삶으로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우춘자는 방치의 삶에서 소통의 삶으로 나아간다. 우춘자의 삶은 한국 남편의 방치와 생이별(대과거), 한국을 잊기 위한 노력과 눈물(과거), 이질적인 문화와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현재)을 보여준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우춘자&빌리 부부는 독일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공동체 문화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빌리는 교류하고 명령받는 것을 싫어하는 ‘독일식 개인주의’와 서로 인정하고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식 공동체 문화’ 사이의 차이를 인식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 단어 몇 개만 알고 있는 빌리에게 한국문화를 알기 위해서 한국말을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춘자와 빌리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국 춤을 배우고, 순천한마당에 가서 공연을 하고,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등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빌리는 한국문화를 낯선 독일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우춘자는 한국/독일 커플이 죽는 순간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빌리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늘, 밭에서 캐낸 돌로 쌓은 돌담, 낡으면 새 것을 덮는 함석지붕, 5년 동안 기울어진 우편함 등 남해 마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우춘자는 현재 60~83세까지 살고 있는 한국&독일 커플이 이제 가는 길만 남았으며, 15년 후에는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 보리수 수목장에서 죽는 날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우춘자는 제일 처음 살았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독일 가서 고생 많이 했다.”며 서로 죽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을 기대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의 후반부에서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우춘자도 한국 남편의 방치와 이혼(대과거), 헤어진 자식과 눈물로 보낸 독일생활(과거), 외국 생활로 인한 부모-자식 관계의 어려움(현재)에 대해서 털어 놓는다. 경남 거창 보건소에 간호사로 근무하던 우춘자는 남편이 이틀 밤 자고 서울로 가버린 후 일 년에 2번밖에 오지 않는 등 방치된 삶을 살아간다. 우춘자는 ‘남편 덕이 없는 사람이 자식 덕도 없다’는 말을 듣고, 자식 둘을 두고 가는데 오면 안 된다며 이혼을 요구받는다. 우춘자는 독일에서 살 때 한국을 잊어버리려고 이를 악물고 살았으며 해가 지면 항상 고향 생각을 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현재에도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의 자식과의 관계가 어려운 점,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힘들어한다. 우춘자의 고백은 한국 결혼생활의 고통(대과거), 독일 적응에서의 인내(과거), 한국 문화에 대한 재적응의 어려움(현재)을 보여준다.

 

5. 독일로의 탈출과 한국 문화 적응기
 

<그리움의 종착역>의 첫 장면에서 한국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비행기에서 내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적힌 현수막이 그들을 맞이한다. 1970년대 한국 여성 간호사들은 독일인들에게 약을 먹이고 씻겨주고 돌봐주었으며, 많은 이들이 독일인과 결혼했지만 항상 한국을 그리워했다. 세 명의 여성이 독일인 남편과 돌아와 고국의 남해 마을에 정착했다. 1970년대 영상(독일)에서 2010년대 영상(한국)으로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느끼게 만들지만, 남해 독일마을은 가파른 주황색 타일 지붕, 독일식 흰색 소시지로 한국문화 속에 독일문화를 소환해 낸다.

 

남해 독일마을의 아름다운 풍광과 독일식 주택으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사생활을 침해받는 장면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남해 마을의 풍광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다. 해질녘의 검은 실루엣과 노을, 날아가는 새와 말린 명태,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과 고즈넉한 절이 등장한다. 바다에서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낚는 모습, 갯벌에서 아낙네들이 조개를 캐는 모습, 들판에서 모종을 심는 모습 등은 한국민요 ‘이어도 사나’의 곡조로 한국적 정취를 강조한다. 반면에, 독일마을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 남의 집에 들어가서 화단을 망치는 관광객, 빼곡히 들어서서 빈틈이 없는 마을 도로 등 삶의 터전이 관광지로 바뀐 현실도 드러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은 독일 마을에 살고 있는 한국 여성과 독일 남성의 세 커플이 한 자리에 모여서 교류하는 장면은 왜 없는가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일하게 독일 음식점 개업식 행사에 세 커플이 참석한다. 세 커플이 만나는 장면이 없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한국/독일 세 커플이 남해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한국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고자 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영화에서 세 커플은 많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과거에서, 간호사 전문직 여성들은 한국 남성들의 보수성, 외도/배신/방치로 인한 상처로 독일로 탈출한다. 과거에서, 그 여성들은 독일에 적응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 독일 남편들을 만나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가지지만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한다. 현재에서, 한국으로 정착한 후 독일 남편들은 한국문화에 대해 탐구하기, 실용성 추구, 소통하기를 통해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정착에 필요한 제반기술을 갖추어주겠다는 초기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기초 지자체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리움의 종착역>은 현재의 평온한 삶에서 대과거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역순을 통해 대과거의 고통과 상처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독일로 가는 길 & 독일마을로 가는 길로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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