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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재춘언니> ― 해직 기타노동자, 13년 4464일 고난의 투쟁과 꺾이지 않는 마음
[서곡숙의 문화톡톡] <재춘언니> ― 해직 기타노동자, 13년 4464일 고난의 투쟁과 꺾이지 않는 마음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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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직 기타노동자와 재춘언니
 

<재춘언니>(이수정 2020)는 30년 기타기능공 재춘이 해고 통보를 받고 동료들과 복직투쟁을 벌이는 13년간을 추적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 수상(이수정),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수상(임재춘과 콜드콜택 노동자들)으로 주목 받은 작품이다. 두 딸의 아버지인 재춘은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지만 연극 공연, 전시회 그림 모델, 일인 시위, 창작 글쓰기 등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13년 동안의 힘겨운 투쟁을 견뎌낸다.
 

2.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가련한 오필리아로
 

<재춘언니>에서 재춘은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가련한 오필리아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재춘언니>의 전반부 내러티브에서 해직 기타노동자 재춘은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아를 맡아 연습을 하고, 전시회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관람하며, 천막 농성장에서 <햄릿> 대본 연습을 하고 시위를 준비하고 글을 쓰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투쟁한다.

<재춘언니>의 전반부 스타일은 희화화, 패스트모션, 줌아웃, 클로즈업을 통해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해고노동자에 대한 감정이입을 표현한다. <햄릿> 공연 장면은 재춘의 오필리아 분장과 연기, 칼 소품으로 사용한 기타대를 롱숏으로 보여줌으로써 거리두기를 통한 희화화를 보여준다. 오필리아 연습 장면에서 재춘이 몸 푸는 모습을 패스트모션과 뒤로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긍정적인 성격을 부각시킨다. 오필리아 분장 장면은 재춘의 남성적인 얼굴과 흰색 베일 머리장식의 부조화를 클로즈업으로 강조한 후 풀숏으로 상황 전체를 보여준다. 천막에서 재춘이 글을 쓰는 장면은 클로즈업을 통해 해고노동자의 삶에 대한 기록을 강조한다.

<재춘언니>에서 재춘은 <햄릿>의 오필리아 연기를 통해 배신/상실의 노동 현실에 공명하게 되고, 풍자 연극을 통해 법의 편파성과 고용주의 배금주의를 비판한다. 이 영화는 해직노동자의 복직투쟁 외에도 연극 공연, 전시회 모델, 글쓰기 등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통해 해직노동자의 실상을 알린다. 연극 공연 <햄릿>에서 재춘은 오필리아 연기를 통해 해직노동자의 ‘상실’에 공감하게 된다. 재춘은 남성적 외모와 불룩한 배라는 외형에 어울리지 않게 오필리아를 진지하게 연기하여 관객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햄릿> 연극은 기타노동자의 해고로 인한 상실을 다룬다. 재춘은 오필리아 연기를 통해 해고투쟁 8년 동안 딸들과의 갈등과 딸들의 상실을 깨닫게 한다. 햄릿의 배신으로 인한 오필리아의 상실은 해직노동자인 재춘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재춘의 부재로 인한 가족의 상실이다. 상실을 인식하는 것은 저항의 첫 걸음이다. 낯을 가리고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의 재춘은 오필리아 연기를 하면서 혹은 복직투쟁을 하게 되면서 변하게 된다. 중세시대의 멋있는 칼은 연습시간의 빗자루, 공연의 기타대로 희화화되고, 오필리아는 다부진 체격의 중년남성이 연기함으로써 부조화와 이질성을 통해 노동현실에 대한 풍자와 세상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재춘은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노동자의 소송에서 노동자가 무조건적으로 패배하는 상황에 대해서 법이 자본의 논리, 돈의 논리에만 손을 들어준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의 편파적인 현실을 비판한다. 재춘은 8년의 투쟁 동안 너무 속상하니까 투쟁을 접으라고 말하는 가족,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줄 수 없다는 죄책감, 힘든데 기약도 희망도 없는 시위를 계속하는 현재를 말하면서 힘들어한다. 풍자연극 공연에서 법의 높은 문턱과 편파성, 고용주의 몰인정과 불통을 계속 비판하면서 해직 기타노동자의 삶과 고난을 보여준다.
 

