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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당신은 어제 무엇을 보셨나요?
[구선경의 문화톡톡] 당신은 어제 무엇을 보셨나요?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3.09.1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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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친절하게 사용 시간을 알려줄 때가 있다. 언제 무슨 설정을 해놨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지난주보다 1시간 20분 더 사용하셨습니다’와 같은 메시지가 뜬다. 굳이 찾아 들어가 없애기도 귀찮지만 –모든 디지털기기는 ‘사용 안 하기’를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뜨끔함이다. 어쩐지 딴짓하다 들킨 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험 기간에 딴청을 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그 누군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 내일부터 유튜브는 딱 한 시간씩만 보고 공부에 몰두하자”라고 결심했던 어제의 나라면, 혼자 느끼는 부끄러움은 멋쩍음까지 더해져 더 커진다.

유튜브를 보거나 TV를 보면서, 드라마‘나’ 보고 예능‘이나’ 보면서 킥킥대고 시간 죽이는 건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하는 게 좋은 일”로 무의식중에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업계에 있다는 사람조차도 왜 이럴까) 눈의 피로나 좋지 않은 자세의 문제 같은 물리적인 이유 말고도,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어쩐지 하지 말아야 할 일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지나치게 말초적으로 재밌어서일까? 왜 우리가 재밌어하는 건 다 하지 말아야 할, 혹은 많이 하지는 말아야 할 것들일까. 아니면 그래서 재밌는 건가. 어쨌든.

그래서 수많은 영상 콘텐츠를 재밌게 보다가 이제는 ‘뭐 이렇게 볼 게 많아, 왜 이렇게 다 비슷해, 너무 많아서 질리네, 골라 보는 것도 피곤한 일이야’라고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짧고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들에, 순간의 재미에 빠지고 만 건 본인이면서 이제는 피로하다고 투덜거린다.

 

최근에 보기 시작한 유튜브 중에 <뜬뜬>이라는 채널의 <실비집>이라는 콘텐츠가 있다. 정확한 제목은 <본격 잠 오는 요리 콘텐츠 실비집>이다. 방송인 남창희 씨가 실비집 사장으로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고 그 손님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먹방 또는 쿡방의 일종 같기도 하고 토크쇼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다른 점은 매우 조용하다는 것이다.

남창희 씨가 그간 방송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토크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 받아주는, 공격적으로 웃음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당해주는 모멘트가 많았다. 더불어 몇 년째 진행해 오고 있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미스터 라디오>에서는 파트너 진행자인 윤정수가 앞뒤 없이 던지거나 질러(?)놓으면 잘 받아서 정리하고 맺고 끊어가며 수습해 가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수동적이며 크게 튀지 않는 가운데 잔잔하게 코미디 센스를 보여주는 정도의 방송인이었고 어쩌면 그래서 크게 화제 몰이를 한 적은 없는 캐릭터였다. 

 

<실비집>에서도 그의 그런 평소 캐릭터대로 조용조용한 말투와 약간의 유머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실은 입담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뜻밖에 매우 정갈하고도 능숙한 요리 솜씨이다. 특히 유난히 깔끔한 세팅과 매끄러운 조리 과정에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댓글이 많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손님은 목소리로만 출연한다는 점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제작진과 소소한 문답을 주고받으며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정도의 스몰톡을 나눈다. 주인장은 간간이 대화에 끼어들거나 혹은 주인장이 요리를 하고 있는 그 그림 위로 손님과 제작진의 대화가 들려온다. 마치 진짜 바가 있는 음식점에 앉아서 안쪽 오픈 주방의 요리 과정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조금은 멍하게 구경하고 있으면, 주인장이 미리 정갈하게 준비해 둔 재료를 곱게 썰고 정성스레 튀기고 소중하게 볶고 찌고 해서 아주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한 두 접시의 아름다운 음식을 내온다.

큰 웃음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눈물이나 과장도 아무것도 없다. 정말 소소하게 두런두런, 주변을 의식해서 너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자분자분 대화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다. 소소하지 않은 건 음식이다. 음식만큼은 단 한 그릇을 위해 최선을 다한 주인장의 열정과 정성이 돋보인다.

