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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리듬, ‘월드뮤직’의 향연
삶과 리듬, ‘월드뮤직’의 향연
  • 김지연
  • 승인 2016.09.01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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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World music)’은 최근 국내 대중문화 속에서도 간혹 등장하는, 낯설지 않은 단어다. 보통 남미나 아프리카의 낯선 리듬을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직역하면 ‘세계 음악’이라는 쉬운 말이다. 그럼에도 번역하지 않고 굳이 ‘월드뮤직’이라고 하는 것은, 이 단어가 단순히 ‘세계의 모든 음악’을 뜻하기 보다는, 특정한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의 ‘월드뮤직’은 세계 각지의 토착성이 드러나는 특유의 대중음악, 혹은 현대화된 민속음악을 말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여기서 ‘세계’란 영미권 국가에서 바라본 타 국가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영미권 국가 특유의 음악인 팝, 알앤비, 힙합, 재즈 등은 각각의 고유 장르로서 존재하고, 그 외 국가의 음악들을 통칭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월드뮤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월드’에 속하는 국가들도, 이 영미권 국가들의 기준을 거의 동일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영미권 음악이 먼저 소개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월드뮤직’을 둘러싼 오해와 선입견들

월드뮤직이라고 칭하는 것 중에서 국내에 먼저 소개된 것은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 포르투갈의 파두 등 유럽 지역의 음악들과,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같은 남미권 음악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아프리카나 중동, 동남아시아 등 한층 다양한 지역의 음악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후자의 음악들은 아직 개별 장르의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그저 ‘월드뮤직’으로 통칭할 뿐이다. 이즈음에서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고유 명칭으로 불릴 수 있는지 여부는 해당 국가가 가지는 힘과 맞닿아 있다. 영미권 국가의 기준에서 볼 때 아직 ‘변방’에 속하는 국가의 음악은 그 고유 명칭으로 불리지도, 개별적인 장르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대중이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대중에게 늦게 호명될수록 권력을 가지는 반대 상황도 있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국내 음악계에서 해외 음악은 곧 영미권의 팝, 알앤비, 힙합 등을 의미했다. 당시 월드뮤직이라는 것은 들어 보기도 어려웠고, 영미권의 음악 중 다소 늦게 국내에 진입한 재즈가 대중적인 걸음마를 겨우 떼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즈는 사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흑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민중음악이나 민속음악에 가까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내에서는 특별한 음악애호가들이나 유학파들만 즐겨 듣는 고급 음악에 속했다. 그 옛날의 수입 공산품처럼, 접근성이 떨어지는 낯선 해외문물을 고급문화로서 소비한 것이다. 현재는 재즈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80-90년대, 그리고 아마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즈는 대중문화가 아니었다. 한편 재즈보다 낯선 월드뮤직은 더했다. <여인의 향기>같은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탱고 정도를 아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월드’의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도, 대중 매체에서 이를 소비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소비하는 문화의 장르는 때때로 취향과 계급을 가르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중에게는 낯선 재즈나 월드뮤직을 듣는다는 것이 해외 문물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속해있거나, 문화적 식견이 높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마치 과거에 궁중음악과 저잣거리 풍물패의 연주가 전혀 다른 것으로 취급되며 두 장르가 섞일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재즈와 같은 장르는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과 굳건하게 구분돼 있었다. 그리고 재즈가 점차 대중화된 후에는, 월드뮤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늦게 호명되는 장르일수록 더 특별한 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월드뮤직은 특별하고 어려운, 특정한 이들만 누리는 고급문화가 아니다. 해당 국가 내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민요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월드뮤직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지난 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2016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에는, 10개국 13개 팀과 12개의 아마추어 밴드가 참여했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2만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중앙아시아의 음악에 펑크, 블루스, 락 등을 결합한 ‘예맨 블루스’, 말레이시아의 타악연주 그룹인 ‘아세아나 퍼커션 유닛’ 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월드뮤직으로 유명한 국내 뮤지션 하림과 보컬 호란, 프랑스의 집시 음악을 선보이는 ‘집시앤피시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무대 역시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이달 초에는 ‘코리아 로맨틱 탱고 위크’ 행사의 일환으로 국립극장에서의 탱고 공연과 함께 남이섬 일대에서 ‘아일랜드 탱고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또한 해외의 다양한 장르나 악기를 받아들인 기존 음악가들이 국악이나 재즈에서 방향을 틀어 월드뮤직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재즈 뮤지션들이 탱고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밴드 ‘라 벤타나’가 그러한 경우고, 국악 연주자들이 퍼커션, 젬베 등 해외 악기들과 직접 만든 악기들까지 섭렵하며 자연의 소리를 전하는 ‘공명’과 같은 그룹도 있다. 한편, 베이스, 색소폰, 트럼펫, 가야금, 전통 타악 5인조로 구성된 월드뮤직그룹 ‘세움’은 얼마 전 영국 에딘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최대 리뷰 매체인 ‘브로드웨이 베이비’로부터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가 <무한도전>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전에는 무척이나 생소했던 이 아르헨티나 악기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증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제는 구립문화센터, 고궁 등에서 개최하는 무료 공연에서 탱고나 아프리카의 드럼 공연, 국악과 월드뮤직의 크로스오버 공연이 열리기도 하며, 해외 영화가 아닌 지극히 대중적인 국내 드라마의 소재로 탱고가 쓰이기도 한다.