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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 톡톡] 시대를 위로하는 두 가지 풍경 – KBS 드라마스페셜 2022
[구선경의 문화 톡톡] 시대를 위로하는 두 가지 풍경 – KBS 드라마스페셜 2022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2.12.19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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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의 계절이 돌아왔다. <KBS 드라마스페셜 2022>가 11월 16일부터 방영 중이다. 단막극 총 여덟 편이 수목 프라임 시간대인 밤 9시 50분에 편성, 방영 중이고, TV시네마라는 이름의 영화 두 편은 극장 상영을 마친 후 TV로 방영 예정이다. 그리고 모두 wavve에서 시청 가능하다.

콘텐츠의 홍수 속, 웬만큼 강력한 홍보나 바이럴마케팅이 아니고서는 어떤 드라마도 쉽게 주목받을 수가 없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때로는 꽤 만듦새가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묻히고 말아 그 진가를 알아본 이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조차 들게 한다.

드라마 생태계에 있어서 단막극의 의미와 가치 운운하는 것은 단막극 얘기가 나올 때마다 따라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이니 생략하자. 시청자에게는 의미고 가치고 간에 그래서 그 드라마가 재미있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게 본 단막극 두 편을 추천해 보고자 한다. 이번 시즌의 드라마스페셜 중 특히 눈에 띈 두 작품을 소개해본다.

 

[열아홉 해달들] 공식 포스터
[열아홉 해달들] 공식 포스터

열아홉 살들의 연대에 우리가 위로받아도 될까 - <열아홉 해달들>

첫 작품은 12월 7일 방영한 신은수 김재원 주연의 <열아홉 해달들>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의미가 선뜻 들어오지 않았었다. 해달? 해와 달? 아니면 바다에 사는 그 해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의문이 풀린다.

주인공 재영(신은수 분)은 자퇴서를 부적처럼 품고 다니며 탈출을 꿈꾸는 열아홉 살 고등학교 여학생이다. 일찌감치 사고를 치고 집으로 밀고 들어온 언니와 형부한테 방을 빼앗겨, 비밀도 소중한 일도 많을 이 나이에 마루에서 자야 하는 신세이고, 대놓고 집안 식구를 무시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정면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서서 뇌까리듯 ‘미친놈’이라고 내뱉을 뿐인 엄마 사이에서 가족의 이해와 지지 따위는 바랄 수 없는 외로운 10대다. 집에서의 탈출이 꿈인 재영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또래를 대상으로 한 지하경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담배나 술, 콘돔 등의 미성년자 구입 금지 품목들을 구매 대행하는 일이 그것이다. 미성년자에게도 콘돔은 구입 금지 품목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부탁하는 고객님들을 호구 잡기 위해 입 다물고 영업하는 수완도 있다. 그러던 중 언니의 주민등록증으로 무사히 뚫을 수 있었던 거래처가 언니의 신고로 막힌 후 재영은 새로운 물량 제공처로 우규를 떠올린다.

우규(김재원 분)의 아버지는 다섯 살 때 가출했고, 어머니는 우규와 눈만 마주치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 모양이다, 왜 태어났느냐’고 저주를 퍼부어대는 알코올중독자다. 미성년자에게 뭐가 되고 안되고 따위를 논하는 건 우규에게는 사치스러운 얘기다. 생활 무능력자인 엄마 대신, 모텔 슈퍼마켓에서 술도 팔고 담배도 팔고 콘돔과 러브젤도 팔아서 당장 먹고살 궁리를 해야 하는 열아홉이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다. 그 역시 자퇴서를 내고 떠나는 상상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우규는 술에 취해 싸움이 붙어 파출소에 불려 간 엄마를 데리러 간 길에, 바람피우는 형부와 한 판 붙고 있는, 역시나 사연 많아 보이는 같은 반 친구 재영과 말을 섞게 되고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 둘은 동업하게 된다.