수요 없는 공급을 염려한 제작진의 우려와 달리, 1회가 9월 중순 현재 141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가장 최근에 올라온 4회도 이틀 만에 조회수 43만 회가 넘어가고 있다. 댓글들은 호평 일색인데 가장 주요한 반응은 ‘조용해서 좋다’ ‘마음이 편해진다’ 등이다. 온갖 콘텐츠에, 그 자극에 지친 이들이 모여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 채널을 보다가 수년 전 들었던 이야기 떠올랐다. 10여 년 전, 어떤 강연에서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의 관계자분이 나오셔서 앞으로의 콘텐츠 경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영상 하나를 소개했다. 노르웨이 아니면 핀란드쯤의 북유럽 나라의 콘텐츠였는데,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의 앞에 카메라를 달아 아무 내용도 편집도 대사나 하다못해 자막도 없이, 그저 눈 쌓인 풍경만 몇 시간이고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CCTV나 다름없는 그 영상이 뜻밖에도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대체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풍경만 이어지는 영상을 무슨 재미로 몇 시간씩 본다는 건지, 너무 잘 사는 선진 복지국가라 사람들이 되레 심심한 걸까. 괜히 좀 삐딱하게 꼬아보고 있는데 마음 한편에서는 ‘그런데 뭔가 궁금하긴 하네, 보면서 멍때리면 그것도 좋겠는걸’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 후 비슷한 콘텐츠들은 많아져서 그저 장작불이 타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보여주거나 파도치는 모습, 비가 내리는 거리 등을 찍은 영상들이 유튜브에 넘쳐난다. 우린 그 영상들은 때론 그저 틀어놓고 멍하게 보기도 하고, 혹은 자기 전에 ASMR로 들으며 잠을 청하는 백색소음으로 삼기도 하며 나름대로 소비하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처음 우리가 접했던 ‘영상 콘텐츠’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셈이다. 눈길을 사로잡고 스토리를 전하고 임팩트를 강조하며 간절하게 시청자에게 가 닿고 몰입시키며 사로잡길 원했던 영상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콘텐츠들이다.

이건 아마도 다들 지치고 피곤해서일 거다. ‘신문에 티브이에 월급봉투에 얽매이고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지친’ 탓에 쉬고 싶어서다. 도시와 콘텐츠와 트렌드와 부와 명예와 속도와 플렉스와... 끊임없이 따라가야 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진 거다. 그래서 또 <나는 자연인이다>가, <자연의 철학자들>이, <건축 탐구 집>의 수많은 전원주택과 그 거주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우린 그것을 빠져서 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슬쩍 어리둥절해진다. 쉬고 싶다면 영상을 안 봐야 하는 거 아닌가. TV를 끄고 유튜브를 끄고 넷플릭스와 디즈니와 왓챠도 재결제하지 말고 태블릿도 노트북도 다 덮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냥 다 덮고 다른 방에 넣어두고 문 닫고만 와도 될 텐데. 소파에서 일어나는 게 귀찮아서라도 안 볼 텐데. 아니, 그냥 다 두고 슬리퍼 끌고 집 밖으로만 나가도 하늘은 보일 텐데 말이다.

 

문득 전공인 드라마를 떠올린다. 드라마에서도 그런 부류의 작품들이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같은 작품들이다. 얼마 전 공개됐던 <박하경 여행기>도 아마 그런 결이 아닐까, 아직 보지 않았지만 짐작해 본다. 강력한 서사가 없기에 짧은 러닝타임을 가져가지 않았을까. 이름을 내세운 여행기라니, 포스터의 분위기대로 여유롭고 편안한 드라마가 아닐지. 대박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본 사람들에게는 호평이 많았다. 궁금해지면서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이건 웨이브에 있네? 그럼, 다음 달은 웨이브를 구독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왕 구독한 거 웨이브에서 볼만한 다른 콘텐츠들은 뭐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는걸. 그걸 또 검색해야겠네. 아니, 일단 요약본으로 내용을 확인해야 하나.

아, 다시 콘텐츠의 굴레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 사진 출처-유튜브 캡처, 본인 촬영 

 

글·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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