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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주 오래된 미래 학교폭력 1
[김정희의 문화톡톡] 아주 오래된 미래 학교폭력 1
  • 김정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4.02.1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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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쾡이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강으로 내려가면, 풀숲이나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둥둥 떠오는 빛이 보였다. 어느 밤엔 그 빛이 하나였고 어느 밤엔 오십 개가 넘었다. 다가가서 반딧불이를 붙잡았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 빛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가진다는 것은 빼앗는 것이니까. 

김탁환, 사랑과 혁명 

 

현실판 더 글로리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방영된 지 꼭 일 년이 지났다. <더 글로리>의 인기와 화제성은 매우 높았는데, 드라마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당시 국가수사본부장 후보가 2017년에 있었던 아들의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취임 하루 전 사임 했던 것을 보면 <더 글로리>의 영향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주저없이 <현실판 더 글로리>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더 글로리>의 현실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더 글로리>에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가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하는 결말인데, 학교폭력 가해자인 현실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입시에 있어 최종목표라 여겨지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고, 학교폭력 사건이 드러나는 모든 과정에서조차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더 글로리>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자퇴한 주인공은 다시 학교를 찾아가 가해자를 향해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라고 한다. 가해자 중 하나가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아 꿈을 향해 직진하는 주인공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한다. “그때 우리 어렸잖아. 다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폭력(暴力)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때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말한다. 영어의 violence는 ‘힘의 과잉’을 의미하는 라틴어 ‘violentus’와 ‘위반’을 의미하는 라틴어 ‘violare’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권리의 위반’을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폭력은 강제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학자에 따라서는 살인, 강도, 강간, 폭행, 상해, 협박, 공갈, 약취, 유인하는 행위 모두를 폭력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폭력은 학자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개인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으로 구분한다. 

청소년 폭력은 ‘청소년기라는 특정한 생득적· 환경적 성장 과정에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인과 대물에 관계없이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심리적· 물리적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학교폭력’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 

학교폭력은 학교라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폭력으로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청소년 폭력과 연결되기 때문에 청소년 폭력의 하위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청소년 폭력의 하위유형이라고 해서 청소년 폭력에 비해 폭력의 정도나 범위가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학교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로 나타나며 한편으로 “다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장난이라고 생각했어.” “친구라서 그런 건데 상대방이 예민한 것 같아.”라면서 문제 삼는 피해자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폭력은 <더 글로리>에 등장했던 2006년 청주 여고생 고데기 학폭 사건처럼 심각한 수위의 폭력만을 떠올리지만,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 속에서 사소하게 시작될 수 있고, 누구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죽음을 선택하게 했나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2004년 1월 29일 공포되어 7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고 관련법률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95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처럼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학생 및 보호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목적으로 한 시민단체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학교폭력의 피해로 16살 꽃다운 나이의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개인의 아픔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시민사회에 알리고 학교폭력 예방과 피해자 치유, 그리고 사회변화를 기본사회 가치로 활동하는 푸른나무재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청예단)을 설립하였고, 현재까지 전국 학교폭력 상담 전화, 청소년 전문 상담·지원, 학교폭력 화해·분쟁 조정, 학교폭력 실태조사 및 연구, 피해 학생 전담 지원센터 운영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종기 설립자는 2019년 61회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었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무색하게도 2011년 12월 20일.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학교 폭력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5장의 유서를 남긴 채 베란다에서 몸을 내던진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는 괴롭힘과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아차리고 있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학생의 죽음 이후에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이를 혼냈고, 그 모습이 담긴 유서를 읽은 엄마는 사건 당일의 고통과 재판 등의 사후 처리 진행 과정에서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과정을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라는 책으로 펴냈다. 

2012년이 되었다.

대구 중학생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되었고, 2월 6일 정부는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 학교폭력 관련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32쪽에 달하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최종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핵심사항 중 하나는 2012년 3월부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기재된 내용은 상급학교 진학 시 자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록 보존 기간: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졸업 후 5년, 고등학교는 10년).

한편, 경찰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학교폭력 가해자 소탕’에 나섰다. 2012년 1월부터 강력계 형사를 대거 투입해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가해 학생들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 경찰은 한 달 만에 평소보다 3배가량 많은 청소년 폭행 가해자를 구속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1만 8,739명이었던 검거자가 2012년 1월에만 1,193명이나 되었다. 구속자는 2011년 한 해 동안 52명(구속률 0.27%)에서 2012년 1월에 12명(구속률 1%)을 기록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죽음은 이어졌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4월에만 학생 세 명이 투신하여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이후 5월, 6월, 10월.... 2013년 3월 7일까지 대구에서만 14번째의 희생자가 나왔다.

 

 

글·김정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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