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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문화톡톡] 장식품이 된 스펙(Spec)
[이인숙의 문화톡톡] 장식품이 된 스펙(Spec)
  • 이인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4.03.1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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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나 선발에 필요한 학력, 학점, 각종 조건 등을 말할 때 보통 스펙이라 한다. 주로 실적, 능력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학력과 경력, 자격증의 유무 등등 나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내용이 포함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평가 받아야 할 때 일반적으로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경력을 지녔는가로 기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회사나 어떠한 기관, 나아가 결혼과정에서도 스펙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원서를 낼 때 이력서 및 자기 소개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실제 이력서에 있는 경력이나 학벌, 자격증이 업무에 어느 정도 유용하며 소용이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나 평가는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나아가 능력과 상관없는 부모의 사회적 위치, 가족의 직업, 집안의 배경 등도 스펙이 되는 시대이다.

우리나라처럼 성적이나 취업에서의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정말 개인이 원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 있으며 가치가 있는 일을 위해 준비하고 선택한 전공과 자격증이 얼마나 있을까? 사회적 경향, 분위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특히 일반적으로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고, 혹은 많은 자격증을 갖고 있음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에 나도 가지고 있는 정도로 스펙을 쌓는 경우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스펙은 자기의 가치를 높여 나를 선택하고자 하는 측에게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치를 보여 주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증명할 수 있는 증서로서의 경력과 능력이 우리가 제출하는 이력서일 것이다. 그래서 경쟁하듯 자격증을 획득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 많은 시간과 노력, 경비를 지불하고 그래도 모자라 자격증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쌓은 스펙도 나를 성공시키거나 더 만족한 삶으로 데려다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과 장애는 점점 높게 보여지고 좌절과 절망에 맞닿게 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가 몇 차례 실망으로 되돌아 오면 부모 탓도 하고 환경 탓, 사회 탓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렵게 갖춘 스팩은 효율적으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준비해온 많은 능력 중에서 아주 최소한의 부분, 혹은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업무를 하게 되기도 한다. 목적이나 전문분야에 맞게 활용되지 못하고 그저 이력서에 한 줄을 채우는 것으로, 장식품처럼 전시적이고 겉치장적인 나를 포장하는 용도로 전락해 버린다.

 

과잉 스펙의 시대

경력과 능력을 한 시대의 유행처럼 갖추고 나의 능력을 포장하는 용도로 쌓아온 결과물에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노력과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삶과 노력이 너무 허황되게 느껴진다. 석 .박사 학위를 두, 세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고, 여러 나라를 연수하면서 몇 개국의 언어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다 필요하고 귀한 일임에 틀림없다. 필요해서, 내 삶의 의미와 가치, 계획에 관련된 능력을 갖추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쓰임이나 효율보다 그저 갖추고 있기 위해 취득한 것이라면 너무 소비적이지 않은가? 이를 뒷바라지하는 부모나 가족 또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의 의지와 필요가 아니라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남들보다 좀더 좋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쌓은 고급 능력들. 어찌 보면 스펙을 쌓는 일이 마치 직업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과장된 시각인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능력과 기준을 요구하는 사회, 그 요구된 능력이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외국어, 자격증, 학벌 등 여건을 갖추고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과연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고는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의외의 사람이 의외의 분야에서 스펙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 하기까지 한다. 일단 들어가 보고 보자 라는 식의 자기 포장이 어쩌면 성공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 및 피해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부적절함이 생기고 만다. 주위에서 그렇지 못한 예를 여러 번 듣고 보아 왔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경비, 노력을 들여 쌓아 놓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소비적인가? 스펙 과잉시대의 젊은이들의 피로와 절망이 안쓰럽다.

 

스펙에 열중하는 사회 이미지 출처: PIXABAY
스펙에 열중하는 사회 / 출처: PIXABAY

 

스펙 보다 중요한 것

그러나 실제 내가 가지고 있는 창의력, 상상력, 성실함, 잠재력, 충성도, 가능성, 주관, 등은 스펙이 될 수 없다. 그것을 증명을 할 수 있는 증서나 증빙서류 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펙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이러한 장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결과물로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 일종의 진가로 인식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가를 물으면 대부분 일이 아닌 연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직장, 폼 나고 편한 직장을 원하고 있음을 대화 중 알게 된다.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지기에 괜찮은 직장을 원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이들 그러나 좋은 대우와 사회적으로 인정은 받고 싶은, 그런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일의 가치, 일에서 오는 즐거움과 보람, 그를 통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등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일면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에게 좋아 보이는 드라마 속의 직장인에 너무 심취해 있게 한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가치 있는 미래를 향한 비전과 방향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아프게 느낀다. 다 갖추어진 직장에서 내가 필요할까? 그런 직장이 있기는 한가? 나와 나의 일이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다 만들어진 어느 틀에, 역시 장식품처럼 한 장의 인증샷을 찍는 것 같은 허망한 직장을 원하는 사회가 안타깝다. 이러한 직장의 나는 언제나 다른 누구로도 가능하다. 지위나 조건, 연봉, 대우 보다 일에 자긍심과 일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가끔 TV에서 생활의 달인을 보게 된다. 이 프로를 보면서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그 일이 음식을 만드는 일이든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수공업이든 자신의 일(業)에 오랜 세월과 노력으로 전념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절실함도 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나 물건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좋고 맛있고 행복하게 해주고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하고자 하는 최선을 다한 그 달인의 진심이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일의 귀천을 떠나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과 오랜 시간을 견디어서 달인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말한다. 삶이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더 과도한 경쟁과 더욱 복잡하게 엉켜 있는 사회구조의 늪에 빠져 있다고, 앞으로 나아 갈수도, 멈출 수도, 되돌아 올 수도 없는 그런 거대한 늪에 빠져 있고 그 안에서 자기 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저 혼자 숨 쉬듯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한다. 어느 부분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가치 보다 지위, 직위에 더 조급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직업(職業)

김정태(2020 웅진씽크빅 p55~57)는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저서를 통해 직과 업을 나누어 이야기 한다. 직은(Occupation) 직장 내에서 담당 업무를 뜻하고 업(Vocation)평생을 통해 내가 매진하는 주제, 평생의 업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유능한 새로운 누군가로 쉽게 대체가 가능하고, 업은 시간이 갈수록 연륜이 쌓이고 누군가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즉, 업은 장인(Mastership)과 연결된다. 업은 나의 존재 그 자체이고 정체성인 것이다. 저자도 어디서 일하고 싶은지 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더 집중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업이 없으면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력서에는 차별점을 찾을 수 없다” 라는 말이 크게 공감이 된다.

 

일의 가치  출처 : PIXABAY
일의 가치 / 출처 : PIXABAY

과도한 경쟁,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휘둘려 소용도 없는 스펙을 쌓느라 시간과 젊음을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행이나 조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따르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란다. 유행은 지나면 가치를 잃는다 내가 잘하는 일, ’나’ 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되기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더해지면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하지 않겠는가?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그 뜻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부 공연예술전공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한국ESG위원회 공연예술위원회 위원장, 중국북경수도사범대학교과덕대학공연예술대 부학장역임, 청주 문화산업진흥재단 이사를 역임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 한국연기예술학회이사, 한국미래춤협회 이사, 한국무용과학회 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청주시 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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