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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없는 영화 속의 68혁명
진정성이 없는 영화 속의 68혁명
  • 장루이 코몰리 | 영화감독 겸 평론가
  • 승인 2009.09.03 16: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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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기록’ 명분 속에 식상한 제작 방식 반복
노동자 구호 사라지고 젊은이의 어설픈 대화만

68혁명과 관련된 대중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가장 취약한 점은 바로 이들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세대와 학생에 국한된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측면과 수천만 파업자들의 행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것들의 힘이 결코 무력화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다분히 공모의 시선으로 1968년 5월의 일을 필름에 담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당시 공장과 거리에서 일어났던 일은 영화 속 필름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았으며, 이는 영화를 만든 사람도, 영화의 출연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68 영화들은 불완전한 미완성작이다. 영화 속에서 제아무리 구호를 내걸어도 대개는 보여주기의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유사 이래로 하나의 투쟁이 영화로 찍힌 적은 없었다. 이 시대를 담은 영화들은 마치 스펙터클의 모든 위력을 포기하려는 것 같았고, 영상과 음성의 부족함을 서슴없이 인정하려는 듯했다. 따라서 성급하게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매년 68혁명 기념일이 되면 ‘충실한 기록’과 ‘객관적 시각’을 자처하는 요란한 TV 기념물에 대해 가장 신랄한 반대 시각을 내놓는다. 가령 2008년 파트리크 로트망이 제작한 영화 역시 상투적인 이야기를 지겹도록 되풀이했다. 68혁명은 ‘세대의 반항’이라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측면이나 수천만 파업자들의 행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8년 5월의 구호들조차도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밥 딜런 등) 당대의 음악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소리의 문제는 종종 정치적 상징이 될 때가 많다. 그로부터 40년 후, 파업과 봉기가 연달아 일어나자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러나 ‘쇼’와 같이 ‘다른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음악들이 맹위를 떨친 바 있다. 그리운 어제의 일이었다.

영화를 찍지 말자는 암묵적 규칙

어제의 일이라고 하니 68혁명보다 1년 앞서 출간된 기 드보르의 책 <스펙터클의 사회>가 떠오른다. 사실 68혁명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68혁명은 눈길을 끄는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총회에 모인 영화 공화국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영화의 구조를 재고해보는 과제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영화로 찍지 말자는 규칙이라도 부여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는 이런 순간들을 찍는다는 게 곧 이런 순간들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인들이여, 영화를 찍지 말라’는 역설적인 구호는 곳곳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하나의 기회였다. 68혁명이 갖는 힘에 비해 영화계에서의 반응이 무척이나 미약하긴 했으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실제로도 소홀함은 없었다.


68 영화의 필름에 긴박감이 담겼다. 파리의 대학가 카르티에라탱의 바리케이드는 평시에 드러난 드골 정권의 결함을 의미했다. 이 정권은 그렇게 성급함을 보였고, 그 반대의 상황도 발생했다. 화면이 정지하듯 전망에서도 ‘얼음’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투가 한창일 때 멈춰버린 시간은 놀라웠다.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만들어졌다. 68 영화들에는 이러한 ‘가속화’의 측면(동요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은 음성과 영상)뿐 아니라 이같은 ‘둔화됨’의 양상도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대치하는 양쪽이 주고받은 말들을 경청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시간이라고 하니 페르낭 모스코비츠 감독의 10분짜리 단편영화 <파리 남서지부 철도청 차고 종사원들과의 동고동락>이 금세 떠오른다. 이 영화 속에서는 학생들과 철도 종사원들 사이의 일대일 ‘대화’만 전개된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얘기한다. TV가 나오기 전, 그 시절의 정감 어린 언어다. 우리가 68년 5월에 대해 이렇게 말했던가? 외스타슈의 영화와 바네이겜의 전단지에서처럼? 물론 그렇다. 철도 종사원과 학생이라는 비현실적인 방정식은 옛 자료들을 편집해놓은 그 어떤 작품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만남의 기세를 잃지 않고 한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은 채로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프레임들을 촬영하는가? 하다못해 어떻게 2년마다 상근직원을 교체하는가? 그리고 학생은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생각이 서로 일치한다. 사람들이 당신과 만나 당신을 참여시켜야 할 것 같다.” 숏의 길이, 부드러운 장면 연결, 정확한 대사 등은 영화가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자신이 담당해야 할 부분을 자각하고 거기에 참여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의 참여이다.

