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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문화톡톡] 오늘의 교육이 향하는 곳
[이인숙의 문화톡톡] 오늘의 교육이 향하는 곳
  • 이인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10.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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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해보는 것

참 편해진 세상이다. 밥이나 반찬이나 옷이나 가구 등 온라인에서 소개하는 상품들을 클릭만하면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시대이니 무엇인가를 만들 필요도 없고 어떻게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의 밥상이 어느 가정이든 모두 같아 진다는 사실과 우리의 입맛이 그러한 상품에 익숙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가게 되면 보통 박물관이나 공연장, 시장이나 유명관광지를 가는 경우가 있다. 타지의 이색적인 문화를 느끼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그 곳의 생활방식이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문화를 이해하고 싶기도 해서 일 것이다. 과거 우리는 우리와 다름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문화를 체험 해보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지역을 둘러보고 역사적 흔적과 전통의 의식, 예술 등을 보면서 그 다름을 이해하고 느끼고 누리곤 했다. 기꺼이 어느 정도의 고생과 피곤함을 감수하고 설레는 긴장감을 즐기기 까지 한다. 그것이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방식을 더욱 다양하게 한다고 여겼고 그것이 곧 여행의 즐거움이자 여행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참여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는 것 자체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 같다. 3D 가상여행, 온라인 공연,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도시나 농촌이나 동내 또래 아이들이 축구나, 농구 등 모여서 함께 노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다양한 스포츠활동이나 경기가 점점 많아지는데도 사람들은 보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 내가 해보고 땀 흘려 보는 것이 아니라 유명 운동선수의 경기나 국가간 대표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스포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회환경의 변화, 가족구성원과 가옥 구조의 변화 시간사용과 생활 양식의 변화 등 여러 요소들이 이러한 변화를 초래하긴 했지만 실제로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까지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 한다.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대략 그럴 것 이라고 추측하며 이미 잘 알게 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실제 참가해서 하는 것 보다 보는 것에 점점 익숙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것과 하는 것,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온종일 휴대폰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알게는 되겠지만 실제로 가슴에 와 닫지 않는 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방법도 알고 규칙도 알지만 실제 내가 하지 않는 것, 경기를 보면서 선수의 실수나 발휘하지 못하는 실력에 대한 비평은 논리적으로 잘 한다.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나 팀이 잘하면 내가 잘한 것인 양 기분이 좋다. 그렇지 못하면 가차없이 비평하고 나무란다. 우리 삶의 어느 부분은 그렇게 목청 높여 응원하고 훈수를 두고 같이 승리의 기쁨을 누려보는 그런 즐거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직접 해보는 것의 즐거움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배움은 보는 것으로도 일정부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봄으로써 생각과 현실의 오차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 책이나 보는 것으로 얻을 수 없는 많은 경험과 배움을 얻게 된다. 실제 시도하고 겪어내면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내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체득되는 배움은 잃어 버릴 수 없고 남이 가져갈 수도 없는 소중한 나의 재산이 될 것이다.

현대는 더욱더 다양한 문화소비재가 넘쳐난다. 볼 거리, 놀 거리 먹을 거리들이 우리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모두들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은 상상을 초월한 컨텐츠를 탑재하고 있어 그것 하나로도 생활에 어려움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과 변화는 우리를 조급하고 긴장하게 한다. 변화에 적응하고 발전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또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있다. 문제는 그 변화의 주기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숨이 차도록 헐떡거려도 늘 새로움에 당황하고 변화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다. 이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의 경우도 그 안의 시스템을 다 알지도 못하고 사용해보지도 못했는데 다시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출시되어 예전 것은 활용빈도가 점점 없어지게 되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배우고 사용할만하면 다시 새로운 것으로 대치되는 이 속도를 감히 따라 잡기가 벅차다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지?

다가올 시대의 인재는 지식의 습득이 아닌 창의력, 소통능력, 적응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 예측해 본다. 이제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이다. (Kevin Allocca 2018) 지식이나 학문적 배경 등 얼마나 알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스펙(spec)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체 활용 능력과 다중 연계 능력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대 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체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전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간단한 은행업무를 처리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누구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요즘은 식당에서 주문도 기계로 해야 하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문을 못해서 먹는 것 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정보문화 시대의 삶의 편익 이면에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소외 당하거나 적응이 어려워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혼란스러운 정보로 사람들을 속이고 부정한 이익을 취하는 부류들도 있다. 또 다른 양극화 현상이 발생되고 부작용을 양산 한다. 예전에 배워 보지도 못한 것들이 별 것 아닌 일상에서 조차 당황하고 위축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가 겪는 불편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에 더 전전 긍긍 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할 지 두려움이 앞서는 세대들이 있다.

