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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재벌집 막내아들> 다시 '읽기' - 현실감각을 강화하는 4가지 서사전략
[김민정의 문화톡톡] <재벌집 막내아들> 다시 '읽기' - 현실감각을 강화하는 4가지 서사전략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3.10.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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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공식 포스터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 공식 포스터

지난 9월 <재벌집 막내아들>은 ’서울드라마어워즈 2023‘ 국제경쟁부문 미니시리즈 작품상 수상에 이어 국제 에미상(International Emmy Awards) TV 영화·미니시리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제 에미상은 캐나다의 반프 TV 페스티벌,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3대 방송상으로 불린다. 그렇다. 지금이 2022년 최고의 화제작 <재벌집 막내아들>을 다시 '읽기'에 최고의 타이밍이다.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 연재 당시 이미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흥행 보증수표였다. 드라마 제작사 래몽래인은 IP확보를 위해 176억 원을 공동투자하며 단순 외주 제작을 넘어 판권과 2차 판매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할 정도였다. 드라마 줄거리는 간단하다. ‘재벌 총수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살해당한 후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산다.’

드라마는 픽션이다. 정확히는 현실에 있을 법한 허구의 세계를 다룬 픽션이다. 드라마는 현실에 기반하되 현실에는 없는, 그래서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러니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드라마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국 드라마의 최신 트렌드인 ‘사적 복수’와 웹툰과 웹소설의 흥행 공식인 ‘회귀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드라마의 환상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는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다크 히어로물은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는 과정을 다루지만 회귀물과 결합한 사적 복수는 그런 지난한 노력의 과정 없이 다시 태어나는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때문에 서사 속도가 더 빠르고, 보는 사람에게는 더 큰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고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산다는 설정은 서사적 개연성 측면에서 시청자의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위험 요소임이 분명하다. 드라마 <펜트하우스>(2022)의 경우, 극 중 주요 인물들이 연이어 사망하고, 그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인냥 다시 살아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인위적인 서사 전개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렇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실과 판타지의 적절한 균형값을 어떻게 맞춘 것일까. <재벌집 막내아들>은 캐릭터의 판타지성을 부각시켜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하는 한편 드라마에 내재한 ‘현실 감각’을 강화하는 전략을 통해 작품 자체의 내적 완결성을 높인다. 그 결과, 최고 시청률 26.9%로 JTBC의 역대 드라마 시청률 중 2위를 기록하였고 세계적인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현실 감각을 강화하는 4가지 서사 전략

 

1. 시대 감각

 

드라마 초반,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주인공 윤현우가 아니라 진양철 회장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요 배경은 순양 그룹으로 극 중 진양철 회장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굴곡진 역사의 흐름 안에서 뚝심 있게 회사를 키워온 입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YS와 DJ 단일화 결렬, KAL기 폭파사건, 분당 땅값 상승, IMF, 월드컵 4강 진출… 드라마에 활용된 역사적 사건은 드라마와 현실의 싱크로율을 높임으로써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불굴의 의지로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진양철 회장의 추진력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모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연상시키며 2022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롤모델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확실한 미래와 만성화된 절망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디폴트값이 되었다. 극 중 기업을 지키고 혁신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진양철 회장의 자본주의적 신념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악역마저 응원하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2. 세대 감각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디어로서 TV의 의존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OTT를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 선호도가 큰 폭으로 상승하였으며 이는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의 세대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본방사수’의 시청방식은 이제 기본 설정값이 아니다. ‘몰아보기’와 ‘다시보기’, 혹은 드라마 소개 유튜브 동영상으로 ‘요약보기’까지 다양한 시청방식이 공존한다. 방영과 시청이라는 직선적 시간관이 해체되고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서 언제든 시청이 가능한 순환적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방영 당시에는 저조한 시청률 탓에 ‘죽은’ 드라마도 ‘알고리즘의 신’(알신)의 간택을 받으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 무한 순환의 유니버스가 열린 것이다.

'이번생은 망했다'는 의미의 '이생망'이란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망했다''는 것에 주목해 MZ세대의 절망에 주목했지만 지금 이 말은 다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다음 생은 망하지 않을 수 있다. 웹소설과 웹툰에서 일명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설정이 성공 법칙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배경에는 N차 인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환적 미디어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같은 플레이를 반복하는 게임 콘텐츠에 대한 경험치가 다른 세대에 비해 현저히 높은 2049세대에게 <재벌집 막내아들> 속 윤현우의 2차 인생은 멀티버스에 사는 또 하나의 ‘나’로 인식되어 이질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3. 미래 감각

 

