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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드라마 '플레이, 플리' 가 치유를 말하는 방법
[송연주의 문화톡톡] 드라마 '플레이, 플리' 가 치유를 말하는 방법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4.03.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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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

도저히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선배들이 추천하는 글쓰기 방법이 있었다. 어느 가수의 앨범을 보라는 것이다. 한편의 앨범을 채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하나의 주제 아래 구성된 곡의 제목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만 보아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팁이다. 마감을 앞두고 글이 막힌 한때, 함께 글을 쓰는 동료와 하나의 앨범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내보았다. 같은 제목을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가족, 추억이 뿌리가 되어 생각을 길어 올렸다. 이야기는 곧 우리 각자의 서사였다.

방법을 바꾸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주제가 모호할 때,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자주 듣는 플레리스트를 열어본다.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여러 가수의 노래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여 있음을, 그 레파토리가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노래 제목은 말로 꺼내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는, 마음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지금 어디야-loopy, #대답해-jbj95

#집-짙은

#대충 입고 나와-우디

드라마 '플레이, 플리(2023)'에서 송한주(김향기)와 이도국(신현승)이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다. 서로의 비밀을 알아버렸을 때, 누가 먼저 말을 걸기 애매한 순간, 도국이 ‘미안해’라는 제목의 노래를 녹음해서 한주에게 보내고, 한주가 ‘#지금 어디야-loopy, #대답해-jbj95’라는 노래 제목으로 답을 한 것이다. 도국은 잠시 갸우뚱하다가 이내 한주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답을 한다. ‘#집-짙은’

 

드라마 '플레이, 플리' 포스터, 송한주와 이도국 Ⓒ http://playliststudio.kr/
'플레이, 플리' 포스터, 송한주와 이도국 Ⓒ http://playliststudio.kr/
 
새로운 시도, 드라마 '플레이, 플리'

2023년 겨울, 드라마 제작 현장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3년 이내에, 업계의 제작사 및 매니지먼트 회사 30퍼센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이 탄생했을 때, 채널이 늘어나는 만큼 드라마 제작 편수가 당연히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늘어났다. OTT 시장이 확장되고, 드라마 제작 편수가 더 늘어났다. 그동안 묻혀있던 작품들, 발 빠르게 기획되어 나온 작품들, 그리고 원작을 각색한 작품들이 속속들이 제작되고 K콘텐츠의 세계적 열풍으로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았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OTT 채널로 공급하기 위해서, 사전 제작 드라마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그렇게 제작 투자가 늘어나고 많은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지상파 채널은 더 이상 본방 사수를 하지 않는 시청 분위기로 인해 광고가 줄었고(이는 코로나19 유행의 영향도 있다), 드라마 편성 띠를 줄이기 시작했다.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금토드라마, 일요드라마까지 드라마 띠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OTT 쪽에서도 편성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그동안 제작사들이 IP발굴, 작품 기획개발에 힘썼기에, 그에 따라 편성과 제작을 기다리는 대본이 쌓여갔고, 넷플릭스의 경우 한 작품에 대해 검토 받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리고 제작을 마쳤으나 편성을 받지 못해 창고에 쌓인 작품이 80여 편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누군가는 100여 편이 될 것이라고까지 예상한다. 제작은 되지 못했지만, 기획비가 투자되어 대본 작업을 마친 작품들까지 손꼽아 보자면 정말 많은 작품이 제작을 기다리다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드라마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영화 제작은 코로나19 유행과 OTT 시장의 영향으로 드라마보다 앞서 시장이 작아졌다. 드라마 시장이 포화가 된 데는 영화감독, 각본가들이 드라마 작업을 하게 된 영향도 있다. 웹툰과 웹소설 시장에도 변화가 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구독층이 많이 늘었고, 주목받는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 판권 판매로 이어져 작가들에게 문이 열려있었다. 그사이 원작 판권료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웹툰과 웹소설은 조금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웹툰은 언어장벽이 낮기에 해외 시장으로 원작 판권판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K웹툰 모셔간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웹소설은 시장 내에서 작품 간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조회 수가 많은 기성작가의 신작도 런칭이 반려되는 경우가 있고, 독자보다 작가가 많다는 말까지 나온다.

