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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진의 문화톡톡] 시지프스 2023
[엄윤진의 문화톡톡] 시지프스 2023
  • 엄윤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3.09.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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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Sisyphus)
시지프스(Sisyphus)

 

한 사람이 큰 바위를 어깨에 메고 산 정상까지 오른다. 그 남자가 정상에 올라 그 바위를 내려놓으면, 그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바위가 산 아래로 구르는 걸 무심히 지켜보는 그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방금 전 한 일을 또 시작한다. 이 사람은 이런 무의미한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이 사람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가 신의 이런 형벌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경멸하며 저항한 것으로 해석한다.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그의 반복하는 일상의 행동이 어떻게 신의 형벌에 대한 저항일까? 카뮈는 시지프스의 그 행위 즉, 바위를 메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명백히 무의미하지만, 이런 자신의 임무를 계속하겠다는 의식적 선택 그 자체가 바로 신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았다. 시지프스의 이런 선택과 노력은 신의 징벌에 좌절하기를 거부하고, 이렇게 선택함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되찾는다. 시지프스의 지속된 노력 즉, 그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적 일을 수행하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해서도 나름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인간 정신의 힘을 상징한다. 카뮈는 시지프스를 무의미하게 보이는 세계에서도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전형으로 읽었다. 신화 속 시지프스의 노력과 저항을 현대인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존적 저항의 한 형태로, 혹은 허무주의와 맞서는 투쟁 방식의 하나로 카뮈는 보았다.

 

 

일상에 갇힌 우리들

 

현대인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의무를 갖게 된다. 이런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남편이나 부인으로, 자식이나 부모로, 혹은 친구나 직장인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의무도 감당하기 힘든 데, 거기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비한 것 때문에 더 큰 짐을 지게 된다. 물론 소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현대인이 느끼는 그 짐의 무게 때문에, 그걸 잊기 위해 소비가 일으키는 순간의 기쁨을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로 인해 내가 일상에서 지는 책임과 의무는 더 커진다. 물건을 사면 살수록, 시지프스의 바위는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소비가 주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는 대가로 빚의 노예가 된다.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 일상이 더 팍팍해진다. 이렇게 되면 일상은 다양한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의무와 갚아야 할 빚만 있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일상은 오늘의 시지프스들에게 내리는 형벌이 된다.

 

 

오늘의 시지프스들에게 형벌을 가한 선한신들의 속삭임

 

우리는 어느새 인지 모르게 고객님이 되었다. 미디어는 국내 소비 위축을 걱정하는 뉴스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징검다리 휴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소비와 여행을 장려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언론은 과소비를 경계시키며, 동시에 외제 상품을 사지 말고 국산품을 애용하라고 했다. 이러던 언론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학교 경제 수업 시간에도 이렇게 가르친다. 시민의 소비가 위축되지 않아야 공장에서 생산이 계속되고, 이런 생산량 증가는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생긴 일자리는 시민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 소비를 진작시키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선 이제 소비는 선한 것이다. 신용카드는 어떤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넘는 소비도 충분히 가능케 해 준다. 프로그램의 종류와 관계없이 텔레비전 화면 안에 있는 모든 상품이 광고다. 유튜브 콘텐츠나 인터넷 기사를 봐도 온갖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광고를 피할 수 없다. 일상에서 이용하는 모든 미디어가 사고, 또 사라고 은근히 혹은 대놓고 떠든다. “너에게 이 상품이 필요해, 이 상품이 너를 남들과 달라 보이게 할 거야, 이 서비스가 너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거야. 그러니 이용해 봐.”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광고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야 할지, 또 어떤 소비 취향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야 할지까지 다 정해 준다. 필요하지 않은 것도 꼭 필요하게 보이는 광고의 힘은 정말이지 저항 불가다. 광고를 보면 볼수록 사고 싶은 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개성 있게 해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마저 먹힌다. 소비주의 신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우린 어쩌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사람이 아니라,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우리를 가둔 일상이란 감옥의 벽만 더 단단케 한다.

