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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 하늘과 땅을 잇는 선택받은 존재, 인간의 파괴에서 자연의 생명으로
[서곡숙의 문화톡톡]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 하늘과 땅을 잇는 선택받은 존재, 인간의 파괴에서 자연의 생명으로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4.02.1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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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톱모션애니메이션과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은 정지해 있는 대상을 움직여 마치 대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기법이며, 프레임 단위의 촬영과 동작의 캐치 때문에 작업량이 많고 난이도가 상당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기법은 촬영할 대상의 모형을 만들고 조금씩 움직여가며 1프레임 단위로 계속 촬영해 편집하여 마치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영화 촬영 기술이다. 대표적인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닉 파크, 1989-)과 <크리스마스 악몽>(팀 버튼, 1995) 등이 있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박재범, 2023)은 2023년 주목받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는 48회 서울독립영화제의 새로운 선택상, 2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의 기술상, 59회 대종상영화제의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 19회 서울 인디애니페스트의 미리내로 대상, 미리내로 관객상, 10회 들꽃영화상의 신인감독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또한 이 작품은 7,962명의 관객을 동원해 애니메이션영화로서 대중성도 확보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눈과 얼음의 땅 예이스 마을에서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 그리샤가 원인 모를 병에 걸린 엄마를 살리기 위해 숲의 주인 붉은 곰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예이스의 그리샤와 연방군의 대결은 ‘생태적 인간’과 ‘경제적 인간’의 대립을 보여준다.

 

2. 자연과 문명: 숲의 주인의 신비한 힘과 도시의 약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전반부는 숲의 주인의 ‘신비한 힘’과 도시의 ‘약’을 대비시켜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나타낸다. 그리샤는 꿈과 현실에서 붉은 눈의 동물과 마주치면서 코피를 흘리고, 연방군의 대위와 바자크가 숲의 주인 사냥에 나서고, 샤먼할머니는 그리샤 엄마 슈라의 원인 모를 병은 숲의 주인이라면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도시로 약을 구하러 떠나고 그리샤는 숲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전반부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샤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붉은 눈의 동물을 볼 때마다 코피를 흘리고, 어머니는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지고, 샤먼할머니는 숲의 주인인 붉은 곰의 눈과 마주치면 신비한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숲의 주인에 대해서 예이스 마을의 그리샤 아버지 톡챠는 ‘이 땅을 지켜주는 분’이라고 말하는 반면, 연방군의 대위는 숲의 주인을 죽여 가죽, 명예, 돈을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 평화와 폭력의 대비를 보여준다. 하지만 톡챠는 아내 슈라의 원인 모를 병에 대해서 샤먼할머니의 굿과 숲의 주인의 신비한 힘을 ‘이야기’로 간주하고 도시로 약을 사러 떠나는 현실적인 면모를 보여 양가성을 드러낸다. 그리샤는 자신에게 계속 나타나는 붉은 눈의 동물이 샤먼할머니가 말하는 숲의 주인 붉은 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엄마를 낫게 할 신비한 힘을 찾아 떠난다. 전반부는 쓰러진 어머니와 숲의 주인을 중심으로 예이스 마을과 연방군을 통한 평화와 폭력의 대립, 아버지와 그리샤를 통한 문명과 자연의 대비를 그려낸다.

 

 

3. 엄마와 숲의 주인: 모성과 자연의 연계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중반부는 엄마와 숲의 주인을 통해 모성과 자연의 연계를 보여준다. 그리샤는 몰래 따라온 남동생 꼴랴와 동행하고, 늑대에게 쫓기다 숲의 주인과 만나지만 자신에게 함께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대위와 바자크의 마취총에 맞아 쓰러진 숲의 주인을 구해 함께 떠나고, 꼴랴는 대위와 바자크를 막다가 마취총에 맞아 쓰러진다. 바자크는 숲의 주인이 아내와 아이들이 죽어갈 때 지켜만 봤다는 점에서 저주라고 분노하여, 예이스 부족이면서 연방군 대위에게 협조해서 숲의 주인을 사냥한다.

 

그리샤는 숲의 주인의 신비한 힘을 이용해서 엄마를 살리고자 하지만, 숲의 주인은 그리샤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온 것이라며 자신을 따라가자고 제안한다. 그리샤는 엄마 살리기와 숲의 주인 살리기, 예이스 마을의 삶과 숲의 주인과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사적 가치와 공적 가치의 대비를 보여준다. “선택은 너의 몫”이라고 말할 때 숲의 주인 목소리와 엄마 슈라 목소리가 함께 나오면서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진 엄마 슈라와 죽어가는 숲의 주인 붉은 곰을 연결시킨다. 자연을 상징하는 숲의 주인과 모성을 상징하는 엄마가 죽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파괴로 치유의 힘을 잃어가는 땅을 나타낸다. 꼴랴는 예이스의 가면을 쓰고 대위에게 맞서지만 마취총에 맞아 쓰러짐으로써, 약자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 제국주의의 정복욕, 폭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여준다. 중반부는 숲의 주인과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샤를 통해 땅과 인간의 치유 문제를 드러내고, 예이스 마을의 꼴랴, 사냥꾼 바자크, 연방군 대위를 통해 평화, 갈등, 폭력을 대비시킨다.