해외 시장을 넓힌다는 면에서, 2023년 11월 18일에 티빙과 훌루 재팬에 동시 방영된 '플레이, 플리(연출 김종창, 극본 박윤성)'는 눈여겨 볼 작품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웹툰 '플레이, 플리'(작가 이에프)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로맨스물이다. 네이버 웹툰 측은 이 작품을 WEBTOON(네이버의 웹툰 서비스에서 지원하는 외국어 번역, 해외 연재 공식 플랫폼)에 중국어 간체자,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태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독일어, 중국어 정체로 번역 연재하였고 글로벌 누적 조회수가 2억에 달했다. 이 작품을 훌루 재팬이 드라마화 기획을 하고, 제작은 한국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가 맡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제작 지원을 했다. 훌루 재팬 오리지널로 방영되며 호평을 받았고, 훌루 재팬 한국 드라마/아시아 드라마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MZ세대와 중년 세대들까지 드라마를 보면서 치유의 느낌을 얻었다는 평가도 있다.

 
웹툰 원작과 각색의 사이

매체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뿐더러, 잘 알려진 원작을 각색하는 것은 제작진의 부담이 더 크다. 단순하게 원작과의 거리감이 ‘많거나, 적거나’가 좋은 각색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매체가 바뀌면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변화가 생길 수 있고, 영상매체의 장점을 살리려는 각색이 들어갈 수 있다. 또, 드라마의 경우, 회차가 많기 때문에, 웹툰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분량으로만 보아도 채울 것이 많다. '이태원 클라쓰'나 '무빙'처럼, 원작자가 극본을 집필하는 경우도 원작을 더 채우고 변형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원작자와 극본을 집필하는 작가가 다른 경우, 극본 작가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것도 신경을 쓴다. 저작인격권 때문이다.

저작권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나뉜다. 저작 재산권은 ‘영상화 권리’처럼 작품을 일정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권리이며,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 유지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일신에 전속되기 때문에 양도가 되지 않는다. 제작사가 원작자에게서 원작을 영상화할 권리를 일정 기간 양수는 하였더라도, 저작 인격권 측면에서 작품의 동일성 유지를 원작자가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변경은 제작사가 원작자와 협의(또는 합의)하여 진행하는 편이다. 아예 자유롭게 각색해도 된다고 열어두는 원작자가 있기도 하고, 다 변경해도 무방하나 최소한의 것은 유지해달라고 요청하는 원작자도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이름이나, 직업, 장소, 독특한 설정, 주제 등이다. 제작사는 이런 상황을 종합하여 원작 판권 구매를 결정한다. 평균 3년에서 5년 정도 기간을 계약하여 영상화 권리를 양수하는데, 기간 내에 영상화되지 못하면 판권은 다시 원작자에게로 돌아간다.

제작자가 원작 판권료를 지불하고, 때에 따라서는 수익 지분까지 지불하는 것을 감소하고 원작을 구매할 때는 분명 원작을 계약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별한 컨셉과 소재, 작가의 필력도 있겠다. 로맨스의 경우, 주인공들의 관계가 중요한데, 각색에서 내용을 많이 바꾸게 되더라도 대체로 이 관계는 변화하지 않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공식처럼 보이는 것이 서로 사랑하게 될 주인공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상극의 비밀을 가진 관계’라는 설정이다. 한 예로, 웹툰 '오늘도 사랑스럽개(작가 이혜)'을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연출 김대웅, 극본 백인아, 2023)'를 짚어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키스하면 개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여자’와 ‘학창 시절 트라우마로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다. 여자는 저주를 풀기 위해, 개로 변한 상태에서 남자와 키스해야만 한다. 이 설정을 드라마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플레이, 플리'도 원작 속 주인공들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유지했다. ‘유튜버 가수 플리라는 것을 감춘 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송한주’와 ‘아이돌이지만, 플리의 팬이 되어 플리와의 협업을 꿈꾸는 이도국’의 관계다. 둘은 학과 동기로 만나게 되는데, 한주는 도국이 자신의 팬인 것을 모른 채, 유명 아이돌로만 대한다. ‘한주는 자신이 플리라는 것을 끝까지 감출 수 있을까?’, ‘이도국은 플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뤄서 성덕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작은 플리와 이도국의 로맨스에 집중한다. 서로를 알아가고, 한주의 남사친 이막춘과 도국의 라이벌 관계, 그리고 한주와 도국이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 로맨스물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청춘들의 로맨스이지만,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웹툰이라는 매체상의 한계를 드라마로 옮긴다는 시도는 매체의 변화를 통해 이 작품이 얻게 되는 가장 큰 이점이라고 생각된다. 드라마는 이 설정에 ‘치유’의 코드를 더했다.