3.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콜택밴드의 연주자로
 

<재춘언니>에서 재춘은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콜택밴드의 연주자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재춘언니>의 중반부 내러티브에서 기타노동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삶 쓰기를 보여주며, 자신의 글을 콜택밴드의 노래 가사로 만들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의 살얼음판을 걷는다.

<재춘언니>의 중반부 스타일은 클로즈업, 카메라움직임, 뒤로 빠지는 카메라를 통해 상황 묘사와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보여준다. 재춘이 글을 쓰는 장면은 재춘에 대한 클로즈업을 통해서 고등판결의 패소, 사무장의 잠적 등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데도 천막에 남아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기타노동자·풍물패의 공연·시위 장면은 축문을 불태우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표현함으로써 복직에 대한 기원을 표현한다.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장면은 찡그리는 얼굴의 재춘과 옆의 기타노동자들을 차례대로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비장한 투쟁의지를 표현한다. 재춘이 집을 나서는 장면은 재춘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농성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을 말할 때 카메라가 갑자기 뒤로 빠지면서 고난에 빠진 인물의 힘겨움을 표현한다.

<재춘언니>는 투쟁 일지를 자막, 노래 작사, 투쟁문 등으로 보여주며, 사람이 살면서 도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미없는 살얼음판같은 천막투쟁의 힘겨움을 보여준다. 재춘은 천막 농성장에서 계속 글을 쓰면서 자신의 투쟁일지를 기록하며, 이 일지의 글은 영화의 자막, 기타노동자의 삶을 노래하는 가사로 사용된다. 재춘은 사무장의 잠적 사건에 직면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이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겠다고 밝히는 배려를 보이면서, 자신이 8년 동안의 투쟁 기간 동안 집을 떠나 가족을 등지고 생활비를 벌지 못하고 남편·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나온 나날들에 괴로워하지만 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현재 심정을 토로한다. ‘미래 경영 위기를 위한 해고는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점집이 되어버린 법원’에 대해서 비판한다. 재춘의 동료는 더 재미있는 길이 있으며 가정에 대해 걱정한다는 점에서 재미없고 살얼음판의 투쟁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천막을 떠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다.
 

4.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무기한 단식농성 투쟁자로
 

<재춘언니>는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자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재춘언니>의 후반부 내러티브에서 해직 기타노동자는 굴뚝 투쟁에 동참하는 시위를 하며, 정리해고 13년의 마지막 끝장 투쟁을 위해 사장과 면담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여 사장과의 협상에 성공지만, 기타노동자가 아니라 공사판의 일용노동자가 된다.

<재춘언니>의 후반부 스타일은 카메라 움직임, 클로즈업, 뒷모습을 통해 투쟁, 고난, 노동의 굴레를 표현한다. 해고노동자가 사장실에 들어가 따지는 장면은 전체 롱숏에서 재춘의 클로즈업으로 바뀌면서 긴장감을 표현한다. 무기한 단식농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은 익스트림롱숏에서 롱숏으로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서 힘겨운 고난을 강조한다. 4447일 임재춘의 무기한 단식농성 42일 장면은 자신을 격려하는 스님의 염불을 듣는 재춘의 클로즈업으로 힘겨운 투쟁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4464일 해직노동자와 사장의 합의가 이루어진 날, 임재춘의 얼굴 클로즈업, 서로 껴안는 모습, 재춘의 울먹이는 모습에 대한 미디엄숏으로 통해서 13년 동안의 투쟁이 승리로 마감하는 순간의 감동을 표현한다. 재춘이 공사장에서 일하는 장면은 재춘이 올라가는 모습을 롱숏으로 표현하며 관찰자적 시선을 보여주며, 재춘의 뒷모습 바스트숏을 통해 힘겨운 노동자의 삶을 표현한다.