 

 

4. 가죽과 열매: 소유와 공유의 대비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후반부는 가죽과 열매를 통해 소유와 공유의 가치관을 대비시킨다. 그리샤는 숲의 주인을 따라 초록 식물이 있는 동굴에 도착하고, 신비한 생명력을 가진 율과 열매를 숲의 주인과 꼴랴에게 먹여 살려내고, 대위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숲의 주인 배에서 열매를 꺼내고, 무너지는 동굴을 떠나 예이스 마을에 가서 완치된 엄마와 상봉한다.

 

숲의 주인은 툰드라의 생명력이 있는 율과 열매를 소유하지 않으며 땅의 것을 가져간 만큼 땅에 되갚아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유’의 가치를 상징한다. 대위는 툰드라를 지켜주는 신비한 존재인 숲의 주인을 죽임으로써 연방군의 정복을 달성하고 가죽을 벗겨 돈을 벌고자 한다는 점에서 ‘소유’의 가치를 상징한다. 그리샤는 숲의 주인의 붉은 눈과 마주치면서 시간 정지라는 신비한 힘을 얻게 된다. 시간이 정지한 가운데 그리샤와 숲의 주인만 움직이며, 생이 다한 숲의 주인이 그리샤에게 자신의 배를 갈라 열매를 꺼내서 가져가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샤가 “죽는 건가요?”라고 질문하자, 숲의 주인은 “생이 다 했을 뿐이다. 이 땅에서 바람이 되고 눈이 될 뿐이지. 나는 오늘 너를 낳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샤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머니시여. 저는 당신의 딸. 저는 오늘 당신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숲의 주인과 엄마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그리샤를 중심으로 육체적 생명력을 준 ‘엄마’ 슈라와 신비한 생명력을 준 ‘어머니’ 숲의 주인이 유대의 고리를 형성한다. 후반부는 천 년의 생명을 가져다주는 열매를 통해 숲의 주인의 신비한 힘과 공유의 정신을 보여주는 반면, 대위의 정복과 소유욕을 통해 제국주의의 폭력을 드러낸다.

 

 

5. 그리샤: 하늘과 땅을 잇는 선택받은 존재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선택받은 존재 그리샤를 통해 하늘과 땅을 잇는 자연의 신비한 힘을 그려낸다. 엄마 슈라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그리샤가 모험의 여정을 떠나게 만들며, ‘이 땅을 지켜주는 분’인 숲의 주인 붉은 곰과 가족을 지키는 모성의 엄마 슈라는 알레고리의 대유법을 보여준다. 그리샤는 숲의 주인에게 선택받은 존재로서 숲의 주인의 생명을 지켜내고 꼴랴를 구해내고 바스크의 분노를 잠재운다는 점에서 숲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공생과 치유를 계승하는 인물이다. 그리샤가 숲의 주인의 붉은 눈과 마주하면서 받은 신비한 힘은 두 가지, 즉 시간 정지와 영혼의 목소리 듣기이다. 그리샤는 시간을 정지시켜 숲의 주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의 계승을 다짐하며, 영혼의 목소리 듣기로 죽은 어미 순록을 정화시켜 영혼을 하늘로 보내준다.

이 영화는 더블링 기법을 통한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자연의 생명의 힘을 강조한다. 우선, 자연이 보여주는 죽음과 생명의 순환에 주목한다. 전반부에서 아버지 톡챠가 순록의 배를 가르고 나온 피를 땅에 바치면서 영혼이 좋은 곳에 가기를 기원하며, 후반부에서 딸 그리샤가 숲의 주인의 배를 가르고 나온 피 묻은 열매를 손에 쥐며 숲의 주인의 정신을 승계한다. 생명의 열매를 통해 숲의 주인의 죽음은 엄마의 삶으로 이어진다. 한 방울의 눈은 동굴을 파괴하지만, 엄마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숲의 주인은 죽지만, 딸 그리샤를 낳는다. 다음으로, 죽음과 생명, 하늘과 땅이 이어진다. 전반부에 어미 순록이 죽고 새끼 순록이 늑대에게 쫓기고, 중반부에 그리샤와 꼴랴가 늑대에게 쫓기고, 후반부에 새끼 순록이 예이스 마을의 슈라에게 찾아오고 그리샤가 어미 순록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준다. 이때 오로라의 빛과 어미 순록의 초록빛이 교차되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자연의 신비한 힘을 표현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경제적 인간’의 강제성, 소유, 물질적 집착과 ‘생태적 인간’의 다원성, 환경 존중, 존재, 공생을 통해 인간의 파괴와 자연의 생명을 대비시킨다.
 

사진 출처: 네이버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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