 

'플레이, 플리' 포스터, 한주와 도국의 우연한 만남과 이막춘의 등장 Ⓒ http://playliststudio.kr/
'플레이, 플리', 한주와 도국의 만남과 이막춘 Ⓒ http://playliststudio.kr/
 
드라마 '플레이, 플리'가 치유를 말하는 방법

드라마가 세대를 아우르며 치유의 느낌을 준 이유는, 플리를 찾으려는 도국과, 플리인 것을 감추려는 한주의 관계에 더해, 한주의 가족서사를 구축하면서 로맨스와 치유의 서사가 공존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도국은 한주가 플리인 것을 모른 채, 한주에게 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한주는 자신이 플리인 것을 숨기고, 도국이 플리를 찾는 것을 가짜로 도와준다. 그리고 도국이 한주를 플리로 알아보는 과정, 알아보았다는 것을 한주에게 숨기고, 들키고, 한주가 플리임을 고백하게 만드는 과정까지 시청자는 하나씩 하나씩 정보를 채워가며 드라마를 즐기게 된다. 그런데, 한주는 왜 자신이 플리라는 것을 감추는가? 라는 질문은 원작 웹툰을 보면서도 갖게 되는 질문이다. 드라마가 한주의 가족 서사와 가족의 치유를 가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한주가 왜 그런 행동을 할까?’라는 질문에 드라마다운 답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제작진을 보면, 어떤 구상을 했을지 유추가 된다.
김종창 감독은 최수종, 배용준 주연의 드라마 ‘첫사랑(1996)’을 연출하여 시청률과 극적인 면에서 화제성 높은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그대 나를 부를 때(1997)’, ‘종이학(1998)’, ‘동양극장(2001)’, ‘햇빛사냥(2002)’, ‘노란손수건(2003)’, 한가인, 채시라 주연의 ‘애정의 조건(2004)’ 등, 청춘과 가족, 성장을 다룬 작품을 연출했다. 고 최진실, 손현주 주연의 ‘장미빛 인생(2005)’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여성이 겪는 생의 마지막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제43회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연출상도 수상했다. 이후 ‘행복한 여자(2007)’, ‘미워도 다시 한번(2009)’, ‘가시나무새(2011)’, ‘Miss맘마미아(2015)’를 거쳐, KBS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2019)’을 연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김종창 감독의 작품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과 화해, 성장이 주를 이루었다. 그랬던 그가 ‘플레이, 플리’를 연출했다. 극본을 맡은 박윤성 작가의 풋풋한 감성과 김종창 감독 특유의 가족 이야기가 어우러진 것이다.

드라마가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는, 한주가 왜 플리인 것을 숨길 수밖에 없는지, 그 행동의 뿌리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작가이자 가족치료사인 버지니아 사티어(1916~1988)의 빙산탐색 과정이 떠오른다. 사티어는 사람의 행동이 수면 위의 빙산이라고 말한다. 수면에 대처방식이, 수면 아래 빙산에는 감정, 지각, 기대, 열망 그리고 수면 가장 밑바닥에 자기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한주가 자신의 빙산을 탐색하는 과정이 녹아있다. 그 끝은 아빠와(양동근)의 화해와 성장이다.

송한주는 유튜버 플리인 것을 감추려는 행동을 심지어 엄청나게 노력해서 한다. 고모 집에 얹혀살면서, 고모, 고모부, 사촌에게까지도 자신이 노래하는 것은 비밀이다. 아빠가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오자, 부랴부랴 집에 가서 키보드와 기타를 치워놓고, 평범하게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인 모습만을 보여준다. 한주의 내면 아래에는 플리라는 것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가족의 서사가 흐른다. 한주가 가족과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회유형'의 의사소통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가치와 감정을 누르며 가족이 듣고 싶은 말을 한다.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던 한주의 엄마(강성연)는 한주의 아빠와 결혼했고, 어려워진 형편에 한주를 양육하면서 가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한주의 엄마는 한주가 아홉 살이 되던 해, 꿈을 찾아 집을 떠났다. 한주는 엄마가 떠나버린 슬픔, 혼자가 된 아빠의 굳은 뒷모습을 보며 자랐고, 자기 내면에 꿈틀거리는 가수에 대한 꿈을 접어두고 살아야 했다. 더해서, 엄마처럼 가수가 되거나 노래를 하는 것은 ‘죄’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이 한주의 내면 빙산의 깊은 뿌리다. 한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서사를 깰 수 없었다. 그러나 꿈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얼굴 없는 유튜버 플리로 활동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대학생, 취업해야만 하는 4학년. 밤에는 뮤직홀이 있는 술집 ‘검은 고양이’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낮에는 자전거를 타며 배달의 민족 배달도 하고, 대한민국 거의 모든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한주를 숨 쉬게 하는 것은 기타와 노래다. 비록 커버 곡을 부르기는 하지만, 틈틈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적은 창작곡도 발표한다. 팬들도 제법 있는데, 그중에 아이돌 가수 이도국이 있다.