 

 

욕망에 충실하기보단

 

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욕망하는 것을 사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 필요한 것만 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면 빚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것이다.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시간적 여유가 더 생겨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거나 민주적인 시민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것과 같은 공적 책임도 일정 부분 감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여유가 없어 미뤄뒀던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자가 필요를 채우는 것은 아름답지만, 욕망을 채우는 것은 추하다고 말했나 보다. 노엄 촘스키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빚을 지게 하는 거다.” 자동차와 명품 가방을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하는 순간, 한 달도 맘 편하게 쉴 수 없다. 자동차나 명품 가방도 그런데 하물며 아파트를 주택담보대출로 구매하는 건 어떨까? 10년에서 20년은 원리금 상환을 위해 정말이지 맘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만 해야 한다. 인생 주기 중 아파트 구매를 생각하는 시기가 어쩌면 가장 경제력이 있는 때여서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룰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자기 시간과 열정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소위 자아를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다. 그런데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자동차와 명품 가방을 사거나, 아파트를 대출로 구매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결핍과 자아실현의 상관관계

 

평범한 40대가 흔하게 가진 것을 거의 갖지 않은 한 중년 남자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뭔가 많이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다고 한다. 이 남성은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에 자신의 결핍된삶에 관해 기고했다. 이 중년 남자에겐 세 가지가 없다. 부모, 배우자, 그리고 자녀다. 사실 없는 게 더 있다. 집을 갖고 있지 않아 주택 담보 대출도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차량 할부도 없다. 거기에 미혼이라 자녀가 학교에서 타온 여러 상장도 없다. 그러니 이 남자에겐 사십이 넘은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 대부분이 없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더 적게 가져 더 자유롭고, 더 자유로워서 더 행복하다고 한다. 일단 이 남자는 부양해야 할 부모와 자녀가 없다. 거기다 빚내서 산 집과 차가 없기 때문에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남들이 가진 걸 갖지 않아 생긴 여유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도 더 많다. 경제적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더 많이 가진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게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로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고, 학술 대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한다.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 동료 작가, 제자들, 그리고 자기 선생님과도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랑하는 일에도 더 모험적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연인도 꽤 있었다. 짧게 만났다 헤어진 연인도 있었고 지적인 매력에 빠져 평생의 인연을 맺기도 했다. 자신은 늘 새로운 첫 키스가 있을 거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고, 누군가의 손을 처음 잡을 때의 그 긴장감과 그 사람 옆에서 아침을 맞는 행복한 느낌도 계속 가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퍼거슨, 볼티모어, 그리고 뉴욕에서 열린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란 시위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 있었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란 시위에도 동참했었다. 최근엔 반트럼프 집회에도 참여해 최루탄을 마실 기회도 얻었다고 한다. 이 남자가 누리는 자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여행도 많이 해 로키, 알프스, 히말라야산맥에서 하이킹도 할 수 있었고, 새벽에 타지마할과 앙코르와트에서 일출을 감상하기도 했다. 서른일곱이란 나이에 이십 대에 누렸던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다시 즐기기도 한다. 박사 과정을 시작해 얻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 사람은 자신도 평범한 중년처럼 결혼해 자녀를 가졌더라면 현재 맺고 있는 다양하고 깊은 관계와 경험을 가질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한다. 이 사람에게 결혼한 또래의 친구들은 마치 누가 써놓은 각본에 따라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과 여전히 미혼인 친구들은 자신들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도 설레고 기대한단다. 즉흥적으로 자신의 인생 대본을 언제든 고쳐 쓸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이런 자유를 마치 배를 묶어둔 밧줄에서 풀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했기에 나이 사십에도 여전히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쓴 글을 마친다.

 

 

이 사람의 삶의 방식이 모두를 위한 정답이 될 수 없지만

 

더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면, 최소한 내 어깨에 놓인 바위의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의무와 일로 가득 찬 일상이란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전보다 훨씬 가벼운 바위를 메고 늘 힘겹게 오르던 그 산길을 더 가뿐하게, 혹은 최소한 덜 힘들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좁고 가파른 산길 가에 핀 들꽃과, 나무 사이에 숨은 노루도 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가쁜 숨보다는 훨씬 편안한 호흡으로 산 중턱이나 정상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에 전혀 무관심한 이 세계에서 인생이란 걸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면, 이 정도의 즐거움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운이 조금만 더 좋으면, 앞서 언급한 결핍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거다. 이렇게만 된다면 나이와 관계 없이 우리가 즐거워하는 일과 의미를 두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소극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를 일상에 가둬버린 신들에게 저항하는 방법은 그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일상에서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일지 모른다. “더 소비하고 더 많이 가지라말하는 소비주의 신들의 달콤하지만, 위험한 속삭임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거다. 그래야만 일상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자유를 얻고, 그 자유를 활용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드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런 선택이 의미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무심했던 세계와 그 세계의 신들에게 맞서는 괜찮은 저항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엄윤진 
독일 본 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정치 철학서 『거짓 자유』와 실존주의 서적 『좋아서 하는 사람, 좋아 보여서 하는 사람』을 쓴 인문교양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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