드라마 속 주인공의 N차 인생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드라마 속 ‘알고 보는 추리 서사’라는 독특한 트렌드와 결을 같이 한다.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2022)은 살해를 당한 후 다시 과거로 돌아와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인생 2회차 복수극으로 드라마의 주요 서사가 주인공과 시청자 모두에게 이미 공유된 상황에서 진행된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 다 알지만 드라마는 사실적인 실감과 함께 극적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사연 많은 죽음이 아니라 ‘미래를 아는 예지력’이다. 이것이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로 대표되는 드라마 작가 김순옥의 ‘막장 부활’ 세계관과 구별되는 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30대 대기업 비서팀장 윤현우는 살해당한 다음 1987년 10대 초등학생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미래를 알고 있는 윤현우는 승승장구하며 기업 후계자로 등극하는 데 성공한다. 고난은 미리 피하고, 기회는 미리 잡는다. 그렇게 윤현우의 성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확실성에 대한 강한 반감 또는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이 시대의 새로운 미래 감각, 그것이 바로 ‘알고 보는 드라마’ 속 N차 인생이 시청자에게 주는 정서적 편안함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다.

 

4. 계급 감각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계급 갈등이 악화하면서 갑과 을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점차 한국 드라마의 누적 시청 시간이 늘어나면서 세계 인식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는 ‘갑에 의해 핍박받는 분노에 찬 을’이 아닌 ‘이상적인 갑이 되기 위해 고뇌하는 을’의 모습이 등장한다.

드라마 <슈룹>(2022)은 후궁 출신으로 서자인 아들을 왕위에 앉힌 대비와 집안 좋은 다른 후보를 제치고 세자빈이 되었던 중전, 즉 신분 사회인 조선 시대에서 신분 상승을 이루어낸 두 여성의 대립 구도를 통해 ‘성공한 을’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천착한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금수저>(2022) 또한 극 중 금수저 이승찬과 흙수저 황태용의 삶이 여러 번 바뀌면서 그 과정에서 갑과 을의 존재론적 성찰을 유도하는 주제 의식을 다층적으로 담아낸다.

<재벌집 막내아들> 속 세계는 갑과 을의 이분법적 구분이 명확하지만 윤현우의 2차 인생을 통해 이상적인 갑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을의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국 드라마가 그려낸 평면적 세계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특히 선과 악의 중립지대에 존재하는 진양철 회장의 남다른 행보는 사회지도층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발휘하며 K-드라마 속 세계관의 확장을 예고하기에 충분하다.

 

<재벌집 막내아들> 엔딩을 대하는 태도

 

안타깝게도 <재벌집 막내아들>은 마지막 회가 방영되고 나서 16부작을 정주행했던 시청자들로부터 분노와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용두사미”라는 점잖은 혹평부터 “재벌집이 국밥집이 되었다”라는 모욕적인 비아냥까지 다양한 비난과 비판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극 중 윤현우가 진도준으로 살았던 17년의 회귀 인생이 모두 '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첫 화에서 납치돼 총을 맞은 윤현우가 일주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그동안 진도준의 17년의 삶을 꿈으로 체험한 것이다.

윤현우의 2회차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극적 설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벌집 막내아들>의 현실 감각을 강화하기 위한 서사전략의 일환이다. 재벌 비서가 재벌 후계자로 다시 태어나는 설정의 허구를 스스로 부인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판타지의 세계에서 엄연한 현실로 돌아갈 것을 비정하게 요구한 것이다. 판타지로 기운 서사의 균형을 현실과 정직하게 맞추고자 한 용감한 엔딩 전략은 불행히도 제작진(작가)이 각오한 것보다 훨씬 참혹한 결과에 직면했다.

<재벌집 막내아들> 엔딩에 쏟아진 시청자들의 혹평은 그동안 드라마를 향한 뜨거웠던 호응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방영 내내 현실감을 기반으로 판타지로 달려가는 이야기에 열광하며 쫓아온 시청자들에게 갑자기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현실은 드라마가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드라마 밖의 냉엄한 현실이 날마다 일깨워준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엔딩에 대한 격렬한 반발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재벌집 막내아들>이 2022년 최고의 화제작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해외 판권은 일찌감치 팔려 글로벌 170여 개국의 방영을 확정했고,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국내외 메이저 OTT 세 군데에 업로드되어 세계 어디서든 <재벌집 막내아들>을 볼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170개국을 돌고 난 다음, 2023년 그리고 앞으로 K-드라마는 윤현우의 꿈을 진도준의 현실로 바꾸기 위한 어떤 기획을 내놓을까. 드라마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네버엔딩 시즌제 드라마처럼 현재 진행형이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과 르몽드문화평론가상, 그리고 2022년 중앙대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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