휴대폰으로 검색만 하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바로 찾을 수 있고 심지어 길도 가르쳐주고 방법도 가르쳐준다. 손 안에 하나씩 들고 다니는 공연장처럼 시간이나 공백이 생기면 음악도 듣고 공연도 본다, 공부도 할 수 있고 다른 언어의 뉴스도 바로 번역해서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렵게 손바닥 맞아가며 외우던 영어 단어도 지금은 크게 소용이 없어 보인다. 유능한 번역기가 빠르고 기막히게 번역을 해주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처럼 편리하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알 수 있는데 앞으로 학교가 필요할까?

우리나라의 학교는 이미 교육이 이루어 지는 곳이 아니다. 학교는 단지 지식을 축적하고 점수를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서의 의미만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학교는 앞으로 크게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 교육은 단순히 많이 알게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교육은 배우고 깨닫고 그를 통해 성장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현대 젊은이들은 정말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감정을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과거의 우리들이 가졌던 절실함이나 절박함도 없다. 소위 엄마가 다 관리 해 주고, 계획해 주고, 준비해 주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저 성적만 좋으면 집에서나 학교에서 대접을 받는다. 하물며 군대에서도 무슨 일이 있으면 당사자가 아니라 엄마가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배움을 통해 자발성과 창조성을 조장시켜 자립을 키워주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적·실용적으로 넓고 깊게 체득해야 할 그 자리에 활용할 수 없는 지식만 가득한 결과만 있어서는 아닐까?

 

우리는 평생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평생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배워야 할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요즘 나이가 들어갈수록 배우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무엇인가를 다시 배워보려고 교재도 사고 인터넷 강의도 듣곤 하는데 책이나 자료를 볼 때는 다 알 것 같은데도 돌아서면 하나도 모르겠을 때가 그렇다. 새로 나온 전문 용어나 문장을 이해하고 외우기도 하지만 그 또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매일 업그레이드 되는 인터넷의 시스템과 새로운 전문용어들로 이제는 공포스러움 마저 느낀다. 잘못 이해했거나 잘못 눌러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좀처럼 해소 되지 않는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즉, 교육(敎育)은 그 글자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해석으로도 그 근본과 방법, 개념을 알 수 있다. 교(敎)는 본받음[效]·가르침[訓]·알림[告]·훈계(訓戒)· 학문[學]·도덕(道德) · 종교(宗敎)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고, ‘방향을 제시하고 그 곳으로 이끈다’는 뜻과 ‘모범을 보이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육(育)은 기름[養]·낳음[生]·자람[成]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육성한다. ’·‘올바르게 자라남.’ 등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곧 배움을 통해 바르게 성장해 간다는 의미이다.

교육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에서 배우고 영향을 받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관습이나 도덕, 윤리, 규정을 비롯하여 그 사회의 이념, 철학, 가치관, 그리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삶의 전 과정에서의 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익힌다. 그래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까지 평생을 배움과 익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시대의 가정교육은 이미 퇴색해 가고 있다. 교육을 시켜야 할 대상과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간의 소통이나 관계가 모호해 진지 오래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지식과 성적에 집중하게 된 것인 지도 모른다. 초 경쟁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미래 세대들은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성과로 평가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적응하게 된 것 일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평생교육, 사회교육이 제대로 그 기능이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보여지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능 습득에 초점을 맞추고 반드시 알아야 할 인터넷, 미디어 사용의 윤리나 예의, 배려, 부작용에 대한 교육은 전혀 없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더욱이 노년층이나 사회취약계층들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재교육이나 보충교육 등에 대한 접근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교육이 정말 교육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과학 정보기술 및 미디어 문화의 확산은 소통과 생활방식의 변화 이외에도 공연예술에의 접근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서 더 빠르고,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정보와 문화들을 제공 받을 수 있고 공연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에 따라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를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의 대화,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한 사회, 정작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족이나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은 점점 단절 되어가는 느낌이다. 같은 동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런 점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사람과의 대화 보다 매체를 통한 대화나 소통이 더욱 쉬운 시대, 실제 사람들과의 소통은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한 시대,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는 문제이다.

기계와 자동화, AI, 시대에 묻혀 사는 우리 또한 기계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하는 기계, 돈 버는 기계,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부속품과 같은 …

 

교육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편익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초.중.고 학교의 교육은 이미 교육의 의미로서의 교육은 아닌 것 같다. 나아가 대학교육도 적극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와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가장 적응이 늦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육이 아닌가 한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그에 요구되는 합리적인 교육과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 아닌가? 그러나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의 교육과정은 그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 그래서 졸업을 한 후나 취업을 위해서 다른 전문 학원 등을 찾아 새로운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대학교육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충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평생 배우면서 알아가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한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너무 손쉽게 이미 축적된 다량의 데이터를 통해 눈으로 본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창의적이거나 새로움에 대해 둔해졌을 뿐이다.

넘쳐 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세상 이치나 도리를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로움은 알고 있는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그 지식을 통해 세상을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통찰력(洞察力) 그리고 실제 실현하는 과정에서 체득되는 가치 있는 것이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있으면서 북경수도사범대학교 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부학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청주시 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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