<재춘언니>에서 해직 기타노동자는 시위의 동참과 마지막 끝장투쟁의 무기한 단식농성을 통해 비장한 각오를 보여주며, 기타노동자에서 일용노동자로의 변모를 통해서 노동의 굴레를 드러낸다. 해직 기타노동자는 겨울 추운 날씨에 파인텍 굴뚝투쟁 시위에 동참하여 흰 한복을 입고 걷다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다른 해직 노동자를 지원한다. 정리해고 13년의 마지막 끝장투쟁에서 해직 기타노동자는 ‘정리해고 13년 박영호가 해결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뒤에는 기타 모형을 짊어지고 시위를 하며, 사장실에 들어가 강하게 항의하며, ‘빈 손으로 교섭 나온 박영호 사장’을 비판하며 ‘우리는 빈 속으로 버틴다’며 무기한 단식투쟁을 벌이며, 마침내 해고노동자, 노조 조합원, 사장 사이에 협상이 타결된다. 이때 재춘이 13년간 너무나 오랫동안 투쟁한 힘겨운 세월 때문인지 협상 타결 소식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울먹이는 표정을 짓는 것이 관객의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지점은 무기한 단식농성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재춘과 동료들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너 살아 있는가? 무엇으로, 어디서, 어떻게?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서글퍼하는 나를 용서하라.’ 구절을 듣고는 감동받는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은 재춘이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공사판의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모습으로 끝이 나면서 노동의 끝없는 굴레와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만든다.
 

5. 해직 기타노동자에서 공사판 일용노동자로
 

<재춘언니>는 재춘을 통해서 해직 기타노동자의 세 가지 얼굴, 즉 천막 투쟁, 시위, 문화 활동을 보여준다. 가련한 오필리아 연기는 연극 공연을 통한 상실의 형상화를 보여주며, 콜택밴드 연주는 작사를 통한 삶의 성찰을 보여주며, 무기한 단식농성은 마지막 끝장 투쟁을 위한 최후의 용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연극 연습과 공연, 전시회, 천막의 일상투쟁, 투쟁 일지 쓰기, 밴드 연습, 1인 시위, 굴뚝투쟁 동참, 끝장투쟁 등 해직 기타노동자의 여러 가지 면모를 드러낸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해직 기타노동자의 정서에 공명하는 클로즈업을 가장 많이 사용하며, 패스트모션, 줌아웃, 카메라의 움직임, 뒷모습으로 상황의 제시와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보여준다. 흑백영상은 기교를 최소화하여 복직투쟁의 의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색채가 없는 세상, 희망을 찾기 힘든 무채색의 세상을 표현한다. 자막·내레이션과 영상의 조합은 개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상황에 대한 객관적 통찰 둘 다를 보여주면서 내면과 외면을 결합시킨다. 감독이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인물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단순히 감독이 바라보는 해직 기타노동자의 삶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그들의 투쟁과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재춘언니>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투쟁과 문화의 결합이다. 이 영화는 해직 기타노동자의 천막농성, 시위 등의 투쟁과 함께 연극 연습과 공연, 그림 전시회, 철학책 읽기, 밴드 연습 등의 문화 활동을 함께 보여준다. 심지어 첫 장면은 연극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재춘의 모습이다. 재춘은 오필리아 연기를 통해 ‘재춘언니’로 불리게 되었으며,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는 낯을 가리지만 해직노동자가 되고 변하기 시작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재춘은 처음에는 남 앞에서 나서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감추고 싶은 것이 많고 뒷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사장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고 연극·노래창작·글쓰기·밴드공연 등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재춘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전반부에 재춘은 투쟁일지에 “사람이 살면서 도전하는 것은 중요하다.”라고 적는다. 재춘은 후반부에 “죽는 것 빼고는 모두 도전해 보았다”고 말하자, 그 옆의 동료가 “우리는 안 죽어”라고 되받아친다. <재춘언니>는 1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해직 기타노동자의 계속해서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재춘언니>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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