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왼쪽 심장에 희망을 품다
왼쪽 심장에 희망을 품다
  • 성일권
  • 승인 2014.12.04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좌파가 알아야할 것들> 서평

왼쪽 심장에 희망을 품다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좌파가 집권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선 아직 꿈같은 이야기지만, 지구촌 곳곳에 진보정치를 천명한 좌파정권들이 당당히 들어서고, 또 사라졌다가 다시 출현하고 있다. 진보좌파 세력이 어느 국가에선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절차를 거쳐 집권하고, 또 어느 국가에선 피와 눈물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정권을 잡는다. 우리가 아직 순전한 진보좌파정권을 맞이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흘려야 할 피와 눈물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우파정권의 철벽을 뛰어넘을 만큼 좌파의 역량이 부족해서일까? 혹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빨간 색을 덧칠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우파의 한 분파(어쩌면 중도 우파?)이지 순전한 진보좌파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집권당에서, 이제는 수권 야당을 자처하는 제1야당의 정치세력은 더 이상 진보정책이나 좌파정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을 제도권 안팎으로 나눠 자신 이외의 정치세력, 즉 진보좌파 세력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한국의 양당 구도에서 진보좌파 정당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4개 정당으로 나누어진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은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그 원인으로, 많은 평론가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정당 이미지를 꼽고 있다. 진보좌파 정당들의 패인에 대해 미디어 지식인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시대적 공감대마저 상실하였다. 운동권 이미지, 종북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진보·좌파적 가치를 명백히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학습 및 연구능력 부족은 분명 문제다. 또 일부 성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마 이를 표현하는 정치활동 능력도 매우 서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진보좌파 정치의 가장 큰 오류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혹은 여론과 미디어에 영합하고자 자신들의 주장과 정체성을 일관되게 끌고 가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진보당과 지지자 사이에서는 늘 정당 통합이나 신당 창당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늘 그렇듯이, 예전과 같은 정치공학적인 통합이나 창당이 반복된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은 가치와 비전 그리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정책, 이를 만들어낼 실력을 갖추는 데 노력을 쏟는다. 한국 정치는 촘촘하게 짜인 보수정치에 포획되어 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아직도 진보좌파가 꿈을 꾼다면, 시시각각 변심하는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대신에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일반 대중에 진정성을 갖고서 접근하고, 이를 기초로 정당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할 게 있다. 대중은 진보좌파에게도 진정성이 담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내놓는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은 갈림길에 처한 한국 좌파나, 방향성을 잃은 대중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 책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Manière de voir)> 124호의 <집권좌파의 역사(L’histoire des gauches au pouvoir)>를 기본 텍스트로 삼았으며, 이 주제와 관련한 한국 학자들의 글을 추가해 문맥의 상관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저명한 외국 필진 27명과 국내 필진 6명의 글 34편을 담은 이 책은 진보정치를 향한 인류의 거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좌절, 새로운 진보정치의 재시도, 그리고 한국 진보정치의 시련과 도전을 다루고 있다.

필자들이 무엇보다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집권 중이거나 집권을 준비 중인 좌파세력의 다원적 체제다. 그리고 첫 번째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변화와 개혁을 잘 이끌기 위해서 집권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1부 ‘거대한 희망을 품었다’에서는 세계 진보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파리코뮌을 비롯, 전후 서구 최초의 좌파정권을 수립한 프랑스사회당의 국제주의, 아프리카, 중남미, 미국 진보정치의 투쟁과 희망을 조망한다. 2부 ‘다양한 얼굴의 좌파주의’에서는 북유럽의 예외적인 사회모델을 비롯해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프랑스 코뮌들의 직접민주주의 시도 그리고 베네수엘라, 서유럽의 에콰도로,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의 선구적 진보정치 실험을 소개한다. 3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는 진보정치의 좌절을 보여주는데, 프랑스 좌파정권의 궤도이탈, 스페인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의 탈선, 그리스와 이탈리아 좌파정치의 실종, 그리고 진보좌파정치의 시련과 좌절을 진단한다. 4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꿈꾼다’에서는 기본소득제 도입의 현실성과 미국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진보적 정치 공동체의 등장, 폴라니 사상의 재발견 등을 조망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치체제에 포획된 한국 진보정치의 갈림길과 새로운 탐색을 제시한다.

<르디플로>는 2008년 10월 창간 이후 지금까지 세계 석학들의 혜안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깊이 있게 진단함으로써 지적 담론이 척박한 우리 사회에 지적 자양분을 돋워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르디플로>는 <르몽드 세계사> 시리즈와 <르몽드 환경아틀라스>, 최근에 세계 석학 30명의 글 40편을 묶어 총론격인 <르몽드 인문학>을 출간했으며, 출간 때마다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사유하는 방식’으로 번역되는 <마니에르 드 부아>는 프랑스에서만 매호 8~9만 부가 판매되고 있으며, 바칼로레아 준비는 물론, 대학원 석박사 준비 및 논문 작성의 레퍼런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에 선뵈는 <마니에르 드 부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진보정치에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스로 좌파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좌파에 이유 없는 경멸감을 갖는 독자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어쩌면 좌파조차 모르는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성일권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