둘이 어떻게 조금씩 속내를 터놓게 되고 어떻게 같이 손잡고 달리게 되고 누가 누구를 믿어주고 그러다 위기를 맞게 되는지는 스포가 되고 말 테니 자세히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 모든 순간이 드라마적으로 뻔하지 않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으며 개연성 또한 확보하고 있어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우규가 떠나는 걸 알게 된 재영은 우규를 따라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들도 우리도 모른다. 이렇게 탈출하지만 그래서 만날 세계도 더 나으리란 법이 없기에, 보는 이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당장이라도 거기서 내리라고 어떻게든 뭔가 현실적인 좀 다른 길은 없겠냐고 붙잡아 앉혀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들의 집이 어땠는지 가진 게 뭐였는지 기댈 곳 하나 없던 그들의 자리를 이미 봐버렸으니 딱히 그럴 수도 없다. 그 답답함과 막막함에 마음만 울컥할 뿐이다. 현실의 재영과 우규들이 이보다도 더한 상황일 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 있으니 입조차 다물 수밖에.

드라마의 마지막 씬에, 바다에서 해달들은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잡고 버틴다는, 이들이 학교에서 본 다큐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들끼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있겠으나 그들의 연약한 연대와 위로에 내가 마음을 놓는 것은 너무 면목 없는 일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엔딩이다.

 

[낯선 계절에 만나] 공식 포스터
[낯선 계절에 만나] 공식 포스터

팬데믹을 지나온 우리 모두를 토닥여주는 이야기 - <낯선 계절에 만나>

두 번째 작품은 뒤이어 같은 주에 방영된 한지은 김건우 주연의 <낯선 계절에 만나>이다.

이야기의 시점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와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토그래퍼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는 희주(한지은 분)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갑자기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된다. 대부분 환자가 그랬듯이 별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가 막막하고 당황스러운데, 상사인 사진작가는 너 때문에 업무에 차질이 크다며, 이 기회에 재능도 열정도 없는 이 일 말고 다른 일 알아보라는 모진 말과 함께 희주를 해고해 버린다. 억울하고 울컥한 마음인 희주가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옆방에 함께 입소한 얼굴도 모르는 남자 기준뿐이다. 넉살 좋고 명랑한 기준(김건우 분)은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바로 치료센터에 입소한 파티시에로, 친구한테 연락을 위해 인스타 디엠 심부름을 부탁한 이후 희주에게 계속 말을 걸며 친근하게 굴어온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낭만적이게도 창문으로 연결된 실 전화기를 통해서다. 두 사람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고립된 공간, 이야기를 나누고픈 욕망을 자극하는 단절된 상황, 이는 로맨스가 일어나기에 매우 적절한 조건이다. 거기다가 둘의 대화는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은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청각은 훨씬 직접적이고 감정적으로 자극을 전달한다고 한다. 얼굴도 모른 채 실 전화기의 진동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체로도 영상으로도 로맨틱한 상황인데 과학적으로도 감정 전달 효과가 크다는 근거가 있었던 거다. 노래라도 들려달라는 기준의 말에 희주가 튼 노래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였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는 가사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더욱 충만하게 하는 적절한 선곡이었다. 

둘은 “이렇게 오래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나싶”을 만큼 무한정으로 주어진 시간 속에 남들에겐 말 안 하던 속내도 털어놓고 여태까지의 삶도 돌아보며 서로를 알아간다. 하지만 치료센터 퇴소일이 가까워지자 희주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선을 긋는다. 남들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며 살아온 희주에게 이만큼 깊숙이 들어와 버린 인연이 아직 스스로 버겁기도 했을 것이다. 그 이후는 예상한 대로다. 오래간만에 찾아간 누나를 통해 희주의 마음을 느낀 기준은 여러 날 여러 곳으로 간절히 희주를 찾아다니고 그 끝에 마침내 희주와 우연히 조우한다. 드라마에서 우연의 남발은 좋지 않지만 이런 경우는 시청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 우연이 필연으로 변화 발전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엔딩에 두 주인공은 격리기간 동안 자신들을 담당했던 간호사 방연진(고애리 분)을 찾아가 직접 만든 빵 바구니로 마음을 전한다. 이어서 다른 환자들이 마음을 전한 쪽지들, 코로나 기간 내내 현장 최일선에서 매일 환자와 만나고 씨름하고 애썼던 의료진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에필로그로 보여준다. 드라마가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시절을 겪어낸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전례 없는 재난 재해나 사회적 대형 사건들은 드라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직접적인 소재로 등장할 때도 있고 혹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표현될 때도 있다.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나 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 너무 큰 충격을 준 사건들은 미처 소화불량인 채로 아직 해석되고 수용될 어느 시점을 기다리고 있기도 할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의 지나간 3년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회적 이슈고 배경이었고,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로맨스라는 따뜻한 장르로, 그동안 수고한 우리 모두를 토닥여주는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글·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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