영화연구작업실(ARC, 미셸 앙드리외 & 자크 케바디앙)에서 5월에 제작한 영화 두 편, <13구 투쟁위원회>와 <발언권> 또한 영화와 대중 투쟁 사이의 새로운 연대의 탄생을 알린다. 이른바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영화 장르는 1960년이 되어서야 (장 루슈와 에드가 모랭의 <어느 여름 일대기>를 통해) 동시녹음이라는 방식으로 발화자들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영상과 음성을 동시에 삽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녹음기가 내장된 16mm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는 스튜디오 밖에서도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지가 베르토프가 원했던 대로 전문 배우도, 대사도, 시나리오도 필요 없게 되었다. 실로 이는 영화 제작의 ‘민주화’라고 부를 만했다. 거리에서, 작업실에서, 학교에서 한 사람이 촬영도 하고 동시에 출연자의 말도 녹음한다는 건 민중이 있는 곳에서, 민중이 자주적 의사표현을 하는 가운데, 민중을 촬영한다는 걸 의미했다.

영화 속의 68년 5월은 이처럼 1936년에는 불가능했던 조합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파리 13구의 학생과 소시민 계급은 파리교통공사 운전사들과 토론을 벌이게 된다. 어려운 연결이다. 이는 양쪽 집단을 연결함과 동시에 이들 사이의 격차를 강조하는 파노라마 촬영 빈도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두 집단 사이를 흐르는 것은 바로 소리이며, 아직은 식상하지 않은 노동계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는 것이 즐거워진다.

파노라마 촬영과 시퀀스 숏은 68년 5월 영화의 두 가지 주요 형태다. 이들 영화 가운데 대표적인 건 피에르 보노와 자크 빌르몽의 10분짜리 시퀀스 영화 <원더공장에서의 조업 재개>이다. (연극은 하나의 사건이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하루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고전주의 희곡의 삼일치 법칙을 따르는 시퀀스 숏 영화는 (움직이고 있는) 단 하나의 시공간에서 행동이 이뤄진다. 서로 대치하는 존재들은 하나의 프레임과 시간 안에 ‘모여’ 있다. 서로 적으로 대치하고 있더라도 하나의 숏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노조와 사장이 작업장으로 돌아가 일을 재개하라고 주장하며 이 유명한 시퀀스 숏을 끝낼 준비가 돼 있을 때, 봉기한 노동자 쪽은 ‘안 된다’고 소리친다. 이들의 완강한 거부는 인위적 합의를 끌어내고 그와 동시에 분열과 고통의 장이 된 시퀀스 숏에서 통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드러낸다. 그렇다, 영화의 형식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함께’라는 것, 분열과 단합이라는 노동계 투쟁의 두 가지 주요 대립적인 원칙이 드러났던 시트로앵-낭테르(에두아르 아옘) 사태의 쟁점이 바로 그거였다. 대다수 시트로앵 노동자들에게 이는 첫 파업이었고, 또한 그들의 첫 영화이기도 했다. 준비되지도, 가공되지도 않은 노동자들의 영화에서 ‘노동자들의 메아리 없는 공허한 요구’, ‘투쟁에 의해 박탈당한 노조의 자유’ 같은 주장 등이 담겼다. 혁명적 언사를 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모습이 영화로 찍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억이 지나가면 영화 한 편이 남는다. 영화는 역사의 문이 된다.

플랭에 있는 르노 공장에서는 자생 조직과 노조의 규율, 개혁과 혁명 사이에서 낭테르 사태가 재연된다. 장피에르 토른의 <과감히 투쟁하고 과감히 승리하라>는 투쟁위원회와 파업위원회 대 노조와 정당이라는 68년 5월 화두의 전초전을 연다. 자유(혹은 자발성)와 틀 안에 구속하는 것 사이의 배분 문제는 영화계에서도 실제 필드에서 연구되던 논제 가운데 하나였다. 5월과 6월에는 즉흥적 촬영이 이뤄졌으며, 숏들은 이를 유발하는 상황들만큼이나 거칠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편집하고 어떻게 다시 프레임을 짜넣을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르노 사태에서 재빠르게 포착했던 것에 의미와 방향과 연속성을 부여해주려면 이번엔 편집이 책임을 져야 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 건 피켓들이었다. 별수 없이 마오주의 구호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촬영과 편집 사이 머나먼 거리

촬영과 편집 사이의 거리는 실제 파업과 프레임 속 파업의 거리를 따라간다. (크리스 메이커를 포함해, 브장송 및 소쇼 지역 노동자들로 구성된 영화제작 집단인) 메드베드킨 그룹의 <투쟁 색출>이 만들어진 동기 또한 이와 같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제 서로 대치하는 극단적인 양쪽을 대비시키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일 뿐이지만)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것이다. 반기를 들고 일어선 여성 노동자 수잔이 처음으로 담 위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사장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68년 5월 예마 파업 사태의 영상과 대사가 재연되고 되풀이되었다. 이 작품의 영상은 어느 여성 노동자의 첫 탄생을 보여준다.

