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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의 문화톡톡] 찌질하고 구차한 기억 앞으로 되돌아가는 그 사소한 용기 <어바웃 타임>(리처드 커티스, 2013)
[이지혜의 문화톡톡] 찌질하고 구차한 기억 앞으로 되돌아가는 그 사소한 용기 <어바웃 타임>(리처드 커티스, 2013)
  • 이지혜(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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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여가 사이를 채우는 OTT콘텐츠 추천(6)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스물 한 살 되던 날 아침 ‘팀’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집안의 남자들에게만 대대로 전승된 특별한 능력인 ‘시간여행’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여행은 수상하다. 미래로 갈 수 없고, 과거로만 갈 수 있다. 역사에 흔적을 남기거나 영향을 끼칠 수도 없다. 멋지게 타임머신을 타거나, 굉장한 효과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벽장이나 화장실 등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두 주먹을 질끈 쥐고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할 수 있다. 그것도 선명히 기억나는 과거를 떠올려야 돌아갈 수 있다.

 

되돌리지 않을 결심, 말하지 않을 의지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에 대해 알게 된 팀은 주먹을 쥐고 다른 날도 아닌 바로 전날 밤으로 돌아간다. 새해를 맞이하며 가졌던 키스 타임에서 ‘젠틀한 영국 남자’처럼 능숙한 행동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상처를 준 자신을 만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주먹을 쥐는 행위는, 선택이나 결정장애 현상을 해소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준다고 한다. 눈을 감는 행위는 두려움 및 회피와도 맞닿아 있다. 또 일반적으로는 싸움을 앞두고 의지를 다질 때 주먹을 쥐기도 한다. 하지만 두 행동의 또 다른 의미를 나는 '결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벽장 안에 숨어서 눈을 감고 주먹을 쥐는 것 행위는 사실 기억 속에 남을 만큼 찌질하고 구차했던 순간을 마주하기 위한 결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팀은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수정하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간다.

영화 초반, 팀은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한다. 팀은 “네 인생에서 뭐가 제일 필요하냐”는 아버지의 말에 “연애가 하고 싶어요. 사랑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아버지는 웃기만 할 뿐이다.

팀이 일종의 치트키인 ‘시간여행’을 사용해 멋지게 수정해 낸 인생 최고의 신년 파티는 치트키를 사용할 수 없는 여동생 킷캣에게 있어서 인생 최악의 파티가 된다. 팀이 시간여행을 사용해 멋진 가정과 직장을 갖고 성공적인 미래를 살아낸 것에 비해, 여동생은 신년 파티에서 만난 한량 남자친구로 인해 인생의 전반이 함몰되고 만다.

 

1"21"33 뭔가 고쳐야겠어. ()

1"21"41 뭔가 고쳐지려면 본인 마음이 있어야지, 아닐 수도 있고. (메리)

1"22"10 나는 골칫거린 가봐 집집마다 그런 사람들 꼭 있잖아. (킷캣)

 

넓은 의미에서 심리적 외상,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잘못된 믿음이 생겨나도록 하는 모든 경험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팀과 킷캣의 인생에 이른바 ‘빅 트라우마’라고 불릴 만한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 친구의 외도와 폭력 등에 오래 노출된 킷캣은 자신이 쓸모 없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팀은 괴로워하는 킷캣의 과거를 수정해주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능력을 킷캣과 공유한다. 사랑하는 아내 메리를 위해서도 아니고, 자식을 위해서도 아닌, 가문의 일족이자 혈육인 여동생 킷캣에게 능력을 고백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팀의 의지로 수정된 킷캣의 과거는 다행히 킷캣에게 꽤 괜찮은 현실을 데려온다. 그러나 부작용은 고스란히 팀의 몫이 된다.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뭔가 고쳐지려면 본인의 마음이 있어야지, 아닐 수도 있고.” 메리의 대사는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뭔가를 고칠 수는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 없이는 완벽하게 고칠 수 없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건의 재구성과 정면 도전이 필요하다. 결국 팀은 시간을 한번 더 되돌려 ‘킷캣’의 과거를 수정하지 않는다. 다만 킷캣이 입원한 병상 곁에 걸터앉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킷캣이 나아져서 더 나은 삶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가끔 힌트를 던져 줄 뿐이다. 팀의 아버지가 팀에게 모든것을 말하지 않고 웃었던 것과 같다.

 

엉망진창이어도 사랑할 용기

 

팀이 가장 열정적으로 주먹을 쥔 순간은 당연히 ‘사랑’에 관련된 순간이다. 첫사랑에 실패한 그는 두 달에 걸쳐 사랑을 성사시키기 위해 샐 수 없이 눈을 감고 주먹을 쥔다. 그리고 깨닫는다. 시간을 되돌려 매순간을 열심히 수정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팀의 삶은 ‘시간여행’만으로 180도 바뀌거나 좋아지지는 않는다.

팀과 메리는 비오는 날 결혼한다. 장대같은 비가 퍼붓고, 결혼식장이 망가지는 순간을 팀은 웃으며 바라만 본다. 하객들은 물론, 팀과 메리도 흠뻑 젖는다. 결혼식날 비가 온다는 것을 팀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정한다. 겪었기 때문에 알고 있고, 그래서 수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정하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팀은 비오는 결혼식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모른 척 메리에게 묻는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나?”

메리는 답한다.

아니, 최고야.”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인생은 비 오는 결혼식과 같다. 기쁨과 곤경이 한 번에 닥치고, 그것이 예상외로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당장 나쁜 결과라고 하더라도, 좋은 미래를 데려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생을 두 번 살 필요는 없다. 억지로 고칠 필요도 없다. 그저 살아가면, 살아내면 된다. 무엇보다도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순간을 포착해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 흘러가는 시간에 의지해서 열심히 성장하는 것.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이지혜

문화평론가. 16<쿨투라>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3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전북부문 심사위원,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A)으로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영화평론가 및 문화평론가로 활동중이다. 대중문화와 기술인문(AI,NFT,메타버스,GPT)을 연구하고 있다.

인스타: leehey_cine 이메일: leehe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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