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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금연구역 증가 부작용…대안은?
무분별한 금연구역 증가 부작용…대안은?
  • 선초롱 기자
  • 승인 2015.08.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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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금연정책 아닌 ‘분리형 금연정책’ 필요
▲ ⓒ 뉴스1

청계천을 따라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식당가.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식당가 복판 야외 공간에서 삼삼오오 담배를 꺼내 문다. 주위에 단속요원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손사래를 치지만, 이곳은 어느덧 공공연한 흡연장소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정부와 보건당국이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치는 간접흡연을 막겠다며 금연구역을 대폭 확대하고 있지만, 흡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마저 없다보니 길거리 흡연을 하는 흡연자들이 늘어나고 간접흡연에 비흡연자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무분별한 금연구역 지정, 길거리 흡연 조장

올해 들어 정부는 면적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2013년 면적 150㎡ 이상인 음식점 7만 여개를 시작으로 2014년 면적 100㎡ 이상 되는 곳을 포함, 단계적으로 늘었던 ‘음식점 금연’이 올해에는 전국 75만개에 달하는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 적용됐다. 실내뿐만이 아니다.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조례를 제정하면서 대로변, 광장, 공원, 터미널, 해수욕장, 지하철 출구 등으로 금연구역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금연구역은 늘어가고 있지만 흡연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시에 존재하는 실외 금연구역은 총 1만2141곳인 반면 흡연자를 위한 합법적인 흡연공간은 25곳에 불과하다. 흡연자들 입장에서는 독한 마음을 먹고 담배를 끊기 전까지 어떻게든 흡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보니 주위 시선을 피해 이면도로나 건물 뒤에 몰려 담배를 꺼낼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흡연 공간 마련해야

지난 6월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흡연자 및 비흡연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흡연공간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흡연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79.9%로, ‘불필요하다’는 의견(20.1%)보다 약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비흡연자들 가운데 80%가 넘는 응답자가 ‘길거리 흡연구역’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정부의 무조건적인 금연구역 확대 정책에 대해 흡연자들은 물론 비흡연자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금연구역 지정에 앞서 흡연실 설치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최소한의 흡연공간을 마련함으로써 흡연자들에게 불편함을 줘 금연을 유도하고,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도 방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 ⓒ 뉴스1

지난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모든 음식점 전면 금연정책으로 인해 길거리 흡연이 늘어난 것과 관련해, 금연구역 안에 흡연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최 의원은 “정부가 충분한 대책 없이 실시한 금연정책으로 인해 비흡연자, 흡연자 모두 고통 받고 있다”며, “이 법안이 통과돼 유동인구가 많은 금연구역 내에 흡연실이 설치되어 국민들의 혐연권이 보장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비오 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 또한 “대폭적인 담뱃세 인상에 따라 흡연자들이 내는 세금이 연간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방향적인 금연정책 속에 담배 소비자들의 권리는 계속해서 무시당하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금연구역만 남발하지 말고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흡연 구역 설치에 나서야 할 때”이라고 주장했다. 

국민건강증진기금 활용해 흡연실 설치해야

지난 해 담뱃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약 7조원이다. 이 중 보건복지부로 귀속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은 1조6000억원 가량된다. 담배판매로 거둬들인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담배와 연관된 곳에 쓰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중 단 1%만이 관련 사업에 쓰이고 있다. 

특히 올해 담뱃세 인상으로 한 갑당 부과되는 증진기금은 354원에서 841원으로 증가해 올해는 두 배 가까이 늘어 3조원이나 되는 기금이 거둬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담뱃세 인상 전에도 기금 납부자인 흡연자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국민건강증진과 무관한 건강보험재정지원, 질병관리본부의 일반관리비, R&D사업 등으로 쓰여 시민단체는 물론 국회 등에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기금의 일부를 흡연실 설치를 위해 써야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 뉴스1

국내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 측은 “흡연자들이 부담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사용해 최소한의 흡연공간을 마련해야만 실효성 있는 금연정책을 펼칠 수 있다”며, “우리보다 앞서 길거리 금연을 시행했던 일본의 경우 음식점주들이 흡연실을 설치할 경우 정부에서 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을 비롯해 우리나라보다 앞서 공공장소 금연을 시행했던 홍콩, 미국, 호주 등에서는 금연구역 내 흡연공간을 곳곳에 설치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분리형 금연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금연구역을 지정하면서 별도 흡연공간을 만들어 정해진 장소에서만 흡연을 허용함으로써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을 방지하는 한편, 흡연자들의 불만도 최소화한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스위스의 경우에도 실외에서는 흡연자들이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다. 이런 선진국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좋은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또한 흡연자와 비흡연자들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효성 있는 규제를 펼치기 위해 전면 금연정책이 아닌 ‘분리형 금연정책’을 합리적인 대안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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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초롱 기자 scr324@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