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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지날 수 없는 대학 캠퍼스
바퀴가 지날 수 없는 대학 캠퍼스
  • 정윤하/바람저널리스트
  • 승인 2016.08.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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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계절학기가 끝나고 진짜 방학이 왔다. 몇 달 전 시끌벅적하던 대학 캠퍼스는 한여름 땡볕까지 한몫했는지 퍽 한산해졌다. 열기를 한 차례 걷어내고 단풍이 시작될 때를 상상해 본다. 빽빽한 연강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하릴없이 강의서를 손에 안고 뛰어나가는 학생, 아예 걷기를 포기하고 셔틀버스 줄에 껴 있는 학생, 혹은 공강 시간 중앙도서관이나 학생식당을 오르내리는 학생까지. 주요 건물들 사이에 무빙워크가 깔려 있었으면- 허무맹랑한 공상에 빠진 수많은 보행자들이 드넓은 캠퍼스를 자근자근 밟으리라.

그러나 편리를 부르짖는 개중엔, 캠퍼스를 이용할 온당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각이 코앞이지만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야 하고, 셔틀버스는 그림의 떡이며 학교 시설물은 진입로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자기 몸의 몇 곱절은 더 나가는 전동 휠체어(스쿠터)를 이용하는 지체장애 대학(원)생들의 이야기이다.

2014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 결과 전체 장애인구 중 지체장애 인구는 51.9%를 차지, 가장 많은 장애유형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통계자료상 당해 대학원 및 대학 장애인 입학 인원은 7천 여 명으로, 전체 입학생 수와 비교했을 때 대형 종합대학의 경우 단과대마다 1~2명의 지체장애 학생이 입학한 셈이다. 장애인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이 50%에 육박하는 현재,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과 시설은 더 이상 특수학교나 필수교육과정상의 문제로만 한정지을 수 없게 되었다.

2014년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실시한 전국 장애학생 교육복지 실태조사에서 선발, 교수학습, 시설설비 세 가지 영역 중, 시설 지원은 대학규모를 막론하고 33점 만점에 20점대 중반의 점수에 그침으로써 가장 미진한 점수를 기록했다. 시설부문은 규모별 표준편차 또한 6.5점 수준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즉, 장애학생을 위한 시설 지원이 대학마다 개별적인 방침 내에서 제한적으로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도 휠체어 이용자의 학내 보행권, 이동권을 위한 시설은 예산상의 문제로 열악한 편에 속한다.

대표적인 휠체어 친화 시설로는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이원화된 근교캠퍼스를 운영하는 대학의 경우 저상/리프트 셔틀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2014년 기준, 전국 407개 대학 중 357개 대학에서 장애학생 당사자들과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노력으로 강의동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의 보급이 이루어지거나, 차선책으로 강의실변경 사업 등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강의동이 아닌 경우 학교 재량 부족으로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건물들은 보완책 없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2015년 국립특수교육원 조사 결과 서울시내 근교캠퍼스 운영 사립대학 9개 중 현재 장애학생들이 통학이나 교내 이동에 필요한 ‘저상’ 셔틀버스나 ‘리프트’ 버스가 있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사진2, 서울 주요대학 셔틀버스 도입 현황, 출처 : EBS)

휠체어 이용 학우를 위한 시설설비의 개선이 대학마다 미진한 일차적인 이유는 상당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다. 필자가 재학 중인 대학은 2011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요 노후 건물 4개에 40억 이상의 예산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신설하였다. 다년간의 꾸준한 요청 끝에 이뤄진 결과였다. 그러나, 위 실태조사에서 매년 최우수 등급을 받고 있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이원캠퍼스 운영이 5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현재 저상/리프트 버스 운영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상/리프트 버스는 일반버스 구입비용의 약 두 배가 들고, 그 차이는 1억 원을 호가한다. 더군다나 리프트 버스의 경우 버스 구입 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할 운영비도 고려해야 하기에 시내버스와 달리 국고지원 없이는 대학 자체적으로 시행하기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필요한 비용이 크다면 많은 예산을 투자하면 될 일이다.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고 있기에 장애학생의 처우 개선이 매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질에 우선해야 할 인권의 문제가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국가적 차원의 방침이 부족한 현실이 자리한다. 현재 교육부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특수교육을 모두 지원하는 유일한 부서로 특수교육정책과가 존재하고, 그마저도 상당 부분 필수(중등)교육 정책에 치중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차원의 장애대학생 지원 방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율적인 방침을 운영할 수 있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소수 구성원에 대한 지원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매년 이루어지는 대학별 장애대학생 교육복지 실태조사도 사후 성과관리 시스템이 전무하기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유인책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평가 결과값에 변동사항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올해부터 하위 등급 대학에 대해 예년보다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교육 여건, 학사 관리, 교육 과정, 학생 지원, 교육 성과, 특성화 등을 지표로 삼고 있는 이 평가를 앞두고 대학마다 비상이 걸렸다. 교육 성과를 높이기 위해 취업 지원을 확대하고, 특성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강의를 늘리고 국제캠퍼스를 건설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추세가 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나라 안팎의 부실대학을 걸러내겠다는 평가지표에 장애학생 지원과 관련된 항목이 없다. 장애학생 지원과 그들의 교육 여건은 정부에서도 관심분야가 아닌 모양이다.

 

정윤하 / 바람저널리스트 (http://baram.news / baramy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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