(1)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월드뮤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여겨볼만한 것이 바로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다.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는 국악과의 협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적인 탱고 음악을 표방하는 국악 탱고 그룹 ‘제나탱고’는 지난 5월 정동극장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젊은 여성 국악인들로 구성된 국악그룹 ‘미지’는 아르헨티나 공연에서 탱고와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그리고 지난 여름 국립극장에서 개최된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국악과 타 음악 장르, 심지어 영화나 연극, 사진 등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했다. 이는 2010년부터 고민해온 ‘한국 음악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소개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는데, 대금 명인 이생강과 신관웅 재즈밴드의 공연, 거문고 명인 김영재와 소리꾼 이봉근, 그리고 대중가요의 송창식과 기타 함춘호의 온갖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등 흥미로운 장면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경기민요의 이단아로 불리는 소리꾼 이희문과 재즈밴드 프렐류드와의 협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요는 한국 민중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이고, 재즈는 미국 흑인들의 리듬이니 결국 둘 다 각 국가의 풀뿌리 음악인 셈이다. 그러나 재즈는 한 나라의 토착 음악 중에서도 이미 국제적 대중성을 획득한 장르로서, 월드뮤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적인 장르에 가깝다. 이러한 재즈의 대중성을 더해, 경기민요는 ‘한국음악’이라는 틀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재즈는 우리의 가락인 경기민요를 만나 한국이라는 땅에 더 깊이 뿌리 내리고 토착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앞서 언급한 국악그룹 ‘미지’는 아직 우리 음악을 낯설어하는 아르헨티나에서, 그들의 리듬인 탱고를 시도함으로써 그 곳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탱고와 국악의 어우러짐

다음 달 9일에 내한하는 ‘하드 탱고 챔버’ 공연은 어쩌면 그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밴드는, 반도네온 연주자인 리더 제이피 요프리와 차이코프스키 공쿠르 수상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릭 실버거가 이끄는 클래식 탱고 밴드다. 이들 외에 첼리스트 에이미 강, 베이시스트 크리스 존슨, 피아니스트 파블로 카피로 구성돼 있다. ‘하드 탱고 챔버’는 미국과 남미 각 도시, 그리고 도쿄 등에서 공연해왔으며, 이미 지난 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바 있다. 10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릴 공연에서는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 파키토 드리베라와 함께 클래식, 탱고, 라틴재즈를 아우르는 무대를 준비 중이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탱고 밴드의 공연이 무려 2천여 석을 갖춘 대형 콘서트홀에서 열린다는 것만 봐도, 탱고(와 같은 음악)에 대한 열기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 때는 다른 음악들과 한데 묶여 월드뮤직이라고 불렸던 탱고는, 이미 고유의 이름으로 대중으로부터 줄기찬 호명을 받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음악이 자신만의 이름을 드러내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드리베라와의 협연 외에 ‘하드 탱고 챔버’의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점은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다. 이들은 탱고 챔버와 해금이 함께 연주하는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선보일 예정인데, 실력 있는 작곡가이기도 한 제이피 요프리가 직접 편곡을 준비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공기를 머금은 탱고가 한국의 악기인 해금의 가락, 그리고 ‘아리랑’의 정서와 어우러져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한 가지 토양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꿈틀대며 다른 것을 향하고, 새로운 것으로 거듭나는 음악의 모습이 흥미롭다. 
민초들의 음악은 어느 시대, 어느 땅에나 존재해왔다. 그것들의 본질은 하나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음악의 형태가 변주될 수는 있어도, 희노애락이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질기게 엉겨 있는 내부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비지터>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던 노교수 월터는 우연히 만난 불법이민자 타렉에게 젬베를 배우기 시작한다. 경쾌한 젬베 리듬 사이에서 전혀 다른 문화들이 어우러지고, 클래식만 듣던 월터는 새로운 삶의 활기를 느낀다. 한편 사랑과 탱고와 삶에 관한 영화, <탱고 위드 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교도소 재소자들이 단체로 탱고를 추는 장면이었다. 평범한 이들, 또는 도덕의 부재나 가난의 그림자 등 온갖 애환으로 그늘진 이들의 삶에 한바탕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그리하여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어쩌면, 이들의 모습 자체가 바로 음악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예술의 장르를 나누고 정통성을 부여하며, 또 그것을 수호하고 지속해 나가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역사와 예술을 박물관에 보존하며 연구하는 일과도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역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온갖 미디어를 섞어서 만들어 낸 미술품이 그림이나 조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것을 굳이 견고한 벽으로 가르고 나눌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국악이건, 재즈이건, 탱고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 말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관계를 맺으며 다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는 그 새로운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기도 한다. 지금 현재 살아 꿈틀대고 제 모습을 수시로 변형하는 존재들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이름표를 붙이며 규정지을 수 있을까. 그저 이 모든 움직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할 뿐이다. 민중인 우리가 지금 여기 이 땅에 살아 있듯, 우리의 음악들도 지금 여기에 살아 춤을 춘다. 모든 음악이, 예술이, 한데 뒤섞여 벌이는 오늘의 향연. 참 멋지지 아니한가.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1) 지난 7월 마포아트센터 ‘천원의 문화공감’에서 라틴음악을, 8월 고양문화재단 ‘아람누리마티네’에서 탱고를 공연한 바 있으며, 덕수궁 등 서울 시내 고궁에서 무료로 개최한 야외 공연에서도 경기민요와 재즈를 결합한 크로스오버 공연을 선보였다. 9월에는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월드뮤직그룹 공명과 가야금, 전통무용, 스트릿댄스의 크로스오버 공연이 무료로 열린다. 2011년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를 주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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