영화는 투쟁 속에서 어떤 주체가 힘겹게 태어나는 것처럼 분할된다. 혹은 깨졌다 다시 붙는 사랑 이야기 같기도 했다. 투쟁에 대한 열정의 모자이크 주체가 어느 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수잔은 그해 5월 등장했던 수많은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투쟁을 구현한다. 투쟁 영화가 될 이 작품 속에서, 처음으로 구호가 뼛속에서부터 우러나왔다. 투쟁한다는 것, 그건 곧 생동하고 매력적이며 당당하고 자극적이라는 뜻이다. 투쟁은 즐거운 일이다.

몇 년 뒤인 1974년, 시네뤼트 팀이 다시금 문제를 주 무대로 들고 나왔다. 어린 아를레트(라귀예)는 새로운 수잔이었을까? 보기보다 놀라운 작품 <은행이 되는 또 다른 방식>은 (크레디리오네의) 파업 중 일어나는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수많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대사는 즉흥적이고 유쾌하며, 따라서 파괴력을 지닌다. 영화는 68년 때보다 더 편해진다. 자유가 있기에 투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러기에 영화로도 찍힐 수 있는 것이다. 다르보이 인쇄소 점거 일지를 다룬 <어느 단순한 사례>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촬영하기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제작팀의 의견은 곧 파업 주도 쪽의 행동과 일치하지만 파업 현장에서 동시녹음을 할 수 없었기에 노동자의 말은 모두 후시녹음으로 편집되었다. 강력한 ‘간격’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 <어느 단순한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다. 투쟁이 끝난 후에는 사라져야 할 운명인 유토피아의 일부가 영화 덕분에 유지된다. 다르보이는 다시 자본주의 기업이 돼버렸고, 유토피아는 영화로 보존됐다.

취약하고 빈약한 68 영화들과 필요에 따라 재구성된 68 영화들을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후자의 경우 위험도도 떨어지고 자료도 더 풍부하다. 그러나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어느 한 순간과, 영화가 만들어지는 좀더 최근의 현 순간을 재구성하는 건 같지 않은 일이다. 지울 수 없는 영상과 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톤, 행동의 매끄러움, 군중, 구호들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것들이 촬영되어 모두 재구성되었다.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2003년)
그러므로 영화를 비교할 게 아니라 출연자들이 영화 속에서 말하는 방식, 배우들이 68 영화 속에서 말하는 방식을 비교해야 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2003년작 <몽상가들>은 68년 5월 투쟁에 대해 ‘부르주아’처럼 희화화된 우스꽝스런 젊은이들이 어설프게 말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노동자들은 무대에서 사라져 있다.) 이 영화에서는 68년 5월의 진리였던 ‘정치적 신임’의 중요성이 빠져버렸다.

아마도 <평범한 연인들>(필리프 가렐, 2005)은 여느 68 영화 같지 않을 것이다. 5월의 장면이 담겨 있긴 하나, 아스팔트 블랙의 장면들과 영화에 담기면 멋스러운 장면들밖에 없다. 이 영화 속에서 모든 건 매력적이다. 다만 한 가지, 두 배우의 대사만 빼고 말이다. 빈약한 구호는 믿음 없이 소리만 높게 외쳐지고, 믿음 없이 촬영되고, 믿음 없이 조명이 비춰진다. 영화는 있으나 믿음은 없다. 이 영화는 그해 5월, 정치적 투쟁과 영화가 서로 교차되고 서로 부추기던 당시의 순간을 깎아내리는 역할을 한다. 68 영화들은 심지어 어설프게 우리에게 이것을 상기시켜준다. 영화는 정치적 감정의 흥분과 멀어지면서 멸망해간다고 말이다.

글·장루이 코몰리 Jean-Louis Comollie
시나리오 작가 및 감독, 1962~78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번역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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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햐기 2012-06-14 02:12:44
매우 공감가는 글이군요... <몽상가들>이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젊은 청춘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바라보기만 하기엔...;;; 혁명운동의 외부에 걸터앉아 장난치는 것으로 밖에 안보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