원작의 도국은 순정 만화 주인공다운 모습이라면, 드라마의 도국은 겉은 아이돌, 속은 허당인 인물이다. 무모하고 빈틈이 많지만 착한 사람이다. 한물간 아이돌 가수지만, 소속사 대표에게 자신이 더 뜨지 못한 것은 대표가 투자를 더 하지 않은 탓이라며 큰소리를 치는 뻔뻔함과 귀여움도 있다. 발연기로 욕도 먹고, 가수 솔로 앨범을 냈다가 폭망도 겪어 보았다. 힘든 연예계 생활에 유일하게 무릎 꿇고 핸드폰을 보게 만드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솔로 앨범을 망하게 만든 유튜버 가수, 플리, 한주다. 도국의 곡을 커버해서, 원곡보다 나은 커버 곡을 부른 유튜버 플리. 도국은 플리의 실력을 인정하며 플리를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플리를 찾아 콜라보레이션을 하리라 꿈꾼다. 플리를 찾기 위한 단서는 플리의 목소리와 유튜브 화면에 보이는 얼굴 아래의 비주얼뿐이다. 긴 머리, 독특한 기타 피스. 작은 단서지만, 도국은 한주를 만나 한주가 플리라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한주가 플리로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도국의 가볍고도 지르고 보는 무모한 성향이 한주의 빙산을 끌어낸다.

한주가 ‘회유형’의 태도를 보였다면, 도국은 ‘일치형’ 태도를 보인다. 일도 사랑도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에 충만한 기쁨도 느낀다. 뻔뻔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제 파악도 잘 되어있어서 굽힐 줄도 안다. 자아존중감이 높고 한주의 마음에 따라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매력도 있다.

이제 감추려는 한주와 끌어내려는 도국이 아이러니하게 로맨스를 형성한다. 도국이 플리(한주)에게 던지는 응원은, 엄마에 대한 기억에 메어서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지 못했던 한주가, 자신의 욕망과 생활을 일치시켜 보겠다는 용기를 내게 만든다.

한주와 도국 주변의 인물도 ‘무모함을 향한 도전’을 지지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의대를 관두고 방송국 피디가 된 도국의 사촌 누나, 남들 다 취직하고 잘 나갈 때 혼자서 밴드를 하며 오랜 시간 ‘검은 고양이’를 운영하는 한주네 사장, 그리고 나쁜 남편이었지만, 나쁜 아빠는 되지 않겠다고 고백하며 한주를 응원하는 한주의 아빠다. 모두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내면의 자기를 들여다보고 세상 밖으로 나간 한주는 자신이 플리임을 드러내고, 도국과 듀엣을 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사건이 한주를 흔들지만, 한주의 중심은 오로지 음악에 있다. 한주의 변화와 성장, 아빠와 소통하는 부분에서 시청자는 ‘치유’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주에게 도국은 어긋난 자신을 일치하게 만들고, 자신의 서사를 털어놓게 하는 인물이었다. 유튜브 속에서 노래하는 플리(한주)를 도국은 동경했고, 잘하지는 못해도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도국이 노래하는 것을 바라보는 한주는 도국에게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예술이 되어준 것이다.

 
다시, 플레이리스트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행동을 끌어낼 때가 있다. 아빠를 보러 고향에 내려가는 한주가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것을 보여준다. 오래된 MP3에 담긴 한주의 플레이리스트. 제목을 이어보면 한주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 된다.

플레이리스트를 열어보자. 제목들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지는지, 어떤 주제가 담겨있는지, 어떤 마음이 녹아있는지.

 

 

글·송연주
세종대학교에서 영상예술전공으로 박사를 수료하고 세종대와 정화예술대학교에서 영화와 대중예술 관련 과목을 강의하였다. 예술치료에 관심을 두고 한양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예술치료교육및상담 전공으로 수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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