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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권정민 그림책 『사라진 저녁』과 이상한 나라 시스템
[김시아의 문화톡톡] 권정민 그림책 『사라진 저녁』과 이상한 나라 시스템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12.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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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다녀온 후, 시차 적응이 될 무렵 찾아간 동네 책방에서 『사라진 저녁』(창비, 2022)을 만났다.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문학과지성사, 2020)과 『엄마 도감』(웅진주니어, 2021)을 가지고 있어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은 인간과 동물의 위치를 뒤바꿔 놓아 초현실주의적이다. 동물들이 의인화된 세상에서 인간은 사냥감과 산책 당하는 모습으로, 동물 우리의 갇힌 모습으로 등장하며 의인화된 동물들은 당당하다. 입장이 뒤바뀐 모습을 보며 왠지 통쾌하기까지 하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학대당하는 동물이나 인간에 의해 수없이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독자는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권정민
Ⓒ권정민

이런 연장선에 있는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사라진 저녁』 표지를 보면 긴장감이 살아있다. 원목 식탁에 올려진 하얀 식탁보는 일회용품 접시와 컵, 포크와 수저와 함께 쏟아져 내리고 있다. 풍선을 보니 어떤 아이의 생일 축하 파티가 끝난 걸까? 의자 다리 옆에 뒤에 개구리는 왜 등장하고 있을까? 첫 장을 열어 면지를 보면 주방에서 볼 수 있는 도마, 칼, 가위 등 온갖 조리도구와 프라이팬, 냄비 등 요리 도구가 그려져 있다.

 

Ⓒ권정민
Ⓒ권정민

“그 아파트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어”라는 첫 문장이 말하는 ‘아파트’ 모습이 담긴 『사라진 저녁』은 세로로 긴 판형의 그림책이다. 아파트나 빌딩 고층 건물이 그려진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문학동네, 2019)처럼 세로로 길다. 그와 달리 권정민 작가가 쓰고 그린 첫 그림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보림, 2016)는 멧돼지가 돌아다니는 공간을 극대화하듯 가로로 긴 판형이다. 그림책의 공간 구성은 이야기가 말하는 공간과 적절하게 어울려야 한다. 작가가 그림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더미북을 만드는 건 이렇게 글과 그림, 책의 판형까지 조화롭게 구성하려는 노력 속에서 결과물로 만들어진다. 다시 본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서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듯한 수많은 돼지가 트럭에 실려 가는 장면은 왠지 의미심장하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 속의 멧돼지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앵커의 목소리 대신 멧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고민을 듣다 보니 그를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되도록 살아남아 이왕이면 행복해지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종족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권정민)

 

멧돼지의 자유를 응원한 작가의 이야기는 『사라진 저녁』에서 '살아있는 돼지'를 등장시키며 당황하는 인간 사회를 풍자하고 돼지의 탈출을 그리고 있다.

권정민 작가의 그림 스타일은 사실적이며 초현실적이다. 마스크를 쓰고 저마다 배달 음식을 들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가득 찬 배달 기사들의 모습과 생기 없는 표정은 코로나 시대의 배달 음식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요리도 안 된 저녁이 배달된 거야”라는 문장과 함께 독자는 아파트 현관을 쳐다보고 있는 돼지를 본다. 돼지는 포승줄로 칭칭 감겨 묶여있으며 “죄송합니다.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요. 직접 해 드세요!”라는 황당한 메모가 적혀 있다. 메모를 테이프로 붙인 듯한 흔적까지 그림은 사실적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돼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라며 질문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당황하는 표정과 두려워하는 모습 속에서 작가의 통찰과 날카로운 유머를 엿볼 수 있다.

그다음 장에서, 작가는 아파트 위아래 층을 단면으로 보여주며 “904호는 족발을/ 805호는 감자탕을/ 702호는 돈가스를” 이어서 오른쪽 페이지에선 “603호는 보쌈을/ 501호는 김치찌개를 주문했거든.” 문장과 함께 저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각기 다른 인물들과 집마다 다른 일상을 보여준 후 살아있는 돼지 때문에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리고 있다. 권정민의 유머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딩동” 소리와 함께 배달된 살아있는 닭. 치킨 대신 닭이 배달되면 요리조차 할 줄 모르는 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작가는 분업화되고 조리 과정이 사라진 음식문화와 코로나 여파로 인한 일상을 보여주며 아파트 주민들이 ‘살아있는 돼지’라는 문제 앞에서 긴장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다. ‘돼지 잡는 계획안’과 “준비물”에 등장하는 수많은 도구와 “재료와 도구의 세계는 넓고도 깊어 배고픔은 까맣게 잊었지”라는 문장과 함께 양면 페이지 중앙에 스마트폰을 보느라 눈이 충혈된 인물들의 표정은 과장되지만, 지극히 사실적인 캐리커처로 우리 사회 중년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편리함과 속도전 속에서 우리 사회는 환경을 파괴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초고속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뒷감당은 모두 귀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풀어가도록 현재의 어른들이 미래의 어른들에게 떠넘기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해 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참사가 나도 도덕적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와 “이태원은 왜 갔어?”라며 비난하는 무책임한 어른들과 부조리한 사회. 분단된 사회에서 분리와 모순은 당연한 걸까? 모든 게 파편화된 공교육의 모순 속에서 자란 그분. 그분에게 살아있는 돼지를 보내면 어떻게 될까?

 

 

 

글·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 평론가.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파리 3대학에서 ‘그림책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그림책에 대해 가르치고 연세대학교 매체와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연구를 수행한다. 또한 ‘시와 내면의 아이’를 뜻하는 ‘시아’라는 필명으로 문학과 예술, 그림책 매체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엄마』, 『오늘은 수영장일까?』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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