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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타자화 그리고 경계지대: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에 관하여
여성의 타자화 그리고 경계지대: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에 관하여
  • 강만진 | 호서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23.12.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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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철저한 타자성을 지녀 온 존재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여성이다. 여성들은 어느 순간부터 타자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는 유목사회, 농경사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혁명의 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남성-주체, 여성-객체의 구도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즉, 여성은 단 한번도 ‘제1의 성’이 되어 본적이 없다. 남성과 이성을 주체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립 항으로 설정된 것을 여성으로 명명하고 타자화하는 남성중심적 이원론 체제에서 여성은 늘 상대적인 타자의 위치를 점유해 왔다. 주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브와르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타자화”로 여성들은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여성의 열등함은 여성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을 창조(실존)하기 위한 자기 초월의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의 “자기 타자화”로 인해 객체로서의 삶에 안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본래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항상 불평등한 맥락인 것만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에 대등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된 것은 여성들의 자기 타자화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보브와르는 이런 여성들의 자기 타자화로 인해 “여성들은 유사 이래 아무것도 스스로 쟁취하지 못했다”라고까지 얘기했다.

본 책에서 다루는 아시아의 다섯 도시의 산책하는 여성배우들은 ‘보는 이’이지만, 동시에 ‘보여지는 이’로서 주체와 관찰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이다. 복장전도, 중성적이거나 가학적 행동, 또는 통념을 뒤엎는 성역할을 보여주며 모순된 여성 이미지이지만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구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들로부터 또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뛰어 나왔지만 출구가 없는 것 같은 계속되는 터널을 걸으며 주변의 풍경들과 자신을 타자화하여 암울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극복의 의지를 잃어버린 존재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여성 산책자들의 자기 타자화도 보브와르의 지적과 같이 “아무것도 스스로 쟁취하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경계’는 배타적이라서 한편에서 바라보면 부분적인 진실을 얻을 뿐이다. 그것과 달리 ‘경계지대’는 경계를 희석하는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경계지대는 대립되는 쪽을 아우르는 전체적 진실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이쪽에도 저쪽의 요소가 있고 저쪽에도 이쪽의 요소가 있다. 연암 박지원은 경계란 양극단이 서로 맞닿은 임계(臨界)를 의미하는 것이고 도가 경계에 있다고, 즉, 도는 양극단 어디에도 있지 않고 중간 지대에 있다고 말한다. 대립하는 양극단을 지양(止揚)하고 중간인 경계지대를 주목하라는 뜻이다. 주체와 관찰자를 구분하는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닌 양쪽을 아우르고 넘나들 수 있는 그 사이를 봐야하는 이유이다.

남승석의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은 동아시아 영화 속 여성들의 걷기와 몸짓의 젠더적 함의뿐만 아니라 영상미학적 가치도 함께 탐구하면서 ‘여성 산책자’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들을 엄선하여 그 안에서 여성배우들이 여성 산책자들로 분한 연기를 분석하였는데 그것은 단순히 여성 산책자의 궤적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그녀들이 머무는 장소의 의미, 조우하고 함께하는 사람들로 인한 새로운 의미 등 심층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에 대한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또는 복장전도 같은 다소 급진적인 화두를 던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더욱 특징적인 것은 개인으로서의 여성 산책자의 고찰을 넘어 그녀들이 걸음과 몸짓과 관련지어 거시적인 이슈를 던져주었는데 천안문 사태와 같은 국가적, 이념적 트라우마, 또 지진과 같은 재해 사건들까지 조명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동아시아 도시를 걷는 여성들이 그 지역의 급격한 산업화와 정치적 변화, 그리고 여성의 역할과 지위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논의하고 영화가 그 변화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를 동아시아 도시를 걷는 여성의 시선을 통해 고찰”하고자 했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표현처럼 경계를 횡단하고 이원론적 지배 질서로부터 탈주하는 “유목민”으로서의 여성 산책자들의 산책이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는가를 떠나서 그것 자체로 “영화 속에서 영화도시라는 무빙 이미지를 생산”하며 “영화도시에 대한 젠더화된 서사적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존재”이고 “이들이 수행하는 몸짓은 사회적 상화작용의 지도일 뿐만 아니라 신화, 기억, 판타지, 욕망의 지도”라는 작가의 분석은 바로 경계지대를 제대로 주목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조금 더 나아가서 남성과 여성은 어떠한가? 우리가 그 경계가 아닌 경계지대를 바라보아 왔다면 여성이 제2의 성이 되었을 리도 없고 양성간의 타자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히 페미니즘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성 산책자들’에 대한 고찰도 특별히 필요 없을 것이다. 그저 휴머니즘과 ‘산책자들’이 존재할 뿐일 것이다.

 

 

글·강만진
호서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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